까보레가 경남에서 한 시즌 동안 보여준 임팩트는 어마어마했다. ⓒ경남FC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K리그에는 외국인 선수가 등록할 때 굳이 선수의 본명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프로축구연맹은 한국 선수들에 대해선 본명을 등록명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외국인 선수는 다르다. 연맹은 외국인 선수들의 등록명에 대해선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 말은 곧 가명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그간 K리그를 거쳐간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의 진짜 이름 대신 자신이 선호하는 이름이나 별명을 등록명으로 삼았다. 특히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이름이 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은 거의 대다수가 자신의 본명이 아닌 가명을 이름으로 등록했다. 다음부터 소개하는 10명의 선수는 독특한 가명으로 K리그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준 '가짜 이름'의 선수들이다.

수호자 (본명: Mario Sergio Aumarante Santana) - 소속팀: 울산 (2004)

지난 2004년 울산에서 활약했던 공격수 수호자의 본명은 마리우 세르히우 오마란테 산타나(Mario Sergio Aumarante Santana)다. 1977년생인 수호자는 지난 2001년 불가리아 로코모티브 소피아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수호자는 2004시즌을 앞두고 울산 유니폼을 입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호자는 울산 입단 당시 특별한 등록명을 부여받길 원했다. 이에 울산 구단은 그의 등록명을 '승리를 지켜내라'라는 의미의 수호자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승리를 지켜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격수였던 그는 전반기 동안 단 두 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결국 김정남 감독은 공격수인 그를 수비수로 활용하기에 이르지만 수호자는 울산 수비를 '수호' 하는데도 실패하며 한 시즌 만에 K리그를 떠났다.

까보레 (본명: Everaldo de Jesus Pereira) - 소속팀: 경남F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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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경남에서 활약했던 까보레 역시 특이한 등록명으로 기억에 남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당시 까보레는 박항서 감독의 눈에 띄어 K리그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팬들은 경남의 까보레 영입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수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K리그에 왔고 이에 팬들은 까보레 역시 그저 K리그를 거쳐가는 여러 브라질 선수 중 한 명일것이라 생각했다.

까보레의 K리그 입성이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그의 등록명이 너무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로 까보레는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소년, 뚝배기,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 등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촌스러웠던 이름과 달리 까보레의 실력은 뛰어났다. 팬들은 까보레의 뛰어난 골 결정력과 스피드, 개인기에 열광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까보레는 시즌 종료 후 K리그 득점왕 및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자신의 주가를 높였다. 결국 높아진 까보레의 몸값을 경남은 감당하지 못했고 까보레는 2008년 1월 FC도쿄로 전격 이적하며 한 시즌 만에 K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박은호 (본명: Querino da Silva Wagner) - 소속팀: 대전 시티즌, FC안양 (20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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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전과 안양에서 활약했던 박은호는 아예 등록명을 한국 이름으로 바꾼 특이한 케이스의 선수였다. 박은호는 대전 입단 전 브라질 3~4부리그를 전전하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왕선재 감독의 눈에 띄어 2011년 대전으로 이적하며 처음으로 해외 생활에 나섰다.

이후 대전 구단은 그의 본명인 바그너 대신 바그너의 한국 발음과 비슷한 '박은호'를 그의 등록명으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박은호는 "동료 선수들이 나를 부를 때 들리는 소리와 비슷한 박은호를 등록명으로 택했다. 박은호가 내 이름인 바그너와 가장 비슷하다고 해서 정했는데 마음에 든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은호의 한국 적응을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은호는 이후 자신의 등록명과 태극기가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서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리그에 잠시 몸담은 박은호는 2014시즌 안양에 입단하며 K리그로 복귀했다. 하지만 박은호는 안양에서 17경기 출전 1골에 그치며 시즌 종료 후 쓸쓸히 K리그를 떠났다.

타이슨 (본명: Nestor Fabian Caballero) - 소속팀: 대전 시티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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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대전에서 활약했던 타이슨은 보여줬던 활약보다는 특이한 등록명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선수다. K리그 입단 당시 타이슨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 출신 공격수로 관심을 모았다.  콧수염을 갖춘 그의 이색적인 외모와 엄청난 피지컬 역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그는 '타이슨'이라는 등록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타이슨은 대전 입단 전 파라과이 리그에서 뛰던 시절 전설적인 프로복서 마이크 타이슨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타이슨'이라고 불렸다. 이에 타이슨은 K리그에서도 이 별명을 사용하길 원했고 대전 구단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를 프로축구연맹에 타이슨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강렬했던 외모, 이름과 달리 타이슨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타이슨은 대전 입단 기자회견에서 "10골에서 12골을 넣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지만 이후 리그 6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망신살을 뻗쳤다. 당시 대전 최윤겸 감독은 타이슨을 두고 "내가 본 역대 최악의 외국인 선수"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뽀뽀 (본명: Adilson Ferreira de Souza) -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 (2005~2006), 경남F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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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산과 경남에서 활약했던 뽀뽀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그 이름으로 관심을 모았던 선수다. 현재까지도 많은 브라질 선수들은 긴 이름으로 인해 자신의 별명을 등록명으로 사용하곤 한다. 뽀뽀 역시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의 브라질 시절 별명은 포포(POPO)였다. 그러나 팬들에게 좀 더 친근한 인상을 남기길 원했던 부산 구단은 포포와 논의 끝에 등록명을 '뽀뽀'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뽀뽀는 놀라운 활약으로 부산 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빨랫줄 같은 프리킥이 예술이었다. 뽀뽀는 지난 2006년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자신이 기록한 프리킥 골이 무효 처리가 되자 재차 프리킥을 시도해 끝내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뽀뽀는 2007시즌을 끝으로 한국 무대를 떠났다. 뽀뽀는 K리그 통산 91경기에 출전해 32골 24도움을 기록했다.

솔로 (본명: Andrei Solomatin) - 소속팀: 성남 일화(2004)

지난 2004년 성남 일화는 러시아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미드필더 겸 수비수 안드레이 솔로마틴을 영입했다. '큰손' 성남이 찍은 선수답게 솔로마틴의 이력은 화려했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러시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조별리그 세 경기에 출전했다. 성남 입단 전 거친 팀들도 CSKA 모스크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FC 크라스노다르 등 모두 러시아 명문팀들이었다.

그런데 이후 조금은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성남 구단은 그의 등록명을 안드레이 솔로마틴도, 안드레이도, 솔로마틴도 아닌 '솔로'로 결정했다. 결국 솔로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자신의 이름답게 K리그 네 경기 출전에 그치며 한국을 떠났다. 인생이 이름을 따라서 흘러간다는 말이 허구가 아님을 솔로는 몸소 증명했다.

아트 (본명: Gefferson da Silva Goulart) -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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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역사에서 가장 황당한 등록명을 가졌던 선수를 꼽자면 이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지난 2006년 부산에서 활약했던 아트다. 브라질 출신인 아트의 본명은 제퍼슨 다 실바 굴라트(Gefferson da Silva Goulart)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을 정체 불명의 등록명으로 둔갑시키는데 능한 부산은 또 한 번의 작명 센스를 발휘했다.

아트는 부산 입단 전 등록명으로 자신의 이름인 굴라트(Goulart) 대신 예술 같은 골이라는 의미의 '골 아트(Goalart)'를 사용해왔다. 이후 부산 구단은 '골 아트' 대신 그가 프랑스의 아트 사커 같은 화려한 축구를 보여주길 희망한다는 의미에서 그를 아트로 연맹에 등록했다. 하지만 아트는 이러한 부산 구단의 바람과 달리 K리그 5경기에 출전해 1골 1도움에 그치며 6개월 만에 K리그를 떠났다.

소말리아 (본명: Waderson De Paula Sabino) -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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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부산 아이파크를 이끌던 故 이안 포터필드 감독은 190cm의 신장을 갖춘 브라질 출신 공격수 완델손 데 파울라 사비노를 영입했다. 과거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하며 유럽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을 정도로 완델손 데 파울로 사비노는 화려한 이력을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이후 이 선수의 이름은 난데없이 소말리아가 되어버렸다.

뽀뽀, 아트 등 화려한 작명 센스로 이름을 떨쳐왔던 부산이지만 소말리아의 등록명 결정에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의사가 반영됐다. 부산 입단 전 우크라이나 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던 소말리아는 우크라이나 시절 소속팀 관계자들이 자신에게 부르던 소말리아라는 이름을 K리그에서도 사용하길 원했다.

그의 이름에서는 소말리아와 연관된 그 어떤 글자도 찾을 수 없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소말리아라고 불렸다. 이후 소말리아는 2006시즌 리그 22경기에 출전해 9골 6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시즌 종료 후 플루미넨시로 향하며 한 시즌 만에 K리그 생활을 마감했다.

쿠키 (본명: Andy Cooke) - 소속팀: 부산 아이콘스 (2003~2004)

'외국인 선수 이름 짓기의 대가' 부산은 지난 2003년 또 한 번 역사에 남을 선수 등록명을 발표했다. 부산은 2003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국적의 스트라이커 앤디 쿡을 영입했다. 쿡은 부산 입단 전 번리, 스토크 시티 등 잉글랜드 하부리그 구단들을 두루 거친 수준급의 선수였다.

긴 본명을 가진 브라질 선수들과 달리 쿡의 이름은 앤디 쿡으로짧고 간단했다. 한국어로 부르기에도 편했다. 그러나 부산은 그의 이름에 귀여움을 더 부여하며 그를 쿠키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연맹에 등록했다. 다소 우스운 이름이었지만 쿠키는 빠르게 K리그에 적응하며 부산의 공격을 이끌었다. 쿠키는 故 이안 포터필드 감독 아래서 2003, 2004 두 시즌 동안 K리그 49경기에 출전해 21득점을 기록했다.

아톰 (본명: Artem Oleksandrovych Yashkin) - 소속팀: 부천SK (2004)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출신의 아톰은 K리그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선수다. 아톰은 K리그 입성 전 디나모 키예프, 아스날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 명문팀들을 두루 거친 수준급의 선수였다. 지난 2000년에는 우크라이나 A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A매치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 부천SK는 공격력 강화를 위해 디나모 키예프로부터 아톰을 10개월 임대영입했다. 하지만 아톰은 2004시즌 K리그 23경기에 출전해 무득점 2도움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부천 팬들은 아톰에게 우주소년 아톰과 같은 멋진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는 초라한 모습만을 남긴 채 한 시즌 만에 K리그를 떠났다.

다소 황당한 등록명을 가졌던 선수들… 그러나 이들 또한 K리그 역사의 일부

이렇듯 가명을 등록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축구연맹의 규정으로 인해 그간 K리그에는 수많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외국인 선수들이 거쳐갔다. 때로 많은 팬들은 황당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등록명을 두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K리그 역사의 일부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긴 했지만 선수들의 이름만으로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에서 이 K리그만의 독특한 규정은 나름 성과가 있었다.

henry412@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