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에 물 채워라” 이 비아냥이 실제로 이뤄진 순간

ⓒ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과거 축구 국가대표팀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면 나오는 말이 있었다. 바로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외침이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후로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다. 2002년 이후 국민들은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4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6강에는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높아진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야구 대표팀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축구 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예선 탈락하자 비교는 더욱 심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에서 1,2등을 다투는 야구와 달리 왜 축구는 발전하지 못하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축구장에 물이나 채워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말은 축구 선수들과 수영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간접적으로 비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티즌들은 수영을 비롯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좋은 여건에서 생활하는 축구 선수들을 “축구장에 물이나 채워라”라는 말로 조롱했다.

그런데 농담으로만 여겼던 ‘축구장에 물이나 채워라’라는 말이 최근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달 12일부터 28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실제로 축구장에 물을 채우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홈페이지

‘평화의 물결 속으로’라는 모토를 내세운 이번 2019 광주 세계 수영선수권대회는 193개국에서 총 7,266명의 선수가 참여했다. 특히 눈에 띄는 종목은 수구였다. 이번 대회 수구 종목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렸다.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세계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눈에 띄는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이 수구 경기장이 세워진 장소가 남부대학교의 축구장이라는 것이다.

앞서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는 사후 관리,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대회 기간 동안 활용할 임시 수구 경기장을 남부대 축구장에 짓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정부와 강원도가 경기장 철거와 사후 관리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많은 골머리를 앓고 있음을 고려할 때 조직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후 조직위원회는 가로 35m·세로25m·깊이2m로 이뤄진 ‘수조’ 형태의 임시 수구 경기장을 남부대 축구장에 만들었다. 관람석은 4,340석이었다. 하지만 임시 구조물로 이뤄진 구장이라고 해서 관람 환경이 열악할 것이라 예측했다면 큰 오산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해 여름이지만 수구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경기장을 덮은 천막의 존재로 인해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깔끔했던 경기장 시설 역시 관중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하지만 대회 전 밝혔던 계획에 따라 현재 수구 경기장은 철거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조직위원회는 수구 경기장의 각종 시설 철거와 운동장 복구 과정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수구 경기장이 있었던 이 장소는 이전과 같이 남부대 축구부를 위한 축구장으로 활용된다.

이번 대회에서 ‘축구장에 물을 채웠던’ 경기장은 남부대 축구장만이 아니다. 조선대학교 축구장 역시 하이다이빙 경기장으로 활용됐다. 하이다이빙 경기장은 조선대 축구장 위에 임시 시설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조선대 축구장에는 남자 27m, 여자 20m의 다이빙 플랫폼과 지름 17m, 깊이 6m의 수조가 설치됐다.

ⓒ 광주 세계 수영선수권대회 홈페이지

하지만 이 경기장 역시 대회가 종료됨에 따라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현재 조선대에서는 하이다이빙 경기장의 철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내달 11일 모든 철거작업이 완료되면 이 장소는 이전과 같이 조선대 축구부를 위한 축구장으로 활용된다.

한편 이렇게 철거된 임시경기장의 설비들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재활용된다. 이번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임시경기장들은 국제수영연맹의 공식 후원사인 독일의 레이어사로부터 빌려와 사용됐다. 수조는 이탈리아 밀사의 제품이다. 두 회사는 이들 설비들을 철거한 뒤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재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국내에서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말은 축구 종목과 선수들을 향한 비아냥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2019 광주 세계 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는 실제로 축구장을 임시 경기장으로 새롭게 활용하며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말이 비아냥이 아닌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위선양, 국민 통합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여러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은 건 결국 하얀 코끼리와 이 시설물들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막대한 비용뿐이었다.

그러나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은 달랐다. 광주시와 대회 조직위는 과거의 아픈 경험들에서 개선점을 찾았고 축구장에 물을 채우는 새로운 접근으로 성공적인 대회 개최와 저비용 고효율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렇듯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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