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랜드가 파죽의 4연승을 내달렸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잠실종합운동장=김현회 기자]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상대 골키퍼들이 실수를 해.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어.” 지난 12일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한 하나원큐 K리그2 2019 원정경기를 앞두고 상대팀인 수원FC 김대의 감독이 한 말이었다. 그는 골키퍼의 실수로 대단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9연패 끊고 연승까지’ 상대팀 골키퍼의 연이은 실수

그 시작은 지난 달 28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과 서울이랜드의 경기부터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서울이랜드는 무려 9연패를 기록하며 최악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도 패할 경우 서울이랜드는 전북버팔로가 세운 10연패와 타이를 이루며 프로축구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의 불명예를 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이랜드가 전남을 제압하며 기나긴 연패에서 탈출했기 때문이다.

무더위 속에 치러진 이 경기에서 서울이랜드는 전남을 상대로 팽팽한 ‘0’의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다 전반 29분 서울이랜드의 결승골이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최종환이 크로스한 공을 전남 골키퍼 박준혁을 흘러 지나갔고 이 공을 쇄도하던 원기종이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극적인 결승골에 성공했다. 원기종의 침착한 쇄도도 좋았지만 박준혁의 실수가 뼈아팠던 장면이었다. 박준혁은 다소 평범할 수 있었던 문전 혼전 상황에서 공을 처리하지 못하며 골을 내줬다. 이 장면 이후 박준혁은 한 동안 멍하니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그렇게 서울이랜드는 감격적인 승리를 따낸 뒤 안방인 잠실로 돌아왔다. 다음 상대는 부천FC였다. 이 경기 역시 팽팽한 0-0의 균형이 이어졌다. 그런데 후반 8분 이날 경기의 유일한 골이 터졌다. 서울이랜드가 얻어낸 프리킥 상황에서 두아르테가 올린 공을 부천 골키퍼 최철원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다시 이 공이 두아르테에게 흐르자 그는 이 공을 왼발로 밀어 넣으며 결승골을 뽑아냈다. 이 경기 역시 서울이랜드의 1-0 승리로 막을 내렸다. 최철원의 완벽한 실수에 의한 골이었다.

박준혁의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실수를 범하며 결승골을 내줬다. ⓒ프로축구연맹

서울이랜드와 맞선 안양 골키퍼도 흔들렸다

선수에 대한 비판을 잘 하지 않는 부천 송선호 감독도 경기 종료 후 “철원이가 훈련 때도 종종 집중력을 잃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도 어이가 없는 장면이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평범한 문전 혼전 상황에서 최철원의 이 완벽한 실수는 곧바로 패배로 직결됐다. 반면 지긋지긋한 연패에 시달리던 서울이랜드는 전남전에 이어 부천전에서도 상대 골키퍼 실수를 틈타 승리하며 연승 행진에 성공했다. 그러니 당연히 서울이랜드를 상대하는 수원FC 입장에서는 골키퍼 실수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원FC는 골키퍼 실수 없이 서울이랜드전을 마쳤다. 누군가의 결정적인 실수라고 꼽기 어려운 경기 끝에 1-2로 패했다. 서울이랜드를 상대하는 팀들의 골키퍼 잔혹사는 이대로 끝나는 듯했다. 두 경기만으로도 이는 특별한 일임에는 틀림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서울이랜드와 FC안양의 경기에서도 서울이랜드 상대팀 골키퍼 잔혹사는 이어졌다. 이날 전반 19분 서울이랜드의 상대인 안양이 또 다시 골키퍼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줬기 때문이다.

전반 21분 서울이랜드가 빠르게 프리킥을 연결한 뒤 김경준이 문전으로 쇄도하자 안양 골키퍼 양동원은 공을 손으로 막으려다 공이 튕겨 나왔고 결국 양동원이 김경준을 손으로 막아 반칙이 선언됐다. 서울이랜드는 이 페널티킥을 두아르테가 침착하게 차 넣으며 1-0으로 앞서 나갔다.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유독 상대팀 골키퍼들의 결정적인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이랜드는 최근 네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 세 번으로 모두 결승골을 뽑아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김대의 감독 말처럼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골키퍼들 상태가 이상해진다”는 말이 농담처럼만은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준혁의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실수를 범하며 결승골을 내줬다. ⓒ프로축구연맹

“운이 좋았다”는 서울이랜드의 겸손함

특히나 이날 안양 입장에서는 속이 쓰린 장면이 더 나왔다. 안양은 전반 35분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동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알렉스가 찬 공은 정확히 김영광 손 끝에 걸렸다. 그리고 후반 5분 이번에는 서울이랜드가 얻어낸 페널티킥에서 안양에 운도 따르지 않는 장면이 또 연출됐다. 김경준이 찬 페널티킥은 정확히 방향을 예측한 양동원의 품으로 향했지만 양동원이 막아낸 공은 그대로 흘러 골문 안 쪽으로 들어갔다.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라고까지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상대팀 골키퍼들은 실수를 하거나 운이 없는 플레이로 연이어 무너졌다.

경기 후 우성용 감독대행은 “때론 축구가 운도 따라야 하는데 그 동안 운이 없었다”면서 “그런 운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축구가 흐름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 흐름이 초반에 우리에게 왔다”고 말했다. 골키퍼 김영광도 “최근 들어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시즌 초반에는 운이 참 없었는데 그 운이 이제 다 돌아오는 것 같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애써 연승의 기쁨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김영광은 “상대팀 골키퍼들이 다들 내 후배다. 골키퍼끼리는 연락도 자주 하고 같이 밥도 종종 먹는다. 그런데 후배들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골키퍼로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 팀이 이기는 건 좋지만 아무리 상대팀이라도 골키퍼의 실수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영광은 상대의 완벽한 페널티킥 슈팅을 막아냈다. 그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골키퍼 코치님이 안양의 페널티킥 영상을 다 모아서 우리 골키퍼들에게 공유해주셨다”면서 “안양은 알렉스가 페널티킥을 차기도 하고 조규성이 차기도 한다. 팔라시오스가 찰 때도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의 페널티킥을 연구해야 했다. 알렉스는 특히 상대 골키퍼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고 반대 방향을 노리는 스타일이어서 그걸 역으로 이용했다. 일부러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왼쪽으로 차게 해놓고 왼쪽으로 뛰었다. 정확히 그쪽으로 공이 왔다”고 선방 비화를 전했다.

박준혁의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실수를 범하며 결승골을 내줬다. ⓒ프로축구연맹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상대 골키퍼는 작아진다

하지만 연이은 상대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책을 본 그는 연승의 기쁨 속에 감춰진 상대 골키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김영광은 “오늘 우리가 페널티킥을 얻어냈을 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발 이 골 넣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다가 아차 싶었다. 그러면 괜히 상대 골키퍼가 실수하길 바라는 것 같아 재빨리 ‘하나님, 우리 선수가 용기 있게 페널티킥을 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내용을 수정했다. 우리 팀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지만 같이 고생하는 상대팀 골키퍼들의 실수를 기원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골키퍼들끼리는 그런 게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경기 종료 후 의기소침한 상대팀 골키퍼 양동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긴 말은 하지 않았다. “힘내라. 괜찮다”는 말만 짧게 했다. 김영광은 “실수한 상대팀 골키퍼에게 말을 길게 하는 것도 영 모양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담아 짧게 위로를 건넸다”고 말했다. 서울이랜드는 최근 인상적인 경기력에 더해 상대팀 골키퍼들의 연이은 실수까지 이어지며 쾌속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4연승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했다. 어쩌면 그 운도 지금까지 흘렸던 땀방울에 대한 보상일지 모른다. 서울이랜드만 만나면 상대팀 골키퍼가 작아지는 이 현상은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이 순간을 준비했는지 증명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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