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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안양=조성룡 기자] 이렇게 무너진 자존심, 이제는 버릴 때도 됐다.

11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FC안양과 전남드래곤즈의 경기에서 전남은 안양에 2-4로 패배하면서 승점 획득에 실패했다. 전남은 전반전에만 세 골을 내주며 무너졌고 후반 들어 김건웅과 김영욱의 만회골로 따라 붙었지만 팔라시오스에게 한 골을 더 실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경기 전 전남 진경준 감독대행은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파비아노 감독 경질 이후 전남은 지난 광주FC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나름대로 선전했다.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별 다른 것은 없다.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수들에게 전남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팀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수들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전남은 K리그2로 강등 당했다. 그리고 다시 K리그1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팀이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다. 전남이라는 팀은 그래서는 안된다." 맞는 말이다. K리그2가 만들어진 이래로 수많은 팀이 강등 당했다. 대부분의 팀이 곧바로 승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위권에 쳐지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전남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효과는 단 한 경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안양과의 경기에서 전남은 이보다 더 실망스러울 수 없었다. 전반에만 세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후반전에도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후반 21분 김건웅의 시원한 중거리 골이 그나마 위안이 됐을 뿐 곧바로 채광훈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후반 44분 김영욱의 페널티킥 골이 터졌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비록 대량 실점을 하고 패배하더라도 경기력이 좋았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전남의 경기력은 심각했다. 안양의 적극적인 압박을 벗어나려면 많이 뛰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압박에 밀려 실수를 연발했고 실점으로 이어졌다. 안양보다 부족할 것 하나 없는 팀이 안양보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점수 상으로는 대패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참패다.

전남과 안양은 올 시즌 처음으로 맞붙었다. 이는 그동안 두 팀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남은 K리그1의 터줏대감이었고 안양은 K리그2에서 좀처럼 승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팀이었다. 그렇게 차이가 날 것 같은 두 팀은 올해 들어 전세가 역전됐다. 올 시즌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안양이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순위 차이는 더욱 크다.

특히 전남은 올 시즌을 앞두고 안양에서 정희웅과 정재희를 영입했다. 무엇보다 정재희의 영입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정재희는 안양에서 '원클럽맨' 대우를 받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과감하게 안양을 떠나 전남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는 것은 전남과 안양의 위상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안양은 창단 첫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고 전남은 하위권에서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경기 전 자존심을 강조했던 전 감독대행은 경기가 끝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존심이 상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전남의 이번 경기 결과는 자존심이 상해야 한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스코어다. 하지만 이 결과는 전남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파비아노 감독 경질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려도 전 감독대행이 자존심을 부르짖어도 나아지는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올 시즌 들어 전남의 구성원이 너나 할 것 없이 전남을 이야기할 때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있다. 'K리그1에 있었던'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전남은 냉정하게 'K리그1에 있었던 K리그2 팀'이 아니라 그냥 'K리그2 팀'이다. 차라리 무너진 자존심을 버려버리자. 현재 전남의 모습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존심을 버려 버리고 악착같이 K리그2의 생존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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