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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부천=조성룡 기자] 극과 극의 일주일이었다.

10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부천FC1995와 광주FC의 경기에서 양 팀은 서로 한 골씩 주고 받으며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광주가 먼저 펠리페의 골로 앞서 갔으나 부천 말론이 동점골을 기록하면서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됐다.

이날 부천은 정말로 잘 싸웠다. 광주를 꺾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후반 막판 부천은 1위 광주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공세를 보여줬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빨간 옷이 광주인가?" 그 정도로 부천은 광주를 괴롭혔다.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말론이 날린 회심의 슈팅은 골대를 맞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물론 광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전반 20분 만에 펠리페의 선제골로 앞서 나간 광주는 말론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강팀의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전반전 여러 차례 기회를 날린 광주는 후반에 고전했다. 전반전에 광주가 다시 달아나는 골을 넣었다면 상황은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바로 최철원이다. 불과 일주일 전 상상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른 최철원은 이날 부천의 수호신이었다.

잠실에 새겨진 또 하나의 '부천 흑역사', 최철원

부천은 지난 4일 잠실에서 또 하나의 '흑역사'를 적립했다. 부천은 잠실에서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10월 29일이다. 이날 부천은 눈 앞에 다가왔던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을 2-2 무승부로 놓쳤다. 그리고 약 2년 뒤 부천은 또 잠실에서 악몽을 꿨다. 이번에는 믿음직한 주전 골키퍼 최철원이 악몽의 주인공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부천은 딱 한 골을 내줬다. 후반 9분 서울이랜드 프리킥 상황에서 키커 두아르테가 공을 찼다. 평범하게 떠오른 공은 최철원이 쉽게 잡을 줄 알았지만 놓쳤다. 이는 혼전 상황으로 이어져 두아르테의 선제 결승골로 이어졌다. 평소 선수에 대해 잘 이야기 하지 않는 송선호 감독 조차 "평소에 안 그렇던 선수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최철원에게도 엄청난 악몽이었다. 하필이면 그 골이 승부를 결정짓는 한 골이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나를 기자회견장에서 비판한 송선호 감독님 입장도 이해가 됐다. 집에 가서 서울이랜드전을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봤다. 그리고 잤다. 다음날 일어나서 '다음 경기에는 선발이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최철원을 정신 차리게 한 글귀, 그리고 한 골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부천종합운동장에서는 부천과 광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 전 발표된 선발 명단에는 놀랍게도 최철원의 이름이 또 들어 있었다. 취재진은 송 감독에게 최철원의 선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간단명료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믿음을 주는 겁니다. 한 번 더." 송 감독은 단호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부천 경기장의 서포터스 석에는 하나의 걸개가 걸려 있었다. '21 최철원 언제나 우리의 No.1' 지난 경기에서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지만 '너는 언제나 우리의 주전 골키퍼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팬들의 한 마디였다. 하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상대는 리그 1위 광주였다. 최철원이 여기서 아무리 맹활약 하더라도 팀에 승점을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불길한 예감은 전반 20분 만에 맞아 떨어졌다. 부천은 코너킥 상황에서 광주 펠리페에게 너무나도 쉽게 골을 허용했다. 최철원은 경기 시작 20분 만에 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후 부천은 예상을 뒤엎기 시작했다. 말론이 몇 분 지나지 않아 동점골을 넣더니 최철원의 계속된 선방으로 광주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철원도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상하게 한 골 실점하니 긴장이 풀리더라. 그래서 더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부천은 후반 막판 파상공세를 취했지만 골 운이 따르지 않으며 광주를 꺾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최철원은 완벽하게 지난 경기 부진을 씻어냈다. 수 차례 선방으로 팀을 구해냈다. 상대 광주 박진섭 감독 또한 "전반전 막판 우리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그 때 상대 골키퍼의 선방으로 골을 넣지 못한 것이 후반전이 어려워진 원인이었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모두의 믿음이 만들어 낸 최철원의 '선방쇼'

당연히 송 감독에게도 최철원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송 감독은 기쁨의 표현 대신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집중만 하면 그렇게 좋은 선수인데…" 그러더니 그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제 지난 서울이랜드전 이야기는 더 이상 하면 잔소리 밖에 안된다. 최철원 덕분에 한 골 밖에 안먹었다. 이번 경기를 비기게 한 원동력은 최철원이었다."

경기 후 만난 최철원은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특히 팬들의 걸개를 언급했다. "팬들의 현수막을 보고 정말로 감사했고 위안이 됐다. 솔직히 나도 사람이다. 서울이랜드전에서 그런 실수를 했으니 자신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팬들의 응원을 보고 정신을 바짝 다잡았다. 그리고 자신감도 쌓았다. 그래서 첫 번째 골 실점 이후 동료들을 적극 독려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최철원은 불과 일주일 전 치명적인 실수로 팀의 승점을 날려먹은 원흉(?)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에게 믿음을 보냈다. 송 감독은 전화로 "기자회견에서 혼내 미안하다. 더욱 집중하자"라고 격려했고 팬들은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걸개로 묵직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최철원은 "솔직히 부담 반 감사함 반이다"라면서 "내가 그 믿음에 부응해야 하는데 100% 그러지 못해 아쉽다. 이번 경기에서도 70%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래도 최철원은 앞으로 계속해서 부천의 골문을 지킬 것이다. 평소 애정을 보내는 선수에게 기자회견장에서 더욱 잔소리를 하는 송 감독의 특성 상 최철원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최철원은 한 번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최철원을 믿었다. 그 결과 최철원은 멋진 선방의 연속으로 자신이 놓친 승점을 다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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