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화천정산고가 눈물의 우승을 차지했다.

4일 경상남도 합천에서 열린 '살맛나는 행복합천' 제 18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고등부 결승에서 화천정산고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화천정산고는 여자축구의 강호 울산현대고를 상대로 3-1 승리했다. 지난 여왕기 대회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던 화천정산고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인해 아쉬움을 깔끔하게 털어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화천정산고의 우승은 단지 지난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버렸다는 것 하나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화천정산고는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승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천정산고는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승을 하면 안되는 팀이었을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감독도 없고 연습경기도 없던 화천정산고

최근 화천정산고는 해체가 눈 앞에 다가오는 위기를 겪고 있다. 축구부와 군 지역 여론은 해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화천정산고 학교 측이 계속해서 해체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화천정산고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심란할 수 밖에 없다. 학교가 없어지면 선수들은 전학 등 새로운 길을 알아봐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 축구화를 벗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 나섰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화천정산고가 활약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천정산고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화천정산고는 단 한 차례도 연습경기를 갖지 못했다. 축구부 담당을 맡았던 부장이 축구부에서 손을 떼면서 축구부와 학교 간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 내의 유일한 고교 여자축구부인 화천정산고는 연습경기를 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동을 위해서는 학교와의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김유미 감독 역시 훈련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해체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훈련 대신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각종 관계자들을 만나며 해체를 막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김 감독은 "솔직히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제대로 선수들과 훈련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기적의 조별예선 통과, 파죽지세 토너먼트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선수권대회에 들어간 이후 화천정산고는 포항여전고에 1-2로 패배했지만 경기오산정보고와 2-2 무승부를 거뒀고 지난 6월 여왕기 우승팀인 동산정산고를 1-0으로 꺾으며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합류했다. 이후 충북예성여고를 3-1로 꺾은 화천정산고는 4강전에서 충남인터넷고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면서 결승전에 진출했다.

ⓒ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4강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지만 내친 김에 우리 선수들이 결승까지 진출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상승세의 비결에 대해 "선수들이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 좀 더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체설로 인해 안팎은 시끄럽지만 오히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조직력은 더욱 단단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화천정산고는 믿을 수 없는 우승을 차지했다. 고교 여자축구의 최강 팀으로 꼽히는 울산현대고를 맞아 후반 2분 김명진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다. 이후 후반 19분 윤수정의 추가골, 후반 추가시간 문하연의 골을 묶어 조미진의 만회골에 그친 울산현대고를 제압했다. 울산현대고는 울산현대가 지원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랑하는 팀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화천정산고는 눈물 겨운 투혼을 발휘한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 확정되자 화천정산고 골키퍼 강지연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동료들이 진짜 다같이 열심히 준비해줘서 우승을 하니 너무 기뻐서 울었다"면서 "우리가 지금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많이 이겨냈다. 동료들에게 감동 받고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강지연은 "만약에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해체 여론이 더 탄력을 받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라고 전했다.

화천정산고 교장이 말한 축구부 해체 이유는?

이와 별개로 화천정산고의 해체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화천정산고 학교 운영위원회는 화천정산고 여자축구부 해체 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교장은 축구부 해체에 대해 "2020년에 전국 단위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 신입생 충원이 어렵다, 축구부 학생들에 대한 과도한 예산 투자는 교육평등권 추구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화천군 교육경비로 축구부 지원을 중단하라는 여론이 많다, 2020년부터 화천군으로부터 지원 받는 축구부 운영 경비가 대폭 삭감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교장의 설명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2020년 전국 단위 신입생 모집의 경우 제도에 의해서 불가능해진 것이 아니다. 자율학교 심의 신청을 한 이후 전국 단위 모집을 신청하면 가능하다. 2020년의 경우 2018년 하반기에 신청을 받는다. 하지만 행정적인 실수로 화천정산고가 신청하지 않았다. 신청하지 않은 책임을 학교가 아닌 선수들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 교장은 2018년 3월 화천정산고에 부임했다.

또한 교육평등권 추구를 위해 갑작스럽게 해체를 통보한 것도 의문이다. 게다가 화천정산고는 지역 여론 또한 잘못 파악하고 있다. 현재 화천군은 미래 산업으로 스포츠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여자축구의 경우 화천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화천KSPO 여자축구단과 화천정산고의 존재로 인해 화천은 춘계여자축구연맹전과 추계여자축구연맹전을 유치했다. 지역 경제 효과를 쏠쏠히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 여론이 화천정산고에 부정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당시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읽어보면 화천정산고의 교장은 축구부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화천군 대표라고 전에 오신 분들이 과연 화천군 대표였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축구협회장이 학교장이 앞에 있는데도 '학교에는 어른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학교장을 앞에 놓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화천 군민의 예법인가. 요즘 학부모들 무서워서 만나지를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학부모들이 화천정산고 축구부가 학교를 위해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말씀하셨다"라면서도 "축구부는 학교 발전에 기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축구부 해체를 안건으로 올렸다"라고 말했다. 당시 운영위원장은 "해체는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처음에 축구부를 창단한 취지는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구하고자 설립된 것이다"라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결국 해체 안이 통과됐다.

상식적이지 않는 상황, 화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화천정산고에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현재 화천정산고의 해체를 바라보면 신기한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학교는 교육 기관이지만 그만큼 지역 커뮤니티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학교와 지역은 서로 상생하는 존재다. 어느 한 쪽이 무너지면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화천군에서도 과거 폐교를 막기 위해 여자축구부를 창단했다.

그런데 현재 학교와 지역은 삐걱대고 있다. 지역 관계자들과 화천군은 해체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화천정산고는 눈과 귀를 닫고 여자축구부 해체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해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교장은 "화천군을 대표하는 사람인지 의문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고 제자들이 우승, 준우승 등 성과를 내도 "축구부는 학교 발전에 기여하지 않았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약 2만 5천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도시 화천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했다. 짧은 시간 안에 프로 팀과의 연고도 없던 화천정산고가 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과 학교가 합심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화천에서 힘겹게 쌓아올린 하나의 신화가 무너지려고 한다. <스포츠니어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다각도로 취재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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