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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유벤투스 구단의 행동이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전에서 45분 이상 출장하기로 계약돼 있던 호날두는 단 1분도 경기에 나서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경기 전 팬사인회와 팬미팅에도 지각한 유벤투스는 연이어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경기 시작 시간을 맞추지 못해 경기가 한 시간 가량 지연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축구계 넘어 사회 이슈된 ‘호날두 노쇼’

그 와중에 논란은 계속 터졌다. 유벤투스 측은 경기 시간을 전반 40분, 후반 40분으로 단축하자고 요구했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위약금을 내고 경기를 거부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경기 도중에는 한국에서 불법인 사설 토토 광고가 버젓이 흘러나왔고 이는 공영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에스코트 키즈에게도 스카이박스를 강매했다는 논란부터 마우시리오 사리 감독이 금역구역인 공항에서 흡연을 했다는 것까지도 뒤늦게 문제가 됐다. 40만 원을 내고 경기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뷔페도 상식 밖의 수준으로 지탄을 받았다.

대행사인 ‘더 페스타’ 측의 무능력도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이뿐 아니다. 호날두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집에 오니 기쁘다”면서 러닝머신에서 웃으며 춤을 추는 모습을 SNS로 올렸다. 대한민국이 공분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행동은 한국의 이런 상황이 안중에도 없음을 알리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법조계에서는 호날두와 유벤투스, 더 페스타 등을 사기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사리 감독은 경기 후 “호날두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에 온다면 내가 티켓 가격을 내겠다”고 해 공분을 샀다. 정말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온다. 단순히 축구계 이슈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이슈가 됐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일과 상관없는 정치 논평을 내면서 호날두를 언급할 만큼 이 문제는 커졌다.

그런데 만약 호날두가 이 경기에서 45분, 아니 10분이라도 뛰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오히려 호날두가 아예 경기에 나서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호날두가 아주 잠깐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아 화제가 온통 호날두의 플레이에 맞춰졌다면 앞서 언급한 모습 논란이 이슈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날두가 경기에 나섰다고 해 그들이 지각한 것과 경기 시간 단축을 요구한 것, 사설 토토 광고, 에스코트 키즈 스카이박스 강매 논란 등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호날두가 경기에 나왔다면 이 모든 이슈를 덮었을 것이다.

ⓒ KBS 방송화면 캡쳐

호날두 뛰었더라면 묻혔을 수 많은 논란들

만약 호날두가 경기에 나서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줬거나 골이라도 넣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경기 전부터 우리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오만했던 그들이 이 장면 하나로 용서 받았을 생각을 하니 차라리 호날두가 1분도 안 뛰어 논란이 된 지금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너 빛난 호날두, 그의 강렬했던 10분 활약’이나 ‘유벤투스, 지각했지만 실력으로 사과했다’ 따위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호날두가 경기에 나섰다면 아마도 이 모든 논란을 덮을 만한 관심을 모았을 것이다. 경기 시작 전부터 끝난 이후까지 개판이었던 이 행사가 호날두의 아주 짧은 활약으로 미화되는 모습을 안 봐서 다행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잘못이 부각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건 정말 다행이다. 어디 불법 사설 토토 사이트를 버젓이 6만 6천 명이 운집한 경기장에 내보내고 이를 공영방송으로 중계할 생각을 다했을까. 호날두가 뛰는 유벤투스 경기에 감명받은 이들은 충분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감쌀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불법이지 저 사설 토토 사이트가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이거든요.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경기를 우리나라 팬들만 보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조금이라도 나올 수 없을 만큼 이 경기가 최악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호날두 노쇼’로 전국민이 하나가 됐으니 아무도 이 경기에 나온 논란을 반박하려 하지 않는다.

‘호날두 노쇼’로 향후 10년은 다시 이런 일시적인 해외 구단 초청 행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이번 유벤투스 내한 경기를 주최한 ‘더 페스타’ 측은 사실 이 경기가 아닌 내년 다른 팀의 내한 경기를 먼저 추진했다. 하지만 막대한 손해배상을 앞둔 ‘더 페스타’는 이제 유벤투스전에 진 빚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금전적으로 이를 다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 또 다시 해외 구단 내한 경기를 ‘더 페스타’에 맡길 이들은 없다. 업계에선 더 이상 그들을 신뢰할 사람들이 없다. 참으로 다행이다. 해외 구단을 경기 당일에 입국시켜 사상초유의 지각 사태를 일으킨 회사가 더 업계에 발을 못 붙인다는 건 다행이다.

ⓒ KBS 방송화면 캡쳐

K리그는 손해 볼 게 없었던 경기

다른 업체들도 주먹구구식으로 해외 구단 초청 경기를 열지는 못할 것이다. 유럽 축구 비시즌 동안 워낙 시장이 커진 중국에 들렀다가 한국에 들러 ‘호구’들 지갑이나 축내려던 이들은 이번 논란 이후 한국 시장을 만만히 볼 수가 없게 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우리의 시선이 곱지 않아져 그들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애초 일시적인 해외 구단 내한 경기에 우리가 얻을 게 전혀 없다고 주장한 나로서는 다시는 이런 ‘호구들의 잔치’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하다. 물론 2010년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 이후 10년 만에 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아마 이 학습효과의 유효기간은 10년 남짓 하지 않을까. 적어도 10년 정도는 안심이다.

호날두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거액을 들여 1박 2일의 서울 여행을 한 이들이나 열심히 돈을 모아 이 허무한 사기극에 돈을 바쳐야 했던 이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물론 호날두가 경기에 출장해 멋진 매너를 선보였다면 이렇게 현장까지 달려간 이들에게는 최고의 추억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앞서 언급한 수 많은 논란과 문제들이 덮였을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해외 유명 구단으로부터 내년에 또 다시 ‘호갱님’ 소리를 들으며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호날두가 나오지 않고 철저히 망한 이 경기가 그래서 오히려 어설프게 호날두의 플레이를 몇 분 감상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경기를 앞두고 팀 K리그 걱정을 많이 했다. 유벤투스를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쳐도 비난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기면 너무 열심히 했다고 난리가 날 것이고 지면 리그 수준 운운하며 지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팀 K리그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렀다. 상대팀은 예의를 무시한 채 거들먹거렸지만 팀 K리그는 최선을 다한 멋진 경기력으로 박수를 받았다. 대구FC 세징야는 호날두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은 선수가 됐다. 프로축구연맹이 이번 경기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지만 냉정히 따지고 보면 K리그에게 이런 논란의 경기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K리그에 호감이 생긴 이들이 더 많다.

ⓒ KBS 방송화면 캡쳐

호날두, 안 뛰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물론 K리그가 원한 이번 친선전 홍보효과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호날두가 경기에 나와 이용과 격돌하고 이용이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얻는 홍보효과 정도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K리그는 의외의 효과를 얻었다. 아무도 유벤투스가 경기장에 이렇게 지각해 건방을 떨며 경기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호날두는 1분도 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더 페스타’가 삽질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K리그 전체 이미지를 생각해서는 이득인 경기였다. 물론 다시는 이런 올스타전 비슷한 친선전을 한 동안 하지 못하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기쁜 일이다.

호날두가 차라리 안 뛰어서 다행이다. 이런 끔찍한 경기가 호날두의 몇 분 활약으로 미화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호날두가 ‘호우 세리머니’ 한 번 하고 손 한 번 흔들어줬다고 해 무슨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유난 떠는 모습이 없어 차라리 잘 됐다. 6만 6천 명의 관중을 모아 놓고 경기 시간을 줄여달라던 유벤투스가 얼마나 우리는 무시하는지가 알려진 것도 이번 경기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경기를 통해 우리를 그저 ‘지갑’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을 한 번쯤 돌아볼 계기를 마련했다. 이제 이 교훈을 쭉 이어갈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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