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부천=조성룡 기자] 부천FC1995에는 올 시즌 에콰도르에서 온 말론이라는 공격수가 있다.

최근 부천 말론은 참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기록을 보면 15경기 3골 1도움이다. 지난 광주FC전과 서울이랜드전에서 골을 넣었고 이번 안산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말론은 마음 고생을 참 심하게 했다. 골 때문이었다. 부천에서 말론을 영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골을 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말론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말론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골을 넣지 못했다. 부천 송선호 감독은 당시 말론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즌 초반 부천의 풀리지 않는 숙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송 감독은 어떻게든 말론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체도 해보고 명단 제외도 해보고 기자회견장에서 "아쉽다"라고도 해봤다. 올 시즌 부천이 살려면 말론이 살아야 했다. 물론 말론 자신도 잘 알았을 것이다.

단지 송 감독과 말론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부천 팬들도 명확하게 알았다. 최전방에 서 있는 저 키 큰 외국인 공격수가 골망을 흔들어야 한다. 그리고 속된 말로 '초딩'도 안다. 다행히 말론은 살아나고 있다. 광주와 서울이랜드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가 두 경기 침묵했던 말론은 다시 득점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말론이 살아난 비결은 무엇일까? 여기에 숨겨진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바로 말론을 일깨운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부진' 말론을 위한 초등학생 팬의 특별한 선물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제법 오래 응원해온 부천의 팬인 이원진(13) 군은 말론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올 시즌 말론은 그를 속상하게 하는 날이 많았다. 어린 마음에 금방 실망할 법 하다. 하지만 이원진은 어른스럽게 계속해서 말론을 기다렸다. "저는 말론이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잠재력은 있는데 적응 기간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말론 못한다고 했던 <스포츠니어스> 기자들보다 어른스럽다.

그나마 말론은 지난 6월 16일 광주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K리그 첫 득점을 기록하며 이원진을 기쁘게 했다. 물론 팀은 1-4로 대패했지만 말이다. 여기에 힘입어 말론은 6월 24일 서울이랜드전에서 또다시 골을 넣으며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제 말론에게도 봄날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후 전남드래곤즈전과 수원FC전에서 말론은 침묵했다. 그대로 말론의 상승세는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이원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침묵에 들어가 마음고생이 심할 말론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이원진은 말론을 위해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초등학생이 말론에게 남미 요리를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원진의 주머니 사정에 딱 알맞으면서 그 무엇보다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그림이었다. 이원진은 서툴지만 손수 공책에 말론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에 이원진은 말론을 위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한 마디는 감동적이었다. '포기하는 것은 말론이 아니다.' 비록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부천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부천에는 말론이 중요한 선수잖아요. 힘든데 포기할까봐 걱정됐어요. 말론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요." 이 그림은 엉성하지만 말론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있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원진의 진심과 정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원진은 그림을 그리고 약 일주일을 기다린 끝에 말론에게 이 그림을 전달할 수 있었다. 부천의 훈련장에서였다. 이원진은 훈련장에 직접 찾아가 말론에게 이 그림을 선물했다. 말론은 이 그림을 받아들고 이원진에게 말했다. "고마워, 다가오는 안산과의 경기에서 내가 꼭 골을 넣을게." 사실 기약 없는 약속이기는 했다. 수원FC전에서 닐손주니어와 임동혁까지 골을 넣는 동안 침묵했던 말론이다.

초등학생과의 약속 지킨 부천 말론의 새로운 부적

하지만 말론은 실제로 약속을 지켰다. 14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안산과의 경기에서 말론은 전반 10분 만에 골을 넣었다. 측면에서 감한솔이 올린 크로스를 깔끔하게 헤더로 연결했다. 이원진 또한 서포터석에서 말론의 골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정말 좋았어요. 제 마음이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소원이 하나 이루어진 것 같아요."

정말 말론은 한 명의 초등학생을 위해 골을 넣었을까? 이날 부천은 1-2로 역전패 당했지만 경기 후 퇴근하는 말론을 붙잡고 물었다. 이원진의 이야기가 나오자 말론은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통역이 질문을 알려주자 말론은 갑자기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주섬주섬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은 바나나를 비롯해 온갖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말론은 무언가를 꺼냈다. 이원진이 전한 그림이었다.

그는 말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일이기도 하고 내가 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초등학생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그가 어떻게 이 선물을 준비했을지 상상이 가더라. 오로지 나를 생각하면서 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한 것 아니겠는가. 그 어린 친구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이런 선물을 줬다고 생각한다. 참 고맙다."

말론은 그림에 적힌 문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어린아이가 말한 것이지만 이런 말들이 내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좋은 감정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경기에서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이 친구가 내게 골을 넣어달라고 했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헤더로 골을 넣고 난 이후 뒷풀이를 하면서 내게 선물을 준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내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다. 앞으로도 항상 어디를 가도 이 그림과 함께 하도록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닐 것이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라고 말했다.

나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두 사람은 이렇게 부천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그러자 이원진은 "잘 하고 부상 조심"이라는 말을 남겼고 말론은 "항상 이런 좋은 마음으로 성장하는 어린이가 되라"는 덕담을 남겼다. 짧지만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덕담이다.

축구가 11명과 11명의 선수들이 뛰는 스포츠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응원과 외침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 응답할 때 비로소 축구의 크나큰 매력이 생겨난다. 한 초등학생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넸고 선수는 최선을 다해 그의 바람에 응답했다. 이래서 우리는 이겨도 져도 축구를 본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