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에이즈 양성반응’ 보도자료 낸 대전, 인권은 어디로?

대전 시티즌
해당 사진은 본 칼럼과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대전 시티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10년쯤 됐을까. K리그 사이에서 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외국인 선수는 K리그에서 별 활약 없이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는 소문이 퍼졌다. “이 선수가 사실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양성 반응을 보여 팀을 떠났다”는 사실이 축구계에 알려졌다. 제법 확실한 루트를 통해 정보를 입수 받았고 꽤나 많이 퍼진 이야기였지만 그 누구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라면 당사자에게 큰 실수였고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사로 냈다가는 인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일은 조용히 넘어갔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대전시티즌이 잘못을 저질렀다. 대전은 지난 12일 오후 브라질 1부리그에서 뛴 공격수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해당 선수는 대전 유니폼을 입고 밝은 표정으로 공식 입단 사진에 등장했다. 하지만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인 13일 오후 해당 선수와 계약을 해지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보도자료 내용은 놀라웠다. 대전은 해당 선수와 계약을 해지한 이유에 대해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양성 반응을 통보받고 신속하게 계약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속하게’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크게 들어왔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강해보였다.

우선 메디컬 테스트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선수와 계약한 건 대전의 시스템상 큰 문제다. 더 황당한 건 대전이 올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며 선수단 운영위원회와 윤리위원회를 신설했다는 점이다. 감독과 스카우트(2명) 데이터분석가·선수단운영팀장·변호사·의사로 구성해 운영위원 3분의 2가 동의해야만 선수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선수단 운영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첫 번째 선수가 바로 이 외국인이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신속하게’ 계약을 해지하기 이전에 이 외국인 선수는 선수단 운영위원회에서 걸렀어야 하는 게 맞다.

뭐 사람이 선발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전이 이 선수와의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이 이유를 너무나도 상세하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대전은 그 어떤 이들이 묻기도 전에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양성 반응을 통보받고 신속하게 계약을 해지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선수는 전세계적으로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로 퍼졌다. 자신이 앓고 있는 작은 질병조차도 알려지는 걸 꺼려하는 이들도 많은데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걸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대전 구단이 스스로의 실수를 덮기 위해 해당 선수에게 너무 큰 타격을 입힌 건 아닌지 되짚어 봤으면 한다. 지난 2016년 5월 성남FC 골키퍼 전상욱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병명에 대해 언급하길 꺼려했고 정확한 병명은 투병 이후에 공개됐다. 그는 항암치료를 마친 뒤 2017년 1월 자신의 SNS를 통해 “비인두암 3기였다”고 알렸다. 이미 축구계에서는 전상욱 병명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병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상욱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가 병명을 공개한 이후 그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던 기억이 난다. 배우 김우빈이 전상욱과 같은 병으로 투병하면서 김우빈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흔히들 ‘기레기’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적어도 이런 인권까지 무시할 매체는 없다. 대전이 해당 선수와 계약을 해지했다면 영입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한 구단의 이상한 행보를 의심하는 이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당 선수가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여서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면 이를 버젓이 독자들에게 공개할 매체는 없다. 이런 단계에서 보도를 접게 되는 일들은 꽤 많이 있다. 하지만 대전은 스스로 자신들의 영입에 대한 잘못을 피하기 위해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했다. 이는 법적으로 놓고 봤을 때에도 큰 문제다.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실을 숨기고 K리그에 입성하려던 선수의 잘못도 크다. 피와 땀이 섞이는 그라운드에서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뛴다는 건 다른 선수들에게도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걸러내지 못한 선수단 운영위원회의 잘못과 이 잘못을 덮기 위해 에이즈 양성 반응자의 이름을 보도자료로 공개한 구단의 잘못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에이즈 양성 반응 사실도 모른 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도, 부상 정도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음에도 ‘에이즈’라는 사실을 알린 것도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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