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경기도 안양은 이제 조규성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2019년 FC안양 돌풍의 중심에는 조규성이 있다. 올 시즌 그는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에 쏠쏠한 보탬이 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규성이 K리그에 갓 모습을 드러낸 신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안양의 유스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선수다. 안양 팬들이 왜 그렇게 조규성을 애지중지 아끼는지 알 수 있다.

조규성 또한 안양을 통해 훨훨 날고 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최근 U-23 대표팀의 6월 훈련 소집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작지만 큰 발걸음이다. 안양 김형열 감독은 조규성을 향해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소질이 있다"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선수다"라고 말하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U-23 대표팀 6월 소집훈련을 마치고 막 안양에 복귀한 조규성을 <스포츠니어스>가 만났다. 그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왔다. 그라운드에서는 상대의 골문을 흔드는 날카로운 공격수지만 축구 인생 처음으로 염색을 하고 김형열 감독의 눈치를 슬쩍 보는 그는 소년 같기도 했다. 지금부터 그와 나눈 구구절절 대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안양의 아들을 만나서 반갑다.

사실 나 안산 사람이다.

…?

안산에서 태어났고 안산에서 중학교 때까지 컸다. 이후 FC안양 유소년 팀인 안양공고에 진학하면서 안양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도 부모님은 안산에 살고 계신다. 하지만 계속해서 안양에 있고 안양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니 이제는 안양이 고향 같다. 그냥 앞으로는 안양이 고향이라고 생각해달라.

하긴 안산의 이미지보다 안양 U-18 창단 멤버라는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다.

맞다. 사실 나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안양 유소년 팀에 입단할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졸업하면서 우선지명도 받았고 대학 가서 내 팀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안양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안양은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운명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될 성부른 떡잎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정말 축구만 했다. 남들은 내가 안양 유소년 팀인 안양공고 나왔다니까 꼭 안양1번가에서 놀았던 얘기를 물어보더라. 그런데 정말 나는 거기서 축구만 했다. 팀에서 외박 받으면 그냥 집에 있고 그랬다. 집과 숙소를 오가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머리가 길었던 기억이 없다. 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친구들은 머리가 다 길었는데 나는 짧은 게 편해서 혼자 '반삭' 스타일을 유지했다. 옷도 '추리닝' 입고 다녔다.

그 때는 정말 축구 밖에 몰랐다. 간절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 때 참 힘들었다. 2학년 때 경기에 나서면 전반전에 교체됐다. 코치님들이 내게 "너 3학년 때도 경기 못나가면 그 때는 축구를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내게는 코치님의 말이 굉장히 동기부여가 됐다. 실력은 좋지 못해도 축구에 대한 열망은 컸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덕분에 3학년 때 출전 기회도 많이 얻고 조금씩 잘 풀렸다.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안양공고를 나왔다는 자부심은 항상 가지고 있다. 우리 팀에 안양공고 출신이 제법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유종현이다. (유)종현이 형은 내게 "안양공고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라"고 말한다. 김형열 감독님도 안양공고를 나왔다. 종현이 형은 내가 잘하면 주변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뿌리가 튼튼하니까 이렇게 잘 자란 것 아닌가"라고. 그러면 나는 또 옆에서 까불거리면서 맞장구 치고 있다.

안양공고 출신으로 안양에서 뛰니까 팬들이 정말 사랑해주시는 것이 가장 좋다. 내가 비록 안산 출신이지만 안양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 내 출신 학교 덕분이다. 팬들이 내게 "뿌리부터 다른 안양 사람"이라고 해주신다. 하하. 물론 중학교 때 안양공고로 진학하면서 공고라는 특성 상 형들도 무섭고 훈련도 뛰는 걸 많이 시켜서 힘들다는 소문에 걱정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진학하고 나서 금방 적응하기도 했고 이제는 자랑스럽다.

하긴 그래서 고교 졸업 후 프로 직행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내가 당시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우선지명은 받았지만 프로 직행은 어려웠다. 사실 대학 진학도 쉽지 않았다. 우리 안양공고가 안양 유스로는 창단 팀이라 내가 3학년 때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성적이 좀 나와야 수도권 대학 진학이 가능했다. 이 때 손을 내민 곳이 광주대였다. 내가 3학년 때 왕중왕전에 나갔다. 광주대 감독님이 그 때 보러 오셨는데 하필 내가 골을 넣었다. 그 경기로 날 좋게 봐주신 것 같았다. 감사한 마음에 다른 대학교는 갈 생각 안하고 광주대로 향했다.

광주대에서는 정말 재미있게 생활했다. 만일 시간을 돌려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저없이 광주대 시절로 돌아가겠다. 고등학교 때는 축구만 했지만 대학교 때는 재밌게 놀기도 했다. 남들 다 해보는 '과팅'도 해봤고 형들과 PC방에서 게임도 했다. 물론 과팅 나가서 잘 되지는 못했다. 인연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술 한 잔 하면서 분위기 즐기고 밤새 놀다가 첫 차 타고 들어가고 그랬다.

그곳에서 엄청 친해진 형들이 많다. 뭔가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니까 '이게 사람 사는 맛이구나' 싶더라. 또 내 성격이 동생들 챙겨주고 이런 것보다 형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1학년 때는 밤에 외출이 쉽게 되지 않았는데 4학년 형들이 밤에 PC방 갈 때 꼭 나를 데리고 갔다. PC방에서 꽤 많이 놀았다.

아무리 그래도 밤마다 PC방 데려가는 것은 단순한 동생이 아닌 것 같은데…

형들과 내가 주로 '롤(리그 오브 레전드)'을 많이 했다. 롤이 또 팀전이다. 팀 멤버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삐걱대지 않겠는가. 내가 밤에 자주 PC방에 갔던 이유다. 롤 하는 사람은 알 거다. 미드가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지. 내가 바로 그 미드였다. 형들이 나를 반드시 챙겨가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안양에서도 롤 많이 하는가.

아니다. 요즘은 축구 게임 많이 한다. '피파 온라인' 하고 있다. 나도 프로 선수니까 게임에 내 선수 카드가 있다. 그런데 나는 정작 내 카드가 없다. 매물이 없다. 좀 살펴보니까 사려는 사람은 제법 있는 것 같은데 파는 사람이 없다. 워낙 내 카드가 잘 안나오나? 물론 사려는 사람들도 다 내가 아는 지인일 것 같다. 여튼 정리하자면 조규성도 '조규성 카드'가 없다.

게임에서 내 능력치도 살펴봤다. 그런데 하… 나라도 나를 안쓸 것 같다. 능력치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축구를 더 잘해야 능력치도 올라가는 것 아닌가.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한 고등학생 팬에게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이 왔다. "제가 피파 온라인을 하는데 처음으로 조규성 '10카(최대치로 강화한 카드)'를 사고 싶어요"라고 하더라. 나에 대한 팬심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 "고맙다"라고 했지만 "절대 안될 거야"라고 말했다. 나도 없는데…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안양 팀 동료들과도 종종 게임을 한다. 내가 내기를 좋아한다. 숙소 룸메이트인 골키퍼 김태훈과 커피 걸고 '피온' 내기 많이 한다. 상대 전적은 비슷한 것 같다. 서로 게임 실력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내기도 할 수 있는 거다. 요즘은 홍길동-정민기 팀과 2대 2 팀 플레이 내기도 많이 한다. 최근에는 우리 팀이 좀 더 많이 이겨서 잘 얻어먹고 있다. 하하.

광주대에서 그렇게 놀았는데 프로는 어떻게 왔나. 신기하다.

놀기만 하지 않았다. 축구도 재밌게 열심히 했다. 그리고 거기서 '신의 한 수'가 등장했다.

무엇인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진짜다. 안양공고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2학년이 됐을 때 광주대에 이승원 감독님이 새로 부임했다. 새로운 감독 앞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몇 경기를 뛰었다. 이 감독님이 "얘는 좀 아닌 것 같은데…" 하셨다. 그러더니 내게 "너 공격수 해본 적 있니?"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공격형 미드필더까지는 해봤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동계 전지훈련을 갔는데 이 감독님이 선발 라인업을 발표하셨다. 그런데 내 이름이 최전방 공격수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있던 선수들 모두 웃었다. 나도 웃으면서 '그냥 뭐 재밌게 한 번 뛰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뛰었다. 그런데 항상 수비형 미드필더 하던 내가 잘 하겠나. 최전방 공격수로 그 때 처음 뛰었다. 경기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말 그냥 별 생각 없이 뛰었는데 이승원 감독님이 계속 나를 최전방 공격수로 쓰는 거다. 한 6개월 정도 하고 나니까 감독님이 날 불러서 "이제 수비형 미드필더가 좋니 최전방 공격수가 좋니?"라고 물었다. 나는 그 때도 최전방 공격수가 어색했으니 당연히 "수비형 미드필더가 좋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딱 한 마디 하셨다. "너 수비형 미드필더 하면 광주대에서도 경기 못 뛰어."

그래서 곧바로 냉큼 대답했다. "최전방 공격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때는 어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승원 감독님이 내 재능을 가장 빨리 알아봐주신 분이다. 이제는 공격수가 훨씬 편하다. 하하.

이승원 감독은 왜 당신을 공격수로 쓰려고 했을까?

일단 내가 미드필더를 너무 못했다. 미드필더는 넓은 시야로 주위를 살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시야가 좁았다. 백패스 엄청 많이 하고 공도 엄청 많이 뺏겼다. 속 터지는 미드필더였던 것 같다. 하하. 반면 공격수는 내게 좀 더 수월한 편인 것 같다. 시야보다는 침투를 많이 하지 않는가. 내가 전방 침투를 좋아한다. 거기에 등 지는 플레이나 연계 같은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좋아하기도 하고.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니 프로 콜업도 왔다.

3학년 마치고 4학년이 될 때 콜업했다. 에이전트와 함께 계약서를 쓰러 갈 때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 하는구나'라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동계훈련에 합류했다. 김형열 감독님이 신인 선수들을 모아놓고 강조하셨다. "너희는 이제 학생이 아니라 프로다. 프로 답게 행동하고 프로 선수와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셨다.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제주도에서 훈련은 힘들 것이라고 각오 했는데 그것보다 더 힘들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루에 운동을 네 번 했다. 제주도가 휴양지라고 하지만 나는 몸이 피곤해서 어디 구경 나갈 틈도 없었다. 김형열 감독님의 전 직장이 가톨릭관동대였다. 마침 그 학교에서 이선걸이 우리 팀에 왔다. 이선걸이 "관동대 훈련 정말 힘들다. 여기서도 엄청 힘들 거다"라고 해서 각오는 했는데 각오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도 첫 월급은 달콤했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 모두 다 썼다.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것 먹었고 두 명의 누나들에게 용돈도 조금씩 선물했다.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누나들도 좋아했다. 사실 누나들이 나 때문에 살면서 힘든 적이 많았다. 아무래도 내가 운동을 하니까 부모님이 내게 관심을 많이 쏟으셨다. 큰누나의 경우 자수성가하는 장녀의 이미지라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작은누나는 부모님의 관심이 필요한데 내게 그 관심을 많이 뺏겼다. 그래서 어릴 때 많이 싸웠다. 지금은 그 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물론 누나들은 항상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지금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안산에서 일하고 있다. 안산 본오동에 '라이크 유'라는 카페와 뷰티 전문샵이 있다. 작은누나가 카페를 하고 큰누나가 뷰티샵을 한다. 두 누나가 함께 굉장히 열심히 살고 있다. 큰누나는 나와 일곱 살 차이라 나를 엄청 예뻐한다. 지금도 손님 없으면 항상 내 경기를 틀어놓고 본다. 작은누나는 중계 소리만 들리면 "그만 좀 보라"고 타박한다.

큰누나는 내 경기를 보면서 내 움직임 뿐 아니라 팀 동료들의 움직임이나 상대 수비까지 체크하더라. 그것을 보고 알려줘야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큰누나가 내게 "규성아, 너 저번에 그 상황에서는 왜 그렇게 뛰었어?"라고 물었다. 동공지진이 왔지만 침착하게 "그건 상대 수비가 앞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뛰었어"라고 대답했다. 전문가다.

하지만 누나들이 그렇게 말해도 제일 아쉬워하는 건 따로 있다. 사진이다. 내가 골을 넣으면 득점하고 골 뒷풀이 하는 사진이 올라오지 않는가. 누나들이 자꾸 나보고 "너는 골 넣고 나서 찍힌 사진 보면 마치 골 넣기 싫은데 억지로 골 넣은 애 표정 같다. 울상좀 그만 지어라"고 하더라. 내가 보니까 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 표정을 바꿔야 하는지 사진 기자님들에게 청탁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축구에서만 탈압박에 능한 줄 알았는데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능하다. 가족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 경기가 있을 때는 온 가족이 총 출동한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경기를 따라 다니셨다. 가까운 곳에는 항상 오셨고 먼 곳에서 열리는 경기도 평일에 반차 내고 오셨다. 요즘도 그렇다. 이제는 내가 나오면 부모님 뿐 아니라 누나들과 매형, 조카까지 모두 온다. 온 가족이 안양 유니폼에 조규성 마킹하고 입고 오니 이제는 가족들을 알아보시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다.

특히 조카들이 축구장을 정말 좋아한다. 이제 큰조카가 6세고 작은조카가 4세다. 안양 팬 다 됐다. 안양의 대표적인 응원가인 '청년폭도맹진가'도 외워서 부르고 다닌다. 비가 오는 날에는 큰누나가 조카들 감기 걸릴까봐 경기장에 데려오지 않는데 이 때도 난감하다. 조카들이 누나에게 먼저 "오늘 삼촌 축구장 가는 날 아냐?"라면서 "비 와도 갈래"라고 고집을 피운다더라. 얼마 전에는 서포터스 응원석에도 있더라.

조카들도 이제 무서운 '안양 서포터 형님들' 되는 건가.

우리 안양 서포터스가 센 걸로 유명하지 않는가. 사실 나도 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내가 상대팀 선수였으면 어땠을까? 정말 그랬다면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양 선수고 안양 서포터스는 나를 응원해주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정말 든든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양 선수라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저런 열혈 서포터스를 상대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내 복이다. 하하.

예전에 다른 팀에서 뛰는 친구와 경기 전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내게 "너희 서포터스 정말 무섭다"면서 "저번에 경기할 때 우리 팀 선수들 기가 죽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항상 힘을 받고 뛰는 입장이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기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친구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팀도 너희처럼 열정적인 서포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데 괜히 뿌듯하더라.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이제 안양에 가변석이 생기지 않았는가. 가변석이 생기니 서포터스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 심지어 상대를 겨냥한 말들도 경기 중에 잘 들린다. 저번에 아산무궁화와 경기할 때 안양 서포터스가 심판과 주세종 선수에게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분을 향해 뭐라고 하시더라. 나는 그 때 경기장에서 안양 팬 한 분이 "주세종 너 안양 살았잖아"라고 외치셔서 그 때 주세종 선수가 안양 출신인 것을 알게 됐다.

당신 참 유쾌하다. 요즘 분위기 좋은 안양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지난 시즌 안양의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입단하고 나서 안양이 팀 분위기도 좋고 성적도 나름대로 좋다. 감독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고. 전체적으로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 좋다. 나 있을 때는 절대 안양이 하위권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

조규성 덕분에 안양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어떻게 그 말이 이렇게 와전되나. 몰아가지 말자.

그렇다면 안양 상승세의 비결은 무엇인가?

분위기다. 다른 팀 선수들과 이야기 해보면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고참 선수들이 정말 끈끈하다는 것이다. 고참 형들이 후배들을 정말 잘 챙겨주고 고참끼리도 잘 뭉친다. 형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 후배들은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좋은 문화가 형성되니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팀 굉장히 돈독하다.

신인 선수라면 누구나 그런 식상한 말 한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하나하나 실명 거론하면서.

먼저 생각나는 선수는 (김)원민이 형이다. 시즌 초반에 원정 가면 항상 룸메이트였다. 원민이 형은 정말 귀신같은 촉을 가지고 있다. 내가 숙소 안에서 혼자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 때 딱 원민이 형이 "배고프지? 뭐 먹을래?"라면서 간식을 사주신다. 사실 원민이 형과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난다. 처음에 원민이 형이 "너랑 나랑 몇 살 차이인지 아느냐"고 하자 옆에서 김동민 코치님이 "삼촌 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원민이 형 동안 아닌가. 삼촌이라고 부르기는 좀 민망하더라. 그래서 형이라 부른다.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주장인 (주)현재 형은 신인들 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서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유)종현이 형은 숙소 생활 하는 신인들에게 "숙소에서 배고프면 시켜 먹어라. 시키고 나서 내게 말하라"고 한 다음에 돈을 보내주셨다. 얼마 뒤 신인들이 훈련 때 종현이 형에게 박수 치고 응원하고 있으니까 (최)호정이 형이 "너네 종현이가 간식 사줬다고 종현이만 파이팅 외치더라?"면서 먹을 것을 사주시더라. 호정이 형이 그렇게 간식도 사주면서 말하니 신인들은 또 호정이 형에게 열심히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종현이 형이 "너네 갈아탄 거야?"라고 하시더라. 하하. (구)본상이 형은 커피 전담이다. 훈련 끝나면 저녁 먹고 함께 카페를 가는데 본상이 형이 항상 사주신다.

역시 먹을 거 사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인가.

덕분에 신인들 굶으면서 훈련하는 일은 절대 없다. 선배들이 신인들 많이 챙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선배인 만큼 무서웠던 선배도 있을 것 같다.

첫 인상이 무서웠던 선배는 있다. (유ㅈ…) 당신 생각과 내 생각이 똑같을 거다. 종현이 형은 처음 봤을 때 무서웠다. 이유는 말 하지 않아도 알 거다. 아, 이런 말 인터뷰에서 하면 안되나. 종현이 형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그래도 종현이 형이 막상 만나보면 제일 유쾌하고 편한 형이다.

특히 유종현은 함께 경기할 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다. 때로는 경기가 잘 안풀리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종현이 형이 뒤에서 "괜찮아"라고 말한다. 종현이 형은 경기 중에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한다. "누구든 실수하니까 괜찮아"라는 말이 이상하게 내게는 힘이 된다.

골키퍼인 (양)동원이 형 같은 경우는 나중에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동하려고 구단 버스에 탔는데 옆자리가 호정이 형이었다. 그 때 호정이 형이 내게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수원삼성과 알사드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였다. 거기서 동원이 형의 모습을 봤다. 깜짝 놀랐다. 항상 자상한 이미지의 동원이 형이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의외의 모습을 영상에서 봤다. (양동원은 당시 경기에서 벌어진 난투극에서 맹활약(?)한 전적이 있다.)

신인들끼리는 잘 어울리는가.

잘 어울린다. 신인들은 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밤에 출출하면 같이 짜장라면도 끓여먹고 청소나 분리수거 같은 것도 가위바위보 하면서 정한다. 별 것도 아닌데 가위바위보 하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숙소 생활 정말 재밌게 하고 있다.

그래도 달리 살아온 남자들이 한솥밥 먹으면 힘든 점이 있을 것 같다.

없다. 딱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태훈이 방 안에서 방귀 좀 그만 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좋은 분위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신은 U-23 대표팀 6월 소집명단에 포함되어 훈련에 차출됐다.

처음에는 저 멀리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골도 넣고 도움도 하니까 계속 형들이 옆에서 바람을 넣었다. "이번에는 넌 무조건 가겠다. 대표팀 먼 꿈 아니고 너 무조건 간다"라고 얘기를 해주는 거다. 그래서 그 때부터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후에 공격 포인트를 더 올리고 옆에서 형들이 더욱 부채질하니 "나 진짜 갈 수 있나?"란 생각까지 하게 됐다.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솔직히 차출 명단이 발표 됐을 때 기대는 했다. 옆에서 자꾸 그렇게 말을 해주니 사람이 간사하게 기대감이 생기더라. 만일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면 조금 실망했을 것 같다. 하하. 차출되서 훈련 잘 하고 왔다. 대표팀 경험이 있는 (이)선걸이가 "김학범 감독님 카리스마 있는 분이니 긴장하라"고 조언해줬고 김형열 감독님도 같이 가는 맹성웅과 함께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너희가 하는 대로 보여주면 된다"라고 격려하셨다.

대표팀은 안양과 정 반대의 스타일이라 힘든 점이 있었다. 안양은 수비를 단단히 하고 빠르게 공격 전개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U-23 대표팀은 최전방에서부터 압박하면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다. 처음에는 전반전만 뛰어도 90분 뛴 것처럼 힘들었다. 그래도 축구는 재미있었다. 동료 선수들이 내게 잘 맞춰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습 경기에서도 골도 많이 터졌다.

선걸이 말처럼 김학범 감독님은 정말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소문처럼 무서운 분은 아니었다. 내가 차출되서 훈련할 때는 정말 한없이 상냥한 분이었다. '아직은 실전이 아니라서 상냥하게 해주신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튼 그랬다. 그래도 목소리 하나는 호랑이 같다. 감독님 이야기 들으면서 목소리가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꾸준히 대표팀에 가려면 안양에서 더욱 활약해야 하지 않겠나.

맞다. 안양이 잘 되면 나도 잘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거다. 하지만 재미있게 하고 싶다. 내 생활 모토가 '재미있게 하자'다. 무엇이든지 즐겁게 하고 싶다. 특히 SNS 상에서 팬들의 응원 댓글을 보면 힘이 난다. '규성이 최고다', '조규성 잘하고 있네' 이런 댓글이 달리면 괜히 뿌듯하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자신감이 붙으면 경기장에서도 더욱 힘이 난다. SNS에 사진 같은 것을 올리지는 않지만 팬들의 댓글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보고 있다.

조규성은 안양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자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 FC안양 제공

일단 올 시즌에는 많은 분들이 얘기한 것처럼 승격 플레이오프는 무조건 가고 싶다. 진출해야 하는 무대고 진출할 수 있는 무대다. 승격 플레이오프에 간다면 내친 김에 승격도 하고 싶다. 더 높은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만일 K리그1으로 승격한다면 FC서울과 꼭 맞붙고 싶다. 내가 거기서 골을 넣는 것이 나를 키워준 안양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양과 함께 K리그1에서 뛰는 것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개인적으로는 안양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내년에 열릴 2020 도쿄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다.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당신의 꿈이 이뤄지길 기원하겠다. 갑자기 생긴 궁금증이다. 병무청 신체검사 받았나?

받았다. 1급이다. 남자라면 당연히 1급 받아야지.

파이팅.

고맙다. 경기장에서 또 보자.

조규성이 무서운 이유는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토종' 최전방 공격수가 많지 않은 K리그에서 조규성의 등장은 안양 뿐 아니라 한국 축구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안양은 이제 조규성의 활약을 바탕으로 창단 후 최초로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꿈꾸고 있다. 천진난만하지만 무서운 소년 조규성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기대감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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