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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또 다시 병역 특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청소년 대표팀이 U-20 청소년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르자 이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나 역시 우리 어린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고 그들이 한국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심을 다해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우리 선수들을 향해 응원을 펼칠 생각이다. 정정용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운동선수 병역 특례 확대 찬성이 55.2%?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더 나아가 자꾸 이렇게 선심성 병역 혜택이 언급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 병역 혜택이 무슨 술집 골든벨도 아니고 기분 좋다고 이렇게 남발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기분낸다며 술 취해서 카드 막 긁었다가는 다음 날 일어나 내역서를 보고 엄청 후회한다. 더군다나 이번 정정용호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는 건 그냥 몇몇 팬들의 주장이 아니라 서서히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U-20 대표팀에 병역 혜택을 줘야한다는 의견이 올라오고 있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중이다.

이런 주장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권위 있는 국내 여론 조사 기관에서도 설문조사를 통해 U-20 청소년 대표팀에 병역 혜택을 주자는 여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설문 조사에서는 운동선수 병역특례 범위 확대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이 55.2%, '반대' 응답은 36.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병역 혜택을 여론 조사로 한다는 것 자체도 웃기지만 지난 해 아시안게임 이후 야구 대표팀의 모습을 보며 병역 혜택에 반대하는 여론이 넘쳐나던 때와 비교하면 불과 몇 달 만에 운동선수 병역특례 범위 확대 찬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게 참 씁쓸하다. 세상에 이렇게 감정적인 나라가 또 있을까.

여러 매체에서도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해 병역 혜택을 준 사례가 있다며 여론을 형성 중이다. 2002년 6월 14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사상 처음 16강에 올랐고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경기 종료 후 라커룸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병역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이 전폭적으로 호응한다는 이유로 그달 병역법 시행령에 ‘월드컵 16강 이상’을 병역혜택 대상으로 추가했다. 1994년 이창호 9단이 입대 영장을 받자 바둑계는 물론 여야 국회의원 101명과 수많은 시민이 탄원을 넣자 국방부는 바둑을 예술 분야로 확대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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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덜어내고 형평성을 따져보자

결국 세계 바둑계를 제패한 이창호 9단은 병역혜택을 받았다. 대통령 한 마디에, 국회의원들 탄원에 특정 인물들이 군대를 안 가는 게 상식적인 일일까.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이후 2006년 3월 야구 대표팀도 WBC 4강으로 대회를 마친 뒤 그해 9월 병역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아마추어 선수나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며 월드컵 조항과 WBC 조항은 2007년 12월 병역법 시행령에서 삭제됐다. 그런데 우리는 또 10년이 지난 지금 U-20 대표팀에게 병역 혜택을 줘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해야 하는데 학습 능력이 없다.

최근 국방부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 여론과 국회의 지적에 따라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의 존폐를 비롯한 개선 여부 등을 현재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에서 이런 실무적인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방부는 8월 이전까지 공청회 등을 열어 개선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원래는 병역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여론이 몰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실체도 불분명한 ‘국위선양’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여기저기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규정을 적용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그런데 U-20 청소년 대표팀이 선전하면서 여론이 바뀌고 있다. 형평성과 공정함보다는 감정대로 처리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에 여론은 뒤집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U-20 대표팀의 기적과도 같은 성적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지만 1~2년만 지나고 이 감정을 덜어내고 보면 우리는 또 형평성에 어긋나는 선택을 한 걸 후회할 것이다. 물론 내 이 의견은 절대 U-20 대표팀의 성적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감정을 싹 걷어내고 보면 국위선양이니, 국격 상승이니 하는 것들의 실체가 허울 뿐이었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미 운동선수에 대한 혜택은 충분하다

이건 정정용호를 응원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병역이라는 성스러운 의무에 자꾸 예외 규정을 두는 건 안 된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형평성에 어긋나는 병역 혜택을 제공한 것부터가 잘못의 시작이었다. 운동 선수들에게는 올림픽 동메달 이상의 성적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성적을 내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엄연한 규정이 있었다. 월드컵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아예 해당 규정에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대회에서 선심 쓰듯 병역 혜택을 남발했다. 시행령까지 바꿔가면서 말이다.

물론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에 진출한 태극전사를 향해 병역 혜택이 주어졌을 때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냉정한 잣대로, 공정하게 이 문제를 판단할 만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마치 술집 골든벨 마냥 병역 혜택을 선물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이 두 대회 성적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왜 좋은 성적을 내면 그에 따른 혜택으로 군대를 빼주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존경과 경의의 박수를 보내면 충분한 일 아닐까.

성적에 따른 병역 혜택은 이미 그 규정이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 그 규정을 어겼다. 이런 형평성 없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툭하면 감동을 선사한 이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제는 정당한 방법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손흥민을 보면서도 그랬고 지금은 방탄소년단에게도 그러고 있다. 국위선양을 한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다고 된다는 분위기는 몹시 불편하다. 그런 게 어디에 있나. 다 군대 갈 때 되면 가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해당 규정에 맞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나 올림픽 동메달, 예술 계통이라면 해당하는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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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감정이 앞서는 나라는 되지 말자

이런 분위기가 몹시 실망스럽다. 법보다 감정이 앞서는 나라인 것 같다. 월드컵 16강 갔다고 병역 혜택을 주고 몇 나라 하지도 않는 야구에서 4강 성적 냈다고 병역 혜택을 주는 건 너무 감정적인 일 아닌가. 또한 이번 정정용호의 성적을 절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청소년 대회에서 결승에 갔다고 병역 특례를 언급하는 것 자체로도 너무 감정적이다. 이렇게 한때 기분이 좋아 병역 혜택을 부여해 놓고 훗날 이 선수들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또 ‘그때 병역 혜택을 주면 안 됐다’고 할 건가. 우리는 계속 이런 일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과거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해 왔지만 운동선수에게는 이미 병역 혜택 규정이 마련돼 있고 국군체육부대라는 어마어마한 혜택도 있다. 군대에 가서까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충분하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무슨 혜택을 더 줘야하는가. 어차피 국가대표 수준급 선수들은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국군체육부대 입대가 가능하다. 주말 밤 치킨을 시켜 맥주 한잔하며 유럽 리그를 보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안주삼아 보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청소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이들에게 병역 혜택을 줘야할 이유는 없다. 국군체육부대에서 뛰어도 경기력은 충분히 유지된다. 유럽 무대? 병역을 마치거나 현행 규정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통과해 해결하면 된다.

이 시기에 민감한 주제이긴 하다. 자칫 이런 글이 정정용호를 깎아내리는 느낌이 들까봐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지금 이 상황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이강인을 비롯한 정정용호의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는 이야기에 반대하면 매국노로 몰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형평성을 따지고 할 말은 해야 한다. 이렇게 또 선심 쓰듯 병역 혜택을 고민하면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또 형평성 논란에 빠진다. 혹시라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축구는 줬는데 야구는 안 줬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유치하게 축구 청소년 월드컵은 되고 야구 청소년 월드컵은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갑론을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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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호, 그 자체로 박수받길

공정한 잣대로 지금 있는 규정대로 하면 이런 일이 없다. 오히려 병역 혜택은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올림픽이야 그렇다고 쳐도 아시안게임이 국위선양이나 국격을 올려주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청소년 대회에도 병역 혜택을 확대해 적용하자는 건 정말 딱 냄비 근성이다. 이 대회에 병역 혜택을 부여하면 같은 청소년 연령대에서 국제대회를 치르는 다른 종목에서도 서로 혜택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딱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꼴 나는 거다. 나는 아직도 이 대회에 병역 혜택이 주어진 걸 이해할 수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병역 특혜를 줘 안 좋은 선례를 남겼고 형평성은 여기에서 무너졌다.

만약 U-20 대표팀에 병역 혜택을 부여하면 나중에 U-17 청소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땐 어떻게 할 건가. 20세 이하 대회는 되고 17세 이하 대회는 안 되는 것도 이상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할 수도 없다. 일반인에게는 1%의 기회 조차도 없는 체육계 병역 특례는 앞으로도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합법적인 병역 혜택 수단은 지금도 충분한다. 불과 9개월 전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고도 여론이 좋지 않았고 병역 혜택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무슨 대회만 열렸다하면 폐지하라고 했다가 확대하라고 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냄비근성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U-20 대표팀이 꼭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준비는 돼 있다. 그들의 활약은 그 자체로 칭송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전을 꼭 병역 혜택과 연결 짓는 건 반대다. 차라리 우승 여부와는 상관없이 귀국하는 그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게 그들을 더 뜨겁게 맞이하는 일 아닐까. 이것과는 별개로 체육인, 예술인에 대한 병역 예외 조항은 사라졌으면 한다. 다들 체육인과 예술인의 20대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지만 그들뿐 아니라 일반인도 20대가 소중한 건 마찬가지다. 예외는 없어야 한다. 이 선수들의 감동적인 플레이를 즐기기만 해도 부족한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서글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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