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주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협회는 지난 4일 “의외로 질문이 많아 답변드린다”면서 “축구는 비가 와도 한다. 수중전의 묘미다. 재난에 버금가는 상황일 경우, 경기 감독관과 관계자들의 회의를 거쳐 취소할 수 있지만 우천 취소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글을 게재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 왜 이런 글까지 올려야 했나 살펴봤다.

내일(7일) 부산아시아드에서 열리는 한국과 호주의 국가대표 평가전 때문이다. 이날 부산 지역에는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내려졌다. 비가 오면 그 나름대로의 수중전을 즐기면 될 것을 협회 공식 SNS에서 왜 이런 당연한 글까지 올려야 했을까. 축구를 보면서 축구는 비가 와도 왜 경기를 하느냐는 질문은 태어나서 별로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거의 “비가 와도 밥은 먹나요?” “비가 와도 화장실에 가나요?” 수준이다. 거의 “유럽은 왜 새벽에 축구해요?”급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비가 오는 날 축구를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들이 대표팀 경기를 보다가 K리그 경기까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축구계의 역할이다. ⓒ대한축구협회

최근 들어 축구가 인기를 끌면서 신규 팬들이 많아졌다. 그 중에는 잘 생기고 어린 선수들의 팬들이 부쩍 늘었다. 이른바 ‘얼빠’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협회 SNS를 통해 이들은 “비가 와도 축구를 하느냐”는 질문부터 “우리 오빠들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을 쏟아냈다. 오죽하면 협회가 SNS를 통해 이런 게시글까지 올려야 했을까. 지난 시즌에도 장마철 K리그 경기장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여러 번 고생했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반응이 놀랍기만 하다. 아니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이런 ‘얼빠’들의 반응을 보고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실제로 협회의 이 SNS 글에도 “비가 오니 손흥민은 제발 부르지도, 출전시키지도 말아달라”는 댓글부터 “우리 오빠가 감기 걸리면 책임질 거냐”, “경기를 당장 취소해 달라”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이쯤 되면 협회 SNS 관리자는 극한직업으로 분류해야 할 정도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반응이 참 많다. 다수의 ‘얼빠’들이 마치 축구선수를 아이돌 보듯 대하는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긴 어렵다. 또한 협회 SNS가 무슨 아이돌 콘서트장처럼 변질된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건 매번 ‘뽀짝뽀짝’거리면서 오글거리는 게시글이나 올리고 있는 SNS 관리자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난 협회 SNS는 구독 취소를 눌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런 이들을 냉소적으로 봤던 나는 이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서서 이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래도 이제는 이들도 축구팬이라고 생각하고 품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태어날 때부터 축구팬이고 축구 전문가였던 사람이 있을까. 나도 어린 시절 오프사이드 룰에 대한 모르던 때가 있었다. 정확한 스로인 반칙 기준에 대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 잘 모르고도 축구팬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아마 내가 막 축구를 접했을 무렵 협회 SNS가 있었다면 나도 “우리 상래 형, 도훈이 형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해요. 비 오면 축구하지 마세요”라고 썼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잠재적 축구팬을 지금껏 꽤 많이 잃었다. 김남일이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 김남일을 보며 소리를 지르던 소녀들은 이제 대부분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 한때 ‘오빠부대’ 정도로만 그들을 취급했다. 그들이 나이를 먹고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아니면 먹고 살기 바빠져 축구에 관심을 끊었을 수도 있지만 축구에 다가왔던 팬들이 왜 떠났는지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어리고 잘 생긴 축구선수를 쫓는 팬들이 20년~30년이 흘러서도 아이와 축구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게 진짜 이 축구 황금기를 제대로 보내는 거다.

나도 그들을 배척하던 시기가 있었다. 김남일이 안양LG에서 뛰던 안드레 현 대구FC 감독과 충돌했을 때 김남일 팬들은 엉뚱하게도 안드레이 세브첸코 홈페이지에 들어가 욕으로 도배를 했고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도대체 안드레이 세브첸코와 안드레를 구분도 못 하면서 무슨 축구를 보느냐고 상대적 우월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런 우월감은 별로 쓸 데가 없다. 어차피 나도 축구팬 중 한 명이고 “오빠 사랑해요. 잘 생겼어요”를 외치는 팬도 축구팬 중 한 명일 뿐이다. 모르면 하나 하나 가르쳐주고 이해해 주는 게 어떨까. 나는 ‘김남일 전성시대’ 때의 팬들이 지금까지 경기장을 찾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게 우리가 한 단계 더 흥행 성공 반열에 오르지 못한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사석에서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묻는 경우가 있다. 질문은 원초적이거나 수준이 높지 않다. “손흥민이 박지성보다 잘하죠?” “K리그는 왜 관중이 없을까요?” 이런 질문에는 뭐 진지한 답변을 하기도 그렇고 정색을 하는 것도 웃기다. 그러면 대충 “그러게요”라고 하거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정중히 되묻는다. 그게 그래도 축구 좀 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 와도 축구해요?”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자. 늘 축구가 외면 받아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축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기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신규 팬들을 배척한다면 이건 정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거다.

이들도 결국 우리가 껴안아야 한다. 아니 오히려 ‘방구석 전문가’보다는 유니폼 하나 사주고 선수들에게 힘 실어주고 경기장 입장료 얹어주는 이들이 한국 축구에는 더 소중한 존재 아닐까. 물론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져 선수들이 ‘아이돌화’ 된다거나 기존 축구팬들이 불편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수들을 향해 ‘XX맘’이 등장해 사사건건 간섭하는 분위기도 싫다. 다만 처음 축구에 입문해 모든 게 생소하고 무지한 이들에게 먼저 축구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배려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야구도 결국에는 여자팬이 늘면서 국민 스포츠 반열에 올랐다. 우리는 지금 이들을 폄하할 게 아니라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들이 대표팀 경기를 보다가 K리그 경기까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축구계의 역할이다. ⓒ대한축구협회

나도 이들에게 대단히 호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모두가 처음 축구를 접하게 됐을 때를 생각하면 조소만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또한 이들을 선수 한두 명이 아닌 팀과 리그를 사랑하는 축구팬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수중전이 열리면 선수들이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경기를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또 이해가 되기도 한다. 매번 이기지도 못하는 서울이랜드 경기를 보기 위해 천안까지 와 지붕도 없는 땡볕에서 응원하는 우리 ‘네온펀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따져보니 비 온다고 선수들 걱정하는 팬들이 아주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축구가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어린 팬들에게도 사랑받는 시대가 왔다. 시장이 커지면 말도 많아지는 법이다. 축구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협회 SNS를 통해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저렇게 무한한 선수 사랑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다. 내 인스타그램에는 사진만 올리면 ‘피드 잘 구경하고 갑니다. 잘 꾸미셨네요. 우리 소통해요’라는 스팸 댓글만 달린다. 나중에 놓치고 또 다시 후회하지 말고 이 팬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포용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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