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홀로 응원한 고양 팬,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선수

이 장면은 많은 이들을 울렸다.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최근 큰 감동을 준 소식이 전해졌다.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의 한 팬이 홀로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됐고 이 경기에서는 고양이 7연패를 끊으며 귀중한 올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후반 47분 승리를 결정하는 골을 넣은 선수는 홀로 응원하는 팬에게 달려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이 팬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 영상은 인터넷상에서 조회수가 100만 건이 넘었고 이 팬은 단번에 스타가 됐다. 지상파 방송은 물론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K3리그에서도 관심이 부족한 고양시민축구단의 경기 일정이 지상파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10년 넘게 경기장을 찾아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하고 있는 팬인 라대관 씨의 열정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홀로 응원 온 팬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감동을 선사한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했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박수를 받아야 할 이 선수를 주목했다. 그에게도 팬인 라대관 씨 못지 않은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영상 속 주인공 안명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명환은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고양시민축구단

고등학교 시절 두 번의 해체를 경험한 선수
1998년생인 안명환은 고등학교 시절 꽤 기대를 모으던 선수였다. 문일고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문일고는 2015년 10월 해체를 선언했다. 안익수를 비롯해 이학종, 진순진, 김한윤, 왕정현, 진경선, 성한수, 박호진, 이민성, 신진원 등 1990년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을 배출해 냈던 문일고는 4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축구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김영실 이사장이 안양대 총장을 맡아 학교를 떠나게 되면서 축구부는 찬밥 신세가 됐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학교 측에서는 가뜩이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축구부의 운영비 지원을 줄였고 팀은 더더욱 망가져갔다.

2012년부터 서서히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축구부를 해체하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결국 2015년 10월 한양공고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던 안명환은 결국 경기 평택에 위치한 청담고로 전학했다. 청담고는 한 번 해체를 경험했다가 재창단한 팀이었다. 하지만 안명환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6년 청담고 역시 해체를 선언하고 말았다. 학교 내부 사정으로 더 이상 축구부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는 통보를 받고 안명환은 또 한 번 축구를 그만둘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당시에 대해 안명환은 이렇게 회상했다. “정말 앞이 막막했어요.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서 전학까지 했는데…”

또 다시 갈 곳이 없어진 안명환은 축구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봤다. 그가 선택한 곳은 스페인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설 좋고 팬 많은 스페인이 아니다. 마드리드에 위치한 라스로사스라는 유소년 팀의 문을 두드렸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2016/17시즌을 준수하게 마쳤고 곧바로 스페인 4부리그에 있는 똘레도B 팀에서 정식 입단 제안이 들어왔다. 이 팀은 똘레도 U-23 선수들이 뛰는 팀이었다. 안명환은 이 팀에서 꿈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 팀 해체 문제로 두 번이나 아픔을 겪었던 안명환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중국에서의 실패, 그리고 큰 좌절
하지만 난관에 닥치고 말았다. 그가 취업 비자가 아닌 학생 비자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똘레도B에서는 스스로 학생 비자를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비자 연장을 알아보니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똘레도B팀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을 따져봐도 도저히 체류가 어려운 정도였다. 결국 안명환은 막대한 체류 비용 때문에 스페인에서의 도전을 접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소속팀 없이 성인이 됐고 안명환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축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제가 갈 수 있는 또 다른 곳을 알아봤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3학년 이후 한국을 떠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없었다.

안명환은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3부리그에서 선수를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중국으로 향했다. “당시 중국 3부리그와 4부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쓸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 규정이 2018년도에는 풀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중국행을 결심했죠.” 중국 3부리그 팀에서 테스트를 받은 그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하지만 중국축구협회는 3부리그의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뛰고 싶어도 중국 3부리그에서 뛸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올까도 고민하고 있던 그때 중국 5부리그 한 구단에서 안명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명환은 이 팀의 입단 가능성이 높았다. 구단에서 그를 좋게 평가했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 중국 5부리그의 또 다른 구단에서도 안명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전에 이야기가 오갔던 중국 5부리그 팀보다는 조건과 환경 모두 나은 팀이었다. 입단 테스트를 받는 조건이었지만 안명환은 테스트에도 자신 있었다. “중국 5부리그 팀에서 1년 정도 몸을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안명환은 입단 테스트 겸 치른 경기에서 전반 20분 만에 부상을 당해 쓰러지고 말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작은 부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그는 무릎에 큰 통증을 느꼈다.

그는 지금도 이렇게 무릎 통증을 참고 뛴다. ⓒ고양시민축구단

1년 6개월 동안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던 안명환
하지만 안명환과 구단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외국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의사소통이었어요. 아파도 구단이나 의사에게 번역기를 돌려서 증상을 설명해야 했고 통역사를 데리고 가더라도 제 진심을 전하지 못했거든요. 의사가 처방을 해줘도 이건 완벽한 처방이 아니었어요. 중국에서 구단이 소개한 병원에 갔더니 주사를 맞고 붕대를 감으면 금방 낫는다고 했는데 절대 그런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중국 구단 측에서는 자신들이 치료를 보장해 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료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한국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겠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결국 안명환은 중국에서도 성인 팀 입단에 실패한 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귀국해야 했다.

한국에 와 진료를 받으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후방 십자인대 파열, 내측 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하고 재활만 1년에서 1년 6개월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소속팀이 없으니 제 돈으로 수술비와 재활 비용을 대야 했죠.” 그는 2017년 겨울 수술대에 올라 2018년을 통째로 날려야 했다. 소속팀도 없는 그에게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불러주는 곳도 없었고 그를 기다려주는 팀도 없었다. 이대로 은퇴를 해도 아무도 그에게는 관심이 없을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명환은 홀로 재활에 매달렸고 조금씩 회복했다. 그리고 2019년, K3리그에서도 가장 상황이 열악하다는 고양시민축구단에 입단하게 됐다.

고양시민축구단은 수당도 많지 않다. 선수 생활만 해서는 도저히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 안명환도 훈련과 경기를 제외하면 고양시에 위치한 ‘칸테라FC’라는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 시작했다. 오후에는 늘 이곳에 나가 아이들과 함께 뛴다. 고양시민축구단 선수 대부분은 이렇게 ‘투잡 생활’을 하며 재기를 꿈꾼다. 여러 번 실패를 맛본 선수들이 모여 있는 이 팀은 재정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양은 한국 성인 축구 무대 최하부리그에서도 꼴찌에 도맡아 하는 팀이다.

안명환과 라대관의 감격적인 첫 승
그런데 이 팀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한 명의 팬이 있었다. 바로 이번에 영상을 통해 감동을 선사한 라대관 씨다. 안명환은 처음에는 K3리그 경기장에서 홀로 응원을 하는 팬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팬의 응원을 받으며 뛰어본 적 없는 안명환에게는 단 한 명이어도 이 팬의 존재가 소중했다. 깊게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는 이 팬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최하위’ 고양이 올 시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함은 더 컸다. 언젠가 이 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이를 직접 전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안명환은 지난 18일 K3리그 베이직 고양시민축구단의 평창FC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평창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고양시에서 강원도 평창까지 홀로 달려온 라대관 씨도 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경기장에 걸개를 내걸고 응원 준비를 마쳤다. 몸을 풀던 안명환은 팀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골 넣으면 저 분한테 달려가 인사할 거야.” 물론 대단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단 한 번도 승리를 하지 못한 고양에서 안명환이 골을 넣고 기분 좋은 순간을 맞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1-1로 팽팽하던 후반 종료 직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양이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었다. 이 득점에 성공하면 그토록 기다리던 올 시즌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 키커는 안명환이었다. 올 시즌 고양에 입단해 단 한 번도 승리를 경험하지 못한 안명환에게 중책이 주어졌다. 따지고 보면 그는 공식 성인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안명환은 침착하게 득점에 성공했다. 골을 넣은 뒤 벤치 쪽으로 몸을 돌려 선수단을 향해 뛰어가 기쁨을 전하려던 그가 갑자기 방향을 돌렸다. “딱 그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도 홀로 응원을 하러 온 그 ‘서포터스님’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겠다는 제 자신과의 약속이 떠올랐죠.”

안명환은 고양시민축구단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고양시민축구단

고개 숙여 진심 전한 안명환이 선사한 감동
방향을 튼 안명환은 홀로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팬에게 달려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평소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길이 없던 그의 진심을 담은 인사였다. 라대관 씨는 곧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이 아름다운 동화는 완성됐다. 홀로 응원한 팬에게도 이 장면은 길이 남겠지만 안명환에게도 이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평소에 ‘고맙다’는 말을 못해서 늘 미안했죠. 이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컸고요. 매번 홈이나 원정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에 와 목 놓아 응원해 주시는데 선수로서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해 미안했죠. 그 ‘서포터스님’께서 눈물을 흘린 건 나중에 영상으로 봤어요. 저도 그때는 정신이 없었거든요.”

안명환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홀로 감동적인 응원을 한 팬도 주목받아야 하지만 이렇게 한 명의 팬을 위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멋진 선수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 아마 안명환의 이런 아름다운 세리머니가 없었다면 감동을 선사한 팬의 이야기도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감격적인 세리머니를 펼친 주인공의 인생 스토리를 되짚어 본다면 이 감동은 더 커진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의 멋진 세리머니에 박수를 보낸다. 그에게 있어 성인 무대에서 첫 번째 팬이자 첫 번째 승리에는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다.

이 경기는 누군가에게는 관심 없는 K3리그였을지 모르지만 안명환에게는 ‘인생 경기’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어요. 경기가 끝나고 보니 제 발목과 무릎이 퉁퉁 부어있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뛴 거죠. 너무 기쁘고 행복했는데 버스 타고 올라오면서 발목과 무릎 상태를 알았어요. 무릎과 발목이 아파 다음 경기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 팀에 저 말고도 부상자가 많아요. 저보다 심각한 부상선수도 있고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선수도 있죠. 상황이 열악해 엔트리에 오를 18명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고양 선수니까 책임감과 소속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경기에서는 풀타임이 힘들면 20~30분이라도 팀에 기여하고 싶어요.”

이 장면은 많은 이들을 울렸다. ⓒ방송 화면 캡처

고양과 안명환, 그리고 팬이 전하는 메시지
안명환은 간절하다. 마음껏 뛸 기회가 없었던 그는 작은 부상을 당했어도 참고 뛰는 게 행복하다. “우리 팀은 수당도 적고 훈련장도 열악해요. 대화레포츠에서 훈련을 하는데 인조 잔디 상태도 많이 안 좋아요. 하지만 그래도 뛸 수 있는 팀이 있고 이 팀을 응원하는 열정적인 팬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스페인에서 뛸 때도 홈 경기 때면 응원하러 오는 관중이 있었지만 우리 ‘서포터스님’처럼 원정경기까지 따라 오시거나 응원을 하는데 열정적이진 않았어요. 이렇게 성인 무대에서 박수를 받으며 뛰어본 건 처음입니다. 사실 처음에 K3리그로 올 때는 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팀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이런 ‘서포터스님’이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홀로 응원하다가 첫 승의 기쁨에 왈칵 눈물을 쏟는 팬의 모습은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던 팬 못지 않게 진심을 다해 허리 숙여 인사한 선수도 주목받아야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팀의 첫 승을 이끄는 골을 넣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안명환은 홀로 응원하는 팬 라대관 씨에게 이런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매번 지는 게 더 익숙한 팀이지만 1승을 했을 때 기쁨은 그 어떤 팀보다 커요. 이 마음 변치 않고 늘 이렇게 고양시민축구단을 응원해 주시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게요.” 골을 넣은 뒤 달려가 단 한 명뿐인 팬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던 안명환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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