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아산=조성룡 기자] "이상하다. 감독님이 안계시는데요?"

26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아산무궁화와 광주FC의 경기 전 감독 사전 인터뷰 시간. 아산 홍보 담당자는 기자들을 먼저 광주의 라커룸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라커룸에 있어야 할 광주 박진섭 감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을 찾기 위해 광주 구단 관계자도 나섰지만 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 아산부터 먼저 가시죠." 아산 홍보 담당자는 아산 감독실로 안내했다.

아산의 홈 구장에는 감독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아산 박동혁 감독은 감독실에서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다. 홍보 담당자가 감독실의 문을 열자 박동혁 감독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깜짝 놀랐다. 박동혁 감독의 옆에는 '적장' 박진섭 감독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박진섭 감독이 경기 전 상대 팀 감독실에 있었던 것이다. "사전 인터뷰를 위해 왔다"라고 하자 박동혁 감독은 "이왕 이렇게 된 것 같이 하자"라고 기자들을 감독실 의자로 이끌었다.

K리그2 취재를 다니면서 1대 1 기자회견 등 수없이 많은 취재 변수를 겪었지만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보통 경기 전 감독 인터뷰의 경우 전술이나 관전 포인트, 상대에 대한 대비책 등을 묻는다. 그런데 두 팀의 감독이 앉아있다. 무언가 제대로 물어보기 어렵다. 이기기 위한 비책을 물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차피 감독이 대답하면 뭐하나. 바로 옆에서 상대 팀 감독이 다 듣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U-20 월드컵의 엄원상과 오세훈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전술의 핵심은 묻지 못했다. 특히 박동혁 감독은 사전 인터뷰 때 항상 "상대 팀 먼저 갔다왔는가"라고 물으며 정보 유출을 경계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상대 팀 박진섭 감독 앞에서 그에게 전술을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었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다. 물론 두 사람은 친하다. 하지만 그래도 물어보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도 약간의 농담을 섞어 설전 아닌 설전은 벌어졌다. 먼저 아산 박동혁 감독이 "광주는 펠리페가 있으면 오히려 경기의 속도가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펠리페가 나오기를 바랐다"라고 말했다. 광주 박진섭 감독은 바로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면서 "반박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나이는 박진섭 감독이 두 살 위지만 편하게 농담을 던지는 쪽은 박동혁 감독이었다. 그는 또 "우리 팀이 부상 병동이다"라고 한탄하더니 박진섭 감독에게 한 마디 던졌다. "안다치게 잘 좀 합시다." 박진섭 감독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 그래야지."

그러다 두 사람의 대화는 박진섭 감독의 패션으로 이어졌다. 박진섭 감독은 니트와 셔츠를 껴입고 있었다. 편한 반팔 차림의 박동혁 감독과 확연히 달랐다. 박동혁 감독은 그 옷차림으로 오후 3시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정말 그렇게 입고 할 거야?"라고 물었다. 박진섭 감독은 한 술 더 떴다. "응. 나 여기에다가 자켓까지 입을 거야.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경기 해야지." 박진섭 감독은 무패 행진의 기분 좋은 징크스를 위해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있었다. 봄 패션 그대로 여름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박동혁 감독은 계속해서 박진섭 감독의 패션을 지적했다. "예전부터 박진섭 감독이 옷을 참 못입었다"라고 말한 박동혁 감독은 "옛날에는 박진섭 감독이 지갑에 돈도 두둑하게 넣어서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넣고 다녔다. 정말 패션이 별로였다"라고 말했다. 박진섭 감독이 항의의 뜻으로 스마트폰만 넣은 바지 주머니를 보여주니 박동혁 감독은 "지금은 카드 시대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참 박진섭 감독의 패션을 지적하던 박동혁 감독은 본인의 패션에 대해 묻자 "관심은 있었지만 잘 몰랐다. 그저 비싸면 다 좋은 줄 알았지"라며 겸손해졌다.

물론 박진섭 감독만 '의상 징크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박동혁 감독도 불과 얼마 전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해 27도 무더위에 터틀넥을 입었다. 박동혁 감독에게 그 때를 이야기하니 그는 "옷을 쭉 입는 게 아니라 바꾸니까 잘 되더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박진섭 감독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내가 옷 갈아입게 해드리겠다." 이번 경기에서 이겨 박진섭 감독의 기분 좋은 징크스를 깨주겠다는 뜻이었다. 박진섭 감독도 받아쳤다. "아 물론 지면 갈아 입어야지.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안될 거다. 솔직히 올 시즌 끝까지 이 옷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왜 경기 전에 함께 있었던 것일까? 알고보니 두 사람은 공통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박진섭 감독은 "P급 라이센스 획득 때문에 만났다. 이번에 숙제가 정말 많아서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함께 이야기했다"면서 "이번 경기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교육에 들어간다. 그것 때문에 만나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라고 소개했다. 역시 무지막지한 과제는 승부의 세계도 잠시 잊게 할 만큼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하나보다. K리그 감독이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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