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안양=조성룡 기자] "야! 너 고향도 안양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19일 안양종합운동장. FC안양과 아산무궁화의 하나원큐 K리그2 2019 경기 중 안양 서포터스는 유독 한 인물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그가 공을 잡으면 야유가 쏟아졌다. '언제부터 안양과 아산이 이렇게 격렬한 라이벌이 됐지?'라는 생각을 하던 중 주인공의 등번호를 확인하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선수의 등번호는 17번, 아산 선수였다. 바로 주세종이었다.

K리그를 좀 관심있게 본 사람이라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주세종의 원소속팀은 FC서울이다. 공교롭게도 FC서울과 안양은 연고이전으로 인한 악연이 질기게 엮여 있다. 특히 주세종은 서울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냈다. 서울에 입단했을 당시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주세종의 등장에 안양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악연 하나 만으로 주세종과 안양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안양에 있어 주세종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다. 애증일 수도 있고 증오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꿀 수 없는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이게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것은 주세종의 고향이 경기도 안양이라는 것이다.

그 주세종이 안양종합운동장에 등장했다. 오랜 만의 고향 방문이다. 아니 오랜만에 자신을 가장 격렬하게 싫어하는 적대적인 땅에 도착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될 고향이 가장 방문하기 껄끄러운 곳이 돼버렸다. 물론 이것은 주세종이 스스로 선택한 길일 수도 있다. 1990년대 함께 안양LG를 보며 꿈을 키우던 안양 서포터스와 주세종은 서울 연고이전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헤어짐은 필연적으로 날선 대립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이날 경기에서 주세종은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도움을 하나 기록했다. 프리킥 상황에서 주세종이 찬 공은 이한샘의 헤더로 이어졌고 이것이 아산의 선제 결승골이었다. 가뜩이나 민감한 승부처 상황에서 몇 차례 아쉬운 판정 결과를 받게 된 안양의 입장에서는 주세종의 공격 포인트가 더욱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가 아산의 1-0 승리로 끝나자 안양종합운동장은 오랜만에 격렬한 야유로 가득 찼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경기 후 만난 주세종은 가장 먼저 팀의 상승세에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4월에 전패를 하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다"면서 "무패를 해도 경기력이 좀 좋지 않아 걱정했다. 우리가 이번 안양전을 앞두고 열심히 잘 준비했다. 생각대로 경기력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이 들어가 승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만에 주세종은 안양에 왔다. 그는 "하루 전에 안양에 와 호텔에서 잤다. 안양은 내 고향이지 않는가. 집처럼 편한 그런 느낌이 있다"면서도 "그런데 경기 중에 안양 팬들께서 많은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시더라.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하시더라. 하하. 하지만 내가 당연히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내가 더 경기력으로 보여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것들이다.

아산 선수들도 안양 팬들의 외침을 잘 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안양에 가변석이 설치되는 바람에 안양 팬들의 함성은 선수들의 귀에 더욱 잘 들렸다. 주세종은 "전반전이 끝나고 선수들이 우스갯소리로 '세종아 네 이름 많이 부르더라'고 하더라"면서 "그런 부분이 자극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 팬들의 그런 외침이 더 경기에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농담 삼아 "원소속팀(FC서울) 팬들이 그립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또한 웃으면서 "서울 팬들은 1월에 훈련소 들어갔을 때 정말 간절하게 그립더라"면서 "항상 서울 팬들이 보고 싶지만 내게는 또 아산의 많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아산에 집중하고자 한다. '말년'이라고 대충 뛰지 않고 내가 전역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아산을 높은 순위에 올려놓아야 축구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라고 다짐했다.

주세종은 새로운 더비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K리그에서 가장 잠재력 높은 더비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은 '연고이전 더비'를 꼽는다. FC안양과 FC서울, 그리고 부천FC1995와 제주유나이티드의 맞대결이다. 이미 안양과 서울은 FA컵에서 한 차례 만나 화제성과 흥행 잠재력을 입증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팀이 같은 리그에서 만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양과 서울이 만나는 순간을 걱정하면서도 기다리고 있다.

과거 안양LG와 수원삼성의 더비를 더욱 끓어 오르게 만든 인물은 서정원이었다. 안양의 유니폼을 입고 해외 진출 이후 수원으로 돌아온 서정원은 '지지대 더비'라 불리던 두 팀의 맞대결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스토리다. 서정원 뿐 아니라 여러가지 역사가 쓰여지면서 안양LG와 수원삼성은 당시 K리그를 대표하는 더비를 만들어냈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라이벌전이다.

이제 K리그는 안양과 서울이라는 새로운 더비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만일 성사된다면 그 중심은 주세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안양에서 태어나 안양LG의 경기를 보고 FC서울을 꿈꿨던 주세종이라는 인물의 스토리는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안양과 아산의 경기는 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주세종은 한 번 더 아산 유니폼을 입고 '고향' 안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하필 주세종은 전역 전에 안양 원정을 한 번 더 소화해야 한다. 7월 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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