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5월부터 8월까지’ 지붕 없는 K리그는 속수무책

비 오는 성남종합운동장의 모습. 고나중은 우산을 쓴 채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하. 지금까지는 잘 버텨줬는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성남FC와 강원FC의 경기를 앞두고 한 성남 관계자가 탄식을 내뱉었다. 올 시즌 성남은 제법 많은 관중을 동원하며 흥행을 이끌고 있었다. 성남은 과거 ‘관중 없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올 시즌 홈 개막전에서 무려 11,238명의 관중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이후에도 7~8천 명이 꾸준히 경기장을 찾았다. 보수 공사 문제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성남종합운동장으로 홈 경기장을 임시로 변경한 상황에서 흥행을 꾸준히 이뤄가고 있었다.

축구장의 가장 기초적인 시설, 지붕
하지만 강원전에 경기장을 찾은 이는 2,526명에 불과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흥행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날씨 때문이었다. 성남은 이날 오전부터 비가 내렸고 경기 내내 굵은 빗줄기가 이어졌다. 야외 스포츠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중이 평상시에 비해 1/3도 차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성남종합운동장에는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홈 경기 때 비가 오지 않아 관계자의 말처럼 ‘잘 버텼던’ 성남으로서는 이 비가 야속할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 안양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하나원큐 K리그2 2019 FC안양과 아산무궁화와의 경기가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치러졌다. 바로 전 홈 경기에서 안양은 무려 11,098명의 관중을 불러 모으며 실관중 집계 이후 K리그2 최다 관중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아산전에서 경기장을 찾은 이는 835명에 불과했다. 이 경기장 역시 지붕이 없다. 보다 더 편리한 관람을 위해 최근 파격적으로 가변석을 설치했지만 이 역시 지붕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성남과 안양을 찾은 이들은 지붕이 있는 좁디 좁은 본부석으로 몰려들었다.

그나마 경기장을 조금이라도 늦게 온 이들은 비가 들이치는 본부석 부근에도 앉을 수가 없었다. 온전히 비가 쏟아지는 관중에 한 가운데에서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채로 경기를 봐야 했다. 이마저도 준비되지 않은 이들은 비를 맞으며 90분 내내 앉아 있어야 했다. 비단 성남과 안양뿐 아니다. K리그 경기장 중에는 지붕이 아예 없거나 본부석 일부에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이 많다. 광양전용구장을 비롯해 수원종합운동장, 창원축구센터,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아산이순신종합운동장, 천안종합운동장 등이 그렇다. 이 경기장은 장마철 내내 최악의 관중 동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5월부터 8월까지’ 속수무책인 K리그
관중 동원을 위해 마케팅을 열심히 하고 경기력을 끌어 올려도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올 시즌 K리그는 지난 시즌에 비해 눈에 띄게 관중이 늘고 있다. 성남도 성남종합운동장, 흔히 말하는 모란에서 경기를 하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성남은 내달 보수 공사가 완료되는 탄천종합운동장으로 돌아간다. 성남 관계자는 “그쪽(탄천종합운동장) 보수 공사가 늦어지면 한두 경기 더 여기(성남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를 수는 있지만 6월 안에는 홈 경기장을 옮길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그전까지 지붕 없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야하는 성남은 홈 경기 날 비가 오지 않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껏 K리그가 관람 편의를 너무 챙기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성남이나 안양 등 특정 구단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K리그 전체에 날씨 변수를 흥행에 고려하지 못했고 이 날씨에 대응하기 위한 배려도 없었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다. 관중을 불러 모으기 위해 경기력이 어쩌고, 선수들의 마인드가 어쩌고, 감독의 축구 철학이 어쩌고라는 지적은 많았어도 정작 기본적인 관람 편의에 대해서는 지적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 K리그 경기장에 가장 필요한 건 지붕이다. 체계적인 마케팅이나 기술을 동반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도 좋지만 부끄럽게도 K리그에 필요한 건 아주 원초적이게도 지붕이다. 이런저런 마케팅으로 관중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붕만 있어도 장마철과 혹서기 관중이 수천 명은 늘어날 것이다.

K리그는 통상 3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다. 늘 3월에 개막하면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다가 프로야구가 개막하면 그 기세가 꺾이는 게 추세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프로야구 개막 이후에도 K리그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잠깐 흥행하고 말던 분위기가 아니라 뭔가 좀 더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변수는 날씨다. 이제 곧 장마철이 다가오고 폭염이 시작되면 이 변수는 제압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경기장에 지붕이 없다는 건 대단히 큰 약점이다. 집에 고급 가구를 들여놨는데 바로 그 위로 비가 줄줄 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K리그가 출범한지 40여년이 돼 가지만 경기장 지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분위기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같은 날 안양도 비가 오는 가운데 저조한 관중수에 그치고 말았다. ⓒ스포츠니어스

K리그 규정에도 언급 없는 경기장 시설
K리그 대회요강을 보면 경기장 시설에 관한 깐깐한 규정이 있다. ‘그라운드는 천연잔디구장으로 길이 105m, 너비 68m를 권고한다’는 내용부터 ‘공식경기의 잔디 길이는 2~2.5cm로 유지되어야 하며, 전체에 걸쳐 동일한 길이어야 한다’, ‘그라운드 외측 주변에는 원칙적으로 축구전용경기장의 경우는 5m이상, 육상경기겸용경기장의 경우 1.5m 이상의 잔디 부분이 확보되어야 한다’, ‘골포스트 및 바는 흰색의 둥근 모양(직경12cm)의 철제 관으로 제작되고 원칙적으로 고정식이어야 한다. 또한 볼의 반발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철제 보강재 사용을 금한다’는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경기장 관중석은 좌석수 10,000석 이상을 충족하여야 한다. 이에 미달할 경우 연맹의 사전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부대시설에 대해서도 세세히 명시돼 있다. 관중을 위한 응급실, 식음료 및 축구 관련 상품 판매소, 전송용기자재 등 설치 공간, 냉·난방 및 냉·온수가 가능한 도핑검사실 등이 꼼꼼하게 기재돼 있다. ‘경기장에는 그라운드 평균 1,200lux 이상 조도를 가진 조명 장치를 설치하여 조명의 밝음을 균일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또한 정전에 대비하여 1,000lux 이상의 조도를 갖춘 비상조명 장치를 구비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명시돼 있다. K리그 경기가 열리기 위해서는 대단히 엄격한 규정이 적용된다.

하지만 날씨 영향을 받는 관중석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규정이 세밀하지 못하다. 제16조 (악천후의 경우 대비조치)에 의거해 ‘홈 클럽은 강설 또는 강우 등 악천후의 경우에도 홈경기가 개최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천연잔디를 의무화하고 경기장 규격 및 잔디 길이까지도 규정에 명시했지만 관람 편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아무리 못해도 경기장 수용 인원의 일정 부분 이상을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도록 임시 천막으로라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마철이 시작되는 5월부터 폭염이 잦아드는 8월말까지 우리는 리그의 절반 가까운 기간 불편함을 방치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건 지붕은 있어야 한다
성남은 곧 지붕이 있던 원래 경기장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6월까지만 잘 버티면 된다. 서울이랜드도 지붕 없는 천안에서 올 시즌만 어떻게 버티면 지붕 있는 안방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시적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관람 편의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 곳에서 경기가 이뤄진다면 한 번 찾아온 관중을 놓칠 수밖에 없다. 임시 천막이라도 제공해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규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시적으로 지붕 없는 경기장을 쓰는 성남이나 서울이랜드는 물론이고 시즌 내내 지붕 없이 경기를 치르는 다른 구장은 더더욱 그렇다. ‘지붕 규정’을 신설해야 차후 K리그 경기장 시설도 점차 개선될 수 있다.

부천과 광주 등도 아담한 축구 전용구장을 신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팬들은 이 경기장이 완공되면 곧 DGB대구은행파크와 같은 명품 경기장이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부천과 광주에 완공될 경기장은 이 정도 규모가 아니다. 천연 잔디 그라운드에 가변석을 덧댄 형태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물론 이들의 계획에 지붕은 아직 없다. 가뜩이나 K리그가 장마철과 폭염을 겪으며 관중수가 떨어지고 경기장을 찾은 이들도 대단히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데 규정상 이를 보완할 방안이 없다. 보여주기식이라도 좋으니 임시 천막 설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K리그 홈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지붕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 신설도 논의해야 한다.

성남-강원 경기 취재를 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본부석을 제외하고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한쪽에 설치된 전광판 아래 뿐이었다. 이곳에는 관중이 다닥다닥 붙어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나머지 관중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거나, 아니면 비를 온몸으로 맞은 채 앉아 있었다. 우산을 쓰고도 몸의 절반이 젖은 한 커플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붕도 없는 줄 알았으면 경기장에 안 왔죠.” 이날 경기장을 찾은 박성연(25세)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경기 끝나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은 취소했어요. 다 젖어서 경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려고요.” 콘텐츠 자체가 안 좋으면 아쉬운 마음도 없지만 제법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K리그에서 관람 편의를 위한 기본적인 시설이 부족하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지붕이 있는 성남종합운동장 본부석에 모여든 관중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비 오는 축구장, 부담 없이 올 수 있길
이런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은 이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K리그가 좀 더 팬들을 위해 신경 써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돈 많은 나라에서는 경기장에 히터와 에어컨도 틀어준다는데 우리는 지붕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올 시즌 흥행 몰이를 한 K리그는 이제 장마철과 폭염을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강력한 상대에 맞서 싸울 아이템인 ‘지붕’이 없는 곳이 여전히 많다. 어렵게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온전히 비바람과 햇볕에 노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줬다”던 성남 관계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늘이 돕겠죠” 뿐이었다. 타이어도 바꾸고 엔질 오일도 교체해서 차량 성능은 좋아졌는데 선루프 사이로 물이 줄줄 샌다. 비오는 날 젖은 관중석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우산을 쓰고 오징어를 뜯는 건 동대문운동장 시절의 추억이면 족하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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