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선원 씨 제공

[스포츠니어스|임형철 기자] "야 경남 느무 그칠다"며 꾸짖은 한 축구 팬은 누구일까?

4일 오후 본 기자가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기도 한 하나원큐 K리그1 2019 10라운드 제주유나이티드와 경남FC의 경기에서는 역대급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과몰입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축구팬은 심판이 경남 선수의 핸드볼 의심 장면을 반칙으로 불지 않자 "야이 XX놈아. 심판 좀 똑바로 봐라 XX"이라며 달아오른 감정을 표출했다. 경남 선수가 거칠게 파울을 범할 때는 "야 경남 너무 거칠다"며 크게 꾸짖기도 했다. 이 축구 팬의 외침은 SPOTV PLUS 중계 방송에도 선명하게 담겼다. 당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SPOTV 부조에서 중계하고 있던 본 기자는 결국 방송 중 웃음을 못 참고 사고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축구팬은 제주-경남 경기가 끝난 직후 바로 화제가 됐다. 주요 축구 커뮤니티 및 제주유나이티드 SNS를 중심으로 이 축구팬의 외침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제주 팬들은 "이 아저씨 안다"며 댓글을 통해 단서를 남기기 시작했다. 제주유나이티드도 SNS로 이 팬을 '제주 삼춘'이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해당 축구팬의 정체가 궁금했던 본 기자는 댓글에서 '제주 경기장에 늘 와 있는 70대 아저씨', ''잡아라 아저씨'라 불리는 제주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남자', '반대쪽에 앉아있어도 늘 목소리가 들리는 엄청난 목청의 소유자'라는 단서를 얻었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주인공을 찾듯 그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김서방, 아니 제주에서 '제주 삼춘' 찾기에 성공했다.

이 축구팬의 정체는 올해 나이 76세인 송선원 씨다. 일본 나라현에서 태어나 해방되기 전 제주도에 온 그는 세 살 때부터 제주도에서 생활했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제주도의 근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에 있는 동안 나에게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2006년 제주유나이티드가 온 게 아닐까 싶다"며 "그때부터 13년 동안 꾸준히 경기를 보러 다니고 있다. 홈이건 원정이건 가리지 않는다. 성적이 부진해도 우리팀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직관'을 다니다 보면 어느 날은 경기를 앞두고 굉장히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고사리를 따고 사우나 한 번 마친 뒤 침대에 누워있다가 경기장으로 가면 몸이 개운해진다"고 자기 관리 꿀팁(?)을 소개하기도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4일 열린 제주-경남전은 송선원 씨에게도 의미가 깊은 경기였다. 13년 제주팬 인생 중 처음으로 송선원 씨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송 씨는 "나는 경기장에서 욕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근데 누가 봐도 핸드볼 반칙인데 주심이 그걸 안 불어줘 어이가 없어서 그만 입에서 툭 나와버렸다"며 "평소에는 욕을 잘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야 경남 너무 거칠다'고 소리친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히 그날 경남이 느무 그칠지 않았나. 알렉스를 포함해 우리 제주 선수들이 많이 다치기에 답답해서 한 번 꾸짖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반박은 아니지만 이날 더 많은 반칙을 범했던 팀은 제주로 경남보다 1회 더 많은 14개의 반칙을 범했다.

송선원 씨는 제주 팬들 사이에서 이미 '잡아라 아저씨'로 유명한 인물이다. 직접 이 배경에 관해 묻자 "경기장에서 욕을 하기보다는 '잡아라'라고 소리치는 편인데 울산 원정을 예로 들면 '주니오 잡아라', '김인성 잡아라'라고 자주 외친다"고 답했다. 그는 이 '잡아라' 구호를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송 씨는 "상대 팀 선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잡아라'라고 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경기 전에 상대 팀 선수가 모두 파악될 때까지 준비해간다. 어느 날은 상대 팀 직원이 놀라서 '어떻게 우리 팀 선수를 다 아느냐'며 물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혹은 부러워했던 엄청난 목청의 비결로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아 그런 거 같다.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송선원 씨의 제주 사랑은 단순히 팀 응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역대 제주 감독들에게 자신이 기른 고사리를 선물하면서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명절에도 송 씨는 조성환 감독 및 가족들에게 "고사리를 차례상에 올리고 모셔야 감독님 성적도 좋아진다"며 손수 삶은 고사리를 선물했다. "고사리는 제주도가 최고"라고 자부심을 보인 송 씨는 "조성환 감독이 정말 고마워하더라. 한 번은 김원일 선수 유니폼에 선수단 전원의 사인을 담아 선물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제주 감독을 후하게 대접하는 그의 정성은 조성환 감독에 앞서 박경훈 감독을 비롯한 이전 제주 감독들에게도 늘 있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송 씨는 곧이어 서운함을 내비쳤다. 최근 조성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며 자신에게 인사도 없이 팀을 나갔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나가 맥이 풀렸다. 인사도 없어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고 입을 연 그는 "박경훈 감독님도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임을 했는데 떠날 적에 내가 식당에서 회식을 열어드렸다. 조성환 감독님도 그렇게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송 씨는 "조성환 감독이 추후 K리그2 팀 감독이라도 맡으면 응원하러 가겠다"고 당부했다. 제주에 새로 부임한 최윤겸 감독에게는 고사리 선물 계획이 없냐고 묻자 "그 감독님은 내가 아직 잘 모른다. 성적이 좋으면 줄 수도 있겠지"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고사리 선물'은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송선원 씨는 최근 성적이 좋지 못한 제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송 씨는 "가족들이 스포츠를 좋아해 늘 같이 갔는데 요즘 성적이 안 좋다고 안 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설득이 어려워진다"며 "우리 팀이 10라운드 만에 첫 승을 했는데 앞선 부진은 다 잊고 새롭게 잘 출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첫 째로 다치지 않아야 한다. 제주 선수들이 더 힘을 내주길 바란다. 나도 열심히 제주를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버전으로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다. "제주 삼춘, 고사리도 좋지만 제주 축구 보며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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