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머스캣 감독은 정말 유쾌했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대구=곽힘찬 기자] 지난 시즌 초반 대구 스타디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구FC가 극심한 부진을 이어가며 강등권을 헤매고 있던 작년 이맘 때 대구 스타디움은 황량했다. 취재진도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팬들 역시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F조 5차전 대구FC와 멜버른 빅토리(호주)의 경기를 앞두고 7일 포레스트 아레나에서 진행된 사전 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장은 황량하면서도 적막감이 흘렀다. 취재진은 단 한 명이었다. 호주 기자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사전 기자회견은 취소될 뻔 했다. 하지만 다행히 한 명의 취재진이 있었기에 사전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연맹 관계자는 기자에게 반가움을 표하면서 "호주 기자들이 아예 오지 않았다. 멜버른 측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해주셨으면 한다"라는 부탁을 했다. 호주 취재진이 없기 때문에 이런 희귀한(?) 부탁도 받을 수 있었다.

ACL 경기를 앞두고 감독과 기자 한 명 단 둘이서 사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래서 기자회견 자체가 딱딱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기자회견 중간 여러 차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오후 4시 멜버른 빅토리의 케빈 머스캣 감독이 기자회견장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본격적인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그 순간 머스캣 감독은 주변을 둘러보며 “ACL 사전 기자회견에 기자가 한 명이 앉아있는 경우는 정말 흔치않다. 호주 A-리그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매우 흥미롭다”면서 기자를 향해 “당신과 나와 단 둘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멜버른 기자회견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머스캣 감독은 기자회견장을 나가다 갑자기 돌아서더니 기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호주 기자들이 할 일을 당신이 했다. 정말 좋은 질문이었다. 고맙다”라면서 악수를 청했다. 이어 멜버른 코치까지 데려오더니 “이 한국 기자와 1대 1 인터뷰를 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머스캣 감독은 “See you tomorrow(내일 보자)”라고 말하며 포레스트 아레나를 빠져나갔다.

멜버른 기자회견이 끝난 후 대구 관계자는 “경기 당일에도 호주 언론 기자들이 오지 않는다. 구단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겠다고 나선 멜버른 원정 서포터스들도 없다. 오더라도 개인적으로 경기장에 올 것 같다”고 귀띔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멜버른은 이미 F조에서 1무 3패를 기록하고 있어 16강 진출이 사실상 좌절됐다. 그래서 그들도 굳이 멀고 먼 대구까지 올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진행된 대구 기자회견은 평소처럼 진행됐다. 이미 적응이 됐던 탓일까. 오히려 안드레 감독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대구가 인기 팀이지만 불과 약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드레 감독은 한 명의 취재진을 상대하는 것이 익숙했다. 중간 중간 미소를 흘리던 안드레 감독은 기자회견이 끝나자 리그 경기 때와 같이 관계자들과 취재진에 인사를 한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올 시즌 대구는 K리그 흥행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홈 개막전 직후 무려 네 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이어나갔고 현재 홈에서 리그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달라진 대구의 모습에 많은 팬들이 너도나도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랬던 대구의 ACL 사전 기자회견에 단 한 명의 취재진이 왔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경기를 감독하는 AFC 관계자들 마저 한 명뿐인 취재진에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기도 했다.

대구의 사전 기자회견이 진행된 7일은 울산 현대와 시드니FC의 H조 조별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래서 취재진이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새롭게 지어진 축구전용구장 포레스트 아레나에서 대구 스타디움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