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포항=곽힘찬 기자]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의 맞대결을 지칭하는 ‘동해안 더비’는 양 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감독들은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단 하나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에 경험이 많은 선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4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19 10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의 161번째 ‘동해안 더비’에서 프로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0년생의 고졸 신인 선수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바로 포항의 이수빈이다. 이날 포항은 울산의 신진호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이진현과 김승대의 연속골에 힘입어 역전승을 거뒀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한 2000년생 이수빈

경기가 끝난 직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득점을 기록한 이진현과 김승대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수빈은 후방에서 신인 선수답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그야말로 ‘언성 히어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포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혜성처럼 등장한 이수빈의 공헌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수빈은 올 시즌을 앞두고 포항 U-18(포항제철고)에서 곧바로 프로로 직행했다. 이수빈은 포철고에서 뛸 때부터 포항의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유스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넓은데다가 탈압박 능력 또한 수준급이다. 자신의 프로 첫 데뷔전이었던 지난 경남FC전 당시에도 이수빈은 투입되자마자 정교한 패스를 전방에 공급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유스 선수라도 ‘동해안 더비’와 같은 팀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에 나오기 어렵다. 1군 경험이 부족하기에 감독 입장에서도 선발로 내보내기가 망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김기동 감독은 수원 삼성전에 이어 이수빈을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로 내보냈다. 그리고 이수빈은 김기동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과 같았던 동해안 더비, 유스와 달라”

이수빈의 인생 첫 K리그1 ‘동해안 더비’는 어땠을까. 경기를 마친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수빈은 “고등학교 때 주로 학부모님들이 와서 응원을 하고 그랬다. 그래서 그땐 그냥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완전 전쟁이더라.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자신의 첫 ‘동해안 더비’ 출전 소감을 밝혔다.

이날 양 팀 팬들은 서로를 향해 “승점 자판기”라고 외치며 서로를 도발했다. 그 도발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이어졌다. 이수빈 입장에서는 그러한 분위기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들하고 경기를 할 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울산이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놀랐다. ‘동해안 더비’라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폐가 되지 않고 승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수빈은 프로 무대가 아닌 포철고 시절에 ‘미니 동해안 더비’를 펼친 적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뛸 때 울산 현대고와 맞대결을 펼친 적 있다. 당시에도 그라운드 위에서 만큼은 절대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는데 프로 무대의 ‘동해안 더비’가 색달랐던 이유는 팬들의 응원전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포철고 시절의 이수빈 ⓒ 한국프로축구연맹

‘동해안 더비’는 베테랑 선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경기다. 김기동 감독이 “정말 중요한 경기라 준비를 많이 했다”고 계속 강조할 정도였으니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인 이수빈에겐 다른 세상일 수밖에 없었다. 전반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수빈은 약간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울산이 강팀이다 보니 내가 과연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긴장이 많이 됐다”는 이수빈이었다.

하지만 이수빈의 파트너인 정재용이 경기 내내 격려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줬고 서서히 긴장감이 풀어진 이수빈은 완벽하게 자신의 인생 첫 ‘동해안 더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프로 무대는 고등학교 때와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서서히 적응하다보니까 이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렵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축구이기에 재밌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00년생의 신인 선수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성장케 했을까. 선배들과 전임 최순호 전 감독과 현재 포항을 이끌고 있는 김기동 감독이었다. 김승대와 정재용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이수빈이 프로 무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정재용은 직접 나서서 자신의 파트너인 이수빈을 힘껏 도왔다.

“지금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최순호 전 감독과 김기동 감독의 공통점은 이수빈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순호 전 감독은 이수빈의 재목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1군에 불러 그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김기동 감독은 제련되지 않은 보석과 같은 이수빈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경기를 마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기동 감독은 이수빈의 활약을 두고 “갓 프로 데뷔한 선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활약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출전시킬 수 있게 해준 김기동 감독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는 이수빈은 “나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별말씀을 하시지 않지만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도록 열심히 하는 자세를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앞으로 훈련 때마다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하면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포철고 시절의 이수빈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수빈은 최근 지속적으로 1군 경기에 출전하며 프로는 정말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그 어떤 선수도 부담스러워한다는 ‘동해안 더비’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선발로 출전했다. 그는 “이 자리를 계속 지켜서 유지하고 싶은 것이 올해의 목표다”라면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테니까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수빈의 말엔 자신감이 넘쳤다. 불과 몇 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진을 거듭하던 포항은 최근 리그에서 2연승을 거두며 반등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이뤄낸 자신감의 회복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수빈은 벌써 팀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이수빈은 기지개를 켜듯 서서히 자신의 숨겨진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어쩌면 축구팬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붙박이로 포항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