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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부천=홍성빈 인턴기자] 지난 2016년 선수 발굴을 위해 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을 방문한 스카우터는 영등포공고에서 뛰던 한 수비수를 주목했다. 그 선수는 고등학생의 나이로 유럽에 진출해 프로 데뷔까지 했다. 유럽의 한 매체에서는 "잠브로타와 닮았다"라며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순탄한 경력을 쌓아갈 줄 알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과 함께 꺾이고 말았다.

그 선수는 부천FC1995에서 뛰고 있는 김재우다. 그를 직접 만나 좌절과 역경을 넘어 성공을 꿈꾸는 인터뷰를 기대했다. 많은 고생을 해서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밝고 흥이 넘쳤다. 그는 지난해 인기 인터넷 방송인 BJ감스트의 방송에 깜짝 출연(?)해 팬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김재우는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꿔가며 변신 중이다. <스포츠니어스>는 우여곡절이 많을 것 같던 그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전날 R리그 경기 후 회복훈련을 마친 김재우는 약속된 시간이 20분 가량 지나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각이다.

훈련 마치고 씻고 오는 길이다. 바로 왔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사우나를 간 바람에 늦었다. 미안하다.

훈련은 어땠나?

요즘 컨디션이 시즌 초반보다 많이 좋아져서 목표를 세우면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격수 훈련과 수비수 훈련을 모두 하고 있는데 지난 R리그에서 전반전에는 수비수, 후반전은 공격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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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격수까지 하게 됐나?

우연히 하게 된 거다. 동계훈련에서 (김)륜도 형이 군에 있다가 전역하기 직전 말년 휴가 때 팀에 합류했다. 전지훈련 도중에 륜도 형이 전역식을 치르러 서울에 올라갔고 공격수를 하던 (정)택훈이 형도 사정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그 자리에 선수가 없어서 '땜빵'으로 섰는데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감독님이 골을 넣고 연계 플레이하는 등 많은 걸 바라시지 않았다. 수비 가담을 열심히 하고 많이 뛰는 플레이를 높게 사신 것 같다. 이제는 공격수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남들 수비 훈련할 때 나는 공격수들과 슈팅 훈련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

다들 수비수를 하는 것보다 공격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

수비수였던 당신에게 그건 욕 아닌가?

그런가? 내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거기까지 생각은 안 해봤다. 그냥 칭찬 같아서 좋았다. 수비는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나는 피지컬만 좋아서 오히려 공격수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두 포지션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나?

공격은 능동, 수비는 수동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격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반면 수비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고 공격수를 따라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 거기서 수비는 한 번 더 머리를 써야 해서 힘들다.

여러 포지션에서 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오른쪽 측면 공격수, 고등학교 때부터 중앙수비수를 했고 유럽에서 풀백을 했다. 부천에 와서는 중앙공격수까지 하게 됐다. 많은 위치에 서보고 느낀 건 측면과 중앙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중앙에서 상대 골대를 봐야 마음이 편한데 측면에서 몸을 돌리고 골대를 봐야 하니까 정신없었다. 수비수를 할 때는 멀리 공격 진영에서 슛하는 걸 바라만 봤는데 이젠 내가 하고 있어서 적응이 안 됐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30분 먼저 나와서 훈련을 하라고 지시했다. 기본기 연습을 많이 했다. 리프팅, 드리블, 슛 등 기본적인 연습을 했다. 그 다음에는 크로스 올라온 것을 발에 맞추는 연습,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때리는 연습 등을 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태국 전지훈련에서부터 그렇게 했는데 너무 더웠다. 그래도 해야 했다. 그래도 '젊으니까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나는 시키면 한다.

이제 미드필더와 골키퍼만 보면 다 해보는 것 같다.

내가 발기술이 좋지 않아서 미드필더보다는 골키퍼가 더 낫겠다.

키가 크니까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것 같다. 비결이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 170cm, 중학교 3학년 때 183cm, 고등학교 3학년 때 188cm 그리고 유럽 갔을 때 2cm 더 커서 지금은 190cm다. 챙겨 먹은 건 따로 없다. 그냥 밥만 먹었다. 부모님이 큰 편이시다. 아빠가 180cm, 엄마가 170cm이시다. 부모님도 운동을 하셨는데 아빠가 육상을 하셨고 엄마가 배구를 하셨다. 형이 운동을 잘 안 하는데 184cm인 것을 보면 비결은 바로 유전이 확실하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으면 배구나 농구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다 축구를 시작했나?

초등학생 때 아빠와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초등학교 축구부가 운동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관심이 생겨서 부모님한테 "축구를 시켜달라"라고 했는데 "절대 안 된다"라시며 반대하셨다.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다. '공부를 못 한다', '무식하다'라는 인식이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 차면서 노는데 축구부 코치님이 명함을 주면서 부모님을 설득하라고 하셨다. 그때 부모님 번호까지 코치님한테 알려줬다. 간곡히 조른 끝에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활약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를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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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를 가게 된 과정이 어떻게 되나?

처음에는 오스트리아가 어떤 나란지 몰랐다. 호주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 우승을 하고 복귀하는 버스에서 감독님이 "너 오스트리아에서 입단 제의가 왔다.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호주 좋죠. 거기 시스템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한숨 쉬시면서 "너 공부 좀 해라. 오스트리아는 유럽이야"라고 하셨다. 그 후 바로 2주 뒤에 가게 됐다.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착각하다니. 당시는 공부하는 선수 육성 제도를 실시하던 시기 아닌가?

아마도 그 제도를 막 시작하던 때라 시행착오가 있던 것 같다. 그 착오가 바로 나다.

그런 것 같다. 그전에 유럽을 가본 적은 있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동계 전지훈련을 독일로 갔다. 선배였던 대전시티즌의 박인혁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면서 구단으로부터 학교에 3억 원의 훈련지원금이 나왔다. 그 덕에 독일을 다녀오고 나서 나도 인혁이 형처럼 나중에 후배들 해외 한번 보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도 유럽에서 받은 연봉을 5,000만 원 기부했다. 우리 학교가 그 돈으로 일본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당시 SV호른에서만 제의가 왔나?

벨기에와 헝가리에서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론 "관심만 가진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확실한 제의는 호른에서만 왔다. 테스트 없이 바로 입단하게 됐다.

혼다가 운영하는 팀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입단할 때 혼다와 같이 사진 찍고 대화도 나눴다. 혼다가 나에게 "팀에 오래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내가 혼다와 생김새가 닮았다는 말이 있었다. 혼다도 인정했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한 기분은 어땠나?

초등학교 때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엄청 힘들었다. 한 달만 있었는데도 집에 가고 싶었다. 음식도 입에 안 맞아서 외국에 나가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갈 때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유럽이라 그런지 막상 가보니 좋았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입에 들어오면 행복'이라는 말처럼 다 잘 먹었다.

호른은 어떤 곳인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5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살고 있는 인구가 5,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외국에서 축구 하러 온 사람이구나'라고 알 정도로 작다. 항상 출근할 때 같은 시간에 같은 할아버지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커피를 마시는 동네다. 구단에서 집을 구해줘 혼자 지냈다. 의사소통을 위해 독일어도 배웠다.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외로웠다. 한국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주말에는 차를 타고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다. 거기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황)희찬이 형도 만났다.

게스트하우스라 하면 파티가 문화가 있는데 여행객과 눈 맞는 경우는 없었나?

가보니까 그냥 맥주 마시고 놀더라. 눈 맞아봤자 한국으로 떠날 사람들이다. 마음 비우고 갔다. 축구선수라는 신분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걸 안 좋아한다. 사람들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그냥 ‘특수 개인직’이라고 말했다. 날마다 다르긴 했는데 흥 넘치는 사람들이 모이면 같이 놀곤 했다.

혼자 해외 생활하면서 배움이 있었다면?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나만의 여가생활을 즐길 줄 알게 됐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주로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러 집 밖으로 나갔다. 그곳 풍경이 너무 좋아서 사진 찍으러 다녔는데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비엔나에 놀러 가기도 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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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축구 얘기 좀 해보자. 오스트리아에서 어떻게 측면 수비수를 했나?

감독이 그때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중앙수비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측면에서 적응을 해보자"라고 했다. 그러다가 스피드와 기동력이 좋으니 계속 시킨 듯하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에서 '잠브로타와 닮았다'라고 보도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팀에서 분석했을 때 내가 선 위치에서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 아마 그 부분을 높게 평가 받은 것 같다. 그런데 잠브로타가 누군가?

잠브로타는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선수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커서 그런지 측면 수비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서는 큰 게 아니었다. 그때 중앙수비수가 206cm였고 대부분의 선수가 190cm가 넘었다. 코너킥을 다섯 번 차면 한 개는 꼭 들어갔다.

하지만 유럽 생활 1년 반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부천은 어떻게 오게 됐나?

당시 호른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뛰면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곤 했었는데 계속 다른 선수를 기용했다. 궁합이 안 맞았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에이전트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고 부천을 적극 추천했다. K리그2에서 승격할 수 있는 팀이라고 했다. 서포터스도 열정이 넘친다고 소개받았다. 이적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가서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컸다

부천에서 나름 가까운 영등포공고를 나와서 익숙한 도시일 것 같다.

이곳을 오게 되면서 부천이란 도시를 처음 들어봤다. 안산 출신인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 웬만하면 집 멀리 나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니 어땠나?

한국에 와서도 혼자 지냈다. 집터를 잘못 구한 게 화근이었다. 다들 오정동에 사는데 나 혼자 소사에 살았다. 집을 아버지가 구해주셨는데 아무래도 축구에만 집중하게 하려고 하신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작년에는 거의 혼자 지냈다. '혼밥'이 일상이었다. 고깃집도 혼자 가곤 했다. 고깃집 혼자 들어갈 때는 사장님이 난감해하시다가 "3인분 먹을 건데요"라고 하면 흔쾌히 허락한다. 어려움은 없었다.

지난 2017년 U-20 대표팀에도 뽑혔다. 그런데 부상으로 월드컵을 뛰지 못했는데.

당시 5월 리그 막바지 경기 도중에 다쳤다. 전력 질주하는데 근육이 찌릿해서 손들고 나왔다. 무릎과 사타구니 쪽을 다쳤는데 그 부상으로 3개월 정도 쉬었다. 월드컵을 바로 앞두고 있던 시기라 처음엔 날벼락 같았다. 하지만 '쉬라는 뜻인가 보다'라는 마음으로 금방 포기했다. 솔직히 한편으론 좋았다. 고등학교에서 바로 유럽으로 가느라 쉬었던 적이 없었다. 바로 시즌을 준비하고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시기였다. 덕분에 마음 놓고 쉬었다. 같이 뛰던 친구 하승운, 임민혁, 백승호 등을 TV로 지켜보면서 부럽긴 했는데 마음 편히 응원했다. 크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성격이 참 긍정적인 것 같다. 쉬면서 뭐하고 지냈나?

시무룩하게 있으면 나한테 좋을 건 없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쉬면서 주로 드라이브를 했다. 체코나 헝가리 같은 곳에 사진 찍으러 다녔다. 린츠와 하이델베르크가 참 좋았다. 스위스도 좋고, 이탈리아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 많다.

유럽에서 프로 생활과 한국에서의 프로 생활 문화 차이는 없었나?

유럽에 있을 때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도 친구처럼 지냈는데 한국에서는 선배에 깍듯한 문화가 있어서 적응이 조금 힘들었다. 아마 눈치 없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팀에 합류하고 처음으로 동계훈련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모이는 날이었다. 약속 장소를 몰라서 단톡방에 '어디로 가면 돼요?'라고 물었는데 다들 '얘 뭐지?' 싶었다고 하더라. 첫날 인사도 안 한 상태에서 신인이 대뜸 이런 메시지를 보내니까 건방져 보였을 거다.

부천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어땠나?

사실 얼굴 보고 신인이라고 다들 믿지 않았다. 당시 내가 나이가 많은 줄 알고 (추)민열이는 나한테 90도로 인사했다. (이)혁주 형도 인사했다. 나도 깍듯이 인사하니까 애들이 '저 형은 고참인데도 깍듯하네. 저래서 살아남는구나'라고 생각했다더라. 다들 나이를 믿지 않는다. 1998년생이라는데 주민등록증을 보여줘도 안 믿는다. 그리고 훈련을 최대한 즐겁게 하려고 한다. 소리도 지르고 웨이트 트레이닝할 때 춤도 췄다. 다 착하고 좋은 형들이라 좋게들 받아준다. 그중에 주장을 맡았던 (문)기한이 형이 제일 잘 챙겨줬다. 내가 작년에 기회를 못 잡고 힘들어했을 때 "준비하고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라며 위로도 많이 해줬다.

제일 친한 선배가 문기한인가?

그렇다. 쉴 때면 기한이 형과 같이 '크아(크레이지 아케이드)'도 하고 '카트라이더'도 하고 재밌게 지낸다. 요즘 크아가 대세다. 기한이 형과 매일 한다. 기한이 형이 "재우야 뭐하냐"라고 연락이 먼저 온다. 그러고 "오늘은 이기자. 형이 새로운 스킬을 연마했어"라며 같이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축구 게임은 안 해봤나?

해봤는데 못한다. 축구 게임에는 재능이 없다. 예전에는 '피파 온라인'에 내 캐릭터가 없었는데 부천에 왔을 때 생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능력치가 낮았다. 스피드를 좀 올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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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감스트가 방송에서 김재우 캐릭터를 영입해 화제가 됐다.

그 방송 이후 내 SNS 계정이 난리가 났다. 그날 친구신청이 300개가 넘게 왔다. 지금도 온다. 그 계기로 구단에서 영상도 찍어 보냈다. 지켜본 사람들이 재밌다고 좋아했다. 덕분에 그 이후 길에서 사람들이 알아본다. 주로 어린 학생들이 알아보는데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도 받는다. 나를 엄청 만나고 싶어하는 팬도 생겼다. 한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나를 보더니 "김재우 선수 아니세요? 어떡해"라고 놀라더니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내 옆에 김재우 있다"라고 자랑을 하더라.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해줬다.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지만 그런 팬들을 보면 언제나 감사하다. 하지만 가끔은 꾸미지 않았을 때 알아보면 부담되곤 한다.

시골이었던 호른에 있다가 사람 많은 부천의 차이점은?

사람 많고 차 막히는 게 비교적 불편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외로움은 해결됐다. 역시 한국에서는 외로울 틈이 없다. 가족도 함께 지내고 친구도 있고 무엇보다 말도 통하니까. 최근에 집도 오정동으로 이사했다. (이)광재와 같이 산다. 가족 외에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건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다.

이광재 뒷담화 좀 해보자.

화장실 나올 때마다 불을 안 끈다. 아직도 고쳐지질 않는다. 꼭 내가 불을 끄는지 본다.

알뜰한 스타일이다.

돈에 있어서 가족도 없다. 가족과는 돈거래도 확실히 해야 한다. 형한테 10만 원을 빌려줬었는데 이자까지 합해 14만 원으로 돌려받았다. 하지만 꼭 짠돌이는 아니다. 내가 형 일본여행 갈 때 비행기 표도 사줬다. 서로 주고받은 게 많다. 형이 나에게 시계와 아이패드도 선물해줬다.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그리고 집에 가전제품도 내 돈으로 샀다. 나름 한 게 많다.

알겠다. 지난 시즌에 한 경기 출전에 그쳤다. 적응이 문제였을까?

적응도 문제였지만 내가 부족한 게 컸다. 대신 형들 하는 걸 보면서 배울 수 있던 시즌이었다. 수비하면서 자리 잡는 걸 배웠다.

그런데 올 시즌 공격을 한다.

그러게 말이다. 다시 배워야 한다.

포지션을 바꾸는 심정은 어땠나?

설렜다. 축구를 처음 하는 심정이었다. 올해는 (김)찬희 형을 보고 많이 배우고 있다.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는 포지션을 바꾸는 게 좋지만은 않았는데 지금 해보니까 공격도 재밌더라. 오스트리아에서 했던 풀백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내 취향은 아니다.

K리그와 오스트리아 리그를 모두 경험해 봤는데 어떻게 다른가?

경기 템포는 오스트리아 리그가 빠르다. 내가 프로 생활을 유럽에서, 그것도 수비를 하며 빌드업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빨랐다. 잔디도 너무 좋아서 패스도 강했다. 반면 K리그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좋다. K리그에서 잘하려면 개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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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안산과 경기에서 K리그2 데뷔골을 기록했다. 공격수로서의 득점이라 기분이 남달랐겠다.

슛을 하는 순간 '이건 무조건 골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넣고 나서 '얼마 만에 넣은 골인가' 그 생각이 제일 컸다. 내가 넣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30분 먼저 나와서 훈련했던 게 드디어 빛을 발한 것 같다. 마침 그 경기에 부모님이 모두 오셨다. 평소에 두 분 모두 오시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그 경기는 같이 보러오셨다. 내가 골 넣는 모습을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보셨다. 아버지가 "잘 맞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거야"라고 하시며 "잘못 맞았네"라고 하셨다. 장난기가 많으시다.

공격수와 수비수 둘 중 하나만 골라보자. 어느 포지션이 좋은가?

둘 다 좋다. 하지만 월드클래스 급 재능을 준다면 공격수를 선택하겠다.

목표가 어떻게 되나?

작년에 포프가 넣은 골 만큼은 넣고 싶다. 포프가 작년에 부천에서 열 골을 넣었는데 그만큼 넣고 싶다. 그 정도면 K리그2 득점 순위권에 들겠지? 그리고 항상 하고 다니는 말인데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다.

은퇴할 때쯤 어떤 선수로 기억 남고 싶나?

"김재우가 뛰었던 경기는 재밌다"라는 인식을 남기고 싶다. 항상 나는 재밌는 걸 추구한다. 경기나 훈련 모두 재밌게 하고 싶다.

김재우는 어린 나이에 기대를 받고 도전한 유럽에서 고초와 좌절을 겪어 상처가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너무 밝았다.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절을 즐겁게 회상했다. 하지만 그런 김재우도 목표와 꿈은 뚜렷했다. 계속해서 꿈을 키우고 있는 김재우는 포지션을 바꾸며 또 다른 유쾌한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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