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랜드 권기표 “그라운드 안에서 ‘관종’ 되고 싶어”


[스포츠니어스|가평=조성룡 기자] R리그 득점왕은 낯선 곳에서 성장을 위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하나의 임대 이적 소식이 날아들었다. 포항스틸러스에서 뛰고 있던 권기표가 서울이랜드로 전격 임대를 결정한 것이다. 권기표는 포항의 기대주 중 하나였다. 지난 2018 시즌 R리그에서 19경기에 출전해 14골 5도움으로 득점왕을 차지한 그는 미래 포항의 공격진을 이끌 자원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권기표의 서울이랜드 임대는 향후 포항의 미래와 서울이랜드의 현실을 감안한 윈-윈 전략이라고 봤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권기표는 서울이랜드에서 공격수가 아닌 측면 수비수로 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리오넬 메시가 윙백으로 뛰는 것 만큼 어색한 일일 수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켄싱턴리조트로 향했다. 이곳은 서울이랜드의 클럽하우스가 있다. 권기표를 만나 그에 대해 수많은 것들을 물어봤다.

반갑다.
왜 김현회가 아니라 당신이 왔는가.

사장은 칙칙한 인터뷰 싫다며 서울이랜드 홍보대사 네온펀치 만나러 갔다.
내가 예전에 ‘용감한 기자들’ 엄청 팬이었다. 거기서 김현회 기자를 처음으로 봤다. 거기서 유일하게 축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전지훈련 때 부산에 온 것을 보고 엄청 반가웠다. 그가 왔다면 방송에서 얘기한 A씨 B씨 누군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서울이랜드 임대 생활은 어떤가?
지낼 만 하다. 서울이랜드 클럽하우스가 상당히 외진 곳에 있다. 청평이다. 그런데 나는 좋다. 밖에 나가서 살면서 출퇴근 할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숙소 생활을 택했다. 아직 나는 어리고 더 노력해야 하니까 몸 관리를 하고 싶어서 그랬다. 나는 압박감을 좀 받으면서 하는 것이 더 좋더라.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축구도 잘하는 것 같아서 청평에서 지내고 있다.

한 축구 게임에서 당신이 엄청난 유망주라더라.
나도 들었다. FMM(풋볼 매니저 모바일)이었나? 거기서 내가 유망주라더라. 내가 직접 게임을 한 것은 아니고 친형이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을 모아서 내게 보내줬다. 워낙 친형이 FM 같은 게임 좋아하고 내 기사 보면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 있으면 모아서 알려준다. 댓글을 보니 ‘권기표 유벤투스 갔다’라고 하더라. 하하. 그렇게라도 나를 아시게 되면 좋은 것 같다.

딱히 유망주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더욱 재밌는 것 같다. 나도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되면 좋지 않겠는가? 사실 FM을 안해서 잘 모르지만 능력치는 괜찮다고 하더라. 세부 능력치 중에서 한국 선수는 15 넘기 쉽지 않다는데 15가 두 개 있다더라. FM은 주로 친형이 한다. 솔직히 궁금하다. 내가 그렇게 이름 날린 선수는 아닌데 어떻게 이런 능력치가 나왔지?

ⓒ 서울이랜드 제공

나는 어릴 때 게임을 좀 했다. 요즘은 안한다. 내가 ‘피파온라인3’는 진짜 잘했는데 ‘피파온라인4’로 업데이트 되면서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 ‘배틀 그라운드’가 나와서 친구들과 했다. ‘피온’ 할 때는 친구들에게 내 카드좀 키우고 많이 쓰라고 강요했다. 내 기억으로는 권기표 금카는 없었는데… 5카(다섯 번 강화한 카드)는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가성비 좋은 카드 모아서 라인업 꾸렸다. 하하.

실제로 유벤투스에 가면 FM 에디터의 안목은 ‘대박’인 것 아닌가?
그렇겠지. 그런데 유벤투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하. 나는 예전에 사리 감독이 나폴리에 있을 때 했던 축구가 참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폴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는 ‘스틸타카’로 대표되는 포항 축구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선보이는 패스 축구다. 뛰어다니는 축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패스 축구와 반대로 사리의 나폴리 축구는 공격적이면서 엄청 많이 뛰어다니지 않는가. 그렇게 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더라.

유벤투스 거르고 나폴리라니.
또 또 이렇게 몰아간다.

FM 유망주의 축구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내가 대구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클럽 축구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이 하고 싶어졌다. 부모님이 반대하던 중에 반야월초등학교 관계자가 내게 테스트를 보러 오라고 하더라. 가서 신나게 축구하니 반야월초 유니폼을 입게 되더라. 그렇게 시작해서 포항 유스를 거쳐 지금까지 왔다.

사실 아버지가 어릴 때 축구선수의 꿈을 가지고 계셨다. 초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는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하기가 쉽지 않아 할아버지가 반대하셨다. 어찌보면 나를 통해 대신 꿈을 이루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축구 시작할 때 아버지는 긍정적으로 얘기하셨다. 물론 어머니도 정말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전국을 다 따라다니면서 내가 뛰는 대회에 구경 오셨다.

나이를 먹으니 그 때 부모님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포항 유스 생활을 할 때 부모님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봤다. 항상 부모님이 차를 갖고 나를 데리러 오셨다. 전남 해남이나 강원도 태백에서 열리는 대회나 전지훈련도 다 손수 운전해서 오셨다. 내가 운전을 해보니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라. 아버지는 5년 전부터 제주도 서귀포 쪽에서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하시는데 틈틈이 올라오셔서 내 경기를 보신다.

꼭 효도해라. 그런 김에 내가 도와주겠다.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 게스트하우스 홍보 한 번 해라.
그런데 내가 그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잘 모른다. 아버지께서 천천히 만들면서 준비하신 것만 알고 있다. 나중에 알려주겠다.

불효자네.

포항 유스 시절은 어땠는가?
그곳에 있으면서 항상 포항의 1군을 꿈꿨다. 내가 어릴 때 최효진, 신진호, 황진성, 노병준, 조찬호 이런 선배들이 1군에 뛰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어린 선수들에게는 빨리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내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더욱 실력을 쌓기 위해 건국대에 진학한 다음 1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나름 스틸야드에서 볼 보이도 많이 했고 들것도 많이 했다. 예전에 노병준 형(?)에게 한 번 혼난 기억이 있다. 내가 들것 조였는데 하필 포항이 지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어느 한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진 거다. 들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심판의 신호가 있어야 투입된다. 우리는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노병준 형이 빨리 들어오라고 혼냈다. 하하.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건국대 이야기는 당시 감독에 대한 언급을 안할 수 없다.
이상윤 감독님 말인가? 하하. 아니지. 지금은 해설위원님이지. 정말 활발한 감독님이셨다. 선수들보다 더 파이팅을 외치고 분위기를 밝게 이끄셨던 감독님이다. 선수들끼리 감독님 유행어도 있었다. 역습 상황 때 “고! 고! 고! 고!”와 잘한 선수에게 “엑설런트!”를 자주 외치셔서 선수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농담 많이 하시고 쾌활하게 선수들과 어울리셨던 분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혼내야 할 때 혼내시지 않는 분은 아니다. 또 질책해야 할 때는 카리스마 있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마 그 모습은 나를 비롯한 선수들 밖에 못봤을 것이다. 하하. 최근에 이상윤 감독님이 아프리카 BJ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인터넷 방송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라 아직까지 방송하시는 모습은 못봤다. 그런데 잘 할 것 같다. 일단 이야기하실 때 절로 웃음이 나지 않는가.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시기를 뒤에서 응원하고 싶다.

건국대에서는 좀 더 나 자신을 다잡았다. 사실 정말 실력 좋은 선수가 대학에 가서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갑작스럽게 일정 부분 자유를 주니까 술도 하고 클럽도 다니면서 제 기량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나는 스스로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내가 술도 못한다. 단체 회식 때 맥주 주는 것만 한두 잔 겨우 마시는 수준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친구들도 술자리에 나를 부르지 않더라. 괜히 불렀다가 분위기 깬다고. 하하.

그러다가 2학년 여름에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끝나고 포항 콜업 연락을 받았다. 무엇보다 안도감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대학에는 콜업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선수들이 많다. 걱정 속에서 조급하게 훈련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좀 그랬다. 그런데 콜업 연락이 오니 한결 마음 편하게 축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권기표는 1군의 꿈을 이뤘다.
정말 포항에서 예전부터 봤던 형들과 함께 공을 찬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웠다. ‘이 형들에게 뒤쳐지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훈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먼저 프로에 있던 친구들도 많은 도움을 줬다. 우찬양, 이진형, 그리고 지금은 성남FC에 있는 김동현이 그렇다. 특히 우찬양은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프로에 가 있었다. 그래서 먼저 경험했던 것을 많이 알려줬다.

우찬양은 내게 힘들었던 것들이나 프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알려줬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덕분에 나도 스스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프로에 임하게 됐다. 정말 바닥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래서 R리그에서도 골을 많이 넣으면서 득점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R리그에서 득점왕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당시 시즌 초반에 우리 팀에 이래준이라는 공격수가 골을 엄청 많이 넣었다. 그래서 내가 “래준아, 네가 득점왕 하고 내가 도움왕이나 MVP 탈게”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 내가 꾸준히 한 골, 두 골 넣는 동안 래준이는 좀 주춤하더라. 어느 순간 득점 순위가 바뀌었고. 그 이후부터는 래준이가 나를 많이 도와줬다. 페널티킥 기회가 오면 내게 양보하고 그랬다.

하지만 R리그를 속칭 ‘씹어먹는’ 동안 1군 출전 기회는 많이 받지 못했다.
두 경기 나왔다. 사실 내가 보여준 것이 없어서 최순호 감독님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프로 데뷔전부터 딱히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경기 전날 미팅을 하면서 내가 선발인 것을 알았을 때 묘하게 떨렸다. 긴장보다는 설렘이었다. ‘내 친구들도 1군 나가서 활약하는데 나도 못할 것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 몸도 풀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데뷔전은 경남FC와 맞붙었는데 그날 따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실점했다. 팀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기본적인 것들은 했는데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필 내가 출전한 두 경기가 모두 경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경남이 얼마나 뜨거웠는가. ‘킹종부’ 이야기 나오면서 정말 돌풍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선택은 서울이랜드 임대였다.
포항에서 1군 무대를 계속 뛸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사실 그렇지 않는가. 많은 감독님들이 경험 있는 선수를 선호한다. 그래서 나 또한 경험을 쌓고 싶어서 임대를 선택했다.

서울이랜드에서 임대 제의가 왔을 때 김현수 감독님이 날 윙백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 얘기 때문에 정말 조금 고민했다. 나는 포항에서 계속 공격수를 했고 R리그 득점왕도 했다. 게다가 나는 골 넣는 것과 골 넣고 골 뒷풀이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공격수로 계속 뛰고 싶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윙백도 뛸 수 있는 자원이 된다면 충분히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윙백으로 뛰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다른 팀에서도 임대 제의가 왔지만 최종적으로 서울이랜드를 선택했다. 서울이랜드와 김현수 감독님이 내게 더욱 믿음을 줬기 때문이었다.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권기표라는 선수에 대한 고민을 더욱 많이 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이랜드를 선택했다.

확실히 서울이랜드에서 출전은 많이 하고 있다.
정말 축구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기 출전이다. 선수는 뛰어야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실력 발휘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초반에는 조금 힘들었다. 지난 시즌 R리그에서 꾸준히 뛰었지만 R리그와 K리그2는 체력 흐름이나 템포가 다르다. 여전히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고민이 많다. 그나마 계속 뛰면서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서울이랜드에서의 첫 경기는 조금 수월했던 것 같다. 2년차에 접어들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데뷔 시즌에는 공을 잡으면 뒤에 아무도 없어도 누군가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비록 광주FC와의 경기는 패배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수월하게 경기한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R리그와 K리그는 관심의 정도가 다르지 않는가. 많은 팬들 앞에서 뛰니 이목이 집중되고 더 즐겁게 축구하는 것 같다.

작년에 서울이랜드가 관중 최하위였는데…
난 모른다. 서울이랜드가 관중 최하위였다고?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 올해 우리 경기 수천 명씩 오셔서 보신다. 서울이랜드 관중 많다.

청평 클럽하우스 생활은 어떤가.
전석훈과 서경주가 많이 도와주고 챙겨줬다. 특히 서경주와는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경주와 주로 함께 다닌다. 같이 생활하는 것이 재밌다. 가끔 햄버거도 먹으러 간다. 맘스터치에 자주 간다. 거기 화이트갈릭버거가 맛있다. 나중에 당신도 한 번 먹어봐라.

숙소는 3인 1실이다. 방 하나를 혼자 쓰고 거실을 둘이 쓴다. 나는 혼자서 방 하나를 쓰고 서경주와 고준영이 거실을 함께 쓴다. 나는 워낙 정돈된 것을 좋아해서 방을 열심히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내 고준영이 좀 숙소를 더럽게 쓴다. 그래서 서경주가 많이 혼내더라. 나는 숙소 문 열면 바로 내 방이라 거실 볼 일이 없어서 비교적 잔소리를 덜하는 편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런데 분리수거 같은 것은 좀 이야기 한다. “쓰레기통 비워놔라” 이런 잔소리는 한다. 사실 고준영이 좀 뺀질댄다. 이게 대학교에서 막내 생활을 안해봐서 그런가? 고준영은 천안제일고에서 바로 서울이랜드로 오지 않았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서 최고참 노릇 하다 프로 와서 눈에 뵈는 것이 없나보다. 하하. 자기 세상 그대로 갖고 와서 아직 학생 물이 덜 빠졌나보다.

숙소에서 시간이 남을 때는 혼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재미있는 영상을 봤는데 요즘은 여자친구가 책을 선물해줘서 읽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법’에 대한 책을 선물 받아서 읽었다. 주로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법과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법 등이 담겨 있더라. 많은 교훈을 얻었다.

여자친구의 선물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맞다. 그래서 나도 물어봤다. “내가 말하는 습관이 좀 별로야?”라고 물어봤다. 자꾸 말하는 법에 대한 책을 갖다준다. 그런데 또 내가 말을 나쁘게 하는 것은 아니란다. 알고보니 쉬운 책을 골라주는 것이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책을 잘 읽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읽기 쉬운 것부터 선물해주는 것이다. 여자친구가 먼저 읽어보고 쉬운 책을 골라준다. 나도 여자친구에게 어려운 책은 사주지 말라고 했다.

아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깔끔하게 사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형아(친형)’와 잘 안맞는다. 하하. 나는 규칙적이고 뭔가 틀에 잡혀 있는 생활을 좋아한다. 그런데 친형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형아’는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어릴 때는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서로 나이를 먹으니까 싸우지는 않는다. 그래도 안맞는다. 하하.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한 번 만났다. 형이 영국에서 생활할 때 여자친구가 생겼다. 폴란드 사람이다. 그 여자친구가 한국에 놀러와서 내 여자친구와 함께 넷이서 만났다. 정말 신기했다. 키가 거의 나와 비슷하고 생김새도 우리와 다른데 완전 한국 사람 같다. 내가 삼겹살 사줬는데 엄청 잘 먹는다. 무채도 흡입하더라. 한국말도 잘해서 이야기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여자친구도 그러더라. “진짜 신기하다”라고.

그래도 형이 내가 축구선수 생활을 한다는 것에 자랑스러워 한다. 내가 나오는 기사를 자주 찾아본다.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내게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 내가 차도 빌려줬다. 형이 여자친구와 국내 여행 한다길래 내 차를 쓰게 했다. 사실 빌려주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빌려줬다. 농담이다. 하하.

친형을 기쁘게 하려면 활약을 많이 해야한다.
골이나 도움같이 공격 포인트를 많이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여기서도 공격수를 했으면 골 좀 넣었을텐데… 윙백을 하면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제일 아쉽다. 나 스스로 골을 넣거나 도움을 해서 팀에 보탬이 되면 참 좋을텐데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다.

얼마 전에 서경주가 FC안양과의 경기에서 원더골을 넣었다. 진짜 부러웠다. 팀에 보탬이 된 것 같고 멋있지 않는가. 나는 게다가 골 넣고 뒷풀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교나 R리그 시절 때는 스터리지 뒷풀이를 따라하거나 동료들과 맞춰서 브라질 춤을 추기도 했다. 딱히 뒷풀이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몸에서 흥이 배어나온다.

당신 ‘관종’인가.
축구장 안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밖에서도 ‘관종’이라는 소리 듣기는 싫다. 하하. 그래도 밖에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것 같다. 서울이랜드에서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포항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알아봐줬다. 포항이라는 동네 자체가 작으니까. 시내를 돌아 다니면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사인 요청도 들어왔다. 내가 포항 지역 행사도 좀 다녀서 인지도가 있었다. 학교 방문해서 춤도 추고 그랬다.

ⓒ 서울이랜드 제공

하지만 서울이랜드는 마음껏 관심 받지 못하고 있다. 성적 때문일 수도 있고.
솔직히 여기에 오면서 순위가 낮을 수도 있다는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내가 축구하면서 하위권에 위치했던 적이 처음이다.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고 적응되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도 축구 하면서 항상 이기고 있고 좋은 성적만 받아봤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이 내 인생 최대의 고비구나’라고 생각하며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사실 지금 순위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서울이랜드가 지난 시즌에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올해는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선수들이 모였으니 새로운 각오와 목표로 임했지만 현재 성적은 아쉽다. 그래도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다.

맞다. 서울이랜드의 순위 상승을 위해서는 당신의 ‘임대 신화’도 필수적이다.
내가 인터뷰에서 ‘임대 신화’를 쓰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임대 신화’를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서울이랜드라는 팀에 보탬이 되면 그것이 임대 신화라고 생각한다.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세월 동안 서울이랜드 팬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면 그것으로 성공적인 임대 아닐까? 팬들에게 기억이 남는다는 것은 좋은 선수라는 얘기니까.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임대를 왔기 때문에 서울이랜드에 온 힘을 쏟으려고 한다. 포항이라는 원소속팀은 워낙 내가 좋아하는 팀이고 지금도 자주 생각 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서울이랜드의 선수니까 포항에 대한 기억은 뒤로 한 채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러면 포항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좋은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물론 가야 할 산은 높다. 내가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해서 개인적으로 잘 되는 것보다 팀에 보탬이 많이 되서 지금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머무르고 싶다. 나도 윙백이지만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플레이로 골도 넣고 도움도 하고 싶다. 아직 프로 첫 골이 없다. 서울이랜드에서 프로 첫 골을 넣는다면 무조건 스터리지 골 뒷풀이를 할 예정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튀는 선수’로 남고 싶다. 축구도 그렇고 퍼포먼스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선수들도 여러 성격이 있다. 나는 골을 넣고 ‘내가 이런 선수다’라는 것을 뒷풀이로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통해 더욱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확실히 권기표는 ‘관종’이었다. 하지만 우직한 땀방울의 가치를 아는 ‘관종’이었다. 자신이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축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권기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울이랜드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했다. 서울이랜드는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다. 권기표도 마찬가지다. 둘이 보낼 1년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일까? 아직까지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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