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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포항=곽힘찬 기자] 올 시즌 현재 K리그1에서 가장 힘든 팀 중 하나가 포항 스틸러스였다. 지난 4월 3일 강원FC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둔 이후 수원 삼성을 격파하기 전까지 FA컵 포함 다섯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 여파로 최순호 감독이 경질되고 수석코치였던 김기동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26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19 9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포항은 김승대의 환상적인 득점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수원의 여섯 경기 무패행진을 끊는 동시에 다섯 경기 만에 승리하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득점을 기록한 김승대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린 이후 누구보다 기뻐했다. 팀 내 고참으로서 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김승대에게 이날 승리는 승점 3점 그 이상이었다.

경기를 마친 후 취재진과 마주한 김승대의 얼굴은 환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오늘 경기장에서 죽자는 생각으로 선수들과 경기에 임했다. 우스갯소리로 오늘도 지면 선수고 뭐고 다 가버리자는 생각이었다. 오늘 긴장감 속에 터진 한 골은 정말 짜릿하면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그동안 진지한 면이 없었다”

수원전 승리는 김기동 감독 체제에서 새롭게 단추를 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승대는 “오늘처럼 파이팅 넘치는 선수들의 모습을 감독님이 원하셨을 것이다. (배)슬기 형이나 나나 위에서부터 밑 동생들에게 한 주 동안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면서 팀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승대가 언급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군대로 치면 위계질서 확립과 군기를 잡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 군대처럼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기합을 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팀의 정신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김승대는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을 다시 잡았다. 전체적으로 운동할 때 진지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강조하고 경쟁의식을 키우게 했다. 솔직히 고함도 질렀다. 그렇게 한 주를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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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안 죽으면 나가서 죽자”

취재진이 한 주 동안 그렇게 보낸 시간이 오늘 승리에 영향을 줬냐고 질문을 던지자 김승대는 “죽을 각오로 뛰었다. 경기장에서 안 죽으면 나가서 죽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배들을 포함해 나까지 불만보다는 몸으로 뛰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지난 한 주 동안의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선수들에게 정말 무서웠던 한 주가 아니었을까. 천사 같던 선배들이 갑자기 무섭게 고함을 치면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포항의 현재 상황에서 고참 선수들이 먼저 나서 팀을 결집시키는 이러한 모습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날 수원전에서도 이수빈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은 선배들 못지않게 활약하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김승대는 “한 주 동안 서로 말을 정말 많이 했다. 가족 같은 분위기보다는 훈련에 더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바뀐 이후 이제 첫 경기를 치렀다. 앞으로의 경기가 더 중요하기에 일단 이번 주말에 잠깐 승리의 기쁨을 즐기고 다음 주부터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이어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김승대가 말하는 것은 위기에 빠진 포항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한편, 김기동 감독은 김승대에게 친구와 같은 사람이다. 김승대는 “내가 유스 시절 때 포항 레전드로 뛰고 계셨고 내가 외국에서 뛰다 포항에 돌아왔을 때도 계셨다. 친구 같은 분이다. 농담도 많이 하고 정말 친하게 지낸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분이면서 서로 잘 맞다”고 웃었다.

부주장 김승대가 말하는 ‘군기’

그리고 김승대는 수원전이 펼쳐지기 전 김기동 감독과 약속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승대는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PK가 나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무조건 차겠다고 했다. 그리고 웃으며 감독님이 나가면 나도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득점을 하고 좋은 결과를 선물해드릴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웃었다.

김승대는 포항의 부주장이다. 군대로 치면 군기 반장인 소위 ‘상말(상병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위기에 빠진 포항의 미래를 위해 팀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그가 말하는 ‘군기’는 그저 후배 선수들을 혼내는 것이 아닌 위기의 포항을 살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수원전 승리는 포항의 모든 선수들에게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과거 포항의 모습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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