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촌놈’ 백지훈의 첫 해외 생활, ‘홍콩 간’ 이야기


[스포츠니어스|홍콩=조성룡 기자] 우리가 아는 백지훈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2003년 전남드래곤즈 입단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백지훈은 FC서울, 수원삼성 등을 거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선수다. 특히 그는 잘생긴 외모로 ‘꽃미남’ 소리도 제법 들었다. 그의 외모는 분명 도시 남자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의외의 사실이 몇 가지 있다. 그는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나 풍기중학교와 안동고등학교를 거친 자칭 ‘촌놈’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단 한 번도 해외 프로팀 경험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선수 말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외 프로팀 생활을 시작했다. 홍콩 프리미어리그의 리만FC다. 남들은 슬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고민할 시기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홍콩 축구, 특히 홍콩 프로축구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오는 킷치나 이스턴 정도가 유명하다. 그렇기에 백지훈의 소식도 홍콩에 간 이후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스포츠니어스>는 직접 그를 만나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다. 홍콩의 번화가에서 상당히 떨어진 ‘정관오’라는 곳에서 백지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대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간편한 옷차림에 이어폰을 끼고 지하철역에 서 있는 백지훈은 한창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편해 보였다. 앞 면에 영어로 ‘항상 신선한 품질 좋은 고기’라 쓰여졌고 목이 살짝 늘어난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홍콩에서 백지훈은 자유로워 보였다. 궁금한 점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그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홍콩 생활도 이제 꽤 한 것 같다.
지난 2018년 7월 3일에 홍콩에 왔다. 이제 9개월 남짓 된 것 같다. 올 시즌을 끝내면 1년 채우겠지.

은퇴를 생각해야 할 말년에 해외 생활이라니.
에이, 은퇴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당연히 생각한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있다. 그런데 은퇴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구체적으로 해본 적 없다. 아직까지 나는 축구가 좋다. 축구를 더 하고 싶더라. 그래도 세월은 흘러가니 ‘은퇴하면 뭐하지?’란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 하하.

도대체 홍콩은 어떻게 오게 됐나?
2018 시즌 초에 새로운 팀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제의도 쉽게 오지 않았고 제의가 들어오면 계약 조건 등이 맞지 않았다. 해외 팀들도 알아보면서 국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적 시장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반 년 정도 혼자서 개인 운동만 하고 지냈다. 그 때는 정말 막연하게 은퇴도 생각했다. 내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지 않는가. 축구화를 벗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여름 이적시장이 열렸고 에이전트를 통해 홍콩에서 기회를 얻었다.

홍콩 축구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나와 친한 (김)동진이 형이 홍콩에서 뛰고 있고 ACL에 킷치 같은 팀이 나오지 않는가. 막상 오게 되니 생소하더라. 내가 홍콩에 축구하러 오게 될 줄 누가 알았나. 그런데 내가 한 번도 해외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고 혼자서 생활도 잘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내게는 도전 아닌 도전이었다. 여기에 영어 공부도 좀 해볼 생각으로 홍콩행을 결정했다.

특히 친한 친구인 정조국, 오범석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정)조국이는 나보고 “홍콩 무조건 가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와 조국이는 몇 년 전에 같이 홍콩 여행을 가본 적 있다. 그런데 하필 홍콩에서 제의가 오니 “이건 운명이다”라고 하더라. (오)범석이도 적극적으로 추천 해주더라. 그 친구들은 해외 경험이 있지 않는가. 그런데 조국이는 내게 추천 해주면서도 ‘힘들어 하면서 금방 국내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더라. 내가 홍콩에서 누구보다 잘 생활하고 있으니까 “진짜 의외다”라고 하더라.

홍콩이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나.
그렇다. 홍콩은 한국 축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과거 홍콩에서 감독을 하면서 돌풍을 일으키지 않았나. 우리 팀에도 김 위원장님과 함께 홍콩 대표팀 생활을 했던 선수들이 4~5명 정도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 대해 팀 동료들이 제법 알고 있다. 김 위원장님 이후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한국 선수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는 것 같다.

ⓒ 리만 공식 페이스북

한국 선수들도 홍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가 아는 여러 선수들도 홍콩에 관심을 보였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선수들은 홍콩 축구에 관심이 없지 않았는가. 솔직히 나도 올 생각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홍콩이라는 나라 자체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여행 오는 선호도 높은 곳이니 축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의 삶이 괜찮으니까 축구선수도 오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이 뛰고 있는 리만은 어떤 팀인가?
나도 여기 오면서 리만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먼저 고마운 팀이라고 하고 싶다. 내게 손을 내밀어준 곳이다. 게다가 감독님도 적극적으로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나를 정말 원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홍콩 축구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스템이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한국보다는 열악하다. 그런데 리만은 현재 순위나 실력에 비해서 환경 등이 다른 팀에 비해 괜찮다. ACL에 나가는 킷치나 이스턴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순위는 다른 팀들보다 조금 밑인데 그래도 발전하고 있는 팀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홍콩 생활은 어떤가? 첫 해외 생활인데.
사실 처음에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가 홍콩에 가족들이 있고 영어를 해서 언어가 통하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니 진짜 힘들었다. 선수들과 말은 안통하지, 낯설고 외롭지, 정말 힘들더라. 게다가 홍콩 팀 동료들의 문화 차이도 나를 힘들게 하더라.

어떤 문화 차이였나?
홍콩 선수들이 착하긴 착하다. 그리고 많이 어리다. 특히 우리 팀이 그렇다. 나와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선수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내게 장난을 치더라. 그들은 나와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나는 받아들이지를 못하겠더라. ‘나이도 어린 것들이 내게 뭐하는 거지?’ 싶었다. 수원으로 비유하자면 매탄고에서 갓 졸업한 선수들이 내게 막 장난을 치는 거다. 도가 지나칠 때도 있어서 내 선에서는 용납 안되기도 했다.

사실 이게 홍콩의 문화라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데 처음에는 내가 예민하게 굴었다. 이런 건줄 몰랐다. 나는 홍콩이 우리나라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서열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없다. 감독이 말하고 있는데 선수들은 누워서 듣고 딴짓하더라. 완전 서양이다. 물론 지금은 편하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이 이렇게 편할 수 없더라. 동료들이 장난을 치면 이제는 이해하게 된다.

홍콩 선수들과는 이제 친하게 지낸다. 물론 아직까지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작은 행동 하나 만으로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홍콩 친구들이 나를 좀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나를 더 챙겨주고 더 뭔가 해주는 등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하더라. 아무래도 영어가 안되니까 그 부분에서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사실 영어에서 소외감을 느끼긴 했다. 홍콩 선수들은 영어를 잘한다. 그리고 우리 팀에 나 포함 6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는데 각자 국적이 다르다. 그런데 또 나 빼고 다 영어를 잘한다. 대화가 안되니 소외되는 느낌과 외로움이 느껴지더라.

어린 선수들과 생활하면서 ‘에이스’ 노릇도 해야 할 것 같다.
팀 동료들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동료들이 나에 대해 미리 다 알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나갔던 것도 알고 내 전 소속팀들도 알었다.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친구들은 예전에 내게 와서 “항상 유튜브에서 네 경기 찾아서 보고 있다”라고 하더라. 연습할 때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아는 한도 안에서 최대한 알려준다. 이러다보니 팀 동료들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하.

사실 자기들끼리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한국도 그렇지만 홍콩도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크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오면 자기들끼리 그 선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는 것 같더라. 어느 팀에 있었고 어떤 플레이를 보여줬고 골을 얼마나 넣었고 등등. 입단해서 훈련을 하면 끝나고 자기들끼리 ‘와 쟤는 이건 잘하고 이건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 리만 공식 페이스북

이게 약간 축구 환경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선수 개개인은 ‘나도 잘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다. 나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홍콩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라면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런데 모든 외국인 선수가 잘할 수는 없다. 적응을 못해서 부진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 선수들끼리 외국인 선수에 대해 평가도 좀 하는 것 같았다.

책임감은 여전히 무겁다. 한국에서도 책임감은 있었다. 수원에 있을 때도 고참이자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책임감이 컸다. 그런데 여기서는 또 다르다. ‘용병’의 책임감이 크다. 홍콩은 외국인 선수 정책이 6명 등록에 4명 출전이다. 외국인끼리 경쟁한다. 교체도 외국인끼리만 한다. 홍콩은 모든 팀이 외국인 6명을 꽉꽉 채우더라. 경쟁이 치열하다. 훈련장에서 경쟁하고 경기를 나가면 잘해야 하니 또 책임감이 크다. 한국과는 좀 다르지만 책임감의 무게감은 똑같다.

그렇게 문화 뿐 아니라 축구에 대한 차이도 많을 것 같다.
여기 와서 제일 충격 받았던 것이 ‘소변’이다. 훈련장에서 뛸 때 팀 동료들이 볼일을 그냥 아무데서나 본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문화인 부분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축구의 관점에서 가장 큰 차이는 ‘열정’이다. 한국에서 축구선수에게 축구는 그야말로 전부 아닌가. 축구선수의 수명이 짧다보니 단기간에 많이 벌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러니 축구에 ‘올인’한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축구가 첫 번째가 아니라 축구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다. 홍콩 선수들은 축구에 전부를 걸지 않는다. 축구 말고 다른 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팀 뿐 아니라 홍콩 축구선수 중에서는 ‘투잡’을 하거나 대학생인 선수들이 많다. 여기는 신기한 게 팀 훈련과 학교 수업이 겹치면 학교를 간다. 훈련이 오후 3시고 수업이 오후 5시면 한 시간만 운동하다가 중간에 가버린다. 심지어 다음 날이 경기여도 그렇다. 선수가 그렇게 가는데 감독은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 이게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어느 정도 괜찮지만 축구에 대한 차이가 가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여름에 그렇다. 일단 너무 덥고 습하다. 한국은 이럴 경우 오후 늦게 또는 저녁에 훈련한다. 그런데 여기는 정오 전후 제일 더울 때 운동을 한다. 리만은 클럽하우스가 없어서 동네에 있는 축구장을 빌려서 훈련을 하는데 일주일 단위로 스케줄이 나온다. 보면 항상 정오나 오후 1시다. 나는 더워 죽겠는데 동료들은 불평을 안하더라. 알고보니 이 친구들은 한여름 정오에 훈련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안다. 야간에 운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원래 덥게 운동하는 줄 아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니 답답한 부분도 많다. 경기를 하다보면 딱 말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데 못하니까 그렇다. 연습할 때나 경기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잘 안된다. 간단한 것들은 말할 수 있지만 세밀한 부분을 말하지 못하니 어렵다. 통역이 오기는 했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차이점을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홍콩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사실 영어 공부는 홍콩에 오자마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열심히 했다. 홍콩에서 생활하고 동료들과 이야기 하려면 영어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두어 달 열심히 했다. 그런데 동료들과 영어를 못해도 친해지다보니 소홀해지더라. 동료들이 내가 영어 못하는 것을 아니 알아서 배려해준다. 여기에 리만에서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보고 통역을 고용했다. 공부에 더욱 소홀할 수 밖에 없더라.

홍콩에 오니 여유가 정말 많아졌다. 삶에서 이렇게 여유가 많은 적이 거의 없다. 사실 한국에서는 일종의 유혹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하루 훈련을 끝내면 누군가 “밥 먹자, 놀게 나와라” 이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안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 매번 거절하기는 어렵다. 아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불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내 시간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영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이제는 집에 가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훈련 끝나고 카페 와서 한두 시간 정도 혼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간다. 게다가 홍콩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도 않는다. 한 명이라도 알아본다면 행동에 조금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여기서는 편하게 다닌다.

만족한다고 하는 걸 보면 음식도 잘 맞는가보다.
내가 입맛이 정말 토종 한국인이다. 한국인 중에서도 촌놈 한국인이다. 어릴 때부터 밥 먹고 자랐다. 그런데 음식은 힘든 게 없다. 무엇이든 잘 먹는 것도 있지만 홍콩 음식이 내 입맛에 좀 잘 맞더라. 물론 집에서는 한식 위주로 먹는다. 내가 특히 찌개류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반찬 보내주신 것도 있고 국을 얼려서 보내주신 것도 있어서 데워 먹는다. 그렇게 혼자 먹곤 한다.

그렇다고 집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다. 홍콩 음식도 자주 먹는다. 특히 홍콩 집밥이 정말 맛있다. 홍콩 선수들이 종종 나를 집에 초대할 때가 있다. 그러면 선수 가족들이 가정식을 차려준다. 그게 정말 맛있다.

ⓒ 디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식당도 제법 간다. 홍콩에 한식당이 많은데 40% 정도는 괜찮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곳들은 진짜 맛있다. 한국과 거의 똑같다.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은 세 군데 정도 있다. 침사추이에 원풍원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기 삼겹살이 정말 맛있다. 밑반찬도 맛있고 김치찌개도 맛있다. 여기는 자주 간다. 그리고 센트럴에 무궁화라는 식당이 있다. 여기도 괜찮다. 여기에 침사추이 쪽에서 짜장면과 탕수육 잘하는 집이 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이 곳들은 내가 직접 먹어보고 말하는 집이다. 감히 추천할 수 있다. 협찬 받고 그런 것 없다.

항상 한식당을 찾기는 힘들다. 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내 집에서 란콰이펑이나 한식당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갈아타는 등 쉽지 않다. 별 일 없으면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 가끔 (김)동진이 형이나 (서)상민이와도 뭉친다. 아무래도 (김)동진이 형은 가정이 있다보니 서상민과 자주 만난다. 만나면 란콰이펑에서 술도 한 잔 하고 한식당도 간다.

당신 여기서 지하철 타고 다니나.
그렇다. 사실 한국에서는 나 혼자서 지하철 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홍콩에서는 차가 없는 것이 편하다. 워낙 홍콩이라는 곳이 작은 동네고 주차할 곳도 없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차비도 엄청 비싸더라.

뚜벅이의 삶이 처음에는 진짜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안해본 것이니까 정말 재밌는 것이다. 지하철 타고 가면서 노래도 듣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구경도 하고 환승 시스템도 재밌더라. 그런데 (김)동진이 형이 그러더라. “지훈아 한 달만 지나봐라.” 그렇게 한 달이 지났는데 너무 귀찮고 힘든 거다. 운동 끝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지하철 타고 갈아타고 또 버스 타고 가야 하니까 죽겠더라. (김)동진이 형이 확실히 연륜이 있다. 정말 혼잡 시간대에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우리나라 직장인들 존경한다.

우리는 훈련도 지하철로 다니고 경기도 지하철로 다닌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은 경기 전날에 합숙하고 버스나 KTX 등으로 함께 이동한다. 그런데 여기는 경기 당일에 각자 지하철 타고 경기장에서 모인다. 처음에는 두렵더라. 각자 가야 하니까 시간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고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니까. 이제는 대충 언제쯤 나가야 할지도 알고 크게 걱정은 안한다. 홍콩 선수들도 훈련 시간은 늦는 경우가 많은데 경기 시간은 잘 지키더라.

홍콩이 작으니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하하. 복잡한 것은 괜찮은데 좁은 것이 조금 지루해졌다. 이제 홍콩에서 가볼 수 있는 곳은 다 가봤다. 한국에서는 주말이나 쉴 때 국내에서 여행을 갈 수 있지 않는가. 부산, 속초 이런 곳 1박 2일로 갈 수 있는데 홍콩은 그럴 수 있는 곳이 없다. 가볼 만한 마카오도 배 타고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 팀에 마카오 선수가 있다. 그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줘서 마카오 구경도 하고 잠도 잤다.

중국은 경기 때만 가봤다. 광저우 푸리 2군이 홍콩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한다. 그래서 원정 경기로 가봤다. 광저우 푸리 2군이 제법 축구를 잘한다.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있다. 내가 여기서 해본 팀 중에서는 제일 잘하는 것 같다. 외국인 선수들 퀄리티가 훨씬 높다. 1군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온 선수들 아닌가.

그럼 홍콩에 더 머무를 생각인가? 지루해졌다니 이적 생각을 하는 것인가?
일단 홍콩 리만과는 1년 계약이다. 음… 더 오래 머무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은 반반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있고 여기서 혼자 있는다는 것이 좀 힘들다. 그런데 여기서 축구를 더 하는 것도 좋다. 나는 아직까지도 축구를 좋아해서 더 하고 싶으니까. 여기 더 있으면 1년이라는 시간은 잘 흘러갈 것 같다.

ⓒ 리만 공식 페이스북

약간 향수병 비슷한 느낌(?)은 있다. 그 전까지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홍콩에 있어도 두어 달에 한 번씩은 한국에 들어갔다. 한국이 친숙하고 편하니까. 정말 좋으니까. 그런데 다시 홍콩에 오면 또 괜찮아진다. 홍콩의 삶이 익숙해졌다. 그런데 외국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솔솔 들고 있다.

외로워서 그런 것 아닌가.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지 않고 때문에 내 인생을 결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외로운 것은 있다. 나도 이제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홍콩에 있으면 한국보다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적지 않겠는가. 만일 가족이 있었다면 해외 생활이 더욱 수월했을 것 같다.

이럴 때 팬들이 있다면 더욱 든든할텐데.
홍콩에 팬들이 몇 분 놀러오신 적 있었다. 오셔서 내 유니폼도 걸어놓고 현수막도 걸어놓더라.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 분들은 여행을 온 것도 아니고 나를 보러 오신 것이다. 홍콩 축구도 모르고 우리 팀도 모르시는데 나를 보러 온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팬들께 항상 감사함을 느꼈지만 여기서 보니까 더 감사하더라. 더 뭔가 해드리고 싶었다. 크게 해드린 것은 없지만 일부러 경기 끝나고 다가가서 얘기도 많이 하고 사진 촬영이나 사인도 더 정성껏 해드렸다. 아직까지 내게 그런 팬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감사했다.

교민들께서도 종종 경기를 보러 오신다. 말을 걸면 “한국 분이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홍콩에 사시는데 내가 홍콩에 온 것을 알고 일부러 경기를 보러 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장 밖에서는 따로 만날 기회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교회나 교민 커뮤니티 등에 활발히 참여하지 못하는 편이라 한국 교민들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좀 ‘재수 없는’ 스타일로 팬들이 보셨을 것이다. 내 성격이 워낙 소심하다. 수원에 있을 때 클럽하우스에 팬들이 찾아오면 다른 선수들은 살갑게 다가가서 “오셨어요?”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잘 못했다. 너스레를 떨지 못한다. 팬들 입장에서는 백지훈이라는 선수에 대해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20대 초반에는 많은 팬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공백기도 좀 있으면서 팬들이 많이 떠나가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 팬들의 소중함을 많이 알았다.

축구선수는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살지 않는가. 당신은 홍콩에 와서 한국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건 그렇다. 하하. 서울이랜드에서 뛸 때부터 관심은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 같다. 사실 서울이랜드에서는 아쉽고 죄송한 부분이 많다. 내가 그렇게 많이 활약하지 못했다. 비교적 관심이 덜한 K리그2에서 뛰고 이후에 공백기가 있다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나의 근황에 대해 잘 모른다. 일부는 내 기사가 나오면 ‘아직까지도 백지훈 축구하고 있어?’라고 묻더라. 하하. 당연한 반응이다.

마지막으로 백지훈의 첫 외국인 선수 생활을 돌아보자.
정말 배우는 것이 많다. 홍콩을 오지 않았다면 외국 생활에 대해서 몰랐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나중에 지도자를 하게 되면 외국인 선수에 대한 생각도 잘 못했을 것 같다. 여기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많다. 게다가 나는 프로 팀에서 외국인 지도자와 처음 지내본다. 많은 것들이 다른 만큼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정조국과 오범석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천한 이유가 있더라. ‘이래서 해보라는 거구나.’

사실 어디서든 배우는 것은 있다. K리그1 팀들에 있을 때도 배웠고 서울이랜드에 뛰면서 K리그2에 대해서 배웠고 내가 만났던 모든 지도자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홍콩에서 배우는 것은 정말 많은 것 같다. 아직 해외에 가보지 못한 선수들이 있다면 무조건 나가라고 추천할 것 같다. 나는 혼자 있다보니 힘들다고 하는 것이지 축구에 대해서는 해외 경험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홍콩에 와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같이 좋은 곳에서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그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다면 홍콩을 비롯해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어디든지 해외 생활을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과는 다른 축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약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 있지만 내게는 정말 얻어가는 것이 많은 시간이다. 이제 남은 경기만 좀 더 잘하면 될 것 같다. 올 시즌 세 골을 넣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다. 남은 경기에서 내가 더 잘하고 활약하고 싶다.

백지훈은 이제 선수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지훈은 여전히 배우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 그리고 축구를 더 많이 알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홍콩에서의 외로움도 감내하며 기꺼이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영어 좀 못하면 어떤가, 지금 백지훈은 즐거우니까 말이다. “이제 훈련 간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횡단보도를 건너는 백지훈의 뒷모습은 과팅 하러 가는 대학생의 뒷모습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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