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온 17세 소녀, 광양여고 곽로영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화천=이정원 인턴기자] 곽로영. 여자 축구팬이라면 아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여자 이승우’, ‘리틀 박주영’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닌 곽로영은 올해 전남 광양여고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다. 울산 현대청운중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곽로영은 지난해 중학교 3학년 신분으로 언니들과 함께 2018 FIFA U-17 월드컵에도 출전해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강원도 화천에서 열리는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에 참가 중인 곽로영을 만나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곽로영과의 대화를 지금부터 소개한다.

경상도 소녀 곽로영이 전라도에 온 이유

곽로영은 올해 울산 현대청운중을 졸업하고 광양여고에 입학했다. 많은 이들은 곽로영의 선택에 의문을 표했다. 그 이유는 현대청운중 출신의 대부분 선수들은 옆에 있는 울산 현대고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뜬금없이 대한민국 지리상 맨 밑에 있는 전라남도 광양시에 있는 광양여고를 택했다.

그녀가 광양여고에 간 이유는 광양여고 권영인 감독의 설득이 가장 컸다. 조별리그 1차전 인천 디자인고와의 경기 전 만난 권영인 감독은 웃으며 “(곽)로영이는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다. 로영이를 데려오려고 집 앞에서 열흘간 있었다”라고 말할 만큼 곽로영 영입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 감독님의 적극적인 설득과 자신을 원하는 간절함에 곽로영 역시 “부모님의 선택도 있었고 감독님 때문에 광양여고에 오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권영인 감독의 영향이 크다는 걸 인정했다.

그녀가 느낀 권영인 감독은 어떨까. 권영인 감독은 평소 친절함과 함께 온화하면서도 카리스마를 갖춘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에게도 질책보다는 당근을 주기로 유명하다. 인터뷰 당시 곽로영 옆에 있던 표지수가 “감독님이 화를 내신 이후에는 꼭 뒤에 와서 다시 안아준다”라고 말할 만큼 선수들의 신뢰도도 굉장히 두텁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곽로영의 평소 플레이 스타일상 강압적인 스타일의 감독보다는 신뢰도 만큼이나 자유로운 스타일의 권영인 감독이 곽로영에게도 더욱 잘 맞았다. “우리 팀 감독님이 젊으신 만큼 운동도 잘 가르쳐주시고 열정도 많으시다”라는 곽로영은 이미 입학 두 달 만에 권영인 감독에게 쭉 빠져 있었다.

수줍은 곽로영 ⓒ 스포츠니어스 제공

자상한 권영인 감독, 친한 언니 표지수와 함께 서서히 적응하고 있는 광양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광양은 곽로영이 그전에 살던 대구나 울산에 비해 인구수가 약 15만 명의 불과한 소도시다. 현재 대회가 열리고 있는 화천과 별 다른 것이 없는 도시다. 즉, 다른 도시들에 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곽로영은 의외로 광양 생활이 재밌다고 밝혔다. 그녀가 재밌다고 한 이유는 두루두루 사귄 친구들 때문이다. 곽로영은 “같이 진학한 친구도 있고, 언니들도 잘 챙겨준다”라면서 “무엇보다 일반 학생들도 잘 챙겨준다”고 말했다.

친구들을 많이 사귄 곽로영이 광양에서 즐기는 먹거리는 ‘허니 워니’라는 떡꼬치 집이다. 훈련 후 팀 동료들과 함께 간다는 곽로영은 맛집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었다. 그녀는 “허니 워니가 떡꼬치 1개에 1000원인데 정말 맛있다. 다른 식당도 많다. 아, 광양 불고기도 정말 맛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맛집 탐방 뿐만 아니라 이미 광양에서 영화 ‘극한직업’과 최근 개봉한 ‘선물’까지 관람하며 극장가까지 섭렵한 곽로영은 경상도 소녀가 아닌 광양 소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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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로영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 U-17 월드컵

곽로영은 언니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핵심 공격수 역할을 팀 내에서 맡고 있다. 지난해 우루과이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등번호 10번의 차지도 역시 곽로영의 것이었다. 하지만 등번호 10번의 무게감은 그리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곽로영은 많은 기대 속에 우루과이 비행기에 올랐지만 모든 것들이 낯설고 쉽지 않았다. 특히 어린 소녀에게 장거리 비행은 크나큰 힘든 일이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우루과이까지 한 번에 가는 직항은 없으며 스페인이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을 거쳐서 가야만 한다. “꼬박 이틀 정도 걸렸다”는 곽로영은 U-17 월드컵이 가장 힘들었다고 연이어 말했다.

남미에 위치한 우루과이는 시차 적응, 문화, 음식까지 모든 것이 대한민국과 달랐으니 어느 정도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갔다. 곽로영은 당시를 회상하며 “우루과이는 우리와 정반대에 있는 나라여서 밤낮이 다르다”며 “김치는 한인 마트에서 사서 괜찮았는데 쌀은 우리나라 쌀처럼 힘이 없더라. 우루과이 가니까 떡볶이와 초밥이 정말 먹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곽로영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저조한 성적이다. 당시 U-17 대표팀은 황금기라 불리던 2010년 U-17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이금민 세대’, 2010 U-20 월드컵 3위를 차지했던 ‘지소연 세대’ 이후 호화 멤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축구팬들에 많은 기대를 받았다. 또한 2010년 이후 U-17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냈기에 축구팬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페인과의 1차전 결과는 0-4, 캐나다와의 2차전은 0-2 패배를 당했고 마지막 3차전인 콜롬비아전에서도 1-1로 비겼다. 최종 성적 2무 1패 승점 1점, 팬들에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허정재 감독이 당차게 목표로 말했던 우승과는 한참 거리가 먼 성적이었다. 곽로영 역시 팬들에 기대와는 달리 무득점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긴 채 짐을 싸야만 했다. “준비한 거에 비해서 못 보여줬다”는 곽로영은 “긴장도 했고 전술적인 부분에서 전혀 발을 맞추지 못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생각에 곽로영은 당시 한국에 돌아가려고 할 때 걱정이 많았다고 밝혔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 경기를 치른 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못하면 야유와 비난받는 것이 방송 화면이나 기사에 자주 등장했기에 그녀 역시 긴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곽로영은 “많은 분들이 기대해주셨는데 돌아가려고 하니 막상 걱정이 되더라.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최대한 잊으려고 했다”고 당시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축구팬들은 비난보다 타지에서 고생한 소녀들에게 격려를 전했다. 곽로영도 귀국 당시 “깜짝 놀랐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팬들의 격려가 고맙다”고 밝혔다. 이어 “팬들의 관심을 받을 때 이래도 되나 싶다. 낯설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는 곽로영은 “그래서 더 알려진 만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고 성숙하게 말했다.

또한 타지에서 흘린 눈물로 인해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과연 곽로영이 우루과이에 가서 얻어 온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곽로영 마음 한 켠에 첫 경기에서 소녀들을 울린 스페인도 고이 있었다. 곽로영은 “한번 부딪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U-17에서 붙은 이유로 스페인에서 뛰어보고도 싶고 한 번 붙어보고 싶다”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곽로영
지난 해 U-17 월드컵 콜롬비아전에 출전한 곽로영의 모습 ⓒ대한축구협회

‘여자 이승우’ 곽로영은 아직 꽃다운 열 일곱

곽로영은 평소 롤모델에 대한 질문에 매번 “나의 롤모델은 이승우다”라고 말하며 존경심을 보여왔다. 이승우 역시 곽로영과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연령별 국가대표를 모두 지낸 특급 유망주다.

201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한 이승우는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 8강 일본전에서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달리기로 골을 넣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 대회에 나가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B 헬라스베로나FC에서 뛰고 있다.

곽로영이 평생 기대하고 생각했던 이승우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처음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을 때 말이 안 나왔다. 나도 이승우 선수처럼 잘해서 이름을 알리고 싶다. 정말 멋있고 본받고 싶다”고 이승우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이승우를 닮고 싶어 하는 곽로영은 실제로도 ‘여자 이승우’로 불리고 있다.

그 이유는 곽로영이 이승우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연맹전에서 곽로영은 빠른 스피드와 상대를 압도하는 드리블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장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는 과분한 단어다”라고 말하며 아직 자신은 이승우에 한참 못 미친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롤모델 얘기가 나오면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인 곽로영은 영락없는 17세 소녀가 맞았다. 과연 수줍음 많고 재능 있는 축구 천재 17세 소녀가 축구라는 단어를 고르지 않았다면 어떤 것을 택했을까. 그녀의 답은 바로 아이돌 가수였다. 평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블랙핑크를 비롯해 윤하, <고등래퍼 3>의 노래를 듣는다는 곽로영은 아직도 시간 날 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하면서 선수로의 책임감과 자신감을 옅볼 수 있는 시간이면서도 한편으론 사춘기 소녀의 순수함과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우리나이 17세에 불과한 곽로영은 잘하는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도 팀과 대표팀에서 ‘에이스’라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소속팀 성적과 함께 대표팀에서도 잘해 대한민국을 빛나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곽로영을 <스포츠니어스>가 응원한다.

jungwon940701@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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