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해체, 미련하게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한양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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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화천=조성룡 기자] “아니, 쟤네 왜 저렇게 됐어?”

2019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 대학부 경기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거례스포츠파크에서 나이 지긋한 한 경기감독관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감독관은 다름아닌 한양여대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 조용히 그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경기감독관은 “아…”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양여대.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93년 여자축구부를 창단한 한양여대는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명문으로 군림했다. 한양여대에서 배출한 선수들도 많다.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인 지소연을 비롯해 임선주, 서현숙 등 여자축구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한양여대는 한국 여자축구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였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2017년 한양여대는 여자축구부 해체를 통보했다. 학교가 해체 기한으로 설정한 시간은 2019년 말이었다. 한양여대가 없어지면 서울에는 대학 여자축구부가 단 한 팀도 없게 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한양여대 여자축구부의 마지막 해는 다가오고야 말았다. 짧은 1년여의 시간 동안 전력은 급격히 약화됐고 환경은 점점 열악해져갔다.

마지막 떠나는 길이라도 아름다우면 좋으련만 한양여대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고군분투’다. 지금 한양여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고작 13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 명이 십자인대 부상으로 대회에 나설 수 없다. 현재 한양여대는 12명의 선수로 대회를 소화하고 있다. 쓸 수 있는 교체카드는 딱 한 장이다. 선수가 다쳐도, 체력이 바닥나도 계속해서 뛰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양여대는 사력을 다해 뛰고 있다. 전력이 약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상대 팀이 여러 명씩 교체 카드를 운영해도 한양여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동기부여가 떨어질 법 하지만 매 경기 물러서지 않는다. 득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 한양여대는 매 경기 한 골씩 넣고 있다. 마지막 자존심을 살리고 있다.

지소연이 뛰었던 팀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들이 미련하게 마지막을 지키는 이유
생각보다 한양여대의 분위기는 밝다. 한양여대의 훈련장은 까르르 웃음 소리가 넘친다. 기은경 감독도 여전하다. 선수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열정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얼핏 보면 한양여대는 여전히 잘 나가는 팀으로 보인다. 그래서 경기감독관 역시 오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은경 감독에게 팀 해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 얘기만 하면 진짜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꾹 참는다.

어쨌든 팀이 바로 공중분해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양여대는 해체를 앞둔 팀 답지 않게 너무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물론 선수들은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 향후 WK리그 등 미래를 위해서라면 열악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해야한다. 그렇지만 코칭스태프는 아닐 수 있다. 올해가 지나면 그들은 실업자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마지막 13명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우문현답일 수 있다. 이유를 묻자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날아들었다. “여기에서 뛰고 있는 13명의 선수들은 감독인 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를 보고 온 선수들이다. 힘들 것을 알고 그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기 위해 온 선수들이다. 이들을 내가 버릴 수는 없다.” 그러면서 기 감독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올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

어찌보면 미련했다. 의리를 지킨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한양여대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미련하다.” 그러자 덤덤한 반응이 돌아왔다. “미련한 것 맞다. 주변의 다른 감독님들이나 동료 지도자들이 말하더라. ‘너는 왜 해체될 팀에서 미련하게 그러고 있는가.’ 그런데 어떻게 하나. 나는 여기에 끝까지 있어야 한다. 내가 이 팀을 떠나면 당장의 문제는 잊을 수 있어도 이 제자들이 눈에 밟힌다. 내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선수들이다. 버릴 수 없다. 이 선수들이 떠날 때까지 나는 함께한다.”

기 감독과 한양여대가 올해 바라는 것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저 마지막까지 한국 여자축구의 명문으로 군림했던 ‘한양여대답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양여대는 그동안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 역할을 나름대로 해왔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고 싶다. 좋은 선수들을 배출해 WK리그로 보내면서 해체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여자축구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한국 여자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팀이 사라지려고 한다. 사실 한양여대의 해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들에게 “수고했다”라며 박수쳐 줄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지금도 땀을 흘리고 있다. 마지막에 누군가가 “한양여대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켰다. 한양여대는 역시 한국 여자축구를 위해 노력한 팀이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그래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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