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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화천=전영민 인턴기자] "다음은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입니다.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의 감독은… 이성천 감독입니다"

12일 '2019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 포항여전고와 인천디자인고의 경기가 열렸던 화천생활체육공원 보조구장. 경기장을 덮친 완연한 봄 날씨 속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의 감독 소개 멘트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인천디자인고에 이어 포항여전고의 감독 소개를 하던 장내 아나운서는 잠시간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어갔다.

지난달 18일 축구계에는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들었다. 2002년 포항여전고 여자축구부를 창단하며 18년간 포항여전고 감독직을 맡아왔던 이성천 감독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것. 한국 여자축구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온 이성천 감독의 부고 소식에 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인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한 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포항여전고에는 여전히 이성천 감독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보통 감독과 코치가 벤치에 앉는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이날 포항여전고의 벤치에는 김재희 코치와 수비수 김륜경이 자리했다. 포항여전고의 코치가 김재희 코치 한 명 밖에 없었기에 경기 중 포항여전고 후보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몸을 풀며 경기 출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도 군말 없이 서로를 도우며 훈련을 이어갔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분위기 역시 차분했다. 이날 포항여전고는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인천디자인고에 3-0 완승을 거뒀지만 선수들은 대승에도 덤덤한 모습이었다. 선수들은 그저 서로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조용히 남기며 경기장을 떠날 준비를 했다. <스포츠니어스>는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김재희 코치를 만나 포항여전고의 최근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김재희 코치는 경기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경기 전 그는 훈련을 진행하며 선수들의 몸을 풀어줬다. 경기 중 그는 벤치에 앉아 팀을 이끌었으며 경기 종료 후에는 버스 운전사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 준비를 하기도 했다. 두세 명의 코치들이 함께하는 다른 팀들과 달리 왜 포항여전고에는 김재희 코치 혼자뿐이었을까. 이에 대해 김재희 코치는 "일정 문제로 다른 코치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재희 코치는 "저는 사실 골키퍼 코치다. 원래 다른 코치 분도 계신데 현재 1급 지도자 교육을 들어가셨다. 오늘이 교육이 끝나는 날인데 시간상 경기장에 오시지 못할 것 같아 경기 중 통화로 상의를 하면서 경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김재희 코치 옆에는 수비수 김륜경이 자리했다. 김륜경은 경기 내내 김재희 코치의 지시를 받아 바쁘게 움직였다. 김재희 코치는 왜 김륜경을 벤치에 앉혀두었을까. 김재희는 대회 규정으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재희 코치는 "제가 사실 골키퍼 코치이긴 하지만 등록은 트레이너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가 트레이너 신분이기 때문에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지시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목적으로 1학년 륜경이를 자리에 앉혔다"고 전했다.

인천디자인고와 경기에서 벤치를 지킨 김재희 코치

이날 포항여전고가 보여준 스타일은 대회에 참가한 다른 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포항여전고는 짧은 패스 플레이와 유기적인 움직임, 약속된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했다. 김재희 코치는 이 모든 것이 故 이성천 감독의 유산이라고 전했다. 김재희 코치는 "감독님이 계실 때부터 우리 스타일은 패스 축구였다. 감독님이 큰 틀을 정해주시면 늘 코치들과 선수들이 따라갔다.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우리만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경기를 잘했던 것 같다"며 승리의 공을 故이성천 감독에게 돌렸다.

이번 '2019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은 故 이성천 감독 부고 후 포항여전고가 치르는 첫 번째 대회다. 故이성천 감독을 떠나보낸 포항여전고의 현재 분위기는 어떠할까. 어렵게 말문을 연 김재희 코치는 "서로 힘을 모아 상황을 이겨내는 중"이라고 전했다. 김재희 코치는 "사실 시합을 앞두고 선수단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서로 힘이 돼주며 준비를 해왔다. 감독님 부고 이후 선수들끼리 서로 의지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며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다. 감독님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도 많지만 저희를 믿어주시는 부모님들과 교장선생님 덕에 잘 버티고 있다"며 최근 선수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故이성천 감독은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어떠한 지도자였을까. 김재희 코치는 "감독님은 인간적인 분이셨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 코치는 "사실 예전의 감독님은 굉장히 무서운 분이셨다. 하지만 감독님은 항상 선수들한테는 박수를 쳐주시고 칭찬을 해주셨다. 선수들한테 축구 이전에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가르쳐주셨다"면서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이 함부로 다가올 수 없는 카리스마도 가지고 계셨다"고 故이성천 감독을 회상했다.

김 코치는 故이성천 감독과 추억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김 코치는 "감독님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프신 것도 참고 매일 경기장에 나오셨는데…"라며 "입원 기간은 한 달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병가를 내시고 입원을 하셨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라며 말을 흐렸다. 이어 김 코치는 "감독님 부고 후 분위기를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장 황아현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뭉쳤다"며 故이성천 감독 부고 이후 팀 상황을 전했다.

이날 주장 완장을 차고 풀타임 활약한 황아현 역시 故이성천 감독에 대해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생각을 밝혔다. 황아현은 "감독님은 저희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감독님은 항상 저희들을 먼저 생각해주셨고 편하게 대해주셨다.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질테니 너희들은 너희 플레이를 마음껏 해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선수들 역시 그렇게 말씀하시는 감독님에 대한 믿음 덕분에 더욱 열심히 축구를 했다"며 故이성천 감독을 회상했다.

황아현은 故이성천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황아현은 "다른 감독님들은 보통 경기에서 지면 선수들에게 '너희가 잘못해서 졌다'며 선수들을 나무라신다. 하지만 이성천 감독님은 달랐다. 감독님은 경기 결과에 의존하기 보다는 선수들이 경기에서 어떤 플레이를 펼쳤나를 우선적으로 여기셨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셨다"며 故 이성천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인천디자인고와 경기에서 벤치를 지킨 김재희 코치

포항여전고는 현재 2001년부터 2003년생의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선수들이 받았을 상처는 분명 작지 않았을 터. 특히 황아현은 주장으로서 더욱 많은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황아현은 "힘을 합쳐 상황을 이겨내는 중"이라고 전했다. 황아현은 "감독님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병이 퍼질 줄은 몰랐다. 감독님이 저희에게는 힘든 내색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님이 아프신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많이 아프신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황아현은 "부고 소식을 듣고 많이 힘들었다… 애써 선수들도 티를 내지 않고 있다. 많이 힘들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너지면 위에 계신 감독님도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아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며 밝게 지내고 있다"며 故이성천 감독 부고 이후 팀 분위기를 전했다.

끝으로 황아현은 故이성천 감독을 생각하며 이번 대회를 잘 치러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아현은 "이번 대회가 감독님 부고 후 첫 번째로 치르는 대회다. 지금도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난다" 며 "저희는 여전히 감독님이 경기장뿐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 곁에 계신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항상 말씀하셨던 것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겠다.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이기든 지든 끝까지 결과에 임할 것이다. 감독님이 옆에 계신다는 생각으로 감독님 몫까지 최선을 다해 뛰겠다"며 짧은 인터뷰를 마쳤다.

이렇듯 故이성천 감독의 부고 이후에도 포항여전고에는 여전히 故이성천 감독의 흔적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포항여전고의 모든 구성원들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은 애써 웃음지으며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고 있었다. 선수들, 코치진, 학부모들, 학교 관계자들까지 한 마음이 된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과연 그들은 '2019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 우승컵을 故이성천 감독의 영전에 바칠 수 있을까. 하나가 된 포항여전고의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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