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용인시민체육공원 ‘W4-K-334’ 의자도 꿈이 있었겠지?

용인시민체육공원 주경기장에서 또 언제쯤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용인=김현회 기자] 칼로 태어났으면 뭐라고 베어야 하고 책상으로 태어났으면 누군가가 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봐야만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다. 칼로 태어나 박물관에만 전시돼 있다가 녹이 생기면 그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책상으로 태어났는데 평생 그 누구도 책상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면 책상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6일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여자축구 평가전이 열린 용인시민체육공원 주경기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A매치와 ACL, ‘W4-K-334’도 꿈을 꿨겠지?
이날 경기는 지난 1월 경기장이 완공된 이후 무려 1년 4개월 만에 치르는 첫 공식 경기였다. 이전까지 이 경기장에서는 단 한 번도 공식 축구경기가 열린 적이 없다. 축구장은 축구장인데 축구 경기를 할 팀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일회성 A매치를 이번에 유치했지만 또 다음 경기가 언제 열릴지는 기약이 없다. 경기장을 둘러보며 씁쓸한 생각부터 들었다. 파란 관중석이 너무나도 멋진데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태생 자체가 호감이 아니라 미워 보인다.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경기 시작 직전 관중석을 한 바퀴 돌아봤다. 아마 이 경기장은 사람들에게 첫 선을 보일 이날을 오랜 시간 기다려 왔을 것이다. 용인에서 열리는 첫 A매치에 많은 관중이 찾아와 객석을 채웠다. 용인시내에서도 한참 외지에 있는 곳에서 열리는 경기인데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나는 경기를 앞두고 2층 꼭대기 구석에 있는 좌석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여기에 있는 의자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의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의 이름을 한 번 불러주고 싶었다. ‘W4-K-334’ 녀석은 평생 누구도 앉지 않아 자기가 의자인 것도 모르고 수명을 다하겠지.

녀석도 꿈을 꿨을 거다. DGB대구은행파크 의자가 돼 매번 몰려드는 사람들로부터 먼저 차지하려는 괴롭힘을 당하거나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의자로 태어나 매 시즌 팀이 K리그1에서 극적으로 잔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면 올 시즌 새롭게 태어나는 FC안양 가변좌석이었도 나쁘지 않다. 작은 규모여도 이곳은 늘 사람이 오가는 경기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W4-K-334’로 태어난 이상 답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흙수저도 이런 흙수저가 없다. 이 경기장이 언제 또 다시 경기를 치를지도 기약이 없고 2층 맨 구석 꼭대기 좌석에 관중이 앉을 일도 없다. 이건 녀석 뿐 아니라 녀석 주위의 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용인 A매치
용인시민체육공원의 개장 경기는 완공 1년 4개월 후 열렸다. ⓒ대한축구협회

3,218억 원이 든 애물단지
애초에 태어나면 안 되는 경기장이었다. 이 경기장은 2001년에 사업을 추진했지만 질질 끌다가 2010년에야 첫 삽을 떴다. 3,218억 원의 예산이 들었는데 황당한 건 이중 토지보상비로만 무려 1,387억 원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 동네를 지날 때 벤츠 S클래스 트렁크에 흙이 묻은 곡괭이를 툭 던져 넣는 할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라. 그거 어마어마한 토지보상비로 산 차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여기에 토지 보상비를 이 정도로 줘야 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군 생활을 했던 강원도 화천과 이곳의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더 황당한 건 이렇게 16년 동안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고 지은 게 덜렁 종합운동장 하나라는 점이다.

명색이 시민체육공원인데 같이 건립할 예정이던 볼링장과 지하주차장, 보조경기장은 돈이 없다고 짓지도 못했다. 보조경기장이 없으면 전국체전도 열지 못하는 2종 경기장일 뿐이다. 3,000억 원 넘게 들였는데 가장 큰 규모의 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게 소년체전과 경기도민체전 정도다. 경기도 소년들은 아주 복 터졌다. 더 어이가 없는 건 16년 동안 지연된 경기장이 완공됐는데 쓸 일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장 건설에는 3,000억 원을 넘게 썼지만 여기에서 경기를 할 팀은 없다. 물론 이 경기장은 보조경기장도 없어 국제경기도 치를 수 없다. 보조경기장은 여건이 좋아지면 짓겠다고 했지만 아직 뚜렷한 계획도 없다.

그런데 혈세 논란은 이뿐 아니다. 교통 접근성도 좋지 않고 거기에다 이미 근처에 용인경전철 역시 있지만 경기장 앞에 역을 또 신설하겠다고 추진 중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용인경전철에 사업비만 350억 원이 투입되는 시민체육공원역(가칭) 추가 건립 검토에 들어가 또 논란이다. 역과 역의 거리가 900m에 불과한데 이 정도면 전철이라기보다는 마을버스에 가깝다. 여기에 아직 마땅한 수익 시설도 구상하지 못했다. 수익시설 입점이 가능한 곳은 낮은 층고 때문에 수익시설이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용인 A매치
3.128억 원짜리 경기장 주차장이 이 수준이다. 곳곳에는 웅덩이가 있다. ⓒ스포츠니어스
용인 A매치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은 비가 오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페인트로 칠해놨기 때문이다. ⓒ스포츠니어스

이것이 3,218억 원짜리 경기장 ‘클라스’
16년 동안 질질 끌어오며 덜렁 종합경기장 하나 짓는데 3,0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투입했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다. 아직 짓겠다는 보조경기장과 볼링장, 지하주차장은 시작도 안했는데 지금까지 든 공사비가 3,218억 원이다. 경기장 주변은 논과 밭, 산이 어우러져 있다. 애초에 수익성을 생각했을 때 지어지면 안 되는 경기장이었다. 더 화가 나는 사실은 3,218억 원이 든 이 경기장을 통해 개장 첫 해인 지난 해 벌어들인 수익은 6,400만 원 뿐이라는 점이다. 이 수익도 용인시 행사, 기업행사, 입주박람회, 광고촬영, 종교행사 등 대관수입이었다. 오, 할렐루야다. 지난 해 운영비로는 15억 원이 들었다.

그래도 1년 내내 경기를 할 수 있는 축구팀 하나 정도 있었다면 본전은 못 뽑아도 명분은 섰을 것이다. 하지만 용인시는 2017년 1월 1일부로 내셔널리그 용인시청 축구팀을 해체해 버렸다. 1년 예산 20억 원이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경기장을 지어 놓고도 쓸 팀이 없었다. 용인시는 부랴부랴 기존 K리그 팀의 연고 이전을 추진하다가 발각돼 이마저도 유야무야됐다. 경기장이 텅텅 비게 되자 올해 들어 시민구단을 창단해 보겠다며 뒤늦게 일을 추진 중이다. 용인시청의 해체로 축구계와 축구팬들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겨 놓고 이제 와서 돈이 더 많이 드는 시민구단을 추진하겠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것도 연고이전으로 남의 팀을 빼앗아 오려다가 걸려 차선책으로 고려 중일 뿐이다.

아이슬란드전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하면서 자꾸 3,218억 원의 건립 비용이 떠올랐다. 지금껏 여러 경기장을 다녔지만 이 경기장에는 올 일이 없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랄 일의 연속이다. 3,218억 원이 든 이 경기장의 주차장은 자갈밭이었다. 이마저도 곳곳에는 웅덩이가 깊게 패여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데 큰 일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은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 놓았다.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제대로 찾지 못해 난간을 넘고 길이 아닌 언덕을 탔다. 이게 3,218억 원짜리 경기장 ‘클라스’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새 배설물 천지다.

용인 A매치
‘W4-K-334’에 과연 사람이 앉는 날이 올까. ⓒ스포츠니어스

‘W4-K-334’, 다음 생은 대구에서 태어나길
아이슬란드전이 끝나면 다시 이 경기장은 긴 침묵에 빠져들 것이다. 연고이전으로 남의 팀을 빼앗아 와도, 울며 겨자먹기로 시민구단을 창단해도 그들의 진정성에는 의심이 간다. 뭐 아마 당장 지금의 마인드로만 본다면 용인시에서 축구가 흥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경기장 내부는 참 예쁜데 이 경기장만 보면 화가 난다. 애초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경기장이었다. 개장 이후 무려 1년 4개월 만에 첫 경기를 치르고 이후에도 몇 년 동안 경기를 하지 않을 이 경기장은 해외토픽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황당하다.

경기 전 관중석을 둘러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용인에서 한국과 일본의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리거나 용인시민축구단이 창단해 AFC 챔피언스리그 8강쯤 진출하면 2층 구석의 관중석도 채울 수 있을 테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용인시민체육공원 주경기장 2층에 나란히 자리 잡은 의자는 폐기 처분될 때까지 단 한 번이라도 의자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까. 아마 홈팀도 없는 이 외딴 경기장 2층 구석 관중석까지 와 앉아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W4-K-334’ 의자의 운명이 불쌍하다. DGB대구은행파크에 세워졌다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을 텐데. ‘W4-K-334’ 녀석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애는 꼭 DGB대구은행파크 같은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길.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VZ5aH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