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축구의 재미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보통 팬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득점을 하고 승리를 해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득점이 터지지 않더라도 선수들이 매너 있는 경기를 펼친다거나 상대 팬들의 박수를 이끌어내는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축구의 재미를 두 배로 느낄 수 있다.

지난 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구FC의 5라운드 경기에서 대구 선수들은 껄끄럽기로 소문난 인천 원정에서 3-0 완승을 거뒀다. 3-0이라는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만 경기 내용에서도 대구는 인천을 90분 내내 압도했다. 이날 ‘인생경기’를 펼친 김진혁의 두 골, 세징야의 변함없는 활약에 매료된 인천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 대구 선수단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대구는 경기 종료 직전 3-0으로 앞서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며 인천을 압박했다. 인천은 남준재, 김진야, 무고사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한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기에 대구의 집요함은 얄미울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봤던 인천 팬들은 패배를 인정하며 대구에 박수를 보냈다. 대구가 보여준 투지에 대한 존경심이자 눈을 즐겁게 해준 경기력에 대한 화답이었다.

인천 팬들의 존중에 감동한 대구 안드레 감독

홈팬들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을 격파한 상대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대구 선수단 모두와 안드레 감독 역시 그들의 존중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안드레 감독이 “정말 감격적이었다. 축구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다”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상대 팬들도 우리를 존중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안드레 감독은 과거 안양LG에서 뛴 경험이 있기에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천 팬들의 박수는 더욱 가슴에 와 닿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한국 생활을 해봤기에 상대에 대한 존중 문화를 알고 있다. 존중하는 문화가 잘 형성된 것이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힌 것처럼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존중과 관전 매너는 축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천 팬들의 박수에 안드레 감독은 "감동적이었다"라고 표현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 인천과 대구의 경기에서 보여줬던 인천 팬들의 행동처럼 말이다. 최근 정치인들의 불법 유세로 K리그가 큰 타격을 입을 뻔했다. 이 사건을 두고 전북 현대 모라이스 감독은 “신성한 축구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그렇게 말했기에 한국인으로서 매우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인천 팬들이 대구 선수들을 향해 보내준 존중을 보고 지난 불미스러운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인천과 대구 팬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인천 팬들은 대구의 경기력을 인정하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대구 팬들은 부상당한 무고사의 빠른 쾌유를 빌면서 오는 6일에 펼쳐질 인천의 전북 원정 선전을 기원했다.

축구의 아름다움은 팬들에게 달렸다

K리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팬들의 좋은 경기장 매너를 볼 수 있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본 팬들은 콜롬비아와의 H조 1차전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에 남아 응원도구로 사용했던 푸른 비닐봉지를 이용해 경기장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멋진 오버헤드 킥을 성공시키며 유벤투스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호날두는 이를 두고 “내 인생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멋진 장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축구의 아름다움은 팬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수들의 멋진 경기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팬들이 상대를 향해 보내는 존중,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멋진 경기장 매너는 축구의 재미를 두 배가 아닌 그 이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가끔 우리는 축구를 보며 경기 중 열성 팬들이 그라운드에 무단으로 난입해 경기의 흐름을 끊거나 선수들을 향해 이물질과 오물을 던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것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홈, 원정 팬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난달 잉글랜드 2부리그(챔피언십) 아스톤 빌라와 버밍엄 시티의 경기에서 한 팬이 난입해 잭 그릴리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상대팀 선수를 존중하지 못한 팬의 옳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폭행을 당한 그릴리쉬 뿐만 아니라 경기장을 찾았던 팬들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인천 팬들의 박수에 안드레 감독은 "감동적이었다"라고 표현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인천 팬들의 모습, 축구는 아름답다

앞서 말한 몇몇 팬들의 좋지 못한 행동을 되살펴볼 때 이번 인천 팬들이 보여준 존중과 뜨거운 박수가 더욱 돋보였다. 안드레 감독이 말한 것처럼 팬들의 존중 문화는 K리그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선수들은 팬들의 응원을 들으며 경기에 임한다. 특히 상대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게 되면 뿌듯함과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이는 곧 K리그 전체 경기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천 팬들이 보여준 모습이 K리그 전체에 널리 퍼지게 된다면 축구는 정말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K리그가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 투지 없이 뛰는 선수들을 향해 보내는 야유도 반드시 존재해야겠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인종차별적 발언 등 대신 박수와 존중으로 경기장을 가득 메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제 시즌 초반이지만 더 멋진 모습이 나오기 전까지 당분간 이번 대구와 인천의 5라운드를 가장 멋진 경기로 꼽고 싶다. 지루하지 않은 뛰어난 경기력에 팬들의 존중까지 가미된 이번 경기는 축구의 묘미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안드레 감독의 말대로 축구는 아름답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