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경남이 정말 억울한 입장에 놓였다.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징계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프로연맹 경기위원회는 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 지난달 30일 경남FC-대구FC 경기에서 발생했던 자유한국당의 선거 유세와 관련해 경기평가회의를 진행했다.

결론은 ‘징계가 필요하다’였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미루어 볼 때 ‘징계 필요’라는 결론이 나왔을 경우 모두 상벌위원회에 회부됐다. 결국 경남은 사실상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고 징계 수위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경남의 역전승을 묻어버린 자유한국당의 유세

지난달 30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6,000명이 넘는 팬들이 찾았던 창원축구센터엔 팬들의 응원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남FC와 대구FC 선수들의 이름도 아니었다. 김종부와 안드레 감독의 이름 역시 아니었다. 우렁찬 목소리를 외치는 이들은 바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하나원큐 K리그1 2019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펼쳐졌던 지난달 3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당원들이 경기장을 방문해 선거 유세를 벌였다.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많은 팬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단주’ 경남 도지사도 아닌 구단과 상관없는 정치인들이 들어와 갑자기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하며 한 표 부탁드린다고 말을 건네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었던 시간이 지나간 후 경기가 시작됐고 이날 경남은 대구를 상대로 배기종의 두 골에 힘입어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직후에도 많은 경남 팬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경남FC”를 외쳤다. 그런데 간만의 승리가 빛이 바래고 말았다. 힘들게 얻은 승점 3점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구단을 비롯한 경남 팬들은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다녀간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 경남에 대한 징계가 논의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맞이하게 됐다.

경기장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적인 행위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경기장 내 선거 운동 관련 지침에는 경기장 내에서 정당명, 기호 번호 등을 노출된 의상을 착용할 수 없으며 선거인의 모습이 담긴 전단지 배포 역시 금지되어 있다. 구단 또한 정치인의 선거 유세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국내에서만 정해진 것도 아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정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역시 경기장 내 정치 활동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

기호 2번을 상징하는 '브이'까지 선보였다. ⓒ 유튜브 방송 화면 캡쳐

만약 국내 구단이 이 규정을 어기게 되면 연맹은 해당 구단에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또는 무관중 홈경기, 2,000만 원 이상의 벌금 등을 부과하는 중징계를 내릴 수 있다. 물론 경남이 자한당의 출입을 그대로 놔두고 이들이 선거 유세를 펼칠 수 있도록 도우면서 K리그의 흥행을 저해하는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연맹의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법적 책임 묻겠다는 경남과 아무 얘기 없었다는 황교안

그런데 이번 일은 경남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수밖에 없다. 경남은 이번 일을 두고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막무가내로 경기장 내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경남 관계자들은 당원들과 경기장 출입을 관리하는 경호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확인했고 경기장 내에서 유세를 펼치는 당원들을 향해 “경기장 내에서 선거 유세를 할 수 없다”, “정당, 기호 번호가 들어간 옷을 입을 수 없다”, “규정에 위반된 행동이니 그만 하시길 바란다”고 말하며 이들의 유세를 중단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며 거부했다. 경남 측이 “연맹의 규정”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이후로도 경남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경남이 30일에 있을 선거 유세를 앞두고 대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구단 측은 경기 전 연맹으로부터 사전 지침을 전달받았고 경기장 안과 밖에 배치된 직원들 모두 이 부분을 숙지하고 있었다. 경남-대구의 경기가 열리던 당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이 창원축구센터를 찾아 선거 운동을 벌였다. 물론 밖에서 유세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밖에서 유세를 한 후 자리를 떠났지만 자유한국당 만이 막무가내로 경기장 내부에 출입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남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경남은 당원들이 입장권 없이 경기장 내로 출입하려고 했으며 구단이 불명예스러운 징계를 받게 될 경우 연맹 규정을 위반한 후보 측에 경남 도민과 경남FC 팬들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은 물론, 징계 정도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기적인 정치인들에 맞서 최선을 다해 제지했지만 이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팬들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황교안 대표는 “검표원이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아 그대로 들어갔다”며 해명했고 강기윤 후보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측은 연맹에 공문을 보내 “경남FC 및 관계자가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되길 희망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분명 자유한국당 측은 경기장 유세에 앞서 이와 관련한 규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제재를 받았으면 즉시 자리를 떠났어야 했다. “나름대로 경기장 규정 지키려 노력했다”는 황교안 대표의 해명은 경남 팬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자유한국당의 이기적인 유세, 정식으로 사과해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유세를 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다. 그래서 경기장 역시 종종 정치인들의 유세장이 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와 같이 정치인들이 경기장 내부 관중석까지 와 팬들에게 한 표를 부탁한다는 식의 유세는 거의 없었다. 한 방송에 출연한 권종오 SBS스포츠 선임기자가 “28년 동안 스포츠 쪽을 취재해 왔지만 경기장 내 관중석 유세는 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을 계기로 시작된 국내 축구 열기는 올 시즌 K리그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도민구단인 경남은 대구와 함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의 꿈을 이루며 올해 K리그 흥행의 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정치인들의 막무가내 식 유세로 인해 금이 갈 위기에 놓였다. 연맹 역시 매우 곤란할 것이다. 발걸음을 돌렸던 많은 팬들이 이제야 다시 경기장을 찾아오고 있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정치인들의 행동으로 경남에 징계를 내리게 됐다.

연맹 입장에서는 규정에 따라 정치인들의 출입을 제지하지 못한 경남에 징계를 내리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남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을 해왔으므로 이에 맞는 처벌 수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경남은 징계가 내려지게 되면 정식적으로 자유한국당에 징계로 생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자유한국당은 경남에 사과의 의사만 표시했을 뿐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표 하나 얻자고 경남과 K리그의 이미지를 망친 자유한국당은 당시 창원축구센터를 방문했던 황교안 대표, 강기윤 후보자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경남과 K리그 팬들 앞에 서서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해야 한다.

기호 2번을 상징하는 '브이'까지 선보였다. ⓒ 유튜브 방송 화면 캡쳐

억울한 경남,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어떡하나?

경남은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기분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2주간에 걸친 A매치 휴식기 동안 통영 전지훈련까지 가 선수들 모두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까지 가지며 열심히 훈련했다. 그리고 ‘돌풍의 핵’ 대구를 상대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뒀다. 두 골을 넣으며 맹활약 했던 주장 배기종은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을 향해 “우리는 간절함이 부족했다”며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이들이 흘린 땀의 의미가 정치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표 하나로 인해 사라지게 됐다.

그렇게 표가 중요하나. 당연히 정치인 입장에서는 표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표를 얻기 위해 이기적인 방식으로 나서면 안 된다. 오늘날의 선거는 과거처럼 체육관에 모여 치르는 ‘그들만의 선거’가 아니다. 표는 시민들이 던진다. 그리고 정당한 방식으로 직접 발로 뛰는 후보에게 표를 행사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축구와 정치가 100% 별개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막무가내 식,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관되는 것은 축구의 본질을 깎아내리게 된다. 분명히 자유한국당의 행동은 옳지 못했다. 언론과 시민들을 향해 변명을 하는 것보다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경남에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에 금이 갈 위기에 놓은 K리그를 위한 길이다. 다시는 정치를 경기장 내부까지 끌고 오지 않길 바란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