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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아산=조성룡 기자] 재주는 고무열이 부렸고 돈은 김준수가 받았다?

30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아산무궁화와 서울이랜드의 경기에서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물론 이날은 신기한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강풍에 벤치가 뒤집어졌고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우박도 쏟아졌다. 하지만 가장 의아한 장면은 후반 21분에 나왔다. 아산이 서울이랜드 김동철의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 고무열이 골을 성공시키고 나서였다.

고무열은 득점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자꾸만 뒤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 선수가 골 뒷풀이를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하트를 그렸다. 고무열을 포함한 팀 동료들은 옆에서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었다. 정작 골을 넣은 선수는 골 뒷풀이의 조연이 되어 있었고 골과는 상관 없는 선수가 갑자기 골 뒷풀이의 주연이 된 것이다.

알고보니 고무열은 팀 동료이자 동생, 그리고 룸메이트인 김준수를 위해 이 뒷풀이를 준비했다. 김준수는 공교롭게도 30일이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에 김준수는 서울이랜드와의 경기가 잡혀 있었다. 여자친구 대신 22명의 남자들과 몸을 부딪치면서 축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고무열이 "내가 골을 넣으면 뒷풀이로 1,000일을 축하하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명주도 가세했다.

세 사람의 도원결의는 실현됐다. 김준수가 달려와서 큰 하트를 그리는 동안 고무열과 이명주, 김도혁 등은 손으로 '1000'을 그렸다. 다행히도 이 장면은 김준수의 여자친구가 봤다. 그는 자신의 조카와 함께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을 찾아 김준수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비록 골은 고무열이 넣었지만 골 뒷풀이 만큼은 김준수가 주인공이었다. 고무열은 기꺼이 김준수에게 득점의 기쁨을 양보했다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김준수는 여자친구에 대해 "착하고 예쁘고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라면서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 무뚝뚝하다. 그래서 1,000일에도 로맨틱한 이벤트 등을 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고무열과 이명주가 도와줘서 이런 뒷풀이를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30일에는 외박이 없어서 1,001일 째 되는 날인 31일에 외출해 여자친구를 만날 계획이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는 김준수는 사랑꾼이었다.

마지막으로 김준수는 "고무열은 어릴 때부터 10년 넘게 알았던 좋은 형이자 지금의 룸메이트다"라면서 "이런 이벤트를 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무열에게 한 마디를 전했다. "형, 제가 룸메이트니까 형 빨래 제가 더 열심히 해드릴게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릴게요." 고무열의 군 생활은 김준수 덕분에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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