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방송 화면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해 한 K리그 지도자가 사석에서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지 걔네들.” 무슨 이야기냐고 묻자 볼멘 소리가 돌아왔다. “요새 인터넷에서 방송하는 선수 출신들 말이야. 자기들 인기 얻겠다고 대표팀을 아주 뿌리째 흔들고 있어. 자극적으로 말하고 비난하는 게 도를 넘었어. 아니 자기들도 선수를 해봤으면 그런 흔들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텐데도 그래. 실수를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나서서 여론을 선동한다니까.”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 지도자는 작심한 듯 해당 인물들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이천수와 송종국, 다른 게 아니라 틀린 의견이었다

이천수와 송종국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둘은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벤투 감독을 사정없이 비판했다. 정답이 없는 스포츠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건 반갑다. 건전한 토론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잘못된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생겼으면 좋겠다. 이천수와 송종국의 비판적인 발언도 존중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번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다. 앞선 소개한 K리그 지도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건 자극적으로 대표팀을 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지난 26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독설을 내뱉었다. 콜롬비아전에 출전한 조현우와 관련해 “(기회를) 잡으면 뭐하나. 다음 경기는 분명 김승규인데”라며 벤투 감독을 거칠게 비난했다. 이천수는 “벤투는 당연한 축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선수들에게 폭넓게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이 선수다’ 하면 계속해서 의지한다”며 “조현우가 오늘 잘했어도 다음 경기는 무조건 김승규가 뛴다. 누군가 다치지 않으면 기회가 나질 않는다는 얘기”라고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냈다. 송종국은 “월드컵 3개월 전까지는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면서 “주전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면 나머지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다른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라 위험한 수준이다. 잘못된 정보와 그에 따른 일방적인 해석으로 여론을 선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 이렇게 말을 하면 마치 이게 정답인양 인터넷을 떠돌게 된다. 이천수와 송종국의 발언은 정말 위험하다. 그들이 자극적인 발언으로 조회수와 구독자를 얻으면서 대표팀을 궁지로 몰아넣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스스로 자신들이 축구에서 지닌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텐데 경솔해도 너무 경솔했다. 벤투 감독은 이번 2연전에서 선수 기용 문제로 비난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조현우는 과연 푸대접을 당하고 있을까. ⓒ 대한축구협회

과연 조현우는 푸대접 받고 있는가?

이천수는 조현우가 아무리 잘해도 ‘철밥통’ 김승규를 밀어낼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말했다. 벤투 감독이 김승규를 편애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2019 아시안컵을 제외하고 치른 A매치 9경기에서 김승규가 5번 출장했고 조현우도 세 경기나 선발로 나섰다. 김진현은 한 경기에 출장했다. 그나마 김진현이 출장한 경기도 조현우가 부상으로 빠진 경기였다. 이래도 김승규가 벤투 감독의 총애를 받고 조현우는 실력을 보여줘도 만년 벤치 신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벤투 감독은 A매치 2연전이 열릴 때마다 조현우와 김승규를 번갈아 기용하고 있다.

지난 해 9월 7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는 김승규가 선발로 출장했고 나흘 뒤 칠레전에는 김진현이 주전으로 골문을 지켰다. 당시 조현우는 부상 중이었다. 그리고 10월 A매치 2연전에서는 김승규와 조현우가 번갈아 주전으로 경기에 출장했다. 우루과이전 선발은 김승규였고 파나마전 선발은 조현우였다. 또한 지난 해 11월 A매치 2연전에서도 김승규와 조현우는 한 경기씩을 나눠 출장했다. 호주전은 김승규가, 우즈베키스탄전은 조현우가 골문을 지켰다. 그리고 이번 A매치 2연전에서도 김승규와 조현우는 한 경기씩 나란히 경기에 나섰다. 어느 부분에서 벤투 감독이 조현우를 푸대접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김승규가 장염을 앓지만 않았더라면 우즈베키스탄전에도 그가 선발로 출장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는 조현우가 벤투 감독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주장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애초부터 콜롬비아전 선발로 조현우를 낙점했다. 김승규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콜롬비아전 경기를 앞두고 김승규는 정상적으로 몸을 풀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주관대로 A매치 2연전에서 골키퍼를 차례로 기용했다. 이런 식으로 사실이 아닌 추측과 왜곡으로 감독과 대표팀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조현우는 과연 푸대접을 당하고 있을까. ⓒ 대한축구협회

김승규는 과연 못하고 있는가?

또한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골키퍼가 다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자신이 지휘한 15경기 모두 이운재에게만 골문을 맡겼다. 허정무 감독도 이운재를 총애했지만 이후 조광래 감독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정성룡에게 골키퍼 장갑을 넘겼다. 당시 정성룡이 9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이운재가 출장한 경기는 단 한 경기에 그쳤다. 최강희 감독은 김영광을 가장 신뢰했지만 이후 새롭게 부임한 홍명보 감독은 또 다시 정성룡에게 기회를 줬다. 당시 정성룡은 11경기에 나섰고 김승규는 5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렇듯 감독들은 저마다 신뢰하는 골키퍼가 있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부상 당한 이운재를 대신해 수원삼성 차범근 감독은 박호진을 팀의 주전 골키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운재가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차범근 감독은 그래도 박호진을 다시 벤치로 돌려보내지 않고 계속 선발로 썼다. 천하의 이운재가 벤치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오랜 시간 지속됐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단호했다. 경기력이 좋은 박호진을 굳이 다시 후보로 돌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벤투 감독은 대단히 신중하게 오랜 시간 골키퍼를 테스트하고 있는 셈이다. 한 골키퍼를 낙점해 계속 기용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매 경기 테스트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골키퍼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는 감독이 있었을까. 또한 그렇다고 김승규가 경기 도중 무슨 눈에 띄는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벤투 감독이 실력 미달의 골키퍼를 기용하며 조현우를 챙기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난은 온당하겠지만 김승규는 출전한 경기마다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승규가 조현우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면서도 무조건 주전으로 기용되는 선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곤란하다. 이천수의 발언은 김승규와 조현우를 싸움 붙이는 꼴밖에 안 된다. 이천수의 발언으로 김승규는 이제 작은 실수만 해도 벤투 감독의 무한 신뢰를 등에 업은 부조리한 선수로 낙인 찍힐 수 있다.

조현우는 과연 푸대접을 당하고 있을까. ⓒ 대한축구협회

벤투호, 벌써 주전 선수 정해졌다고?

송종국은 “월드컵 3개월 전까지는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면서 “주전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면 나머지 선수들이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이천수는 “골고루 뛰게 좀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강인과 백승호를 기용하지 않았다고 마치 벤투호가 무슨 벌써 주전을 다 정해놓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대단히 위험하다. 이번 2연전에 출전한 선수는 총 19명이다. 1차전 볼리비아전 이후 2차전 콜롬비아전에는 무려 6명의 선수가 선발 명단에서 달라졌다. 벤투 감독은 이 두 경기를 통해 많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전술 실험을 했다.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전술이나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대신 한 명의 중앙 미드필더만 운용하는 것도 새로운 실험이었다.

김민재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권경원과 김영권을 번갈아 썼고 투톱 역시 손흥민과 함께 할 선수로 지동원과 황의조를 바꿔 투입했다. 이번 2연전에서 측면 미드필더는 아예 모두 바꿨다. 볼리비아전에는 나상호와 권창훈이 나섰고 콜롬비아전에서는 이재성과 이청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경기에 나서지 않은 선수는 골키퍼 구성윤을 비롯해 최철순과 박지수, 김정민, 백승호, 이강인 등 6명 뿐이었다. 이강인과 백승호를 보고 싶지 않은 팬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선수가 출장하지 않는다고 마치 대표팀이 벌써 ‘고인물’ 천지라고 여기면 안 된다. 백승호와 이강인이 나오지 않았을 뿐 벤투호는 여전히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고 하고 있다.

누구든 대표팀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천수와 송종국은 비판하는 방식이 잘못됐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말하며 자극적인 흔들기를 하는 건 대표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조현우나 백승호, 이강인의 장점을 쭉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오히려 선배 축구인으로서 해야 할 일 아닐까. 조현우의 기용을 주장하기 위해 김승규를 ‘철밥통’으로 묘사하고 백승호와 이강인이 보고 싶다고 그를 기용하지 않는 감독을 무능하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만약 대표팀 감독이 박항서나 허정무 감독이었도 이들은 “(기회를) 잡으면 뭐하나. 다음 경기는 분명 김승규인데”, “월드컵 3개월 전까지는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대놓고 이렇게 자극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이천수와 송종국, 존경 받는 축구인이길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김승규가 나오면 조현우가 보고 싶다고 하고 조현우가 나오면 구성윤에게는 왜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하면 된다. 백승호가 나오면 앞으로는 이강인을 써야 한다고 하고 이강인이 출장하면 김정민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된다. 나올 만한 인물이 다 나오면 어디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유망주 이야기를 또 꺼내면 된다. 그러면 여론을 적당히 흔들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둔갑시켜서는 안 되고 이천수와 송종국 같은 영향력 있는 축구인이라면 더더욱 이런 문제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이천수와 송종국 등 한국 축구 영웅들이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

그들이 한 건 비판이 아닌 비난이었다. 나 역시 벤투 감독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흑역사’로 생각하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했지만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에서도 실패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비판을 하려거든 적어도 합리적인 선에서 하려고 한다.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표팀을 흔드는 건 한국 축구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천수와 송종국이라면 누구보다도 선수들과 대표팀의 입장을 잘 이해할 텐데 이번 발언은 너무 경솔했다. 앞서 소개한 K리그 지도자의 말처럼 나는 그들이 자극적인 언행으로 조회수와 구독자수에 목숨을 거는 유튜버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들은 존경 받는 축구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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