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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파주=김현회 기자] “볼리비아? 어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27일 파주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9 KEB하나은행 FA컵 3라운드 파주시민축구단과 아주대학교의 경기를 앞두고 만난 아주대 하석주 감독은 이 경기를 부담 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팔팔한 놈들 4~%명을 넣었다”면서 “부상에서 회복 중인 선수들과 아직 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FA컵도 중요하지만 4월에 개막하는 U리그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U리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석주 감독은 “오늘 경기는 전력을 가다듬는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면서 “K3리그 팀 중에는 대학 수준을 뛰어넘는 팀들도 있고 대학 팀과 비슷한 경기력의 팀들도 있다. K3리그 하위권 팀들은 대학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파주는 대학 팀들보다는 수준이 더 있다”고 평했다. 그는 대화를 나누다 파주에서 뛰는 옛 제자가 인사를 하러 오자 “살살해. 너무 많이 넣지마”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여유 있던 하석주 감독은 볼리비아 이야기가 나오자 손사레를 쳤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 22일 볼리비아와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평가전을 치르면서 다시 한 번 하석주 감독이 회자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볼리비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 팀이다. 물론 즐거운 기억이었으면 좋겠지만 하석주 감독에게 볼리비아는 절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남긴 팀이었다.

하석주 감독은 1994년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 당시 통한의 왼발 슈팅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당시 한국의 월드컵 첫 승 제물로 꼽혔던 볼리비아를 만난 한국은 0-0으로 맞선 후반 48분 완벽한 기회를 맞았다. 황선홍의 힐패스를 이어 받아 하석주가 골키퍼와 결정적인 일대일 기회를 잡았지만 그가 날린 회심의 왼발 슈팅은 골키퍼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만약 이 골이 들어갔더라면 한국의 월드컵 도전 역사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볼리비아와 0-0으로 비긴 한국은 월드컵 첫 승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볼리비아전 당시 부진했던 황선홍 못지 않게 일대일 기회를 놓친 하석주에 대한 비난도 거셌다.당시 코치로 대회에 참가했던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방만 터지면 이길 수 있었다. 흐름이 매우 좋았다. 선홍이의 힐패스 석주의 왼발 슈팅이 나왔을 때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석주 감독에게 볼리비아전은 늘 악몽으로 남아 있다. 25년이 지났지만 볼리비아전 그 슈팅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런 하석주 감독에게 25년 후 후배들의 볼리비아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석주 감독은 “우리가 볼리비아하고 2무승부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평가전을 치렀다”면서 “이번 볼리비아전도 일방적인 경기를 했지만 골이 잘 안 터졌다. 내가 1994년에 그 슈팅을 넣었으면 후배들이 더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웃었다. 하석주 감독은 “그래도 평가전이었으니 결과보다는 과정을 따져야 하는 경기였다”면서 “경기력은 좋았다”고 평가했다.

하석주 감독은 이날 경기를 지인들과 식당에서 지켜봤다. 볼리비아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 하석주 감독으로서는 25년 전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만한 경기였다. 하석주 감독은 “볼리비아하고 멕시코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면서 “요즘도 그 당시 상황이 자주 떠오른다. 어떻게 그 두 장면을 잊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대중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멕시코전 득점과 퇴장을 동시에 기록한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이 경기 못지 않게 볼리비아전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듯했다.

하석주 감독은 “사람들이 나의 멕시코전만 기억한다. 볼리비아전 그 슈팅은 정말 오래된 축구팬이 아니면 잘 모른다”면서 “하지만 나에게는 볼리비아전 슈팅도 악몽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석주 감독은 “그날 식당에서 같이 축구를 본 지인들도 내가 볼리비아전에서 완벽한 기회를 놓쳤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혹시 지인들에게 그 슈팅 이야기를 했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가 웃으며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그걸 굳이 뭐하러 이야기해. 그냥 나하고 상관없는 팀 경기 보듯이 얌전히 봤지. 어휴, 볼리비아하고 멕시코는 나라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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