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에서 황희찬과 보여줬던 기성용 쾌유 세리머니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서울월드컵경기장=홍인택 기자] 황인범은 '기성용 바라기'였다. 누가 뭐래도 황인범에게는 기성용이 '갓'성용이었다. 이제 기성용은 은퇴했고 황인범은 기성용의 빈자리를 채울 자원으로 꼽힌다. 기성용만 쫓아다니던 황인범은 순식간에 형이 됐다.

황인범은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초청 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공격을 풀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4-1-3-2의 투 톱 바로 밑에 위치하며 전방으로 패스를 뿌렸고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역습을 막아내기도 했다. 수비할 때는 정우영과 함께 수비라인을 보호하며 실점을 막아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비록 공격 포인트는 없었지만 벤투호의 새로운 전술에서 황인범의 위치는 손흥민의 최전방 배치만큼이나 중요했다. 기성용이 은퇴한 현재 기성용의 빈자리를 채울 자원으로도 꼽혔지만 그는 기성용보다 좀 더 전진된 위치에서 플레이를 펼치며 전술에 다양성을 부여했다.

경기를 마친 황인범은 "진짜 어려운 경기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형들이 경기하면서 최대한 '버티자. 그러면 기회도 생길 거다. 이기는 경기하자'라는 말을 계속 안에서 했다. 경기 내용은 후반전에 많이 밀렸지만 강팀을 상대로 결과를 갖고 올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경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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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은 이제 대전이 아닌 캐나다 밴쿠버에서 날아와야 한다. 직접 경험해 보니 형들의 존재가 더욱 커졌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경기했는데 정말 힘들더라. 근육 면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더 유럽에서 활동하는 형들, 지금 현역이 아니더라도 은퇴하신 선배님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황인범은 "작년 아시안게임부터 지금까지 많은 걸 느끼고 있다. 부족한 점들이 역시나 많이 나왔다. 경기마다 느끼는 게 요즘 너무 많다. (이)청용이형하고도 둘이 했던 얘기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청용이형도 '잘하고 있는 거다. 지금처럼 관리 잘하고 성실하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다'라고 조언해주셨다"라며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황인범은 자신이 그렇게 존경하던 기성용의 빈자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처음 명단이 발표되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구)자철이형, (기)성용이형 없는 게 뭔가 크더라"라며 "어떻게 보면 다른 선수들도 책임감을 느꼈을 거고 걱정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결과로만 봤을 때는 두 경기를 잘 치렀다"라고 전했다.

이어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지구를 돌아도 성용이형 같은 선수를 찾을 수는 없을 거다. 저나 다른 선수들이 서로의 장점을 더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훈련한다면 성용이형의 빈자리를 조금씩이라도 채울 수 있지 않을까"라며 그의 빈자리를 전했다.

그는 여전히 기성용 바라기다. 황인범은 "첫 경기 끝나고 성용이형이 '고생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여전히 너무 큰 힘이 되는 형이고 나에겐 특히 더 큰 힘이 된다. 너무 감사한 형이다. 가끔 주눅 들 때 형들의 한마디, (손)흥민이형, (황)의조형, (김)영권이형처럼 베테랑 형들이 해주는 말 한마디가 힘이 된다. 형들한테 너무 고맙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팀에서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게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형들이 도와주셨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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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군대에 입대했고, 또 어린 나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을 받은 황인범이다. 여전히 그는 어리다. 한국 나이로는 24세, 만으로는 22세로 아직은 형들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선수다. 그런 황인범이 어느새 대표팀에서 형 노릇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백승호, 이승우, 이강인이 대표팀에 차출됐기 때문이다.

황인범은 "(이)강인이나 (백)승호나 제가 만약 그 나이대에 대표팀에 왔다면 보여주지 못할 거 같은 모습을 보여주더라. 확실히 외국에서 배운 선수들만의 장점이 확실히 있다는 걸 느꼈다"라며 "많은 팬들이 강인이와 승호를 기다리고 계신 걸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다. 누구보다 강인이와 승호가 경기에 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다"라며 동생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한 느낌을 전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저랑 같은 위치인 선수들이다. 서로가 노력하고 발전하고 경쟁한다면 저는 제가 안 나가더라도 누가 나가든 한국 축구가 발전적으로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동생들 덕에 동기부여가 된다. 서로 좋은 자극제, 좋은 선후배가 됐으면 좋겠다.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황인범은 그러면서 "제가 나이가 많지만"이라며 "어린 선수들과 처음 만나면서 많은 기대를 하면서 대표팀에 들어왔고 제가 갖고 있지 못한 점을 갖고 있는 걸 봤다. 그런 점들은 배우고 싶다. 제 장점으로 갖고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동생들은 내가 더 노력하게끔 해주는 선수들이다"라고 말했다.

황인범은 이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황인범은 MLS 무대를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는 무대"라고 표현했다. 어린 선수이기에 형들만 쫓아다녔던 황인범은 매우 짧은 시간에 형이 됐다. 황인범은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더 채우려고 한다. 그에게 기성용이 '갓'성용이었던 것처럼 황인범도 동생들에게 '갓'인범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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