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김도훈 감독 “섹시하다고? 아내의 코디 덕분”


[스포츠니어스|울산=조성룡 기자] 어느덧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는 5년차 감독이 되어 있었다. 울산현대 김도훈 감독 이야기다.

사실 현장에서 김도훈 감독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경기 전에는 진지하게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경기 후에는 열정을 다 쏟아붓고 난 감독의 모습이다. 그만큼 웃는 표정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평소에 그는 정장을 입는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미지다. 안경까지 착용한 그는 지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스포츠니어스>는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김도훈 감독과 마주앉았다. 그는 정장 대신 구단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났다. 날카로운, 어찌보면 섹시함이 묻어나오는 감독은 푸근한 아저씨로 변신해 있었다. 하지만 여전한 잘생김은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가릴 수 없다. 김도훈 감독과 시종일관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그의 위트와 축구 철학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김도훈 감독과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 선수 김도훈의 세 가지 추억

벌써 선수 은퇴한지 14년이 지났다. 이제는 ‘선수 김도훈’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졌고.
글쎄… 저기 구글이나 네이버에 내 이름 치면 안나오나? 하하. 아니다. 세월이 오래 흘렀으니 내 이야기가 다 지워졌을 수도 있겠다. 선수 시절 나는 그래도 세 경기에 한 골은 넣었던 공격수로 기억한다. 우리 팀에서는 지금 주니오가 그런 모습을 좀 보여주고 있고 나중에는 주민규가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돌아보면 무엇보다 피지컬을 이용해서 축구했던 선수라고 기억한다. 그래도 나름 축구선수로는 공 없을 때 움직임도 괜찮았고 특히 위치선정이 좋았던 것 같다. 뭐 좋게 말해야 위치선정이 좋은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재수가 좋은 공격수? 주워먹기에 능한 선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선수 김도훈의 강렬한 기억은 1999년 브라질전 골과 2003년 MVP 아니겠는가.
에이, 하나 더 있다. 너무 두 개만 이야기하시면 안된다. 1994년이다. 인상 깊은 골을 꼽자면 두 골이다. 1994년과 1999년이다. 1994년에 나는 프로에 입성하기 전 상무에서 뛰고 있었다. 그 때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경기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었다. (김도훈은 1994년 9월 13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전에서 득점했다. 이 골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A매치 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꼽힌다)

1999년 브라질전 골은 인생골이었다. 주위 팬들이나 날 아는 분들은 1999년 브라질전 골을 기억한다. 사실 내가 K리그에서 100골 넘게 넣었는데 다들 브라질전 골만 안다. 하하. 나는 그 브라질전 골로 20년 동안 먹고 살았던 것 같다. (1999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김도훈은 후반 막판 극적인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브라질 상대 승리의 쾌거를 올렸다)

아직도 브라질전 승리는 다들 신기해 한다.
뭐 얼마 전 우리나라와 볼리비아의 평가전을 생각하면 된다. 대한민국이 브라질이었고 볼리비아가 우리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경기 결과였다. 우리나라가 볼리비아를 상대하는 것처럼 브라질이 우리를 계속 몰아쳤다. 그런데 우리가 한 골 넣은 거다. 나는 당시 J리그에서 ‘용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브라질전에서는 선발로 나서지 않고 교체 멤버였다.

그 때 나는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허정무 감독이 경기 10분인가 15분 남겨놓고 투입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터치라인 밖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공이 밖으로 안나가더라. 정확히는 3분 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체감 시간은 5분 넘게 느껴졌다. 뛸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으니 공 잡으면 골문만 보고 슈팅하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기회가 왔고 골을 넣었다.

그 당시에는 대표팀 선수들이 해외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주로 일본 같은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브라질과 같은 강팀, 그리고 유명한 선수들과 만나서 경기하는 것이 큰 기회였다. 그 브라질전도 나이키 투어의 일환으로 성사됐으니 망정이지 그런 팀과 경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홈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질 거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브라질도 잡았고 마라도나 팀(보카 주니어스, 1995년 방한했고 우리나라가 1-2로 패했다)과도 대등하게 경기했다. 자신감이 있었다.

그 때 브라질 멤버들도 화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히바우두 있었고 로베르토 카를로스 있었고…카푸, 제 호베르투 있었지. 호나우두 빼고 정예 멤버들이 왔다.

그 다음 하이라이트가 2003년이다.
이 한 해는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축구선수로 꽃을 피웠던 해였다. 지금까지는 골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2003년은 한 해를 통째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 때 성남일화에 있었다. 성남이 정말 화려했다. 2003년에 내가 MVP를 받았지만 사실 숟가락만 얹은 거고 기존 멤버들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연패를 하던 시기였다. 그 선수들의 면면도 화려했고 성적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연초부터 로또에 당첨되면서 연말 마지막 MVP까지 좋은 일이 많았다.

ⓒ 성남일화

맞다. 로또 3등 당첨되서 기부도 하고 그러지 않았는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가?

최근에 <스포츠니어스> 팟캐스트 ‘조축개축’에서 로또 사연을 소개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나는 사실 2등이라고 알고 있었다. 행운의 수 제외하고 하나 틀렸다. 순천으로 동계 전지훈련을 갔을 때 선수들끼리 로또를 좀 했다. 매주 후배 김우재가 선수들에게 만원씩 걷어서 사왔다. 그 때는 한 게임에 2,000원이었으니 다섯 게임을 산 거다. 번호 찍고 그런 것도 없었다. 자동식으로 일괄적으로 뽑아와서 나눠줬다. 나는 그 종이를 받고 로또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추첨한 다음날 훈련 나가기 전에 TV를 보고 있었다. 하필 TV에서 로또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차, 내가 로또 샀지?’하고 종이를 꺼내서 봤다. 번호를 맞춰보는데 그 영화에서 복권 당첨되는 장면 나오지 않나. 눈이 점점 동그래지면서 동공이 확장되는 걸 느꼈다. “우왘ㅋㅋㅋ” 했다. 그 때만 해도 내가 벼락부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당첨금은 잘 몰랐으니까.

당첨금을 수령하러 국민은행에 갔는데 그 때까지 설렜다. 그런데 막상 당첨금을 받으니 얼마 되지 않는 거다. 하필 그 회차에 1등이 많아서 1등 당첨자들이 몇 억원 씩 나눠 갖고 3등은 88만원 나왔다. 여기에 제세공과금을 떼니 내 손에는 약 66만원 정도 쥐어지는 거다.

그런데 또 옆에서 성남 동료들이 “복돈은 빨리 써야한다”라고 재촉하더라. 그래서 선수들에게 양말 하나씩 돌리고 내 사비 얹어서 그 당시 발생했던 대구지하철참사에 기부했다. 당첨금에 비해 내 사비만 거의 두 배 썼다. 그 때 나눔이라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복돈은 빨리 써야한다’는 것에는 의문이다. 그럼 1등 당첨자는 도대체 어떻게 빨리 쓸 수 있을까?

나눔의 기쁨을 알았으니 그라운드에서도 도움 많이 했는가.
내가 골을 많이 넣어서 그렇지 K리그에서 도움도 통산 41개 했다. 이래보여도 40-40 클럽 가입자다. K리그 통산 114골 41도움이다.

여튼 2003년은 김도훈과 성남일화가 전설을 썼던 한 해였다.
최근 최강희 감독님 계실 때의 전북현대 모습이 당시 성남일화라고 생각하면 쉽다. 경기에 나가면 당연히 이기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골을 먹으면 ‘공격수가 넣어줄 거야’라고 믿고 골을 넣으면 ‘이제 수비수가 막아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 팀은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었고 당연히 우승을 해야 하는 팀이었다. 전폭적인 지원도 많이 받았다.

당시 외국인 선수들도 화려했다.
샤샤, 데니스(이성남), 이리네가 있었다. 은퇴 후에도 데니스는 꽤 자주 봤다. 내가 코치를 할 때 강원FC에서도 뛰었다. 잠깐 강원에서 뛰다가 수원삼성에 코치로 임명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에서 어느 팀 감독을 맡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궁금하긴 하다. 그래도 다들 축구를 통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성남일화의 전설은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 아니었는가?
맞다. 故문선명 총재 그 분 덕분에 성남일화가 존재하고 우승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분이 워낙 축구를 사랑하니까 이런 팀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축구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런 팀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성남일화라는 팀은 한 명이 내린 의사결정에 의해서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구조 아닌가. 요즘 기업이나 시도민구단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성남일화는 ‘전설’이었다 ⓒ 성남일화

보너스도 많이 받았고 해외여행도 자주 갔다. 가족이나 아내, 미혼이면 여자친구 동반해서 가고 그랬다. 그런데 나는 해외여행을 다른 일정 때문에 못갔다. 내 선배들은 다 한 번씩 가봤더라. 코치로 우승했을 때도 해외에 따로 연수를 가야해서 못갔다. 좀 아쉽긴 하지만 가본 사람들 말로는 해외여행이 말이 해외여행이지 수학여행 수준이라더라. 일정이 엄청 빡빡해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강행군을 했다고 하더라. 그래도 좋은 곳은 다 갔더라. 뉴욕 가서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쌍둥이 빌딩도 갔다고 하더라.

최근 성남FC가 성남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하더라.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성남이 얼마 전에 수원과 경기하는 걸 봤다. 그 경기를 보다가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모란’에서 경기하는데 운동장 구석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경기 중에 그 앰뷸런스가 움직이더라. 그라운드 안에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서 ‘뭐지?’ 했는데 알고보니 한 아저씨가 술 취해서 난간에 매달려 소리 지르다가 아래로 떨어졌더라.

당시 ‘모란’은 경기장에 좌판 깔려서 술 한 잔 하고 그런 문화가 있었다. 술 드시고 소리 지르면서 스트레스 해소했던 곳이었다. 사실 구시가지라 불리는 성남 그 동네가 많이 힘든 분들이 오셔서(광주대단지사건) 일궈낸 곳 아닌가. 그런 분들이 모이셨기에 경기장 안에는 서로 끈끈한 정이나 강한 승부욕이라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선수들 중 감독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많다. 윤정환, 신태용, 김현수, 김대의, 박남열 등 대부분이 지도자로 성공적인 삶을 보내고 있다. 서로 일하다보니 바빠서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만나면 또 서로 그 때를 함께 추억한다. 선수 시절에도 다들 지도자로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성남 선수들의 자세가 감독의 자질에 잘 맞기 때문이었다.

성남에서는 선수들이 모두 책임감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바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다. 물론 몇 명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감독이나 코치 등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동료들을 여전히 응원하고 있고 항상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2. ‘좌충우돌’ 감독 김도훈의 성장은 현재진행형

은퇴 이후 코치 생활을 거쳐 첫 감독 지휘봉을 인천유나이티드에서 잡았다.
정말 초보 감독이었기 때문에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고 불안함도 많았다. 막상 감독이 되고 싶다고 꿈꾸다가 실제로 되니까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많이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인천에 부임했을 때 시민구단의 아쉬운 환경을 접하니까 내 이상을 실현시키기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이 막강하던 성남일화에서 선수 시절을 하다가 시민구단에 와보니 열악한 부분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동계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감 또한 생기기도 했다.

코치 시절 도민구단 강원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도민구단과 시민구단이 또 다르다. 하하. 그래도 인천은 가지고 있는 인프라 등이 굉장히 좋은 곳이다. 시민구단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구단이다. 나도 당시 인천의 선택을 받았을 때는 초보 감독이기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를 선택한 분들도 초보 감독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초보에게 팀을 맡겼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다려주는 부분들도 좀 있었다.

그래도 나를 선택해준 분들은 ‘잘 되겠지, 그래도 김도훈이니까’라는 기대감을 가지셨던 것 같다. 감사하다. 그래서 ‘선수 때 경력 때문에 감독이 된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서 그런 시선들을 조금씩 바꿨던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인천 감독 시절 2015 시즌 성남전에서 상위스플릿이 좌절된 이후 기자회견에서 했던 오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조수혁이 부상 당하고 울어서 나도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조수혁이 그 놈 나한테 잘해야 하는데…

지금 같이 한솥밥 먹고 있지 않은가, 요즘 잘 못하는가?
아니다. (조)수혁이가 여기서 정말 잘하고 있다. 돌아보면 내가 목표로 세웠던 상위스플릿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목표라 생각했고 조기에 상위스플릿을 확정지을 수도 있었지만 몇 경기 잘못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목표 좌절에 대해 화가 나있는 상황에서 조수혁이 다쳐서 나오더라. 그리고 라커룸에서 울더라. 기자회견 전에 달래주고 회견장에 나왔다.

나는 조수혁이 노력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부상을 당해봤기 때문에 조수혁이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 조수혁이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쉽지 않겠는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내가 오열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짧게 토해낸 것이다. 갑자기 확 올라왔다. 그게 소개되고 나서 가족들이 많이 놀리더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좀 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알아서 조심하더라. 하하. 그런데 왜 자꾸 눈물 이야기만 하는가. 다른 좋은 이야기도 소개할 게 있다.

뭔가?
늑대축구.

당시에 부주장 김도혁(아산무궁화)이 늑대축구에 대해 너무 얘기하고 다녔다.
김도혁도 잘 살 거다. 그 친구 사회를 참 잘 안다.

솔직히 궁금한 점은 있다. 늑대축구는 원래 하고 싶었던 김도훈의 축구인가, 아니면 인천에 맞춘 현실적 선택인가?
당시 비시즌마다 독일 등 해외를 한 번씩 갔다. 그러면서 압박하는 속도나 라인을 올리고 컴팩트하게 축구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압박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지점이 중요하다. 게겐 프레싱으로 대표되는 전방 압박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체력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어느 한 지점에서 압박을 시작했을 때는 같이 가서 압박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축구를 이식하려고 하다가 나온 브랜드가 바로 늑대축구였다.

100% 늑대의 모습을 축구에 이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에게 맞는 축구를 하려고 했다. 늑대의 모습을 축구에 이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축구가 늑대와 비슷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늑대축구의 핵심은 전방 압박의 타이밍과 지점이었다.

원래 내가 하고 싶은 축구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런데 하필 인천에는 늑대축구가 꼭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야지 이 팀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 인천에 제법 경력 있는 선수는 설기현과 이천수가 전부였다. 다른 선수들은 정말 힘들게 선수 생활을 하거나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하고 기회도 잘 못받았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것을 자극시키면 정말 절실하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이천수가 이제는 인천의 전력강화실장이다. 선임 당시 세간의 시선은 의문부호가 좀 있었다.
하하. 세간의 시선은 이해할 수 있다. 의아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이천수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천수는 사회를 안다. 사회를 알기 때문에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력강화실장이 꼭 축구만 강화하라는 법은 없다. 두루두루 구단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축구를 잘했던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보는 눈이 좀 다르다. 내가 볼 때 이천수는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예전처럼 사고 안치고 겸손하면 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과거 김도훈 감독과 이천수는 인천에서 함께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나름 ‘악동’ 이미지가 있던 이천수 아닌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닌 것 같다.
내가 인천에 있을 때 (이)천수는 열심히 잘 했다. 나 또한 이천수를 관리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이천수를 잘 안다. 자세한 내용은 영업기밀이다.

그리고 나서 당신의 다음 행선지는 울산이었다. 유니폼 색깔만 비슷하지 많은 것이 다른 팀이다.
아직도 고민이 많다. 인천에서는 팀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면서 “늑대축구!”를 외쳤다. 하지만 여기는 또 다른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부분이 좀 힘들었다. 아직까지도 팀의 발전을 위해 많은 도전과 생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내가 인천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쉬고 있을 때 백수인 나를 불러준 것 하나 만으로도 고마웠다. 내가 늑대축구라는 브랜드를 한 번 선보였기 때문에 좋게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울산에 처음 왔을 때 ‘늑대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늑대가 어떤 동물인가. 호랑이 잡는 게 바로 늑대다. 늑대축구를 표방하는 내가 호랑이굴에 들어온 셈이다. ‘야 이거 어떻게 하나’ 싶더라. 결국 늑대축구를 호랑이축구로 바꿔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축구를 울산이라는 훌륭한 팀의 수준과 전통에 맞게 해야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숙제다.

내가 울산에 있는 동안 이 팀이 축구를 하면서 선수들이 축구에 대한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성적을 내고 우승을 하면서 팬들에게 받는 사랑과 여러가지 혜택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즐거움을 우리 선수들이 다 경험하면 좋을 것 같다.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 처음 실감나던가?
부임 하자마자 실감나더라. 부임 확정 이후 단장님을 뵈러 서울에서 울산으로 가야하는데 구단 실장님이 집 앞에 차량을 대기시켜놓고 나를 태워주시더라. ‘이게 현대구나’ 싶더라. 사실 인천에서는 처음 부임했을 때 내가 직접 운전해서 인천까지 갔다. 하하. 게다가 울산이라는 구단과 현대라는 기업은 학성고에 다니던 시절부터 워낙 접했기 때문에 굉장히 설렜던 것 같다.

그리고 울산 감독으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패션 센스도 더욱 남달라졌다. 섹도ㅅ…
거 참. 사실 이 패션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부분이 있다. 인천에서 감독하던 시절 반바지는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초보 감독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반바지 입고 벤치에 앉았지 이제는 입으라 그래도 못한다. 패션 센스나 섹시하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좋게 봐주시는 부분이기 때문에 감사하지만 너무 거기에 도취되지는 않으려고 한다. 감독이 축구 잘한다고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지 외적인 부분이 더 많이 나오면 아무래도 불편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앞으로는 볼 수 없는 반바지 패션 ⓒ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그래도 패션 센스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밖에 없다. 비결이 뭔가?
집에서 아내가 코디해준다. 꼭 아내가 해준다고 그렇게 부각 시켜달라.

아내가 집에 같이 있으니까 내 몸을 잘 알지 않겠는가. 내 몸이라는 것이 완벽하지 않다. 비율이 그저 남들보다 조금 좋아보이는 것이지 흠도 있고 단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그런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코디해주고 있다.

그래도 내가 몸을 잘 갖췄다는 자부심은 있다. 아무래도 운동했던 몸이니까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 몸 관리를 조금씩 해야한다. 어깨가 배로 주르륵 내려오고 있다.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바빠서 운동을 많이 못하고 있지만 조금씩 하고 있다.

건강 관리 만큼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주로 잔다. 잠이 안와도 자야한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몇 시간이 힘들다. 비교적 경기 내용이 좋거나 승리하면 조금 낫다. 하지만 경기력이 좋지 않아 속칭 ‘뚜껑이 열리는’ 상황이 되면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설 정도로 힘들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복기도 많이 하지 않는다. 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심하게 힘들 때는 하루 정도 축구 생각을 아예 안한다. 가족이 와 있으면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운동을 하면서 땀을 낸다. 취미로 골프를 많이 하는데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잘 못한다. 너무 스트레스 받을 때는 ‘골프 좀 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붓글씨나 국선도를 통해 집중력을 키우고 잡념을 없애려고 한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축구에 집중했다가 잠깐 축구를 벗어나 일탈을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 말에 믹스가 져주는 ‘접대 골프’도 함께 했던 것인가. 믹스는 당신에게 일부러 골프를 져 줬다고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믹스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백날 그렇게 얘기하라고 해라. 믹스는 계속 질 거다. 나는 골프에 대해서는 믹스에게 절대 무섭지 않다. 그런데 믹스가 정말 골프를 잘 하기는 한다. 선수 중에서는 믹스가 골프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한다.

부임 때부터 선수들에게는 비교적 골프를 권장하는 편이다. 만일 골프가 취미인 선수가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내가 다 비용을 내더라도 같이 골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예전에는 골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축구선수들이 숨어서 골프 연습을 했고 구단에서도 ‘골프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골프가 보편화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충분히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골프는 스포츠나 운동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라운딩을 하면서 함께 여러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물론 첫 번째는 축구가 되어야 한다. 축구에 대한 집중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축구 하나 때문에 나와 선수들에게 구단에서 투자를 하고 기업이 자본을 끌어모으는 것 아닌가. 공인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해야한다. 여기서 공인은 ‘공 차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다.

축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골프 뿐 아니라 선수 자신의 생활은 해야한다. 선수들과 시간 나면 골프 한 번 즐기면 좋을텐데 선수들은 감독과의 자리가 불편할 것 같다. 분위기 좋고 여유가 있으면 한 번 추진할 생각이다.

불편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보니 선수들이 당신을 무서워하는가?
에이, 그렇지는 않다. 나와 대화할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렇지 막상 다가오면 와서 할 말은 다 하고 간다. 특히 김인성은 인천 시절부터 나와 5년을 함께 있었다고 먼저 다가오고 그런다. 박주호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도 한계가 있다. 나도 선수 시절이 있으니 안다. 아무리 편한 지도자여도 코치에게 대하는 것은 다르고 감독은 또 다르다. 생각해보니 내가 벤치에서 계속 째려보고 있으니 더 못다가오나?

그래도 ‘나은이 아빠’ 박주호는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은이가 정말 예쁘다.

요즘 박주호의 인기가 ‘슈돌’로 높지만 선수 시절 당신도 만만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니다. 나는 잠깐 반짝 인기 있었던 선수지. 축구인들끼리는 잘 알아도 일반인과 있으면 김도훈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브라질전 골 하나로 20년 해먹었다고. 박주호는 그에 비해서 전국구 스타다. 물론 자식을 담보로 인기를 얻었… 하하. 농담이다. 그만큼 박주호와 나은이는 정말 많이 유명해졌다. 나도 보기 좋다.

김도훈 감독도 좋아하는 나은이 ⓒ 한국프로축구연맹

내 지인들도 나를 만나면 나나 박주호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은이 얘기를 더 많이 한다. 다들 ‘나은이 봤어? 나은이 어떻게 한 번 만날 수 없어?’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 중에 드물게 ‘박주호 사인 한 장만 받아다 줘’라는 청탁이 들어온다. 그만큼 나은이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외모도 귀엽고 이미지 자체가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도 나은이 팬이다. 정말 좋다.

차라리 박주호는 유니폼에 ‘나은이 아빠’라고 마킹하는 것이 낫겠다.
(옆에 앉은 구단 직원에게) 좋은데? 그거 한 번 해봐라. 박주호 대신에 ‘나은이 아빠’로 마킹해보자. 유니폼 한정판매도 추진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허락한다.

기대하겠다. 올 시즌 초반 흐름은 어떤가?
만족한다. 그래도 지난해보다 낫지 않은가. 지난 시즌에는 4패를 하고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과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 특히 새로 온 선수들이 모난 사람 하나 없이 모두 팀에 헌신하려고 하는 선수들이라 그 부분에서 가장 만족하고 있다. 이런 팀은 언젠가 탄력을 한 번 받기만 하면 계속해서 끈끈하게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선수단을 운영하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선수들끼리 잘 어울리도록 분위기 만드는 역할만 잘 하면 될 것 같다.

‘대항마’ 이야기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좀 있다.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대항마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건 아닌데. 한 쪽으로 나를 몰아가는데’라는 걱정이 순간 들더라. 하하. 하지만 팀이 대항마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커리어나 실력을 봤을 때 울산이 견제를 받는 팀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부담감도 느꼈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 믿고 한 번 해보면 좋은 결과가 오지 않을까?

선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항마라는 이야기에 부담감을 느끼지 말고 그렇게 되도록 하자고 말한다. ‘나는 될 거야.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처럼 대항마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대항마가 되도록 우리가 더 노력을 하면 될 것 같다.

선수들을 향한 기대도 있지만 감독을 향한 기대감도 있기에 ‘대항마’라고 하는 것 아닐까?
그건 과찬이다. 나는 이제 5년차 감독이다. 나도 매년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더 노력해야 한다. ‘대항마’ 소리를 듣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영광스럽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더욱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울산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대항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내가 그렇게 성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울산이라는 브랜드가 더욱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동계 훈련 때도 신진호 등 FA 선수들을 포지션마다 요소요소 잘 영입하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우리를 경계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역할만 잘하면 대항마에 걸맞게 활약할 것 같다. 물론 대항마라고 하지만 전북보다 돈을 적게 쓰고 있지 않은가. 전북보다 더 돈을 많이 쓰는 그 날까지!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거 김광국 단장에게 인터뷰로 보내는 ‘마음의 편지’인가.
내 얘기 아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기대한다더라.

작년에 4패를 했으면 지금 3연패 중인 수원 이임생 감독 마음 잘 알 것 같다.
최근에 통화했다. 전화해서 “작년에 나는 4패 했다”라고 위로해줬다. 지금 이임생 감독이 혼란스러울 때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이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볼 때는 이임생 감독이 슬기롭게 잘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와의 첫 경기 때 비록 수원이 패배했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잘 선보이지 않았는가. 많이 고민될 수 밖에 없지만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올 수 밖에 없다. 지금 이임생 감독이 그럴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반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현실과 이상의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가려고 하는 방향이다. 그 방향이 무조건 축구를 향해야 한다. 때로는 소신을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현실을 확인하면서 그렇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절반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래서 K리그 미디어데이 때 이임생 감독을 바라보고 “싸대기 맞을까봐 말하기 어렵다”는 발언을 했는가. (과거 이임생 감독은 선수 시절 이영표와 ‘싸대기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 모두가 민감한 이야기라 조심스러워 할 때 김도훈 감독이 공개적으로 언급해 당시 폭소를 자아냈다)
그렇게 이임생 감독을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하. 본의 아니게 놀리는 말이 됐지만. 그 발언을 내가 이임생 감독에게 대놓고 했지만 이 감독은 뭐라고 하지 않고 “흐흐흐흐”하고 웃더라. 참 좋은 사람이다. 내가 이임생 감독을 어릴 때부터 봤다. 정말 덩치만큼 포용력이 큰 감독이다.

‘김도훈호’ 울산에 제일 아쉬운 것은 8강 이상을 가보지 못한 AFC챔피언스리그(ACL)인 것 같다.
물론 아쉽다. ACL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팀이 ACL 우승을 2012년에 해봤기 때문에 ACL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우승 멤버와 지금의 멤버들은 다르다. 우리 팀 선수들은 다시 시작하면서 조금씩 보강도 하고 있고 전력도 좋아지고 있다. 단계별로 재작년보다 작년이 낫고 작년보다 올해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발전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도 선수 시절 ACL 우승을 해봤던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에 ACL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도 경기하면 물론 다 이기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구단이기에 ACL에서 승승장구 하고 싶고 최대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잘 맞춰서 ACL에서도 선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감독’ 김도훈의 10년 뒤는 어떤 모습일까?
와… 10년 뒤면 환갑인가? 하하. 아마 좀 더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선수 생활 13년을 하고 지도자 11년을 했는데 그 때는 더욱 많은 경험을 쌓았을 것 같다. 그러면 내가 축구 감독을 하면서 쌓았던 경험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 같다.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느낀 것을 선수 때 미리 알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지금 일부 선수들도 여러 등급의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다. 이 교육을 받은 선수들은 축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가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해보니 경험 있는 사람의 조언이나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많더라. 긍정적인 이야기도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어야 하더라. 10년 뒤에 나는 아마 축구인을 비롯해 비축구인, 가족들 등 여러 방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당신의 앞날을 응원하도록 하겠다.
당신과 단둘이 처음 앉아서 이야기했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당신 강원 김병수 감독 진짜 많이 닮았다. 혹시 잃어버린 형이 김병수 감독 아닌가.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듣는다. 다음에 경기장에서 또 만나자.
잘 가요. 병수 형.

김도훈 감독은 겸손하면서도 명확한 축구 철학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웃음이 넘치는 인터뷰였지만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진지했다. 다른 많은 감독들이 그런 것처럼 김도훈 감독 역시 ‘축구 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이제 김도훈 감독은 울산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과연 그가 내세웠던 늑대축구는 호랑이축구로 완벽히 변신할 수 있을까. 여전히 김도훈 감독은 고민하고 있었다.

wisdragon@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TOHjD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