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준 칼럼] 바둑계에 등장한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

윤수로
윤수로 대한카라테연맹 회장은 바둑계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대한카라테연맹


[스포츠니어스 | 최종준 객원 칼럼니스트] 누군가 그랬던가. ‘불길한 예감일수록 맞아 떨어진다’고. 현재 대한바둑협회(대바협)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대바협은 산상철 전임회장이 임기 2년을 남기고 자진사임하면서 지난 2월 17일에 후임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보궐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윤수로 신임회장은 바둑인의 소통과 화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직후부터 전혀 비정상적, 위법적인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윤수로 회장은 곧바로 이사회를 소집해서 조직, 인사와 정책사항을 심의, 의결해서 힘차게 새 출발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상당한 기일이 지나도록, 오늘까지도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바협 주변에서는 흉흉한 소식이 돌아다녔다. 윤수로 회장이 상당수의 기존임원에게 자진사퇴를 강요해서 완전한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만 해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소문은 사실이었다.

잔여임기가 남아 있는 경기단체의 임원에게 명백한 해임사유가 없는데도 사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가적인 체육개혁의 필요성이 임계점에 이른 엄중한 현실에서 이 같은 불법적인 임원 솎아내기는 ‘조직의 사유화’ 조치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대바협의 재적임원(부회장, 이사) 18명 중에 무려 6명이 윤수로 회장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이들에 대한 자진사퇴 강요가 이어졌다.

그러나 사퇴강요 작업이 실패에 그치자 윤 회장은 3월 9일에 임시대의원총회를 소집해서 6명 임원의 해임안건을 상정했다. 당일 대의원총회에서 ‘도대체 아무런 사유도 명기하지 않고 무조건 해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참석 대의원의 이유 있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신임회장에게 힘을 실어 주자.’는 응원(?)을 등에 업고 윤수로 회장은 표결을 강행했다. 투표결과, 해임안건은 부결되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더 문제다.

이미 대바협의 가장 중요한 정책심의, 의결기구인 이사회의 위상은 큰 상처를 입었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하지 않으면 각종 불법적인 행정난맥상이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아무런 해임사유도 적시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퇴를 밀어붙인 것도 비상식적이지만 임시총회 이후에도 ‘반드시 사퇴서를 받아내겠다.’,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겠다.’, 또 다시 총회를 소집해서 표결을 강행하겠다.’라는 불편한 소식만 들리지 그 어디에도 화합과 소통 그리고 원칙을 중시해서 사태를 조기수습하고 정상경영체제를 가동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대바협 내부만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발화성이 강한 화약고와 같다. 왜냐하면 정부의 체육개혁 정책방향과도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심석희 선수가 코치 성폭행 사건을 폭로하면서 스포츠코리아의 대대적인 개혁요구가 체육계를 거세게 강타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부터 체육회는 조직사유화 논란, 선수촌 관리부실 문제와 빙상, 컬링 등 경기단체의 각종 비위사건에 대한 관리책임 등으로 국회 (국정감사)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엘리트체육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받아 왔다.

이에 이기흥 체육회장은 2018년 12월 20일에 체육개혁방안을 발표하고 경기단체에서 스포츠 4대악(조직의 사유화, 폭력/성폭력, 승부조작/편파판정, 입시비리)이 발견되면 즉시 검찰고발과 가맹단체 자격박탈을 공언했다. 지난 정권에서 발생했던 ‘블랙리스트’ 문제로 가장 큰 홍역을 앓았던 곳이 한국체육정책의 총괄 관리기구인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둑계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무척이나 걱정스럽다.

바라옵건대 바둑인들의 열망을 안고 새롭게 아마바둑계의 수장이 된 윤수로 회장은 지금부터라도 불법적인 움직임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당초의 공약대로 생각이 조금 다른 바둑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한국기원과도 적극 협력해서 ‘바둑진흥법’ 제정으로 모처럼 도약의 기회를 맞은 한국바둑의 발전전략 추진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최 종 준 : 대한바둑협회 부회장,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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