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불린 그 순간, 스코어를 알리는 전광판엔 ‘3-1’을 가리켰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구FC의 승리는 경기장을 찾은 1만 명이 넘는 홈 팬들 뿐만 아니라 기자석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조광래 대표이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마저 환호성을 지르게 했다.

대구FC는 지난 12일 포레스트 아레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F조 2차전에서 중국의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3-1로 격파했다. 지난 조별리그 1차전 호주 멜버른 빅토리 원정에서 3-1로 완승을 거둔데 이어 ACL 2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광저우까지 집어삼키며 단독 1위에 올라섰다. 이로써 대구는 구단 역사상 첫 ACL 참가와 동시에 첫 16강 진출에도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사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구의 승리를 확신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광저우는 중국 슈퍼리그 우승 7회, FA컵 우승 2회,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4위 2회, ACL 우승 2회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과거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파울리뉴를 비롯해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중국 대표 클럽이었다.

그렇기에 대구 입장에서는 ‘거함’ 광저우를 상대로 무승부만 기록해도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드레 감독을 비롯한 대구 선수단은 그런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대구는 시종일관 광저우를 압박한 끝에 완승을 거뒀다. 대구는 지난 2015년 성남FC가 광저우를 2-1로 격파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시민구단이 광저우에 승리를 거둔 팀이 됐다.

흥행 막는 시민구단, K리그의 암적인 존재?

그간 시민구단은 K리그의 흥행을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로 불려왔다. 적은 수의 관중, 팬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경기력 등 기업 구단들의 승점 자판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경쟁력이 없었다. 항상 1부리그 생존 경쟁을 하는 것도 이들이었다. 가끔 이들이 이변을 일으켜 선두권의 팀을 이긴다하더라도 잠깐 관심만 끌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시민구단이 K리그에 흥행을 가져다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대구 역시 그랬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를 대표하는 스포츠는 단연 야구였다. 이전 홈구장이었던 대구 스타디움은 삼성 라이온즈 구장인 ‘라이온즈 파크’와 가까이 위치해 있던 탓에 경기가 겹치는 날이면 관중이 1,000명도 오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특히 지난 시즌 리그 6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 당시엔 겨우 477명의 관중만이 대구 스타디움을 찾았다.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 스타디움에 477명은 아예 관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구 스타디움 곳곳에 빈 관중석이 많이 보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처럼 흥행의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 시민구단의 한계였다. 구단이 자체적으로 아무리 홍보를 하더라도 팬들은 등을 돌렸다. 그래서 이들은 K리그의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재정과 좋지 않은 성적, 그리고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는 시민구단이 영원히 안고가야 할 과제로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구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 KEB하나은행 FA컵 우승이 시민구단의 반란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여기에 새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완공되면서 팬들과 언론이 대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놀라운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ACL까지 나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대구가 경남FC보다 더 ‘Hot’한 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무패, K리그의 맨체스터시티?

최근 축구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대구를 가리켜 ‘K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라 칭하는 이들이 많다. 과거 변병주 감독 시절 ‘K리그의 로맨티스트’라는 별명 이후 가장 멋진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유니폼도 맨시티와 비슷한 하늘색인데다 안드레 감독 역시 펩 과르디올라와 같은 헤어스타일(?)이다.

현재 대구는 올 시즌 무패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이맘 때였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성적이다. 2018년 10월 20일 전남 드래곤즈전 2-1 승리 이후 지난 광저우전까지 13경기 10승 3무를 거두면서 23득점 8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광저우전은 지난 2015년 ACL 16강 1차전에서 성남이 극적인 페널티킥 득점에 힘입어 광저우를 격파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시민구단이 승리해 더욱 의미가 있다.

대구가 자랑하는 빠른 역습 축구는 올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동계훈련을 통해 더 강해졌다. 광저우 칸나바로 감독도 대구에 1-3으로 패배한 이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대구의 역습이 매우 빨라 막을 수 없었다. 우리가 공간을 내주면서 역습의 빌미를 계속 제공했다”고 언급하며 대구를 인정했다. K리그 어느 팀을 만나더라도 살얼음판의 경기를 펼쳤던 대구가 이제는 ACL의 판도마저 뒤흔들고 있다.

대구 스타디움 곳곳에 빈 관중석이 많이 보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대구 벨기에식 역습, 조광래-안드레 합작품

대구의 역습 전술을 살펴보면 벨기에 축구와 유사하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당시 벨기에는 일본과 2-2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막판, 쿠르투아 골키퍼를 시작으로 더브라위너-뫼니에-샤들리로 이어지는 역습은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조광래 사장과 안드레 감독도 이러한 벨기에의 빠른 역습 패턴을 본 따 대구에 주입시켰다. 공격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갔을 경우 대구는 최전방의 에드가까지 수비에 가담해 수비진영의 숫자를 늘린다.

그리고 역습이 시작되면 조현우의 패스를 시작으로 츠바사-김대원-세징야-에드가가 빠르고 간결한 패스 플레이로 상대의 수비진을 무너뜨린다. 슈팅 역시 한 박자 빠르게 나와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조광래와 안드레가 강조하는 ‘6초 안에 슈팅’은 그 어떤 팀도 빠르게 반응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골 결정력 역시 뛰어나다. 에드가는 올 시즌 4경기 연속골(5득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세징야는 4경기 연속 도움(1득점 5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에드가는 광저우전을 마친 후 “ACL 우승 후보인 광저우를 상대로 우리가 원하는 경기 운영을 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역습 패턴을 많이 준비했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렇게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대구는 선 수비 후 빠른 역습 전술로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하며 올 시즌 선전하고 있다.

대구의 3월 12일, 그리고 조광래

대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겐 지난 3월 12일은 절대 잊을 수 없을 하루가 될 것 같다. 그날 대구는 ‘축구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 파울리뉴와 탈리스카의 몸값을 합하면 무려 약 900억 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대구는 지난 2018년 기준 선수단 연봉 총액이 약 43억 원에 불과하다. 탄탄한 조직력과 선수들의 투지는 대구와 광저우 사이를 막고 있던 ‘돈의 벽’을 보란 듯이 무너뜨렸다.

광저우전이 열리던 12일 포레스트 아레나는 비가 내려 날씨가 매우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전석 매진되며 경기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 제주 유나이티드전 이후 두 경기 연속 매진 기록이다. 그리고 1만 명이 넘는 관중들은 대구 특유의 응원 방법인 ‘발 구르기’로 광저우 선수들의 혼을 쏙 빼놨다. 대구의 홈구장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원정 지옥’으로 탈바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3월 12일 대구에 역사적인 날이 찾아온 것은 조광래 대표의 덕이 컸다. 지난 2014년 축구 행정가로 변신한 조광래 대표는 대구에 ‘조광래 유치원’을 만들어 유망주들을 육성했다. 현재 대구 공격의 중심이 되고 있는 김대원이 조광래 대표의 작품이다. 지난해 FA컵 우승 직후 조광래는 “시민구단은 예산이 많이 없기 때문에 선수를 육성해서 구단을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까지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변함없다”면서 “김대원과 정승원 등 이 선수들이 고등학교 졸업생일 때 내가 직접 뽑아 키워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작년 이맘 때 대구가 강등권에서 헤매고 있던 당시 직접 현장으로 나가 팀을 지원했다. “내가 나서야 했다. 축구전용구장으로 옮기는데 2부로 떨어지면 정말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그때 내가 나서서 팀을 도왔고 남해 전지훈련을 하면서 많은 것을 팀에 심어 놨다. 그리고 안드레 감독을 믿었다”고 FA컵 우승 직후 밝혔다.

대구 스타디움 곳곳에 빈 관중석이 많이 보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현재의 DGB대구은행파크 역시 대구 축구를 살리기 위한 조광래 대표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조광래대표는 해외 구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이들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왔다. 당시 12,000명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고 했을 때 반발이 심했다.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 스타디움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였다. 하지만 조광래 대표의 선택이 맞았다. 2만 명이 넘는 관중을 넘기 힘든 K리그의 현실을 고려한 DGB대구은행파크는 벌써 두 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K리그 흥행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세징야-에드가의 잔류도 조광래 대표의 덕이 컸다. 만약 이들이 떠났다면 대구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광래 대표가 직접 나서 이들을 설득했고 세징야는 해외 러브콜을 모두 뿌리치고 대구의 레전드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으며 에드가는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 임대 종료 후 새롭게 계약하며 완벽하게 대구 선수로 녹아들었다.

대구 시민들의 대구FC, K리그 흥행의 기폭제

DGB대구은행파크는 K리그 역사상 최초로 네이밍 라이츠를 판매한 사례가 됐다.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는 벌써 ‘디팍’이라고 불리며 K리그를 대표하는 경기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처럼 그라운드와 관중석 간 거리가 7m에 불과해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호흡하고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경기장에 가득 찬 팬들이 발을 구르는 응원은 이제 대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으며 DGB대구은행파크를 원정팀의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대구는 올 시즌 K리그 흥행을 선도하며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는 4월 클럽하우스까지 완공된다면 더 많은 팬들이 경기 외에도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대구FC는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몇몇 팬들은 “차라리 대구FC에 들어가는 돈으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 영입으로 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마저 DGB대구은행파크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2일 ‘거함’ 광저우를 꺾은 이후 팬들의 시선은 이제 야구가 아닌 축구로 쏠리고 있다.

침체됐던 K리그의 흥행을 시민구단 대구가 끌어올리고 있다.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구단을 운영하던 대구는 이제 대구 시민들의 구단이 됐다. 그리고 조광래, 안드레, 대구 선수단이 팬들과 함께 대구를 ‘셀링클럽’이 아닌 명문구단의 모습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어쩌면 광저우전은 올 시즌 대구가 쓰는 동화의 서두에 불과하지 않을까. '시민구단의 한계', 이제는 대구와 점점 멀어지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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