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을이 대표팀에서 100경기를 소화했다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전가을(화천KSPO)이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한국 여자축구 역사상 다섯 번째 센추리클럽 가입이다.

전가을은 3일 호주 브리즈번 선코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 4개국 친선대회 2차전에 후반 시작과 함께 문미라(수원도시공사)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면서 개인 통산 100번째 A매치 출전을 기록했다. 이날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아쉽게 1-4로 호주에 패배했다.

정작 본인은 이날 호주전 패배로 100번째 경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국 여자축구의 환경에서 센추리클럽 가입의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기적으로 A매치가 열리는 남자대표팀과 달리 여자대표팀은 A매치 일정을 잡기도 힘들다. 2011년부터 6년간 열렸던 연평균 A매치는 7경기, 국내 A매치는 0.5경기에 불과하다. 전가을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10년이 넘게 꾸준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전가을은 2015년 8월 4일 일본을 상대로 경기 종료직전 프리킥 역전골을 성공했다 ⓒ 대한축구협회

전가을 인생 경기? "월드컵과 한일전"

전가을은 조소현(117경기)과 김정미(114경기), 지소연(112경기), 권하늘(103경기)에 이어 한국 여자축구 역사상 다섯 번째로 1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100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면 더 좋았으련만, 전가을은 "결과를 거두지 못해서 그런지 100경기를 뛴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며 아쉬운 속내를 밝혔다.

전가을은 자신이 역대 5번째 센추리클럽 가입자라는 사실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전가을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저는 10년 넘게 해오던 일을 계속한 것 뿐이다. 똑같은 패턴으로 지냈는데 이렇게 100경기까지 뛰었다"라면서 "물론 호주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다른 기분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경기에서 진 게 더 컸던 것 같다"라며 복잡한 마음을 전했다.

전가을은 2007년 8월 12일에 열린 베트남과의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꾸준히 활약한 만큼 가장 기억에 남을 경기를 꼽는 것도 어려웠다. 전가을은 "두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 나가서 골을 넣었던 기억, 한일전에서 프리킥으로 팀의 역전을 도왔던 경기가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4년마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꾸준히 출전했던 남자대표팀과는 달리 여자축구의 월드컵 무대는 도전에 가까웠다. 지난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 이어 곧 치르게 될 프랑스 월드컵에도 참가해 2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우리 대표팀은 코스타리카와의 조별예선에서 선제골을 실점했지만 지소연의 페널티킥 골과 전가을의 역전골이 터지며 앞서갔다. 아쉽게도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16강에도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언제나 열세로 꼽혔던 한일전과의 경기에서도 전가을의 발끝이 빛났다. 지난 2015년 열렸던 EAFF 동아시안컵에서는 한국 여자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한일전이 펼쳐졌다. 이날 경기에서는 나카지마 에미가 전반 30분에 선제골을 기록, 우리 대표팀이 끌려가는 상황이었으나 후반 9분 조소현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종료 추가시간 2분 전가을의 극적인 프리킥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전가을은 2015년 8월 4일 일본을 상대로 경기 종료직전 프리킥 역전골을 성공했다 ⓒ 대한축구협회

'우리가 너무 오래 해 먹었나?'

10년 동안 100경기 출전이라는 역사를 쓴 전가을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식상한 얘기다"라면서 "지름길이 없다"라고 전했다. 전가을은 "그냥 남들보다 축구하는 걸 좋아한 거 같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더 좋아했던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좋아하니까 계속하게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됐고, 운동을 더 잘하게 된 게 아닌가. 노력이 가장 큰 비결인 거 같다"라면서 "지금까지 안일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나를 놓으려 할 때도 분명 있었다. 다시 또 잡고 여기까지 왔다. 꾸준히 노력해왔다"라고 덧붙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표팀을 오갔던 전가을은 이제 점점 후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가을은 "어릴 때부터 대표팀 생활을 해왔다. 대표팀 생활을 생각하면 느끼는 감정들이 많다"라며 "어릴 때는 못 느꼈던 선배의 책임감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전가을은 "어릴 때부터 대표 생활을 해왔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지금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느낀다. 이런저런 생각도 한다. 그 선수들은 잘하고 있고, 잘했으니 대표팀에 온 거다. 어린 선수들은 더 자신 있고 과감하게 했으면 좋겠다. 저도 요즘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표팀이라는 자리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나이를 떠나서 증명을 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안주할 수 없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다"라고 밝혔다.

이미 먼저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조소현과 김정미, 지소연은 여전히 전가을과 함께 대표팀에 발을 맞추는 사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여자축구의 황금세대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만큼 전가을을 비롯한 선배들의 영향력은 크다. 전가을 다음에는 누가 센추리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까. 전가을은 "많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전가을은 "지금 후배들도 하는 말이 '100경기 채우고 나갈 수 있을까'라고 하더라. 우리 세대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기도 하고 '우리가 너무 오래 해 먹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A매치 경기 수를 보면 후배들이 애들이 못 따라오더라. 다음 선수가 나오려면 국내에서 A매치도 열어주셔야 하는 부분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가을은 2015년 8월 4일 일본을 상대로 경기 종료직전 프리킥 역전골을 성공했다 ⓒ 대한축구협회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자리"

여자축구는 이번 시즌 WK리그와 프랑스 월드컵을 병행해야 한다. 100경기를 넘게 뛰었지만 전가을은 여전히 생존을 이야기한다. 전가을은 "일단 프랑스 월드컵을 간다는 보장도 없다"라며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라며 입을 열었다.

전가을은 "대표팀이라는 자리는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자리다. 리그에서는 제가 우리 팀에 있을 때 우승을 한 번 해보는 게 목표다. 월드컵은 당연히 여자축구를 알릴 기회니까 선배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게 맞는 거 같다. 누구든"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의미심장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전가을과 또래인 구자철과 기성용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들도 지난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꾸준히 은퇴를 시사했다. 한편으로는 이동국의 말이 떠올랐다. 이동국도 항상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는 "팀이 원한다면 뛰겠다"라고 말해왔다. 이동국은 "제가 선수 은퇴하는 날이 국가대표를 포함해 모든 걸 마무리하는 날"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전가을은 "이동국 선수와 같은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전가을은 "난 이제 공격수로는 최연장자다.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기성용이나 구자철도 같은 연배고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후배들을 위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동국 선수가 하는 말이 더 와닿는다. 외국도 여자선수는 40세에 대표선수를 하더라.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가을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월드컵 간다는 보장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전가을은 "저는 또 할 수 있다. 100경기가 끝난 게 아니다. 계속 좋은 모습, 운동장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라며 여전히 운동장에서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전가을은 "100경기를 채울 수 있었던 건 경기마다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있어서다. 정말로 힘이 났던 거 같다. 제가 계속 뛰는 만큼 믿고 찾아와 주시고 경기장에도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다. 여자축구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intaekd@sport-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