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플레이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 축구 디비전6에 참가하는 벽산플레이어스는 사회인 축구팀이다. 과거 프로 무대에서 잠시 몸 담았던 이들도 있지만 엘리트 체육을 경험하지 못한 순수 아마추어도 함께 하는 팀이다. 그런데 이 팀이 치열한 관문을 뚫고 FA컵 1라운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위대한 도전을 펼친 벽산플레이어스의 주장이 <스포츠니어스>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으니 꼭 이 편지가 기사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다음은 그의 편지 전문이다.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저는 디비전6 벽산플레이어스 팀 주장 진민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의 FA컵 1라운드 도전에 응원을 보내주셔서 어떻게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저는 K리그 부산아이파크와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을 거쳐 다시 K리그 성남일화에 속해 있다가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에서 은퇴했습니다. K리그 1군 경기를 뛴 적은 없습니다. 부산아이파크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크룽타이뱅크와의 경기에 출장했던 기록만 있습니다. 이때가 19살이었는데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는 35세 평범한 남자가 됐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가 FA컵을 나가는 루트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디비전6에서 우승을 해서 선수 출신이 많은 팀 중에서도 상위권에 오르자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디비전6를 우승하면서 우리 벽산플레이어스 감독 형에게 대한축구협회에서 제안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FA컵 1라운드 출전권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감독 형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이때부터 꿈꿔보지도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권역 디비전6에서 권역별로 우승 팀이 두 팀이었는데 이 중 한 팀만 FA컵 1라운드에 진출할 자격을 준다고 해 이 티켓 한 장을 놓고 지난 1월 치열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경기 중간 패싸움이 날만큼 치열했던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저희가 이겨 상상도 한 적 없던 FA컵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저희 팀은 선수 출신도 있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비선수출신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흔히 말하는 ‘비선출’이 FA컵이라는 무대에 나간다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지난 1월 서울 권역 양대 챔피언이 FA컵 1라운드 진출권을 놓고 경기를 펼쳤다. ⓒ스포츠니어스

저희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난곡조기회’라는 곳에서 저희에게 후원도 많이 해주셨고 우리가 잘 모르는 ‘에펨네이션’이라는 커뮤니티에서도 응원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실 기대도 많이 했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8년이 넘은 상황에서 ‘과연 90분 경기를 다 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FA컵 1라운드 상대인 호남대에 질 확률이 80%가 넘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축구 레슨을 하고 따로 퇴근하지 않고 혼자 개인 운동을 했습니다. 프리킥 연습도 혼자서 많이 했는데 몸 상태가 제 나름대로는 좋았습니다. 경기 전날 꿈에서는 제가 호남대를 상대로 프리킥을 하나 넣는 꿈도 꿨습니다. 꿈 속에서 감독 형이 우는 장면도 봤습니다. 감독 형도 “이건 나한테 꿈의 무대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남들에게는 그냥 아마추어들끼리 격돌하는 FA컵 1라운드였겠지만 저희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무대였습니다.

사실 저희 팀에서 FA컵에 출전할 멤버로 꼽혔던 선수들 중 세 명이 생업 때문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퇴직금 문제가 있었던 친구도 있고 생업인 환경미화원 일 때문에 FA컵을 포기해야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전력의 100%를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경기 전날에는 단체 채팅방에 “진짜 일 한 번 내보자”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금주, 금욕을 강조하면서 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광주에 내려가는 버스에서도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을 보니 애들도 다 버스 커튼은 내리고 있지만 자고 있는 애들은 없었습니다. 다 안 자고 스마트폰으로 축구 동영상을 보고 있을 정도로 이 경기에만 집중했습니다. 저희를 응원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우리 버스를 같이 타고 내려가기도 했고 기차를 타고 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서울에서 출발하는데도 그 이른 시간에 나와서 저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경기가 시작되니 어떤 한 분은 90분 내내 우리 응원가를 불러주셨고 우리를 응원하는 분은 이 분 외에도 세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경기 다음 날 경기에 관한 글과 영상도 인터넷에 올려주셨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경기가 끝난 뒤에는 제가 입고 있던 우리 팀 자켓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경기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가능성이 보이는 경기였습니다. 처음에는 6명의 수비를 두는 전술을 택했는데 전반 20분이 지나면서 포백 수비로 바꿔서 더 공격적으로 해도 될 것 같다는 판단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한 명이 퇴장을 당하면서 무너졌고 결국 후반 들어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채 0-2로 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선수 중 한 명은 무릎을 다쳤고 또 다른 한 명은 얼굴이 인조잔디에 쓸리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현수막 앞에서 함께 사진 찍고 아쉽지만 웃으며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오랜 시간 준비한 이 경기가 끝난 뒤 올라오면서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후반 들어서는 수적 열세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반성하면서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지난 1월 서울 권역 양대 챔피언이 FA컵 1라운드 진출권을 놓고 경기를 펼쳤다. ⓒ스포츠니어스

집에 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오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장으로서 뭘 해보지도 못하고 져서 제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료 세 명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광주까지 원정경기를 가서 경기에 1분도 못 뛴 선수가 세 명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도 FA컵이라는 무대에 얼마나 서보고 싶었겠습니까. 이 세 명에게 전화를 해서 “너희에게 기회가 1분도 가지 않아 주장인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싶다”고 했습니다.

제 성격이 원래 이렇지 않은데 제 감정보다 남들 감정을 생각하는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힘들지만 이러면서 성숙해지는 건 아닐까 합니다. 다음 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 레슨을 하는데 한 제자가 말했습니다. “네이버에서 쌤이 주장인 팀 기사 봤어요.” 학부모님도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기대 많이 했는데 져서 아쉽지만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그런 큰 대회에 나가신 게 대단하신 거죠.” 생각보다 관심 없는 사회인 축구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한테 관심을 갖거나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진짜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FA컵 출전은 그냥 하룻밤의 꿈만 같은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멋진 기회를 얻었고 사회인 축구를 응원해 주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게 돼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레슨을 받는 아이들도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FA컵 1라운드 이게 뭐라고, 우리 벽산플레이어스가 뭐라고 과분한 관심과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벽산플레이어스 주장 진민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