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조덕제 감독이 수원FC 원정 벤치에 앉았던 날

수원종합운동장으로 돌아온 조덕제 부산아이파크 감독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수원=홍인택 기자] “그러게요. 관중석, 저기가 내 자리였는데…” 그는 계속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다 이 한마디를 남겼다.

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의 하나원큐 K리그2 2019 2라운드가 펼쳐진 3월 9일. 조덕제 감독이 수원종합운동장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옷에는 부산아이파크의 엠블럼이 박혀있었다. 외투에도, 안에 입은 맨투맨 티셔츠에도 수원FC의 ‘성’이 아닌 부산의 방패가 그의 가슴 위에 있었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의 첫사랑 같은 감독이다. 그는 수원시청 축구단의 유소년 총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012년부터 수원시청 축구단을 이끌고 내셔널리그에도 참여했다. 2012년 12월 프로 전환을 확정하면서 팀이 수원FC로 이름을 바꿔도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2015년 파죽의 연승을 달리며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고 이후 강등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는 홈 벤치에 있었다.

2017년 여름. 조덕제 감독과 수원FC는 부진에 빠졌다. 조덕제 감독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6월 기자회견 당시 거취에 관한 의미심장한 말도 꺼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곧 사퇴하시려나 보다”라고. 하지만 조 감독은 약 두 달을 수원FC와 더 함께했다. 염태영 시장이 그의 사퇴를 극구 말렸다.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염 시장의 말에 합숙도 하고 정신 무장도 주문했지만 결국 연패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8월 말 조덕제 감독은 결국 다시 염 시장에게 찾아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제가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팀을 위한 길입니다”라면서.

그는 사임 이후에도 늘 경기장으로 찾아왔다. 대한축구협회 대회위원장 부임 이후 살인적인 지방 출장 일정을 소화해내면서도 꼭 경기장에서 수원FC, 수원도시공사의 경기를 지켜봤다. 특히 수원FC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라며 본부석 근처로 오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저 한 사람의 팬으로서 본부석 반대편 관중석에서 수원시의 축구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감독직 사임 후에도 관중석에서 수원FC의 경기를 지켜봤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는 다른 편, 시즌 전부터 기대했던 만남

세 번째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좌절을 맛본 부산아이파크는 지난해 말 조덕제 감독의 선임을 알렸다. 벤치와 훈련장을 떠나있던 조덕제 감독의 복귀 소식은 반가웠으나 그 팀은 수원FC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수원FC에서 승격 경험이 있었던 조덕제 감독은 부산의 열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세 번 모두 승격 문턱에서, 끝내 승격에는 실패한 부산도 조덕제 감독의 능력과 경험을 믿었다.

‘경기인이라면 어쩔 수 없다’라는, 승부 세계의 대전제 같은 이 말로 수원FC와 조덕제 감독은 이제 정말 ‘다른 편’이 됐다. 수원FC는 수원FC 나름대로 이번 시즌을 알차게 준비하며 김대의 감독을 지원하며 전력 보강에 박차를 가했고 조덕제 감독은 이기형, 노상래 코치와 함께 부산 선수들을 파악하며 동계훈련에 돌입했다. 두 팀 모두 “올해는 꼭 승격하리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난 2월 수원시청에서 수원FC의 출정식이 있었다. 염태영 수원시장도 구단주로서 수원FC의 출정식에 참여하며 여느 때처럼 수원시의 깃발을 흔들었다. 염 시장은 이번 시즌 김호곤 단장의 취임 소식을 알렸고 지난 시즌의 아쉬운 성적에도 김대의 감독을 믿는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출정식에 참여한 수원FC 구성원들과 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주말 K리그가 개막합니다. 보강도 많이 했습니다. 코치도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에 이기는 게 중요합니다. 첫 경기는 부천 원정이죠. 우리 홈 개막전은 그 다음 주입니다. 공교롭게도 조덕제 감독님이 이끄시는 부산과 홈 개막전을 치르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보가 없습니다.”

독특한 광경이었다. 염 시장은 “공교롭게도”라는 말을 먼저 썼다. “양보가 없다”는 말의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염 시장의 발언 이후 출정식이 열렸던 수원시청 대강당에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넘쳤다. 조덕제 감독을 향한 애정과 아쉬움, 약간의 원망, 그리고 기대감이 섞인 듯했다. 그만큼 수원FC와 조덕제 감독의 사이가 돈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의 가슴에는 부산의 방패 엠블럼이 박혀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가 일부러 부산 용품을 ‘풀장착’한 이유

2017년 8월 조덕제 감독이 수원FC 감독직을 자진 사임한 이후로 약 1년 반이 흘렀다. 조덕제 감독은 부산아이파크의 수장이 되어 수원종합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경기장에 도착한 조덕제 감독은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수원FC 구성원을 비롯한 이사진, 시의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서로 “건승하라”는 인사말이 오가기도 했고 “이제 적인데 너무 친근하게 구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섞였다. 그래도 모두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나 얼굴 만큼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조덕제 감독의 심정이 궁금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부랴부랴 조 감독을 만나러 갔다. 지난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화려한 코치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자연스럽게 화제를 수원FC로 돌렸다. 그러자 조 감독의 입은 매우 조심스럽게 열렸다. 조 감독은 “오늘 일부러 부산 엠블럼 박힌 걸 다 입고 왔어요. (염) 시장님께도 부산 내려갈 때나 인사드리고 어제 올라와서 전화는 못 드렸어요”라고 말했다.

조 감독은 부산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면서도 수원FC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지난 안양과의 경기 평으로는 “팬들에게 죄송하죠. 어쨌든 네 골을 먹어도 먹을 때 시원하게 먹고 이길 때는 시원하게 해주는 게 축구잖아요. 15년도 승격할 때도 안양한테 졌었어요. 위안도 됐고”라며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냈지만 수원FC에 관한 질문은 간단한 답으로 일축했다. 끈질기게 물어봤지만 깊은 속내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이 팀에 최선을 다해야지. 승격이라는 임무, 그 생각뿐이에요. 준비 잘해서 올라가야죠.”, “경기인이면 어쩔 수 없죠. 저도 여기 경기장 와서 원정 쪽으로 오는 게 어색하긴 해요.”, “수원FC 멤버도 많이 바뀌었어요. 11명 정도만 저 있을 때 있던 선수고 나머지는 다 바뀌었더라고요. 수원FC 선수들은 나쁜 선수들도 아니고 외국인부터 다 잘하는 선수예요.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수원FC에 대해 말해준 내용은 이게 전부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었던 탓에 하마터면 흘릴 뻔한 그의 대답이 결국 가장 큰 울림으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홈 벤치랑 관중석은 앉아보셨어도 원정 벤치에는 처음 앉으시겠네요”라고 묻는 말에 그는 “그렇죠. 관중석, 저기가 내 자리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 감독이 말을 아끼는 의도는 뚜렷하다. 그는 배려가 깊은 사람이다. 그는 수원FC를 관중석에서 지켜볼 때도 수원FC와 김대의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최대한 노출을 자제했다. 게다가 지금은 관중석에서 조용히 수원FC를 지켜볼 때와는 또 다르다. 부산 구단 용품을 온몸에 풀장착(?)하고 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부산아이파크 선수단을 대표하는 수장이다. 누구보다 조 감독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발언 하나의 영향력도 말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마냥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실망할 수는 더 없는

이날 조덕제 감독과 부산아이파크는 수원FC에 역전승을 거뒀다. 그것도 자신이 수원FC에서 키웠던 권용현을 후반에 투입하며 동점골까지 이끌어냈다. 권용현은 “두 팀에 모두 부끄러움 없게 뛰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조 감독은 “모든 선수나 지도자들이 그렇듯, 팀에서 나오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친정팀이라고 하지만 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수원FC를 상대로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승리를 거뒀을 뿐이다.

조 감독은 “우리 팀을 이긴 것 같아서 죄송한 느낌도 듭니다”라며 복잡한 심경의 한 조각을 꺼냈다. 그는 이어 “얼마 전까지 수원종합운동장은 계속 경기를 하던 곳이에요. 원정석으로 가고, 라커룸을 쓰고, 원정석 벤치에 앉는 게 어색하기보다는 색다르긴 했어요”라면서도 “지도자는 어떤 상황에도 처할 수 있어서 크게 떠오르는 감상은 없었습니다”라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조덕제 감독의 팀이 있는 부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부산아이파크를 이끌고 승점 3점을 얻어냈다. 표정은 덤덤했다. 지켜야 할 선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너무 기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실망할 수도 없는 경계선 말이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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