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 “할 수 있을까?”를 “할 수 있다!”로 바꾼 경남과 대구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K리그에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는 좀 더 특별한 대회다.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시·도민 구단들인 경남FC와 대구FC가 대륙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 과거 ACL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 등의 기업 구단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도민 구단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팀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ACL에 참가한다는 것은 그 어떤 클럽에 있어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도민 구단들인 경남과 대구의 첫 출전은 더욱 흥미로웠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7시즌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만이 가까스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등 최근 K리그는 ACL 무대에서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거액의 돈을 쏟아 붓는 중국 클럽들 사이에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주를 이룬 것이다.

2018 FA컵 우승팀 대구FC – ACL F조의 승점 자판기?
안드레 감독이 이끄는 대구는 지난 시즌 몇 년 동안 이기지 못했던 울산 현대를 FA컵 결승 1, 2차전에서 내리 격파하며 꿈만 같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올 시즌 DGB대구은행파크로 홈구장을 옮긴 동시에 ACL이라는 무대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한다. 사상 첫 메이저 우승컵을 차지한 대구의 자신감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대구는 이번 ACL에서 가장 재정이 빈약한 팀들 중 하나였다. ‘에이스’ 세징야-에드가와 재계약에 성공했고 국가대표팀 수문장인 조현우를 지키긴 했지만 눈에 띄는 영입은 없었다. 말컹과 박지수를 내보내며 벌어들인 이적료로 유럽 빅리그 출신 조던 머치와 루크 카스타이노스를 영입한 경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더욱이 대구는 이번 ACL에서 중국의 광저우 에버그란데, 일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 호주의 멜버른 빅토리와 함께 F조에 묶였다. 호주 원정이 포함된 F조는 첫 출전인 대구에 있어서 너무나 힘든 조 편성이었다. 몇몇 팬들은 대구를 두고 “ACL에서 6전 전패로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를 이끄는 안드레 감독은 지난 6일 호주 멜버른의 AAMI파크에서 치러진 멜버른 빅토리와의 ACL 조별리그 1차전 경기를 앞두고 “승점 1점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승점 3점을 가지고 돌아가겠다”고 각오를 밝히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선수들 역시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 AFC챔피언스리그 공식 페이스북

결국 이러한 자신감은 대구를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멜버른이 역대 ACL에서 K리그 팀을 상대로 14번 싸워 단 한 번만 승리했을 정도로 징크스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시·도민 구단이 대륙 대회에서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대구는 무엇보다 가장 힘들다는 호주 원정을 승리하며 홈에서 치러질 광저우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좀 더 가볍게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대구는 지난 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높아진 팬들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줘야 하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었다. 멜버른과의 전반전 당시에도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며 그러한 부담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는 세징야를 필두로 집중력을 끌어 올리더니 3-1 역전승을 거두는 쾌거를 달성했다.

2018 K리그1 준우승팀 경남FC – 말컹의 공백, ACL에서는?
올 시즌을 앞두고 경남FC의 화두는 ‘말컹의 공백’이었다. 말컹은 지난 시즌 리그에서 무려 26골을 터뜨리며 경남의 리그 준우승과 사상 첫 ACL 진출을 이끌었다. K리그2에서부터 꾸준히 활약하며 경남의 ‘복덩이’였던 말컹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나 중국의 허베이 화샤 싱푸로 향했다.

경남은 말컹이 안겨다 준 수 십억 원에 달하는 자금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조던 머치와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밀란을 거친 루크 카스타이노스를 영입하며 깜짝 행보를 보였다. 여기에 박기동, 김승준, 이영재, 곽태휘 등을 영입하면서 더욱 선수층을 탄탄하게 했다.

이처럼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경남이 ACL에서 대구보다 좀 더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더 높았다. 김종부 감독의 지도력과 두꺼워진 선수층, 그리고 뛰어난 외인 선수들의 영입은 다른 기업 구단들과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 전력을 보유한 시·도민 구단으로 변모시켰다.

ⓒ AFC챔피언스리그 공식 페이스북

이번 ACL에서 경남은 중국의 산둥 루넝, 일본의 가시마 앤틀러스, 말레이시아의 조호르 다룰 탁짐과 함께 E조에 편성됐다. 특히 ACL 조별리그 첫 경기 상대였던 산둥은 지난 시즌까지 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마루앙 펠라이니와 사우스햄튼에서 활약했던 그라치아노 펠레가 버티고 있었다.

선수단 몸값으로만 보더라도 산둥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경남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경기력으로 2-2 무승부를 거두며 시·도민 구단의 힘을 보여줬다. 특히 경기가 끝난 직후 이적료 약 152억 원을 기록했던 펠라이니는 믹스트존에서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한 채 창원축구센터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산둥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시·도민 구단의 반란’ 경남과 대구는 “할 수 있다!”
역사적인 ACL 첫 경기를 치른 경남과 대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꿨다는 것이다. 올 시즌 ACL이 시작되기 직전 많은 이들이 경남과 대구를 향해 “적어도 망신만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이들은 각각 산둥과 무승부, 멜버른에 승리를 거두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시·도민 구단들의 선전은 다른 조의 전북과 울산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됐다. 최근 K리그는 ACL 무대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K리그 팀들은 결승전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특히 2016시즌엔 단 한 팀만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망신을 당하며 옆 나라 일본의 클럽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처럼 K리그 팀들이 ACL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아시아 무대의 패권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 시·도민 구단들이 첫 경기부터 선전하며 ‘K리그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절실함이 필요하던 K리그에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준 것이다.

물론 이제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단 한 경기로 모든 대회의 결과를 예상할 수는 없다. 각각 무승부와 승리를 거둔 경남과 대구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절실함과 자신감이 중요하다. 시·도민 구단들이 보여준 절실함과 자신감은 다른 기업 구단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자극할 수 있다.

K리그 팀의 마지막 ACL 우승은 2016년이다. ⓒ 전북 현대 제공

시·도민 구단들은 ACL의 들러리가 아니다
만약 이번 1차전 경기에서 경남과 대구가 지레 겁부터 집어먹은 채 지루한 전술로 맥없이 패배했다면 사상 첫 ACL 진출이라는 기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응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아마 이번 경기를 지켜봤던 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절실함을 가진 시·도민 구단들은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면서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모두 불식시켰다.

무조건 기업 구단들이 ACL 무대에서 성적을 내야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경남과 대구 중 한 팀이 ACL 우승컵을 차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시·도민 구단들도 ACL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국내에서 한 번씩 K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팀들이다. ‘아시아 최고’라는 한국을 넘어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낼지 누가 알겠는가.

emrechan1@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WxZR8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