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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안양=조성룡 기자] "와, 이게 도대체 뭐야?"

23일 열린 FC안양의 팬즈데이. 행사 도중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장철혁 단장이 깜짝 대형 선수 영입을 발표해서가 아니다. 대기업 스폰서가 붙어서도 아니다. 분명 이날은 프로축구단의 행사였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한 남자의 아름다운(?)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초대가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노래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청하의 '벌써 12시'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팬들이 스마트폰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무대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무대를 선보인 주인공은 바로 안양의 신인 고병근이었다. 그는 다른 신인 선수들이 모여서 레드벨벳의 '빨간 맛' 안무를 선보이는 동안 혼자 솔로 무대로 청하의 노래를 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보니 청하 팬클럽 '별하랑'이었던 것일까. 아이돌 연습생 출신인 것일까. 궁금해진 <스포츠니어스>는 고병근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연이 꽤 많았다.

부상 당해 전지훈련 절반 날린 신인의 욕심, 장기자랑

이야기는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안양은 한창 제주도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다. 고병근도 마찬가지였다. 신인 답게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몸이 이상했다. 예전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이 말썽이었다. 훈련할 때마다 아팠지만 고병근은 참고 뛰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제가 원래 거위발증후군이 있어요. 게다가 햄스트링도 좋지 않았어요."

결국 욕심은 고병근에게 아쉬운 결과로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훈련하던 중 서울행을 결정한 것이다. 그는 혼자서 쓸쓸히 제주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신인이 전지훈련을 하다가 도중에 이탈했다.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병원 진료 결과 비교적 긴 재활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병근은 전지훈련 대신 서울에 남아 재활을 시작했다. 지루한 재활이었다. 그 사이에 팀 동료들은 제주도에서 돌아와 다시 태국으로 떠났다. 고병근은 태국에 가지 못했다.

신인의 야심찬 계획은 시작부터 삐끗하기 시작했다. 좌측이 고병근 ⓒ FC안양 제공

태국 후아힌에서 안양 선수단은 새로운 시즌을 위해 다시 한 번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신인 선수들은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팬즈데이 준비였다. 팬즈데이에서는 신인들이 장기자랑을 선보인다. 일종의 '신고식'이다. 2019 시즌 안양의 신인들은 장기자랑으로 걸그룹 댄스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고병근이 문제였다. 다른 선수들은 태국에 있어 쉴 때마다 연습을 할 수 있지만 고병근은 저 멀리 서울에 있었다. 게다가 걸그룹 안무는 '칼군무'가 중요하다. 결국 구단은 장기자랑에서 고병근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 고병근은 말했다. "저도 할게요."

고병근이 팔자에도 없는 '솔로 무대' 나선 이유는?

고병근이 하고 싶다고 장기자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물리적인 제약이 있었다. 구단에서 "굳이 할 필요 없다"라고 했지만 고병근은 "꼭 하겠다"라고 고집했다. "그럼 저 혼자서 단독 무대를 하나 할게요." 고병근은 팔자에도 없는 솔로 무대를 그렇게 자처해서 맡았다. "제가 태국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팀에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팬들께 '이렇게 우리 팀 분위기가 좋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고병근은 막막했다. 살면서 춤이라고는 제대로 춰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진짜 춤 완전 싫어해요. 클럽도 대학교 1학년 때 한 번 가보고 끊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은 '팀을 위해서' 오직 하나였다. 대학 시절 만나 축구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자친구 또한 말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어? 솔로 무대인데. 한 번 해봐." 고병근은 그렇게 없는 자신감을 쥐어짰다.

게다가 그는 걸그룹 음악도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솔로 무대기 때문에 걸그룹보다는 솔로 가수의 노래를 택해야 했다. 지인들은 그에게 한창 화제가 됐던 청하의 '벌써 12시'를 추천했다. "이 노래를 무대 준비하면서 처음 들어봤어요." 그렇게 고병근과 청하의 노래는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일단 맹렬하게 듣기 시작했다. "한 100번은 들었을 걸요?" 이제 고병근의 고생길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재활하고 밤에는 안무 연습한 고병근의 2019년 초

고병근의 2019년 초는 좀 특별했다. 낮에는 재활에 매진했고 밤에는 춤 연습을 했다. 하루에 1시간 씩 구슬땀을 흘렸다. 춤을 위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지인 중에 안무 트레이너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병근은 그에게 춤을 배웠다. "한 번 해보라"던 여자친구도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고병근과 함께 안무를 연습했다. 고병근은 밤만 되면 청하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장'도 하려고 했어요. 이런 자리에서는 독특한 분장과 의상으로 웃겨야 재밌잖아요. 그래서 친누나 치마도 빌려서 입어봤어요. 꽉 끼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신인 동료들은 태국에서 돌아온 그 다음 날이 팬즈데이거든요. 동료들은 의상 준비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저 혼자 무대를 하는 것 뿐 아니라 혼자 의상을 준비하면 너무 튈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좀 자제했어요."

신인의 야심찬 계획은 시작부터 삐끗하기 시작했다. 좌측이 고병근 ⓒ FC안양 제공

그리고 대망의 팬즈데이가 열렸다.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선배들은 그에게 "긴장한 것 같다"라고 놀렸다. 실제로 그는 긴장했다. 원래 고병근은 팀 미팅 때도 앞에 나서면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고 장내 아나운서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터뷰 할 때 '신인의 패기'를 얘기했어요. 정말 신인의 패기를 보여주자고 생각하니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고병근은 안양 팬즈데이에서 '일일 청하'로 변신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7~80점 정도 주고 싶어요. 의상이 좀 아쉬웠고 춤 추면서 중심을 잘 잡지 못했어요." 하지만 고병근에게는 호평이 쏟아졌다. 팀 고참들도 그에게 "잘 췄다"라고 말했고 팬들은 행사 후 그에게 "너무 잘 봤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한 여자친구도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춤 추다가 객석을 봤는데 팬들 얼굴이 안보였어요. 다들 촬영한다고 스마트폰 들고 계셔서…"

고병근을 응원했던 오랜 여성 팬의 눈물

고병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인 선수들의 장기자랑 이후 팬즈데이에서는 팬과 선수가 함께 하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다. 추첨을 통해 팬 네 명을 뽑고 그 팬들이 원하는 선수가 불려나와 같이 게임을 하는 방식이었다. 안양 장내 아나운서가 "행운권 번호 XXX번"이라고 호명하자 한 중년 여성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나운서는 그에게 원하는 선수를 물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별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고병근."

벌써부터 고병근의 춤에 매료됐던 것일까. 그 덕분에 무대 뒤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있던 고병근은 급하게 다시 무대로 불려갔다. 하지만 그 때 고병근은 놀랐다. 고병근을 부른 중년의 여성 팬은 알고보니 예전부터 고병근을 무척 좋아했던 팬이었다. 아마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팬이 됐을 것이다. 여성 팬은 바로 고병근의 어머니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필 당첨된 팬이 고병근의 어머니라니. 무대에 올라간 고병근은 어머니에게 "떨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그런 자리에서 긴장을 많이 하세요."

간단한 게임을 마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은 또다시 벌어졌다. 갑자기 고병근의 어머니가 눈물을 쏟기 시작한 것이었다. 행사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도 당황하고 자리에 앉아 지켜보던 사람들도 당황했다. 아들과 함께한다는 기쁨의 눈물인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사연이 있는 눈물일까. 아나운서는 어머니에게 선수단 친필 사인이 적힌 매치볼을 선물하며 고병근의 앞날을 응원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포옹했다.

신인의 야심찬 계획은 시작부터 삐끗하기 시작했다. 좌측이 고병근 ⓒ FC안양 제공

"제가 어머니의 마음은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언남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수술을 많이 받았어요. 수술과 재활의 연속이었어요. 고려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경기는 많이 뛰었지만 수술과 재활은 피할 수 없었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지만 솔직히 부상이 잦은 제가 축구계에서 잘 풀리기는 힘들거든요. 프로에서 불러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죠."

"어머니는 제 모습을 많이 그리고 생생하게 보셨어요. 제가 엄청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다 알고 계세요.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말 축구화를 벗을 위기였는데 안양이 저를 불러줬어요. 정말 좋은 기회가 생겼죠. 그래서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 것 같아요.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힘든 길을 걸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아시니까요."

"간절한 만큼 무엇이든지 신인의 패기로 열심히"

고병근은 그토록 원하는 프로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축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이 '해피엔딩'일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오히려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 게다가 고병근은 벌써부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신인이 첫 해 소속팀의 전지훈련을 부상으로 절반이나 날렸다. 2019 시즌 고병근의 축구 인생은 그 누구보다 다사다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고병근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제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요.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불안감은 없어요. 컨디션이라는 것은 제가 조급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확 좋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꾸준히 몸을 만들면서 제게 기회가 올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있지는 않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이번 무대를 준비한 것 같아요. 저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안양에 왔어요. 그리고 안양이 저를 불러준 것 하나 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래서 구단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시키기만 한다면요. 대학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아쉽게도 팬즈데이 이후로 고병근을 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고병근의 재활은 K리그2가 개막하는 주간에 종료될 예정이다. 이후 제 기량을 되찾고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병근은 무대에서 보여준 신인의 패기를 그라운드에서도 보여주려고 한다. "제 무대를 보고 팬들이 즐거워 하셨잖아요. 그런 만큼 그라운드에서도 팬들이 항상 웃을 수 있는 그런 경기력을 꼭 선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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