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로 대한카라테연맹 회장은 바둑계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대한카라테연맹

[스포츠니어스 | 최종준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바둑의 양대 단체인 대한바둑협회(‘대바협’)와 한국기원이 한동안 집행부 수장의 공백으로 비상경영 체제를 겪었다. 홍석현 전 한국기원 총재는 작년 10월 29일 기사총회에서 송필호 부총재와 유창혁 사무총장 불신임안이 가결되자 11월 2일자로 사임했고, 신상철 전 대바협 회장도 12월 31일자로 개인사유로 사임했다.

대바협은 지난 2월 17일에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대한카라테연맹 회장과 대바협의 재정운영위원장을 역임한 윤수로 후보를 제6대 회장으로 선출했고, 한국기원도 조만간 총재를 영입할 계획이다. 한국바둑의 명운이 달려있는 중요한 시기에 두 단체의 수장에게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지혜를 발휘해서 바둑인을 단합시키면서 한국바둑의 현안해결과 발전전략을 추진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한국바둑이 전통문화에서 스포츠바둑으로 정체성을 전환한지도 어느 듯 15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스포츠바둑의 완성은 언감생심, 외연축소와 저변약화 그리고 각종 행정난맥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당연히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두 단체는 대화의 창구마저 막혀있다.

그러나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바둑의 저력은 강했다. 뜻있는 바둑인의 노력과 국민의 성원으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2010년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국가대표선수단은 배정된 3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해서 한국바둑의 저력과 스포츠로서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스포츠바둑의 완성을 위한 절대과제였던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의 정식종목 입성에 성공했고 올해부터는 공식배점도 부여받았다.

또한 드라마 ‘미생’, ‘응답하라~’ 등을 통해서 바둑의 매력이 크게 부각되었고 특히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맞대결은 거의 전 방송매체가 생중계하는 초대형 히트를 터트렸다. 또한 바둑황제 조훈현 국수의 국회 진입과 함께 추진된 ‘바둑진흥법’이 입법에 성공하면서 11월 5일이 ‘바둑의 날’로 지정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동안 뒷전이었던 여자바둑의 괄목성장 역시 대단한 성과이다.

이제 두 단체의 수장이 취임하면서 한국바둑의 새 시대가 열린다. 과연 이 시점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 것인가? 필자가 지난 2년간 대바협의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체험한 현상을 토대로 한국바둑이 나아갈 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제안 드린다. (편집자주-해당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 두 단체의 협력체제 구축과 바둑인의 대화합

무엇보다도 두 단체가 공고한 협력체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지금 한국바둑은 치열한 스포츠계의 경쟁시장에서 외부요인보다 내부문제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바협을 창설했을 당시에 각 단체의 역할과 주제별, 단계별 실행플랜을 철저하게 준비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통과 혼란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해서 공동 발전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바둑이 살 길이다. 단급증발급 문제로 두 단체가 경쟁하는 현재와 같은 불편한 상황도 협의체가 가동되면 쉽게 정리할 수 있고, 아마바둑계에서 수시로 프로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스포츠의 기본적인 가치관도 ‘국위선양’에서 ‘국민행복’으로 바뀌고 있다. 바둑은 스포츠코리아를 구성하는 네 축인 학교체육, 엘리트체육, 생활체육과 프로스포츠 모두를 아우르는 최적의 국민스포츠인 만큼 바둑인 모두 자긍심을 가지고 내실다지기와 외연확장에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두 단체의 엇갈림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둑꿈나무와 학부모, 일선지도자 등 바둑종사자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바둑인의 대화합을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장질서가 악화되어서 한국바둑의 국민스포츠화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까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2. 사무행정의 선진화

다음으로는 사무행정의 선진화 문제이다. 통상 경기단체는 임직원의 변동이 잦은 편이어서 사무처의 행정력이 약화되기 쉽다. 대바협의 경우에도 필자가 상임부회장 자격으로 직접 현장에서 체험해보니 그 행정난맥의 정도가 대단히 심각했다. 최근에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무행정력이 선진화되어야 내부통제 기능(Internal Control System)이 잘 가동되어서 각종 행정, 재무 관련사고의 예방과 함께 경영선진화가 가능해지고 산하단체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튼실한 관리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 한국기원은 대바협보다 조직, 인원, 외형과 경영 연관분야가 더 크고 많기 때문에 사무행정력의 선진화는 더욱 더 그 중요성이 클 것으로 판단한다.

바둑은 전국민의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해당 사진은 본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이버오로

3. 프로기사의 양성 및 운영제도와 보급사업의 개선

이어서 기사양성과 보급사업 관련사항이다. 이 주제는 올해로 현대바둑 74주년을 맞는 한국기원의 설립이념이기도 해서 필자가 세부전략을 논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간의 경험을 기초로 간략하게 의견을 개진코자 한다. 오랜 세월 한국바둑의 든든한 근간이었던 프로기사제도가 바둑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스포츠 체제로 전환되면서 변화의 갈림길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프로기사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기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 마디로 프로기사 면장이 기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완전한 지역연고제에 기반을 둔 장기프로리그제도가 정착한 일명 ‘구단제’의 완성이지만 바둑이 개인전의 성격이 강한 특성도 있어서 당장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프로기사의 안정적인 생계보장과 경쟁을 통한 지역연고시스템의 정착을 목표로 현행 프로기사제도와 기전제도의 발전적인 개편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프로스포츠의 기본개념은 확실한 지역연고제이므로 세계대회와 개별기전을 제외하면 프로기사는 연고개념이 확실한 리그의 각 팀에 소속되어서 계약기간 동안 연봉제로 활동하고 자유계약의 권리와 함께 드래프트와 트레이드의 의무도 가지게 된다.

다른 스포츠종목이 아마로 출발해서 프로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바둑은 프로로 출발해서 무려 6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정부산하의 경기단체인 대바협을 만들었기 때문에 바둑계의 곳곳에는 여전히 비 스포츠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있는바 이를 하나하나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바둑의 체제가 완성된다. 그리고 아마보급 사업은 대바협의 고유한 역할임을 인정해서 점차 사업을 이양해서 대바협이 전국적인 네트워크(시도협회, 학교, 클럽 등)를 튼튼하게 키우도록 지원하고 협력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바둑만큼 선수(프로기사)되기가 어려운 종목이 있을까? 조금 나아졌다지만 다른 종목에 비하면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많은 꿈나무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바둑에 자신을 투자할 수가 없으므로 바둑행정은 반드시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기원 본원연구생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본원연구생은 각 지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체전에 참가하는 학생선수는 학교소재지 기준으로 지역별로 경쟁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은 지역연고제도와 ‘운동하는 일반학생,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학원스포츠의 근본정책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

4. 기타 – 국제경쟁력 강화, 바둑진흥법 활용, 홍보, 마케팅 강화 등

이외에도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 고정화와 국제경쟁력의 강화, 바둑진흥법의 실천적인 운영전략 추진, 스포츠토토 편입과 홍보, 마케팅전략의 전개를 통한 외연확장도 당면과제이다. 한국바둑은 다른 어떤 종목보다 기본여건이 질 구성되어 있는 편이다.

학교의 바둑교실, 바둑학원, 바둑동아리와 바둑중고교, 대학의 전문학과 및 두 개의 케이블TV망, 인공지능 기술 등 얼마나 훌륭한 인프라망인가? 한국바둑은 이를 최대한 활용한 전문적인 연구와 보급활동을 전개해서 스포츠바둑의 발전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두 단체 새 수장의 취임과 함께 한국바둑의 발전을 위한 전략과제들이 활기차게 추진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최 종 준 : 대한바둑협회 부회장,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