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은 이제 갓 프로 생활을 한지 두 달이 된 순수한 선수다. ⓒ서울이랜드

[스포츠니어스 | 부산=김현회 기자] 2015년 창단한 서울이랜드는 하나 하나가 역사였다. 창단 1호 시즌 티켓 구매자는 김진우 씨였고 김재성은 창단 1호골의 주인공이 됐다. 첫 승점은 지난 2015년 3월 29일 FC안양과의 경기에서 챙겼다. 창단 첫 승은 2015년 5월 수원FC와의 경기에서 따냈다. 이렇게 서울이랜드는 창단 이후 ‘1호’ 역사를 하나씩 완성했다.

창단 후 4년이 지났다. 이제 그들도 ‘1호’라는 최초의 역사를 더 이상은 쓸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울이랜드에 정말 큰 의미가 담긴 또 하나의 ‘1호’ 역사가 탄생했다. 바로 유소년 팀 출신 선수가 성장해 1호로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것이었다. 바로 이상헌이 그 주인공이다. 무려 4년의 결실을 이제야 맺게 됐고 이제 그들도 뿌렸던 씨앗을 하나씩 수확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서울 이랜드 U-18팀의 창단멤버이자 첫 주장이었던 이상헌의 입단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무려 4년 만에 배출한 1호 유소년 출신 선수는 그들에게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성과다. 그를 직접 서울이랜드가 전지 훈련 중인 부산에서 만났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스포츠니어스>와 만나 얼마 전 클럽에 갔던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는 아직 언론의 무서움을 모르는 순수소년이었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동계훈련 중인데 프로팀의 첫 동계훈련을 경험하니 어떤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동계훈련과는 차원이 다르다. 체계적인 훈련을 경험하며 ‘아 이런 게 훈련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강도도 세고 난이도도 높다. 아무래도 같이 훈련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동계훈련을 여러 번 경험한 형들이고 나는 1년차 신인이다보니 모든 게 신기할 뿐이다. 쉽지만은 않다.

K리그에 온 걸 축하한다. 계약서에 사인한지 얼마나 됐나.

지난 해 11월말인가 12월초에 했을 거다. 프로 선수가 된지 갓 두 달이 넘었다.

아직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그런가. 나는 내가 경험한 것 중 처음이었던 걸 모으는 습관이 있다. 방에 다 걸어놓는다. 클럽에 딱 한 번 가봤는데 그때 받는 입장용 팔찌도 방에 걸어놨고 독일에서 축구를 할 때 처음 나왔던 신문도 걸어놨다. 그리고 지난 해 말부터는 가장 소중한 것 하나도 방의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게 뭔가.

서울이랜드와 계약할 당시의 볼펜이다.

오, 대단한 스토리다. 혹시 훔쳤나.

아니다. 훔친 건 아니고 계약을 담당한 팀장님이 “이 볼펜이 너의 프로 인생을 시작하게 했으니 잘 간직하라”면서 기념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방에 전시해 놨다. 볼 때마다 뿌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이제 서울이랜드 선수라니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서울이랜드가 계약을 제시할 때의 감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다. 내가 사실은 서울이랜드의 제안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 대학 진학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었다. 딱 그 시기가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였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대학교 원서를 내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그날 딱 서울이랜드에서 전화가 왔다. “계약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압구정역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원서를 찢어 버렸다. 서울이랜드가 나를 택했다고 해 너무 신이 났다.

그러다 혹시 서울이랜드가 입장을 번복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나. 원서는 예정대로 넣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서울이랜드가 그 정도로 신뢰가 없는 분들이 아니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이상헌을 비롯한 신인 선수들이 태국 전지훈련 도중 기념 촬영을 했다. ⓒ프로축구연맹

이제 갓 프로 선수가 됐다. 어떨 때 내가 프로 선수가 됐다는 걸 실감하나.

나한테 월급이 들어오는 걸 보고 처음 프로 선수가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와 진짜구나’ 싶었다. 또한 훈련이 대단히 체계적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프로는 이것보다 훈련이 더 체계적이고 강도도 높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다. 운동 준비하는 것도 차원이 다르다. 얼핏 지나다니면서 감독님과 코치님이 회의하시는 양만 봐도 엄청나다. 훈련 준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게 보인다. 그걸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뭔가 이룬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질문이 뭐였나. 말을 하다보니 질문이 뭔지 까먹었다. 인터뷰를 많이 안 해봐서 그러니 이해해달라.

괜찮다. 이런 아무 말 대잔치 좋아한다. 프로 선수가 됐구나라고 느낄 때가 언제냐는 게 질문이었다.

이렇게 아무 말이라도 받아주셔서 고맙다. 서울이랜드는 시스템이 독특하다. 선진형이다. 다른 유소년 팀들은 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며 훈련까지 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각자 학교에 다닌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다같이 잠실에 모여서 운동하는 시스템이다. 학교 수업을 다 받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잠실로 와야 한다. 교통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용돈을 받으면 거의 다 교통비로 나갔다.

아무리 아무 말 대잔치라지만 프로 선수가 됐구나라고 느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갑자기 서울이랜드 유소년 시스템과 교통비를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계속 들어보라. 다 기승전결이 있다.

알겠다.

부모님이 지원을 잘 해주셔서 부족함 없이 축구를 했다. 축구를 하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지원을 많이 해주셨다. 특히 운동화를 비롯해 용품 등을 아낌없이 지원받았다. 용돈 대부분이 교통비로 나가도 용돈을 더 올려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껏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해드린 게 없어서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좋은 신발을 사드렸다. 그때 정말 프로 선수가 됐다는 걸 느꼈다.

좋은 신발이라고 하면 혹시 이랜드 계열의 ‘뉴발란스’를 말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뉴발란스를 폄하하는 건 아닌데 내 기준에서는 꽤 비싼 신발을 해드렸다.

저런…. 열심히 뉴발란스 팔아서 준 월급으로 다른 신발을 사다니….

내가 인터뷰를 많이 안 해봐서 수습이 안 된다. 좀 도와달라. 뉴발란스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다.

그러면 골라라. 뉴발란스 신발과 발렌시아가 신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서울이랜드 식구가 되기 위한 1단계 질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발렌시아가 100만 원짜리 신발 한 켤레와 뉴발란스 10만 원짜리 신발 10켤레, 뭐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해달라.

아니다. 몇 켤레 그런 거 없고 그냥 신발 브랜드만 놓고 보는 거다. 뉴발란스와 발렌시아가 중 당신의 선택은 뭔가. 나는 발렌시아가 신발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아무래도 몇 년 동안 나를 지원해준 뉴발란스로 하겠다. 신고 입고 모든 걸 뉴발란스에서 해줬는데 발렌시아가에서는 아마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있는지도 모를 거다. 그리고 진심인데 내가 뉴발란스 축구화를 되게 좋아한다. 후원을 받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뉴발란스 축구화를 사서 신은 적도 많다. 고등학교 시절 경기 사진을 찾아보면 뉴발란스 축구화를 신고 뛰는 모습이 많을 거다. 정말이다.

알겠다.

앞서 말에서 이어 나가자면 누나에게도 선물을 해줬다. 사실 누나한테는 선물을 해줄 정도로 가깝진 않아서 할까 말까 고민도 했었고 누나가 바라는 것도 컸다. 스무 살짜리 동생한테 아이패드를 사달라고 하는 건 정말 미친 거 아닌가. 한 대 맞고 싶냐고 말하면서 아이패드 펜슬하고 에어팟을 선물해줬다.

첫 월급인데 자기 자신에게 해준 선물은 없나.

아직은 딱히 없다. 지금 동계훈련 기간이고 뭘 사는 데 정신을 놓을 상황이 아니다. 운동하면서 돈 쓸 일도 거의 없다. 편의점에서 가끔 뭘 사먹는 정도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이상헌을 비롯한 신인 선수들이 태국 전지훈련 도중 기념 촬영을 했다. ⓒ프로축구연맹

프로 선수들의 공 돌리기 훈련은 살벌하다. 여기에 편의점 털기 등 엄청난 내기가 걸리기도 한다. 프로 1년차인 당신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런 거 할 때는 목숨 걸고 한다. 안 걸릴 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최고 연봉을 받는 김영광이 내기에서 걸리는 것과 당신이 걸리는 건 다르다.

물론이다. 그리고 아마 영광이 형이 내기에서 걸려도 형들이 사달라고 말도 잘 못할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편의점에서 뭘 사먹는 걸 좋아하는 당신, 돈 10만 원이 있다면 이랜드 계열의 자연별곡과 CJ 계열의 빕스 중 어디에 갈 것인가. 빕스가 참 맛있더라.

이건 고민할 것도 없이 자연별곡이다. 사실 내가 빕스를 별로 안 좋아한다. 음식도 생각보다 별로다. 자연별곡 보쌈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생일 파티를 해봤는데 그때도 자연별곡에서 했다. 내 생일이 8월인데 당시 매탄고와의 경기에서 내가 가벼운 뇌진탕을 입었다. 그 다음이 제주 원정이었는데 한 경기 쉬라고 해서 친구들과 자연별곡으로 달려가 생일 파티를 했다.

서울이랜드 식구가 되기 위한 2단계 테스트도 잘 통과했다. 아직 팬들은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본인 스스로 자기 소개를 한다면.

동명초등학교 시절 클럽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학교에서 3년을 배우고 중대부고로 진학했다가 중경고로 전학을 갔다. 축구 선수로 성장하면서 프로 유소년 팀에 한 번은 가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가 생겨 서울이랜드 유소년 팀으로 옮기게 됐다.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합격해 서울이랜드 유소년 선수가 됐다. 학교 소속 축구부이면서 프로 산하 유소년 팀이 아니라 나는 개포고등학교를 나왔다. 개포고등학교에는 따로 축구부가 없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서울이랜드의 유소년 시스템이 상당히 독특하다.

해외 선진 시스템과 비슷하게 추진했다고 들었다. 일반 프로 산하 유소년 팀은 한 학교에서 수업 받고 훈련하고 숙소 생활을 하는 시스템인데 우리는 집에서 먹고 자고 통학한다. 수업도 다 듣고 어느 정도 성적이 유지되지 않으면 경기에도 나가지 못한다. 학교 마치고 저녁 7시에 잠실에 모여서 운동하고 해산하는 시스템이다.

통학이 힘들진 않았나.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힘든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매일 학교와 훈련장을 오가는 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집이 그다지 멀지 않아 힘든 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온 애들은 힘든 게 눈에 보였다. 훈련 끝나면 집에 가서 씻고 학교 숙제 하고 늦게 잔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 수업 듣고 저녁 땐 집에 들렀다가 운동을 하러 간다. 힘든 패턴이긴 하지만 그래도 축구선수가 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서울이랜드의 초창기부터 모든 걸 경험한 선수다. 이 팀과 첫 만남을 기억하나.

프로팀 산하 유소년 팀 선수들은 프로 형들이 경기를 할 때면 경기장에 투입돼 볼보이를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서울이랜드 유소년 팀에 있기 전인 중경고 진학 시절에도 서울이랜드 볼보이를 하러 자주 왔었다. 지금까지는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숨길 것도 아닌 일 같은데 왜 숨겼나.

자세히 들어보라.

알겠다.

볼보이를 하면 우리에겐 대단히 큰 혜택이 있다. 사실 우리는 운동에만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을 잠시 학교 측에 맡겨놓고 생활했다. 그런데 볼보이로 경기에 투입되는 날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시적으로 맡겨 놓았던 휴대폰을 돌려준다. 그래서 애들이 프로팀 볼보이로 가는 걸 되게 좋아했다. 중경고에서 서울이랜드 경기 볼보이로 자주 나가게 됐다. 한 번은 골대 뒤에서 볼보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서울이랜드가 지고 있었다. 경기가 막판으로 향해 가고 있었는데 내가 딴짓을 하다가 영광이 형한테 공을 늦게 줬다. 그때 영광이 형이 “야, 뭐해? 빨리줘”라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지금도 영광이 형은 그때 그게 나인지 모른다. 처음 밝히는 거다.

당신이 잘못했다.

안다. 내가 잘못했다. 영광이 형은 정말 착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그때도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공을 드렸다. 절대 기분 나쁜 건 없었고 ‘와 정말 카리스마 있다’고만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김영광에게 이 사실을 말할 생각은 없나.

없다. 혼날 것 같다.

알겠다. 부디 김영광이 이 인터뷰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당신에게 화를 냈던 하늘 같은 형을 한 팀에서 만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단어를 정확히 써야한다. ‘화를 냈던’이 아니고 ‘호통을 치셨던’이다.

알겠다.

정말 멋진 선배다. 실력과 인성 모두 굉장히 프로다워서 배울 점이 많다.

그렇다면 김영광과 조현우 중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누굴 선택하겠나. 그래도 '빛현우' 아닌가.

망설임 없이 영광이형을 선택하겠다. 조현우 선수님(?)은 같이 해본 적이 없으니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골키퍼 중에는 영광이 형이 최고라고 믿는다.

서울이랜드 식구가 되기 위한 3단계 질문도 잘 통과했다. 나라도 김영광이 빨리 공 달라고 호통을 치면 무서울 것 같다.

한 번은 볼보이를 하러 왔다가 경기 도중 잠깐 졸았던 적이 있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그 사이 경호원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다른 애를 데리고 와 “얘랑 바꾸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심하게 졸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잠깐 졸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이상헌을 비롯한 신인 선수들이 태국 전지훈련 도중 기념 촬영을 했다. ⓒ프로축구연맹

볼보이로는 빵점이다.

매번 그런 건 아니다. 당신을 보니 당신도 학교 다닐 때 모든 수업을 다 열심히 듣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한눈을 판 건 한두 번이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열정을 다해 내 일을 했다. 창단 시즌이라 관중도 많았고 선수 구성도 좋았다. 경기력도 훌륭했다. 늘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보며 ‘K리그 챌린지도 이렇게 수준이 어마어마하구나. 나는 이 무대에 서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그렇게 볼보이 시절부터 함께 했던 경기장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다.

지금은 경기장만 봐도 설렌다. ‘이게 내가 뛸 수 있는 경기장이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이렇게 큰 곳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데 우리 홈 경기장이 레울파크라고 생각하니 벌써 흥분된다. 몇 년 동안 생각만 해온 걸 실행시킬 기회가 생겼다. 열심히 하고 성장해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제 내가 할 일이다.

유소년 팀에서 경기를 보며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누구였나.

타라바이를 좋아했다. 공격 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위주로 경기를 봤다. 타라바이는 타겟형으로 볼 만큼 큰 키도 아닌데 수준 높은 K리그 수비수들을 이겨내고 골을 넣었다. 말이 통한다면 어떻게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유소년 선수들 중에 종종 프로팀에 올라가 R리그나 연습경기를 같이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때 김재성, 김창욱 형과 뛰면서 배운 것도 많다. 그때 같이 뛴 형 중에 이제 팀에 남아 있는 건 영광이 형과 (윤)성열이 형, 딱 둘 뿐이다. 지금도 성열이 형한테 많이 의지하고 배우는 중이다.

프로팀 입단은 이번에 했지만 창단 멤버들과도 경기를 한 서울이랜드 원로다.

창단 시즌부터 여기 식구다. 이래봬도 구단 원년 멤버라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서울이랜드로 오지 않고 독일에 갔다 왔다고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었나.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프로로 가느냐 아니면 대학으로 가느냐 고민이 많았다. 당시 김병수 감독님께서 프로는 보여줘야 하는 자리인데 너는 아마 당장 프로로 오면 형들하고 부딪히고 스트레스 받고 위축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하염없이 추락할 수 있으니 대학에 가서 경험을 더 쌓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프로에 즉시전력감이 될 때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셨다. 나도 프로팀 형들의 플레이를 보니 도저히 내가 즉심전력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더 성장해 서울이랜드로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당신의 선택은 대학이 아니라 독일 4부리그였다.

고민이 많았다. 대학교에 가도 신입생이 당장 4학년 형들과 경쟁해 경기에 나선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대학교에 가서도 프로하고 똑같이 경기에 나서지 못할 거면 대학으로 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해외의 수준 높은 곳에 가서 경기를 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곳 저곳 알아보다가 독일 4부리그 쇼트 마인츠라는 팀에 입단했다. 테스트 기회가 생겨 도대체 그 친구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도전해 보고 싶었다.

독일 4부리그는 어떤 곳인가.

수준이 굉장히 높다. 우리팀 외에도 슈트트가르트 2군과 마인츠 2군, 프라이부르크 2군이 다 같은 리그 소속이다. 내가 가끔 경기 도중 헤맨 적은 있어도 훈련을 받으며 헤맨 적은 없었는데 첫 훈련한 날 깜짝 놀랐다. 내가 그날 훈련을 분명히 못한 게 아니었는데 한 번 같이 부딪혀보고는 너무 주눅이 들었다. 여기에서 배우면 더 성장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운이 좋게 테스트에도 합격하게 됐다. 경기에도 나서고 골도 많이 넣고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

하지만 당신은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거기에서 더 잘해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단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것도 아니었고 팀에는 도르트문트 2군과 호펜하임 2군 선수들이 들어왔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재계약을 할 수 있었음에도 돌아오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독일로 갈 때부터 내 목표는 서울이랜드의 제안을 받는 것이었고 불러만 주신다면 무조건 서울이랜드로 오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이랜드의 연락을 기다렸고 아까 말한 것처럼 국내에 돌아와 대학 진학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기적처럼 서울이랜드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았다. 내가 대학 원서를 찢어버릴 만하지 않았겠나.

이제야 공감이 간다. 당신은 이제 서울이랜드 선수들이 묵는 청평의 켄싱턴리조트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렇다.

그렇다면 이랜드 계열의 켄싱턴리조트와 우리나라 최고의 호텔이라는 삼성 계열의 신라호텔 중 한 곳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면 어디를 선택하겠는가. 나같으면 신라호텔에 묵는다.

무조건 켄싱턴리조트다. 신라호텔은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우리 켄싱턴리조트는 난방이 굉장히 잘해 겨울에도 뜨끈뜨끈하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이상헌을 비롯한 신인 선수들이 태국 전지훈련 도중 기념 촬영을 했다. ⓒ프로축구연맹

알겠다. 당신 정말 이랜드 사람 다 됐다. 서울이랜드 식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질문도 통과했다. 그런데 유스 출신 1호라는 게 부담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부담이 많이 된다. 내가 잘해야 우리 유소년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열심히 해서 내가 더 길을 닦아놓아야 한다. 그래야 애들도 올라올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구단에서 많이 지원을 해주셨는데 부담감을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호’ 선수라는 건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팀에서 내가 잘해 기량이 많이 발전한다면 서울이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제 프로에서 두 달 된 선수의 귀여운 각오라고 받아들이겠다.

선수 생활을 짧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멀리 앞을 내다봐야 한다. 된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이건 잘 말해야 한다. 지금껏 ‘이 팀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가 이적하는 선수를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적도 있는 법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 말은 빼달라.

이미 나갔다.

아….

아마 독자들은 프로가 된지 두 달이 된 어린 선수의 당돌하고도 귀여운 목표라고 좋게 받아들여줄 거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서울이랜드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언젠간 서울이랜드를 떠올릴 때 내 이름을 떠올리는 팬들이 생겼으면 한다. 물론 우리팀에는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특히나 영광이 형은 이 팀에서 많은 걸 쌓아왔다. 그런 형들을 뛰어넘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언젠간 판도를 뒤집는 선수가 되고 싶다. 서울이랜드 팬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내가 자리 잡을 수 있게 하고 싶다.

이상헌은 아직 순수했다. 몇 번의 장난스러운 낚시성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변했고 때론 신이 나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오랜 만에 정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 선수를 만난 것 같아 웃음이 번졌다. 그가 방에 고이 걸어 놓은 첫 계약 당시의 볼펜을 바라보며 그때 품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내달리길 기원한다. 서울이랜드 유소년 출신 1호 선수는 이렇게 서울이랜드의 일원이 된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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