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FC 안병준 “북한 국적? 그저 축구 선수로 봐줬으면”

순천에서 안병준을 만났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순천=홍인택 기자] K리그에 네 번째로 온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 선수. 안병준은 그렇게 소개됐다. 본인은 국적과 상관없이 “그저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봐줬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수원FC는 지난해 12월 27일 안병준의 영입 소식을 밝혔다. 안병준으로서는 이번 수원FC 이적이 첫 해외(?) 진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이 아닌 국내 선수로 분류된다. 랑규사, 안영학, 정대세에 이어 K리그에서 뛰는 네 번째 북한 국적의 선수가 됐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매우 복잡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의 축구를 배웠고, 북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으며 K리그에서 한국 축구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에서 <스포츠니어스>가 안병준을 만나 그의 국적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병준은 E-1 챔피언십 대회 당시 북한 대표 10번을 달고 뛰었다. ⓒ 대한축구협회

“조선 대표팀, 자극을 많이 받았죠”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터뷰해도 되겠죠? 소통에 불편함은 없나요?
하하. 제가 물어보고 싶네요. 제 한국어 괜찮나요?

어휴, 저보다 잘하시는데요.
아 그런가요. 지금은 괜찮을 것 같네요.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어도 하고 한국어도 배우신 건가요?
저학년 때부터 고급,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에 다녔어요. 거기서 한국어를 배웠죠.

축구는 그럼 조선학교에 있을 때부터 하기 시작한 건가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예요. 4학년 때부터 일본 클럽 유소년팀에 들어갔어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면 배우러 갔죠. 일본 축구에 좀 더 익숙한 면이 있어요.

그렇게 일본의 축구를 배우고, 대표팀은 북한 대표팀을 선택했죠. 이유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TV로 일본 대표와 조선 대표, 한국 대표가 경기하는 걸 많이 봤어요. 일본도 응원하고, 조선이랑 한국도 응원했죠. 제가 14살 때 처음으로 조선 대표로 뽑히고 대회에 나갔어요.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서 ‘대표선수’라는 게 의식이 됐고 17살 때도 대표가 됐죠. 한국에서 있었던 월드컵에도 출전했어요. 조선 대표로 뛰니까 가족들이나 친구들도 기뻐해 줬죠. 제 속에서 조선 대표로 플레이하는 보람을 느꼈어요.

우리나라에서 한 월드컵이면 U-20 월드컵인가요?
그때는 17세 이하 대표팀이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북한과 한국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자기가 자라는 과정에서 바꿀 수도 있고 제 친구 중에서도 국적을 바꾼 사람도 있어요. 저는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조선 국적으로 태어나기도 했고 바꾸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재일교포 대부분은 부모님의 국적을 따라가요.

북한 대표팀에 가보니까 어떻던가요?
자극을 많이 받았죠.

어떤 면이 자극됐나요?
피지컬 측면에서 자극이 됐어요. 우리 대표 선수들이 크고, 세고, 거기에서 차이를 느꼈달까.

일본에서 축구를 배웠기 때문에 북한 축구 색과 달라서 적응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솔직히 힘든 것도 많았죠.

그 과정에서 북한 축구를 체득하고 배운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면이 가장 좋았나요?
전술이나 기술은 일본이 더 앞서있는 것 같아요. 조선 축구에서 배운 건 정신력이나 그런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지지 않게 싸울 수 있는 것? 역시 그런 면도 축구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017년 말에 열린 동아시안컵에도 대표선수로 출전했죠?
한국 대표팀, 일본 대표팀과 경기했죠. 원래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까 상대 팀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금방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구마모토에서 활약한 안병준 ⓒ 아라소 구마모토

안병준의 축구가 완전히 바뀐 곳, 구마모토

일본에서 축구할 때 재일교포라서 당한 차별도 있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하고, 일본 클럽팀에 갔을 때부터 차별이 있기는 했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다 친하게 지냈지만 일부 사람들은 차별을 하죠. 어디에나 있어요. 뭐, 저는 그런 사람들은 상대 안 해요.

우라와 레드 팬들도 인종차별로 문제가 됐었죠.
제가 있던 구마모토는 시골이었어요. 자연도 많고. 구마모토 팬들은 순박해요. 저에게 잘 대해줬어요.

혹시 구마모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이유도 같은 측면인가요?
사정이 있었어요. 가와사키 프론탈레 입단이 결정된 다음 대학교에서 마지막 대회가 있었어요. 그 대회 시작 이틀 전부터 갑자기 무릎이 아팠어요. 일단 대회에 참가하고 그 뒤에 검사하니까 수술을 받아야 한대요. 그래서 가와사키에 입단한 다음 수술을 하게 됐죠.

힘든 시기였네요.
가와사키 1년 차에 수술만 두 번 하면서 1년 동안 축구를 아예 못했죠. 2년 차에도 잘 못 했고. 가와사키에 있었던 2년 반 동안 축구를 전혀 못 했어요. 부상이 계속되고 경기를 못 뛰니까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요. 제프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갔지만 그때도 자기 관리가 안 됐죠. 그 시기는 제 축구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나요?
제프, 가나자와를 거치고 구마모토에 합류했을 땐 몸 상태가 좋아졌죠. 결정적으로 구마모토의 코치님 중에 제 축구 관점을 완전히 바뀌게 해준 분이 계셨어요. 다른 시점으로 축구를 보게 되니까 축구가 열 배는 더 재밌더라고요. 프로 입단 후 잘 안됐던 것도 “아, 이런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때 잘 못 했구나”라고 느꼈어요. 눈이 떠진 거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봤어요. 드리블 돌파가 좋거나 중거리 슈팅 좋은 장면만 봤죠. 구마모토에 온 이후로 공 없을 때 움직임, 상황에 따라 어떤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지를 보게 됐어요. 포워드로서 제 축구가 완전히 바뀌었죠.

구마모토에서 축구에 대해 새로운 눈이 떠졌을 때 수원FC로 팀을 옮기는 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마 에이전트 쪽에서 제 영상을 수원FC로 보냈을 거예요. 수원FC 팀장님도 저를 좋게 봐주셨나 봐요. 직접 일본으로 보러 와주셨고 경기 끝나고 따로 만나기도 했죠.

가족과도 상의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만약 저 혼자 살았다면 쉽게 결정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결혼해서 가족도 있고 아이도 둘이 있고 하니까 가족들과 이적에 대해서 상담도 해봤어요. 저는 비록 한국이기는 하지만, 해외에서 제가 플레이하는 것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생각을 아내에게 얘기하니까 아내도 이해해주면서 한국에서 생활하면 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해줬죠.

29살이죠?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어요?
한국 나이로 25살 때 결혼했어요.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에요. 고급 2학년 때부터 사귀다가 결혼했어요. 같은 재일교포고 아내는 한국 국적이에요.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제가 먼저 했죠. 남자니까.

어떤 면에 반했어요?
첫인상도 좋았고 만나고 얘기하면서도 좋았어요. 아들이랑 딸이랑 지금 구마모토에 있어요. 순천 전지훈련 끝나고 2차는 구마모토로 가서 또 만날 수 있어요. 구마모토 팀 동료는 왜 벌써 오냐고, 오지 말라고 해요.

가족만 만나고 온다고 하면 되겠네요. 일본에 있었을 때 K리그는 보고 있었나요?
수원FC와 얘기를 나눈 후에 의식하고 보게 됐어요.

보니까 좀 어떤 것 같아요?
일본하고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이 좀 더 피지컬이 강한 것 같아요. 일본은 수비할 때도 지역으로 지키는 수비 방식을 추구해요. 맨투맨 방어도 하기는 하지만 공격이나 수비나 공간 의식이 강한데 한국은 공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K리그는 압박도 강하다는 인상이 있죠. 골을 넣어야 하는 포지션인데 생존 전략은 생각해 두셨나요?
구마모토 코치님에게 공이 없을 때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점을 많이 배웠다고 말씀드렸죠. 특히 앞으로 오는 수비에 대해서는 움직임으로 빠지는 모습이나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고.

“수원FC선수로서 잘해야죠.” ⓒ 수원FC

“국적 관계없이 한 축구 선수로서 봐줬으면”

본인이 K리그에 온 네 번째 북한 국적 선수인 건 일고 있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안영학이나 정대세와는 인연이 있어요?
이번에 수원FC로 올 때도 두 분에게 연락했어요. 잘하라고 응원 메시지 정도만 주고받았어요.

재일교포 축구인들끼리는 알고 지내는 편인가요?
맞아요. 연말연시에 교포 축구인들끼리 모여서 같이 축구를 해요. 부천에 있는 진창수 형이랑도 같이 축구를 한 적이 있어요.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한 편은 아니고 조금 이야기하고 발만 맞춰본 사이라서 아직도 연락처를 모르긴 하지만.

“안병준, 진창수와 안 친하다.”
아, 연락처를 몰라서 여기 올 때도 연락을 못 했어요.

그렇군요. 진창수도 그렇지만 정대세도 같은 공격수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정대세 형은 진짜 레전드죠. 저랑은 스타일이 다른데 둘 다 돋보이는 포지션이죠. 저하고 정대세 형은 비교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에요. 완전히 레전드니까.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존재죠.

안영학이나 정대세가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본인도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게 없더라도 수원FC로 왔으니까 수원FC 선수로서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최근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변화했는데 해외에서 보기엔 어땠어요? 전 정권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에서는 곧 한국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도가 된다고 들었어요. 일본도 그랬죠?
역시 일본에서는 그런 느낌으로 보도했어요. “정말 괜찮은 건가”라고 느꼈을 때도 있는데 한국에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한국은 그런 분위기 아니라던데”라고 하니까 괜찮다고 느꼈죠.

그래서 이적할 때도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나요?
하하. 그런 것도 있죠. 최근에는 이렇게 관계가 평화 분위기로 오니까 제가 이렇게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렇겠네요. 최근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변하고, 아무래도 국적이 북한이다 보니 당신에게 많은 관심이 집중될 것 같아요. 팬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요?
저를 주목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저는 국적 관계없이 한 축구 선수로서 봐줬으면 해요. 수원FC의 승격을 위해서 전력으로 플레이할 생각이에요.

선수로서 롤 모델은 있나요?
좀 많은 편이에요. 어릴 때는 호나우두나 지단을 보고 자랐어요. 지금은 레반도프스키나 수아레즈, 카바니, 피르미누 정도? 스타일은 다른데 골을 많이 넣는 이유가 있어요. 움직임이 너무 좋아요. 황의조도 마찬가지죠.

첫 해외 무대고, 2부리그이기 때문에 승격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이번 시즌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아요. 또 가족이 있으니까 그만큼 책임감도 느낄 것 같은데.
가족이 생기기 전에는 저 혼자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기만 하면 됐었죠. 가족이 생기니까 지금은 책임감도 있어요. 팬들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을 북한 선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축구선수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병준이 자신의 바람처럼 팬들에게 북한 선수가 아닌 한 명의 축구선수로 인식되려면 그가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2018년 구마모토에서 열 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그가 수원FC에서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북한’보다 ‘축구선수’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쓰지 않을까.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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