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아도 축구를 보는 사람, 시각장애인 팬을 만나다

시각장애인 축구팬 이진소 씨 를 만났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축구는 시각 정보로 가득하다. 22명의 선수들은 매우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잠시 딴청을 피우면 어느새 골이 들어가기도 한다. 비장애인으로서도 축구를 90분 동안 온전히 즐기기 쉽지 않다.

축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라고 했다. 장애인들도 예외는 아닐 터다. <스포츠니어스>는 이미 2017년 지체장애인 축구팬을 만나 그가 느끼는 불편함을 전했다. 그렇다면 지체장애인이 아닌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축구를 즐기는 걸까. K리그는 시각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제공하고 있을까.

강원도 춘천에 사는 이진소(25) 씨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박지성의 유럽 무대 진출로 축구라는 콘텐츠를 즐겼고 피파온라인 게임을 하며 축구를 접했다. 유럽 축구를 즐겨보며 K리그 경기까지 챙겨보는 마니아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축구 팬이다. 눈이 잘 안 보인다는 점만 빼면.

제주월드컵경기장, K리그1, 제주유나이티드
ⓒ 한국프로축구연맹

눈이 보이지 않는 진소 씨가 경기장에 오는 이유

진소 씨는 생후 9개월 때 소아암을 앓았다. 망막모세포종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시력을 잃었다. 정확히는 왼쪽 눈 시력이 남아 있지 않고, 오른쪽 눈은 일반 측정으로는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측정 방법으로 숫자를 굳이 매기면 0.04가 나와요. 마이너스 시력보다 더 안 좋은 시력이라고 보면 돼요.”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어떻게 축구를 즐기게 됐을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축구 게임을 즐겼어요. 사람들이랑 하면 상대가 안 되고 컴퓨터와 초보 모드로 즐겨요. 난이도를 쉽게 하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상대가 있는 게임을 하면 저는 채팅을 못 보잖아요. 가족들이나 형이 채팅에 사람들 욕하는데 굳이 상대가 있는 게임을 하냐고 해요. 그래서 상대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피파온라인을 하게 됐어요.”

진소 씨는 축구게임을 통해 축구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냥 이름만 들었던 외국 선수들을 제가 움직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선수들 영입하고. 풋볼매니저는 글씨가 많아서 힘들고 그래서 피파로 했어요”라며 “전술로 팀이 바뀌는 게 재밌었어요. 제가 눈이 안 좋아 못 하긴 하지만 게임에서 수비라인을 전술적으로 내리면 골을 확실히 덜 먹더라고요. 그런 게 재밌어서 실제 축구 전술도 찾아보게 됐죠.”

그의 안경은 시력을 교정하기 위한 안경이 아니다. 교정할 수 있는 시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빛에 민감한 눈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안경을 쓰고 있다. 빛에 민감한 만큼 비슷한 색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가 축구를 즐길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유니폼 색을 구분하는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녹색 유니폼은 잔디색과 같아서 아예 안 보이죠. 기본적으로 카메라는 선수들을 굉장히 멀리서 잡으니까요. 전북현대도 약간 연두색이죠? 비장애인들에게는 문제가 없겠지만 저로서는 좋지 않은 색이에요.”

진소 씨는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직접 경기장도 찾아간다. 대학을 가기 전에는 춘천에서 열리는 강원FC의 경기를 찾았고 광주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 이후엔 광주FC와 전남드래곤즈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경기장을 직접 찾는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사람이 많은 시내는 이동도 불편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많지만 경기장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의 반응을 즉시 느낄 수 있죠. 어떤 일이 일어나긴 일어났구나. 그런 게 재밌어요. 그래서 직접 경기장을 찾아요.”

ⓒ pixabay

“저는 축구를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에 가까워요”

하지만 진소 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실제 축구를 즐기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그는 곧바로 핵심을 전했다. “중계 해설이 없으면 공은 못 찾아요. 저는 축구를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에 가까워요. 70%는 듣는다고 봐야 해요. 실제로 경기장에 가서도 핸드폰으로 중계를 틀어놓고 이어폰을 항상 꼽고 있죠. 나머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고 공이 어느 진영에 있는지 정도만 파악해요. 페널티 박스 근처를 찍고 있으면 그쪽에서 공이 놀고 있구나. 골 장면은 느리게 나오면 볼 수는 있지만 빠른 건 공을 다 놓쳐요.”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축구를 대부분 들으며 판단한다. 나머지는 희미하게 보이는 대략적인 장면과 기본적인 포메이션으로 추가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자신의 상상력을 더한다. 그래서 그의 축구는 대부분 중계진 메시지에 의존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 선수가 분명 측면 수비수인데 공격 진영에 올라와 있다는 해설을 들으면 ‘이 선수가 오버래핑이 좋구나. 그러면 누군가 백업을 해주고 있겠구나’라고 그려요. 코너킥 상황에서 중앙 수비수들이 올라왔다는 얘기가 들리면 미드필더가 역습을 대비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이 그려져요.”

“선수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전적으로 중계진에 달려있어요. 저는 실시간 댓글도 못 보니 대중의 평가는 모르죠. 중계진 반응에 따라 이 선수 플레이가 좋구나, 어떻게 움직이는구나, 수비 가담도 열심히 하는구나. 박지성이 현역으로 뛸 때 공을 뺏겼는데도 바로 다시 뺏었다는 멘트가 많았어요. 그러면 ‘아 진짜 열심히 뛰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돼요.”

“볼턴의 이청용, 지금은 토트넘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와 얀 베르통언을 좋아해요. K리그에서는 강원FC의 황진성을 좋아해요.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선수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해설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중계진이 황진성을 언급하면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황진성이 공을 잡으면 기대가 돼요. 강원에 와서 정이 든 것도 있고.”

ⓒ 대한축구협회

“오히려 큰 대회 중계 듣기가 더 힘들어요”

다만 국내 중계진 대부분은 시각장애인들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상파, 종편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편의보다는 시청률을 위한 ‘재미’와 ‘전문성’을 더 추구하는 추세다. 이 씨에게는 더더욱 불편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큰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선수 출신 해설이 합류할 때가 많잖아요. 박지성, 최용수 감독님, 신태용 감독님의 합류는 불편했어요. 제가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래요. 해설로 상황 전달이 느려지다 보니까 저는 집중이 어려워요. 비장애인은 해설 없이도 볼 수 있잖아요. 저는 상황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선수 출신이라서’라기 보다 꾸준히 호흡을 맞춘 중계진이 아니면 흐름이 끊겨서 산만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에게 좋은 중계는 전달력이 좋은 중계다. 중계진의 목소리 톤도 전달력을 살리는 쪽을 선호했다. 그에게 중계진은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예전 SBS 중계진은 전반적으로 편했어요. 박문성, 장지현, 김동완 해설 모두. 배성재 캐스터는 구체적으로 전달하죠. 목소리나 톤도 중요해요. 이재형 캐스터는 톤이 좋았어요. 목소리 톤이 너무 낮거나 느리면 듣기가 어려워요. 고정운 감독님의 해설은 느려서 집중이 어려웠어요. 중계가 친절했으면 좋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SBS 중계진과 서형욱 해설위원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2012년 부산아이파크 선수들이 부산시각장애인복지센터에서 눈을 가린 채 시각장애인 선수들과 축구를 하는 모습 ⓒ 부산아이파크

진소 씨의 제안 “편의 제공,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프리미어 리그조차도 전체를 들여다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2017년 영국 평등과인권위원회(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이하 EHRC)는 BBC를 통해 “지난 수년간 프리미어 리그 측에 요구한 경기장별 장애인 시설 확장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EHRC의 요구를 100% 충족시킨 구단은 맨체스터시티, 사우샘프턴, 레스터시티 세 팀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국내 사정은 어떨까.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에 문의한 결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경기장에 법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라면서도 “시각장애인의 경우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장애인 편의 제공에 항상 신경을 쓰는 FC서울 측도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축구를 제공할 수 있을까. 지체장애인 강성민 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그리고 진소 씨에게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저 하나 때문에 편의 시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소 씨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단 차원에서 편파 중계팀을 꾸리면 어떨까요?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현장 중계가 아니라, 그 팀의 팬들을 위한 독자적인 인터넷 중계방송을 하는 거죠.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써서요. 현장에서 바로 중계가 이루어질 테니 한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편파 방송을 보는 거죠. 시각장애인은 축구를 접하기 쉬워지고, 중립적으로 보고 싶은 팬들은 스포츠 채널을 보면 되고.”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축구에 더 관심을 가질 방법이 있을 거예요. 선수들 노력도 필요하다고 봐요. 선수들이 지역 봉사활동도 하잖아요. 지역마다 시각장애인 학교는 다 있어요.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야구는 굉장히 좋아해요. 다이아몬드 구조에 1루수, 유격수, 3루수 위치를 알고 중계 해설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지, 3루수 쪽 안타인지 말해주니까 이미지가 간단히 그려져서 관심도가 높아요. 축구는 위치선정도 다양하고 왼쪽 선수가 오른쪽으로 오기도 하고 경기 중에 수비 숫자도 세 명 네 명 바뀌니까 어렵긴 하겠죠. 그걸 바꿀 방법은 캐스터나 해설, 그리고 선수들이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2017년 지체장애인 강성민 군은 “축구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 전체가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장치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 진소 씨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자신과 같은 눈이 불편해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축구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들의 바람대로 ‘모두의 스포츠’ 축구는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intaekd@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9UDCL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