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준 칼럼] 품격을 상실한 불혹(不惑)의 ‘프로야구’

kbo리그



KBO리그가 올해로 38번째 시즌을 맞는다. 사람이라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불혹(40세)의 경지에 이른 셈이다. 1982년에 출범한 이래 프로야구는 국내 스포츠문화를 이끌면서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성장했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합리성과 품격을 상실한 갖가지 현상이 이어지면서 프로야구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고급스포츠 문화에 걸맞은 품격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1. 프로스포츠에서의 품격이란 무엇인가?
품격(品格 – Dignity)은 ‘품성과 인격, 가치와 위엄’을 의미한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에서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말의 품격’, ‘신사의 품격’, ‘품격경영’ 등 품격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의 품격은 어떤 의미일까?

본질적으로 서로 경쟁해서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스포츠세계에서는 품격이라는 말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최상위의 스포츠상품인 불혹 나이의 프로야구라면 리그운영 방식에서부터 경기, 플레이 하나, 팬의 만족도 관리에도 반드시 적절한 품격이 배어있어야 한다.

형평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리그운영제도, 항상 팬을 배려하고 미래지향적인 스포츠문화를 창조하려는 구단의 노력 그리고 엄격한 자기관리와 단단한 팀 케미스트리로 똘똘 뭉치면서도 경쟁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선수의 자세 등이 품격이 있는 프로야구의 필요충분조건이다.

2. 프로야구 품격실종의 현상(現狀)
근래에 나타났던 프로야구의 품격실종 현상을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도 머리를 숙여야 했던 ‘병역특례’ 논란과 그 여파를 대표팀의 선동열 감독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서야 했던 현실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0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KBO 총재의 이해 못할 자세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불렀다.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빈익빈부익부의 자유계약(FA)제도, 형평성을 상실한 경기일정과 같은 기본적인 과제 역시 오랜 세월 무대책으로 시간만 흘려보냈다. 구단의 행태 역시 품격경영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구단대표의 횡령사건, 승부조작, (성)폭행사고 등 계속되는 일탈행위는 자체 교육지도와 관리체계가 미흡했음을 증명한다.

한국시리즈와 골든글러브 행사와 같은 축제의 장을 앞두고 감독선임이라는 큰 뉴스를 발표한다거나 승부조작사건에 관련된 선수의 무책임한 폭로성 기자회견을 방치한 것도 동업자정신의 실종과 기본적인 관리체제의 허술함을 입증한다.

유행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추세가 되고 있는 선수출신 현장지도자의 단장 임명도 프로야구의 품격향상 문제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단장의 역할이 중요할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축적된 실무능력이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출신이라서 문제라는 뜻은 아니고 단장직 수행에 걸맞은 적절한 교육과 실무경험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 구단이 전혀 특성이 다른 타 종목 심판출신 인사를 단장으로 선임했다가 며칠 만에 교체하는 이해하기 힘든 해프닝도 발생했다.

프로야구의 품격향상을 위해서는 KBO(프로)와 야구협회(아마)의 발전적인 상생협력체제 구축이 우선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각 구단의 행정운영능력의 향상이 중요하므로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당 사진은 본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KBO

3. 선수출신 단장을 임명하기 위한 전제조건
현대의 프로야구단 단장에게는 갈수록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구단운영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실천전략을 추진하는 전략기획 능력, 전산데이터 개발운영능력, 조직관리와 영업, 홍보 능력, 재무관리 능력, 현장과의 적절한 소통능력 등.

그래서 ‘단장의 야구’라고 칭해지는 메이저리그에서 단장은 점차 나이가 젊어지고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재들이 많아지고 있다. 30개 구단 중에서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리 디포토(Jerry Dipoto)단장이 유일하다. 따라서 우리 프로야구에서 추세가 되고 있는 선수출신 지도자의 직방임명은 문제가 있다.

우리 프로야구도 현장(감독, 코치)과 프런트의 자격과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현장지도자들이 앞의 메이저리그의 경우에서 설명한 그러한 선진경영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충족하고 있을까? 당연히 부족하다.

이것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포츠의 압축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한계점이다. KBO와 각 구단이 협력해서 미국의 Sports Management World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야구단장과 스카우트 양성과정’(Baseball General Manager & Scouting Course)과 같은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선진화의 방안이 된다.

4. 맺음말
새 시즌이 시작되고 순위경쟁이 뜨거워지면 프로야구의 품격문제는 또 다시 수면 아래로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로마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인 폼페이가 하루아침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듯이 프로야구 역시 언제 그와 같은 운명에 직면할지 모른다.

국내최고라는 현실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전반적인 인프라와 스포츠외교의 수단으로는 축구가 우위에 있고, 한 경기의 흡인력에서는 프로배구보다도 훨씬 밀도가 낮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빠르게 변하는 팬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품격이 있는 프로야구를 만들어야 한다. 승부조작, 입시비리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아마야구, 도핑과 윤리의식 상실과 이기심에 빠지기 쉬운 프로야구는 항상 팬이 외면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과 대외신인도를 견인했던 스포츠코리아의 기본가치도 ‘국위선양’에서 ‘국민행복’으로 바뀌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스타부재와 다수 구단들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탱킹(Tanking : 고의로 성적하락을 유도해서 우수신인 지명을 노리는 것)정책으로 순위경쟁이 싱거워지면서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 단계 높은 고품격 프로야구, KBO리그의 시급한 해결과제이다.

최종준 : 스포츠평론가, 전 LG트윈스/SK와이번스프로야구단 단장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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