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남해=조성룡 기자] 수원FC의 주전 골키퍼가 지역 라이벌인 수원삼성으로 팀을 옮겼다.

딱 한 줄만 봐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때로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올 수 있다. 한 팀의 골문을 책임졌던 선수가 이적한 곳이 공교롭게도 지역 라이벌 팀이라니. 아마 선수 본인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구단 또한 쉽게 이적을 허락하지 않는 장면이 그려진다. 하지만 결국 선수는 팀을 옮겼다. 이런 이야기들만 듣더라도 자극적인 인터뷰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스포츠니어스>는 수원삼성의 전지훈련지인 남해에서 신입 골키퍼 김다솔을 인터뷰하겠다고 나섰다. 이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극적인 이야기 대신 김다솔은 훈훈한 이야기를 잔뜩 들려줬다. 때로는 신입 골키퍼의 고뇌와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사람, 생각보다 속이 꽉 찬 인물이다.

새로운 팀에서의 전지훈련은 어떤가?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적응하는 과정이지만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뛰어보고 싶은 그런 명문 팀이 바로 수원삼성 아닌가. 이런 팀에 내가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기쁘다. 게다가 나는 선수 생활 동안 최대한 많은 골키퍼 코치님 밑에서 배워보고 싶었다. 여기에서 김봉수 코치님이라는 또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 생활 한다는 것에 기대감을 많이 갖고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재밌다.

저런, 벌써 수원FC는 다 잊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수원FC라는 팀은 내가 은퇴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팀이다. 나는 2010년 포항스틸러스에서 데뷔한 이후 한 시즌에 가장 많이 뛴 경기가 12경기(2012년, 포항)였다. 그만큼 세컨드 골키퍼를 전전하던 처지였다. 그런데 내가 지난 시즌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고 무려 29경기를 뛰었다. 김대의 감독이라는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난 덕분에 지난 시즌 수원FC에서 꽃피울 수 있었다.

아마 2018 시즌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록 팀을 승격 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지만 처음으로 주전 골키퍼가 됐다. 그리고 12월에 아이를 얻었다. 여기에 연말에 이적 제의가 왔다.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이적을 결정했다. 수원FC 코칭스태프는 "만일 수원삼성이 같은 2부리그에 있다면 절대 안보내줬지만 1부리그에 있으니까 보내준다"라고 하면서 "네가 잘 되서 좋다"라고 축하해 주셨다. 나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김대의 감독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처음에 전화 할 때 받지 않으셔서 섭섭하신 줄 알고 가슴이 덜컹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때 감독님이 몸살감기를 앓고 있어서 전화를 받지 못하셨더라. 이적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가서도 몸 다치지 말고 건강히 잘 뛰어라. 항상 응원하고 있겠다"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김대의 감독님께 많은 것을 받았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앞서 득남을 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아이를 낳으니 어떤가?

첫째를 낳았다. 아들이다. 나는 아들이 나를 닮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다. 내 아내가 워낙 예쁘다보니 주변에서 딸이냐고 묻는다. 아들이지만 아내를 닮아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리움을 달래는데 너무나도 보고싶다.

아이가 생기니 행복하다. 책임감도 생기고. 사실 12월에 낳아서 쉬는 동안 정신이 없었다. 아내를 챙겨야 했고 아이가 갓 태어났으니 계속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잠을 별로 자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까지는 거의 잠을 못잔다고 하더라. 실제로 못잤다. 조금 잠이 들려고 하면 아이가 울어서 깬다. 잘 돌봐주고 재우고 다시 누우면 또 깬다. 끼니도 급하게 떼워야 한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새삼 수원FC 백성동 등 '육아 선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의 출산이 다가오자 주변에서 "너는 이제 큰일났다"면서 "한 번 낳아보면 안다"라고 하더라. 정말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정말 대단하다. 내가 이 잠깐 육아를 감당하면서 3kg이 빠졌다. 사실 이건 자랑이다. 원래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인데 겸사겸사 좋았다. 몸 관리 잘하고 전지훈련에 온 것 아닌가.

잠을 잘 못잤다는데 전지훈련지에서는 숙면을 취했을 것 같다.

이거 정말 아내에게 미안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열심히 육아를 하고 전지훈련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 남해에서 내려오는 동안 푹 잤다. 지금도 잘 먹고 잘 자니까 좋긴 하지만 아내 생각을 하면 미안함이 크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편하지 않은 그런 상황이다.

벌써부터 아내에게 점수 깎일 발언을 하는 건가.

그런데 나는 아들도 좋은데 아내가 더 좋다. 나는 아이가 생겨도 아내가 더 우선이더라.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은퇴를 하고 나이를 먹으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아내다. 나는 아내 눈치를 더 많이 보고 살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했더니 부모님도 친구들도 "너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문제"라고 하더라.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사실 아닌가. 나는 아내가 우선이다. 아들은 미안하지만 그 다음이다.

그리고 둘째 계획은 없다. 자신 없다. 결혼할 때도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고 했다. 주변에서는 "하나는 불행하다. 둘은 낳아야 한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불행하지 않게 우리가 더 잘 챙겨주자"라고 다짐했다. 지금도 아내가 제일 고생하고 있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하고 싶다. 내가 지난해 결혼했는데 아내 잘 만난 덕분에 부상 없이 한 시즌 잘 보냈고 베스트 일레븐 후보에도 올랐다. 난 정말 결혼 잘했다.

엎지른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가족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두 번째 가족인 팬들 이야기를 하자. 당신은 이제 K리그에서 만만치 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열정 넘치는 수원 팬들과 함께한다. 든든하면서도 부담감이 클 것 같다.

사실 팬들이 많다는 것이 제일 걱정이다. 과거 다른 팀에서 뛸 때, 특히 포항에서 있을 때 수원삼성을 상대한 적이 몇 번 있다. 많이 지기도 했고 네 골씩 먹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뒤에 있는 열정적인 팬들이 있으니 움찔움찔 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하하. 어릴 때는 화도 많이 나고 멘탈도 정말 많이 흔들렸다. 네 골 먹으면 욕도 안들리더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그 팬들이 이제는 나를 응원한다. 정말 감사하고 생각만 해도 큰 힘이 된다.

사실 수원 원정을 올 때마다 감탄했다. 경기를 시작할 때 수원삼성 서포터들이 반대편에 있으면 보인다. 한 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와…'라고 감탄했다. 수원 팬들이 대한민국 K리그에서는 최고 아닌가. 항상 볼 때마다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선수들이 수원삼성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좋은 환경, 수도권 입지 등이 있겠지만 팬 또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신화용이라는 든든한 골키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노동건 밖에 없다. 이번 시즌에는 (노)동건이와 제게 팬들이 거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확신이 없고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실 것 같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해서 불신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임무다.

당신은 이런 걱정을 떠안으면서 안정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말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 처음 포항에서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이후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등을 거치면서 어렵게 살아왔다. 부상도 내 발목을 꽤나 잡았다. 지난 시즌 수원FC에서 처음으로 주전이 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다솔은 수원FC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적 제의를 받고 어떻게 해야할지 함께 고민했다. 그래도 수원FC에 남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었다. 1부리그 승격을 견인해서 팀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재기할 수 있도록 만든 팀이니까. 그런데 마음 한 켠에는 1부리그로 돌아가고 싶은 것 또한 있었다. 나는 쭉 K리그2에 있었던 게 아니라 K리그1에도 꽤 오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퇴는 K리그1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 또한 있었다.

꽤 오래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언제 또 이렇게 좋은 기회가 내게 올 것이며 수원삼성이라는 명문 팀에서 언제 제안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런 부분에서 마음이 기울어졌다. 아까 말한 것처럼 배워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나중에 은퇴 후 지도자를 하고 싶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김봉수 코치님과는 10년 전에 한 번 만나봤지만 다시 한 번 지도를 받고 싶었다.

선수는 경기 뛰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수원삼성에 왔다. 나는 이곳에서 또다시 두 번째 골키퍼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팀을 가도 마찬가지다. 경쟁은 항상 있는 법이다. 수원FC에 남아있어도 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박)형순이가 주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원삼성으로 이적을 결정하게 됐다.

오랜 기간 동안 후보 골키퍼의 경험 끝에 나온 결론인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운 것이다. 힘든 시기를 많이 겪다보니 압박감보다는 내려놓는 법을 많이 배웠다. 그래서 더 운동장에서 특히 작년에 마음 편하게 무언가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

맞다. 당신은 포항 이후 상당히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

부상도 발목을 많이 잡았다. 피로골절로 인해서 수술만 세 번 했다. 당시에 어린 나이에 조급했다. 마음이 조급하니 부상이 길어지더라. 경기를 뛰고 싶다는 욕심이 크다보니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면 재활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복귀를 하고 무리하게 경기를 뛰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내게 정말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대전시티즌으로 이적하고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전에서 나오고 나서 축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지도자 교육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축구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천에서 입단 테스트를 봤을 때 다리가 너무나 아파서 경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가 없었다. 김이섭 코치님께 내 몸 상태에 대해 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코치님께서 날 기다려주셨고 극적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

나는 인천에 입단할 때 축구만 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께도 "연봉 따위는 필요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말 뛸 수만 있다면 최저 연봉만 받고도 뛰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당시에는 김이섭 코치님이 나를 믿어주신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 김이섭 코치님 뿐 아니라 나는 빚을 진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여러 코치님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생각해보라. 분명 K리그에는 나보다 월등한 선수들도 많고 나보다 경기에 많이 출전한 경험 풍부한 선수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치님들이 나를 찾아주시고 불러주신다. 내가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나. 그래서 요즘도 자주 전화를 드린다. 수원삼성으로 이적할 때도 고민 상담을 했다. 그리고 지금 부상 부위는 100% 완쾌됐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난 시즌을 잘 소화하면서 더 이상 부상에 대한 걱정도 없다. 몸 상태는 아주 좋다.

포항에서 나온 이후로 정말 고생 많이 한 것 같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정말로. 여기서는 정착 하고 싶다.

이제는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는 추억 아닌가.

맞다. 한 때 축구를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방황했지만 수원FC라는 팀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명문인 수원삼성에 입단하게 됐다. 명문 포항에서 시작해 명문 수원삼성에 왔다. 여기서 가능한 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고생 끝에 돌아온 K리그1인 만큼 열심히 해서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

그래서 내가 수원삼성으로의 이적을 결심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포항에서 나와 여러 구단을 전전할 때 나는 '러브콜'이라는 것을 쉽게 받지 못했다. 그저 내가 원소속팀에서 잘 하지 못해 팀을 나와서 새로운 팀을 겨우 구해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이적이라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내가 잘해서 좋은 대접을 받고 팀을 옮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원삼성이 나를 높이 평가해서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수원FC에서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는 것. 그리고 찾아준다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면 잘 모른다. 그만큼 뿌듯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수원삼성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행복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한다.

당신이 여기 오래 있으려면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

알고 있다. 나는 수원삼성에 와서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이다. 과거 포항에 있을 때 ACL 경험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ACL은 마약 같은 존재다. 한 번 뛰어보면 계속 뛰고 싶은 대회다. 국제대회라는 무게감 또한 있고 다양한 팀들을 만나기 때문에 경험 또한 쌓인다.

개인적으로는 ACL에 다시 한 번 나가게 된다면 우즈베키스탄의 분요드코르와 꼭 만나고 싶었다. 복수혈전이랄까. 과거 포항에서 뛸 때 분요드코르와 상당히 어려운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분요드코르가 우즈베키스탄 리그에서 몰락했다고 하더라. 어쨌든 ACL은 수원삼성과 함께 다시 나가보고 싶다.

다른 한 가지 목표는 우승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우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우승을 만들어보고 싶다. 우승이라는 것은 축구선수와 팬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영광이다. 이것을 나와 동료들의 힘으로 만들어 팬들에게 선사한다면 정말 큰 즐거움 아닐까. 수원삼성이 결코 약하지 않은 만큼 꼭 우승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인터뷰 내내 김다솔은 행복해 보였다. 웃음도 많았고 무언가 새로운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 또한 엿보였다. 물론 육아노동에서 해방되어 오랜만에 잠을 푹 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김다솔은 수원삼성에서 선수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약 10년 동안 돌고 돌아 수원삼성이라는 곳에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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