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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어제(22일) WK리그 경주한수원 하금진 전 감독의 성폭력 행위와 이를 은폐한 구단에 관한 이야기를 최초로 보도했다. 오랜 시간 취재하고 고민한 내용이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폭로였다. 이 사안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폭로했던 개인이나 구단의 비리 혹은 부정 행위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처음 이 일에 대해 접한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아주 작은 단서로부터 시작했다. “하금진 감독이 성 관련 문제로 팀을 떠난 것 같다”는 한 마디 추측성 제보를 전해 듣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접근조차 쉽지 않은 문제였다. 접촉했던 수 많은 이들은 “나는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절대 이름 나가는 거 아니니 제발 어떤 사건이었는지만 좀 들은 대로라도 말해달라”고 선수들에게도 물었지만 그들 역시 대다수가 침묵을 지켰다.

사건을 잘 알고 있는 몇몇 선수들에게는 몇 번의 통화를 시도한 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언젠가 본인들도 선배가 될 텐데 그때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용기를 좀 내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답이 없었다. 그렇게 석 달 동안 수소문하고 매달린 끝에 빙산의 아주 자그마한 한쪽 구석을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뻔한 일이 만천하에 퍼졌고 이제 대한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 경주한수원축구단은 진상 조사를 하기로 시작했다.

장문의 메시지에도 그들은 답이 없었다.

어제 보도 이후 하금진 감독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남편은 성폭력을 일으킨 적이 절대 없다”고 끊더니 “기자라면 똑바로 알아보고 쓰시라”는 메시지까지 왔다. 이후 통화한 하금진 감독도 “성폭력? 비슷한 것도 없었다”면서 “당장 기사를 내려달라.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 명예훼손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5분가량 통화에서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는 “난 성폭력과 전혀 연관 없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 여러 취재원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은 그들이 입을 맞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자 “나는 그런 거 모른다. 어찌됐건 난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취재했고 내 기사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기사를 내릴 순 없고 감독님이 부인하고 있다는 걸 인터뷰 기사로 하나 내겠다”며 “대신 감독님 말이 거짓이라고 드러나면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일 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금진 감독은 “고소할 테니 그렇게 알라”며 전화를 끊었다.

경주한수원에서도 전화가 왔다. 바로 하루 전날 기사 공개에 앞서 사실 확인차 전화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담당자가 없으니 나중에 전화하라”며 담당자 개인 연락처조차 개인정보라고 가르쳐 주지 않더니 이번에는 높은 사람이 직접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건을 은폐한 적이 없다”며 “기사를 수정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불과 하루 전에는 귀찮은 전화 한 통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제는 나에게 “대표님, 대표님”한다. 참 세상 일 모르는 거다. 일개 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부심’ 부릴 생각도 없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그들의 태도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성폭력 사건이 터지니 다들 자기 살기 바빠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금진 감독은 성폭력이라고는 전혀 연관 없는 자기를 성폭력범으로 만들었다며 나를 고소한다고 했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곧바로 이 사건을 조사했다는 여성 민간 단체에 확인을 요청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그 분 우리가 조사한 거 맞고요. 정확한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성폭력 가해자로 결론 내려져서 징계 해고 당했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사실 확인될 일을 하금진 감독은 왜 그렇게 기고만장 했을까.

경주한수원 측은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이것도 연맹과 대화를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경주한수원 측은 WK리그를 총괄하는 여자축구연맹에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연맹에서 하금진 감독이 계속 경기장에 나오지 않아 거취에 대해 물으니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숨기기 급급했다. 한 번의 취재만 거쳐도 다 나올 이야기를 그들은 아니라고 한다. 당장 한 순간의 위기를 숨기기 위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최초 보도 후 퇴근을 하고 친구와 맥주 한잔을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보니 하금진 감독의 성폭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후속 보도부터 경주한수원이 이미 하금진 감독의 성폭력 전력을 알고도 채용했다는 보도까지 쭉 터져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니 그게 될 리가 있나. 그렇게 아니라고 잡아 떼던 가해자와 성폭력을 너무나도 허술하게 받아들인 구단은 말 몇 마디로 이 사건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장문의 메시지에도 그들은 답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아찔한 일이다. 체육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이 하금진 감독과 비슷한 입장을 취할 걸 생각하니 아찔하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피해자의 증언이 등장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억울하다고 주장할 가해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질 것이다. 자식 같은 선수들에게 성적인 괴로움을 줄 땐 언제고 자기 범죄가 세상에 알려져 괴로운 것만 생각하나. 어제 밤 가만히 생각하니 하금진 감독과 이성적으로 통화한 게 후회가 된다.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한마디 할 걸 그랬다.

‘2010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 2011년 U-15 남자대표팀 수석코치, 2012년 U-16 대표팀 코치, 2014년 U-20 여자대표팀 코치, 2015년 U-16 여자대표팀 감독.’ 하금진 감독의 경력이다. 지도자로서 걸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을 걸었던 이 사람은 축구인 전체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이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명예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 경기장에서 만났으면 말 한 번 걸기도 어려울 감독이었는데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순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망신을 당해도 싸다. 어제 통화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숨 쉬는 것조차 곤란해 보이던 하금진 감독의 그 목소리에 작은 미안함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을 공론화 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폭력 조사를 받아 징계 해고까지 당했던 이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그 작은 미안함은 금방 사라지더라.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니 분노만 더욱 커지더라. 다시는 이런 지도자가 현장에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하금진 감독 사건과 함께 취재한 몇몇 다른 사건들도 기가 찬 내용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 어떤 사건보다 취재가 쉽지 않으니 일단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전까지는 오리발을 내민다. 그래서 용기를 낸 제보자들이 더더욱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이들이 체육계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건 협회도, 연맹도, 구단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괴로운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든 <스포츠니어스>에 제보해 달라. 취재원 신분을 끝까지 보호하면서 진실을 파헤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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