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행복한’ 양형모, “전역하고도 아산 경기 보러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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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거쳐 가는 팀’ K리그 군경팀의 이미지는 딱 그렇다.

선수들의 순환도 많고 정을 주기에도, 정을 받기에도 모호한 팀. K리그 군경팀의 현실이 그렇다. 하지만 2018년 내내 ‘아산 무궁화’라는 명목하에 똘똘 뭉친 그들은 무언가 달랐다. 팬들은 곧 아산을 떠나게 될 선수들에게도 열렬히 박수를 보냈고 선수들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걸 걸고 뛰었다. ‘아산’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분명 하나였다. 그 결과 아산 무궁화는 2018 K리그2 우승을 차지했고 2019시즌에도 K리그에 참여하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이 시기를 경험한 선수들이라면 아산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새 시즌을 앞두고 그 순간들을 함께한 아산 선수를 꼭 만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주목도는 덜했지만 묵묵히 뒤를 받치며 팀의 중요한 순간마다 주역으로 활약했던 골키퍼, 리그 우승이 걸린 성남전에서의 맹활약 후 눈물을 쏟은 남자 ‘양형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2년 연속 남해에 전지훈련을 온 양형모는 묵묵히 아산에서의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 남해에서 만나 더 반갑습니다. 어떻게 지냈나요.
“새 시즌 준비에 한창입니다.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된 마음 반인데 지금 잘해야 시즌도 편하게 임할 수 있으니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남해에는 2년 연속 오게 됐네요.
“작년과 올해의 느낌이 달라요. 작년 이맘때는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신병 자격으로 남해에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머리도 더 짧았고 군기도 바짝 든 상태였죠. 그때는 공에 반응하는 속도보다 선임 말에 반응하는 속도가 더 빨랐던 시간이었는데 올해는 전역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한결 가볍죠. 남해의 맛도, 풍경도 올해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거 같습니다.”

이래서 짬이 중요한가 봅니다. 주위 동료들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습니다. 제 동기들은 1년 전보다 다들 여유가 생긴 느낌이에요.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남해에서 나고 자란 김도혁의 인기랄까요. 도혁이는 제가 볼 땐 지역 최고의 스타다. 길만 지나가면 “너 도혁이 아니냐”며 어르신들이 알아보고 인사할 정도에요. 작년이나 올해나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습니다.”

“1년 사이에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친구는 민상기죠. 사실 입대한 직후 상기를 봤을 때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보통 새로운 사람이 조직에 들어오면 일부러 무게 잡는 척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게 딱 상기였어요. 저하고 제 동기들이 팀에 들어오니까 상기가 무게를 잡기 시작하더라고요. 상기의 평소 성격을 아는 저는 ‘쟤가 저럴 애가 아닌데’ 싶었지만 그냥 장단을 좀 맞춰주기로 했어요.”

민상기는 곧 수원으로 복귀합니다.
“맞아요. 오는 31일 전역하는데 ‘말출’ 나와서 우리와 훈련은 같이 하고 있어요. 항상 옆에서 “먼저 갈게” 하는데 그런 말들이 하나하나 비수에 꽂혀요. 얘가 전역을 앞두니까 더 여유도 보이고 들뜨는 감정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운동이나 자기 관리는 참 철저해요. 어쨌든 부럽죠.”

남해 스타 김도혁이 추천해주는 맛집은 없었나요?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소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혁이 덕분에 맛있는 걸 많이 먹어요. 장어구이, 장어탕, 멸치회무침, 가오리회 등 정말 다양해요. 특히 멸치쌈밥이 입맞에 맞았어요. 남해가 워낙 멀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이랑도 꼭 같이 먹고 싶어요. 멸치쌈밥은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비릴 수 있지만 몇 번 먹다 보면 고소한 향이 올라오면서 그 진가를 알게 됩니다. 멸치쌈밥은 길게 오래 보아야 더 맛있는 법이죠.”

음식 소개에도 철학이 있어 놀랍네요. 길게 오래 보아야 하는 건 당신의 지난 시즌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실 지난 시즌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어요. 박주원, 박형순 선임이 전역하고 후반기 되어서야 리그 4경기에 출전했고 중간중간 FA컵 경기를 뛴 게 전부였습니다. 출전 기회를 못 받아 답답한 건 있었죠. 작년 이 시기에는 의욕도 가득했고 경기에 나가고 싶었는데 막상 뛰지 못해 아쉽기는 했습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기회를 못 받는 동안 어떻게 견뎠나요?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선임들 덕분이었죠. 선임들도 다 나 같은 마음으로 아산에 올 당시에 의욕이 넘쳤지만 정작 기회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묵묵히 후보로 기다림을 이어온 선임들도 이제야 기회를 잡는데 나도 ‘새 팀에 적응하고 몸을 완성하는 게 먼저겠구나’,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구나’ 싶었습니다.”

“최익형 코치의 도움도 컸어요. 최익형 코치는 처음 나를 봤을 때 “묵묵히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마디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서야 진짜 뜻을 알겠더라고요. 제가 신병일 때는 분위기 적응도 끝났고 기회를 잡기 위해 그동안 출장 기회를 기다려온 선임들이 경기에 나서는 게 맞았습니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나중에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 묵묵히 잘 준비하라는 의미로 최익형 코치가 그 말을 건넸던 거 같아요.”

지난 시즌 양형모의 활약은 짧고 굵었습니다. 나올 때마다 활약이 굉장했었죠.
“경기를 잘 마친 게 컸어요. 팬분들은 제가 뛴 FA컵 5라운드 전북전을 더 기억하시겠지만 사실 시즌 첫 출전 경기는 FA컵 4라운드 안산전이었어요. 당시엔 수원에서도 경기를 많이 안 뛴 상태로 입대했고 아산에서의 첫 경기였기 때문에 부담이 컸습니다. 경기 내내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뛰었나 기억도 안 날 만큼 긴장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무실점으로 마쳤습니다. 첫 경기를 치르고 나니 훨씬 홀가분하더라고요. 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전북전에 나섰더니 좋은 경기력이 나왔습니다.”

가벼운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전북 상대로 잘하는 건 아닐 텐데요.
“그날 유독 경기가 잘 됐을 뿐이에요. 첫 경기를 잘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어요. 게다가 무대가 FA컵 이었잖아요. 수원 시절부터 저는 FA컵과 유독 인연이 깊었어요. 팬분들이 ‘FA컵 사나이’라고도 불러주시는데 그 칭호가 유효하게 이어져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양형모와 FA컵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그렇죠. 2016년 FA컵 6라운드로 치러진 수원과 성남의 경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당시 120분 동안 1-1로 비긴 두 팀은 승부차기에서 양형모의 활약 덕에 4-3 승리를 거뒀다). 저도 잘했지만 팀의 이기려는 분위기가 굉장했어요. 특히 베테랑 (곽)희주형은 경기 중 근육 경련이 연이어 발생했는데도 피를 뽑으면서까지 뛰었어요. 그걸 보며 많이 느꼈죠. 지금도 저는 ‘어디서든 그렇게만 뛰면 성공한다’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녀요.”

지난 시즌 후반기 아산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팀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선수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저 좋은 결과를 만들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서 이기는 게 우리 몫이었어요. 주장 상기를 중심으로 선수단 모두 하나 되어 우리의 소임을 다하자고 소리쳤습니다. 전역을 앞둔 선임들마저 한 발씩 더 뛰며 모범을 보였죠.”

팀의 분위기가 가장 고조됐던 경기는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리그 우승이 걸린 성남전이었어요. 이기기만 하면 사실상 리그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산에서 축구 경기가 계속되길 바라는 팬들도, 뛸 곳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선수들도, 코치진 및 구단 관계자까지 모두가 필사적으로 이 경기에 덤볐습니다. 경기 막판에 결승 골이 터져 1-0으로 이겼을 때는 감동이 몰려왔죠.”

성남전 경기 후 울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안 울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요. 너무 기뻐서 절로 눈물이 나는데 그걸 또 카메라가 와서 그대로 찍어가더라고요. 사진만 안 찍혔어도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는 건데…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부터 ‘울보 양형모’라고 칭해야겠네요. 성남과는 유독 인연이 많은 거 같아요.
“저도 많이 느껴요. 2016년 FA컵 때 잊지 못할 그 경기를 시작으로 성남과 경기할 때는 유독 일이 많았습니다. 그 FA컵 경기 후 사흘 만에 성남과 리그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김현에게 실점을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제 실수로 팀이 패배해 가슴이 아팠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눈물을 쏟은 아산에서의 성남전도 참 잊지 못할 명경기였죠. 성남을 만날 때마다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다행히 아산 무궁화에서 계속 뛰게 됐는데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12월 말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마조마하며 시간을 기다렸던 게 엊그제였어요. 그때는 최악의 수까지 생각하면서 관계자들도 찾아가고 다른 대안도 찾아보는 등 정말 바쁘게 지냈습니다. 다행히 대안이 잘 마련돼 올해도 경기에 나서게 됐어요. 아산은 아직 재정 문제를 포함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저는 선수로서 제가 할 역할에 집중하고 싶어요. 기적을 함께한 선수단 모두 좋은 경기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아산 팬들에게도 애틋한 감정이 가득할 거 같아요.
“힘든 시간을 함께해준 분들이라 더 그래요. 사실 각 선수의 원소속팀 팬들과 비교했을 때 아산 팬들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인기 구단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응원해주시고 훈련 중에도 운동장에 와서 선수들 회복하라고 간식거리도 주는 등 많은 사랑을 주셨죠.”

“저는 전역하고도 아산 경기를 보러 올 거에요. 아산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많이 성장했습니다. 저를 더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선수 경력에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될 만한 시간을 보냈어요. 흔히 전역하고는 부대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고 하지만 전 지금의 마음가짐, 아산에서의 추억들을 다시 찾고 싶을 때 꼭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을 던져볼게요. 2019 시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골키퍼는 리그를 준비하다 보면 누구나 0점대 방어율을 목표로 할 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0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아산의 리그 우승을 돕고 싶어요. 원소속팀 수원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역할 가을이 오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아산에서의 역할과 경쟁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제가 아산에서 만족할 상황들을 만들고 가야 수원에서도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2019 시즌도 아산의 리그 우승을 함께하고 싶어요.”

아산 무궁화는 아직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어렵게 2019시즌 K리그 참가를 확정했지만 여전히 재정 문제, 구단 존속 문제 등 여러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산 무궁화는 지금까지 해왔던 싸움을 새 시즌에도 이어가야 한다. 선수들은 최선의 경기력으로 결과를 내야하고 구단 및 관계자들도 아산 축구의 지속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생존을 위한 아산의 싸움은 2019시즌에도 계속된다. 다행히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팀의 에너지는 남아있는 선수들에게 아직 유효하다. 1년 전 짧은 머리에 군기가 바짝 든 신병 양형모는 어느새 전역을 7개월가량 앞둔 고참이 됐다. 그는 더 무거워진 짐을 떠안은 채 2019시즌 아산의 뒷문 방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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