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친정팀을 가지 못하는 남자, 아산 민상기



[스포츠니어스|남해=조성룡 기자] 5.15km. 자동차로 약 12분.

걸어간다면 꽤 먼 곳이지만 차량을 이용한다면 약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그토록 재회하고 싶던 친정팀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장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남자가 있다. 바로 아산무궁화, 아니 얼마 뒤면 수원삼성으로 소속팀이 바뀔 민상기의 이야기다.

현재 경상남도 남해에서는 두 팀이 전지훈련 중이다. K리그1 수원과 K리그2 아산이다. 두 팀 숙소는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아산이 수원의 숙소 근처에서 훈련을 할 때면 거리는 5km로 줄어든다. 대충 지도를 봐도 산 하나만 넘어가면 곧바로 수원의 전지훈련지가 등장하는 셈이다. 친정팀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민상기는 아산에서 훈련 중이다. 전역이 1월 31일이기 때문이다.

아산의 전지훈련장은 활기가 넘쳤다. 박동혁 감독은 모자를 뒤집어 쓰고 열심히 선수들과 땀을 흘리고 있었다. 때로는 소리도 지르고 그라운드에 벌러덩 눕기도 했다. 민상기 또한 여기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말년 병장’, 아니 ‘말년 수경’이기에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민상기는 아산에서도 그 어떤 선수 못지 않게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안가요” 민상기의 웃음 섞인 절규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민상기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씩 웃으며 대뜸 한 마디를 던졌다. “정말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힌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열흘 남짓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길 수 밖에 없다. 그는 토로했다. “100일 남았을 때보다 10일 정도 남았을 때가 시간이 더 안간다.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데 이렇게도 시간이 느리게 갈 수가 없다.”

그가 시간을 빨리 보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매 훈련마다 민상기는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훈련을 소화한다. 소속팀에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금 아산에서도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민상기는 팀의 최고참이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는 곧 수원에 보탬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TV다. 민상기는 쉴 때마다 TV 앞에서 산다. 게다가 아산 선수단은 곧 전역할 여섯 명에게 1인실을 배정하며 배려했다. “1인실을 쓰는 덕분에 TV를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진짜 마지막 시간이 안간다. 솔직히 미칠 것 같다.” 그러면서도 민상기는 웃는다. 전역이 다가오니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옆에는 아직 전역이 반 년 이상 남은 후임들이 터덜터덜 지나가고 있었다.

“곧 갑니다. 이종성 구자룡 기다려”
앞서 말한 것처럼 공교롭게도 아산과 수원의 전지훈련장은 근처에 있다. 민상기는 같은 동네에 있으면서도 아직 파란 유니폼을 보지 못했다. “사실 빨리 수원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아직 전역을 안했으니 못간다. 안타깝다. 시간이 된다면 가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참고로 수원의 전지훈련 숙소는 산 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아산의 숙소는 시내, 아니 ‘읍내’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민상기가 남해에서 전역을 하면 곧바로 산을 넘어서 수원의 전지훈련장에 합류하게 될까? 그것도 아니다. 민상기는 “내가 전역하면 수원이 터키로 가버리더라”면서 “나는 따로 터키로 합류해야 할 것 같다”라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아산 구단 관계자도 거들었다. “전역식은 아산 경찰대학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민상기는 남해에서 전역 못합니다.”

그는 이제 군 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친정팀 수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감정은 복잡하다. “기대도 있고 설렘도 있지만 우려도 있다”라고 말한 민상기는 “경쟁도 경쟁이지만 요즘 수원에 좋지 않은 소식도 들리더라. 이제 수원에서 10년째 되어가는데 걱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수원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걱정도 하는 것이다.

특히 민상기는 이종성과 구자룡에게 농담 삼아 경고 아닌 경고를 전했다. 그는 “요즘 듣기로는 수원 유스(매탄) 출신이 20명이 넘는다더라”면서 “이종성과 구자룡 이 놈들, 지들이 1기라고 하면서 날 1기 취급 안한다고 하더라. 돌아가면 확실하게 군기 잡아서 잘하도록 만들어 놓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두 사람은 이제 큰일났다. 갓 전역한 예비역만큼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팬들께서 ‘매탄 왕의 귀환’이라고 하신다”라고 쑥쓰럽게 웃은 민상기는 “곧 돌아가는데 아산에서 많이 배운 만큼 수원에서도 충분히 도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탄 독재 체제’에 대해 한 마디 던졌다. “매탄 놈들 끼고 돌면 매탄 아닌 사람들이 너무 소외감 느낀다. 매탄 최고참 답게 알아서 센스 있게 균형 맞춰서 잘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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